
[점프볼=강현지 기자] 연맹 협회장기, 종별선수권,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고교 대회를 휩쓴 부산 중앙고 양홍석(19, 199cm)이 모교 선배이자 전주 KCC 감독인 추승균 (41)을 찾았다. 까마득한 후배가 자신의 기록을 넘은 것에 추 감독은 대견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지만, 양홍석은 대선배와의 만남에 ‘얼음’이 됐다. 실력을 뽐내보려고 던졌던 슛이 계속해 림을 외면한 것. 이에 추 감독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양홍석을 상대로 짧은 1대1 레슨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감독이 아닌 선배로서 건넨 진심어린 조언까지. 부산 중앙고 1993년도 졸업생 추승균과 2017년 졸업예정자 두 선후배가 만난 자리는 과연 어땠을까.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터뷰에 앞서 양홍석이 추 감독 앞에서 한 차례 실력을 뽐내는 자리를 가졌다. 돌파, 3점슛, 포스트 업을 시도했고, 추 감독은 “드라이브인 할 때는 어깨를 밀어 넣으면서”, “슛 폼이 좋은데?”라 덧붙이며 그의 움직임을 주목했다. 양홍석이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며 모교 3관왕을 이끈 주역이라는 말에 그도 양홍석의 영상을 찾아봤다. 직접 눈앞에서 보니 실력은 더 좋았다. (※ 양홍석은 제97회 전국체전 당시 청주 신흥고를 상대로 32득점 15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양홍석은 2014년에도 협회장기 대회에서 명지고를 상대로 27득점 22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첫 번째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바 있다.)
Q. 양홍석 선수의 슛, 돌파 등 움직임을 좀 보셨는데, 어떤가요?
추승균_ 몇 달 전에 영상으로 봤었어요. 패스, 슛, 드리블 등 같은 포지션 선수들에 비해 잘하더라고요. 제가 (송)교창이를 가르쳐 봤잖아요. 고등학생만의 몸짓이 있거든요. 고등학교에서 적수가 없다 보니 느슨한 플레이가 나올 때가 있어요. 그게 몸에 습관이 되어 있다 보니 경기 중에도 그런 모습이 나올 때가 있어요. 더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죠. 필요한 것과 모자란 부분은 잘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따라 해야 해요. 그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죠.
Q. 반대로 양홍석 선수는 어땠나요? 감독님이 슛 자세나 돌파할 때의 움직임 등 여러 가지 짚어주셨는데?
양홍석_ 섬세한 부분까지 짚어주셔서 좋았어요. 사실 드라이브인 할 때 어깨를 집어넣지 않고 형식적으로 하긴 했거든요. 앞으로 더 주의를 기울여야겠어요.
Q. 후배들이 24년 만에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감독님이 남겼던 2연패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하셨을 때 어떠셨나요?
추승균_ 좋았죠. 요즘 지방 팀들이 계속 하위권에 있으면서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는데,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려서 기뻤죠. 유망주들이 수도권 진학을 택하는 것이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거든요.
Q. 1990년대 초 감독님이 계셨던 부산 중앙고는 어땠나요?
추승균_ 당시는 대학팀들과 연습 경기를 많이 했어요. 동계 훈련 땐 거의 다 이겼죠. 그래서 (대회에) 나가면 무조건 우승이다 했었는데, 춘계 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했지 뭐에요. 정작 대회에 가서 집중하지 못한거죠. 이후 협회장기 나가서 우승하고, 대통령기에 나갔는데 그때는 공중파에서 중계도 해줬어요. 당시 서장훈, 현주엽이 있던 휘문고랑 결승을 치렀는데, 강용길 선생님도 중계 카메라가 들어오니 작전 지시를 못 하시는 거예요. 그러다 큰 점수차로 패했던 기억이 나요. 그땐 강팀들이 많았어요. 지방은 지방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짜임새가 좋았죠.
양홍석_ 지금은 전국체전이 가장 중요해요. 아주 난리가 나요.
추승균_ 우리 때도 대전고랑 했었는데, 한골 차로 이겼어요. 그걸 제가 넣었었거든요. 하하. 그 경기에서 이겨야 순위가 바뀌는 상황이라 난리가 났었죠.
Q. 올해 부산 중앙고가 춘계대회에서 우승을 못 하고, 중후반부터 실력 발휘를 하며 우승을 거머쥐었어요. 부산 중앙고도 슬로우 스타터인가요?
추승균_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하. 지방에만 계속 있다가 그래서 그래요. 이번에 춘계연맹전이 어디서 열렸죠?
양홍석_ 삼천포요.
추승균_ (양홍석을 바라보며) 가까운데 왜 그랬어~. 저희 때는 전국체전을 제외하곤 항상 서울에서 했었어요. 그래서 어벙한 것도 있었죠. 그럼 슬로우 스타터 맞네요(웃음). 이상하게 지방 팀이 약한 게 있어요. 지방 팀이 우승한 적이 드물잖아요.
Q. 송교창이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로 진출해서 빨리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요즘 프로 조기 진출에 대해 팬들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양홍석의 대학 진출 아니면 프로 데뷔에 대한 고민, 어떻게 보시나요?
추승균_ 선수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교창이도 아직 부족하거든요.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하는 행동들이 남아있어요. 달려야 할 때와 쉴 타임에 대한 타이밍을 못 잡아요. 달려야 할 때 쉬고, 쉴 때도 달리는 것들이 있어요. 그리고 몸이 못 부딪히는 게 달라요. 사람이 서른 살이 넘으면 뼈가 더는 단단해지지 않는데요. 몸이 좋고, 힘이 좋다 해도 프로선수들과 부딪히면 아프다고 하죠. 뼈가 영글지 않아서 의학적으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프로에 10년 이상이고, 익을 때로 익은 선수들인데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기술에 구력까지 있으니까요. 아직 그런 면에서 교창이가 부족해요. 점차 경기를 하다 스스로 느낄 거예요. 그런데 교창이가 정말 열심히 해요. 하루도 야간 운동을 쉬지 않았죠. 제가 먼저 쉬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절대 빠지지 않아요.
Q. 만약에 양홍석이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얼리로 나온다. KCC가 지명권이 있다. 그럼 송교창 때처럼…
추승균_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뽑아야죠. 좋죠. 2m 선수가 두 명이나 있으면 좋죠.(웃음)
Q.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추승균_ 다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안 다치고 잘 하는 것이 운동 잘 하는 거예요. 다치면 소용없어요. 6개월, 1년 쉬다가 돌아오면 자리 잡는데 시간이 더 걸리거든요. 재활만 하다가 팀에 합류하면 운동을 못 해서 다시 다치곤 해요.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양홍석_ 아! 저 선배님들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선배님들! 저희 학교, 모교 한 번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선배님들처럼 훌륭한 선수되어서 꼭 찾아뵙겠습니다.
“감독님! 정말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어요!” 양홍석이 먼저 걸어간 길에 대해 질문이 있다며 추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추 감독 역시 뻔한 답변 대신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진심어린 조언을 건넸다.
양홍석_ 감독님은 슬럼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추승균_ 제일 힘든 것인데…. 하하. 슬럼프가 왜 왔는지 스스로가 잘 알거야. 밸런스가 깨졌는지, 공격, 수비, 드리블, 슛, 패스, 어느 부분에서 슬럼프가 왔는지. 어느 부분에서 왔는지 찾아서 연습하는 게 중요해.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이 가장 좋지. 그럼 뭔가 하나를 놓치고 있을 거야. 그런데 하루 정도는 머리를 비우고, 좋아하는 것 하고. 사생활에서는 슬럼프가 안 오잖아(웃음). 만약에 여자 친구랑 싸웠어. 그걸 경기 중에도 신경 쓴다면 그건 프로가 아니지. 공과 사는 반드시 구분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프로 선수로서 성공 못 해.
양홍석_ 감독님은 시즌이 끝나시면 휴식기를 어떻게 보내셨어요?
추승균_ 2주 정도는 무조건 쉬었어. 내가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아무것도 안 했지. 근데 그 이후로는 운동했어. 공은 잘 안만지는 대신 러닝 뛰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차근차근했지. 왜냐하면 고향이 부산이니까 나도 어머니 뵈러 부산에 내려갔었지. 내려가면 쉬고, 친구들 만나고 좋아하는 거 다했어. 그러다 보면 ‘이 정도 되면 운동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야. 그럼 그때부터 운동하면 돼. 점차 강도를 끌어올리면서. 시즌 때 겪어보면 몸을 만들어야 할지, 체중을 불려야할지 빼야할지 느낌이 올 거야. 그럼 거기에 대해 연습을 하면 돼.
양홍석_ 아직 시간이 있긴 하지만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해야 하는 게 있을까요?
추승균_ 꼭 해야 되는 게 많은데(웃음). 운동 쪽으로는 스스로가 더 잘 알 거야. 연습도 꾸준히 할 거고,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 중요성도 강조했으니 네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것이란 말이야. 그런 면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프로팀에 왔다고 거만해지지 않는 것,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어. ‘인성’이 중요해. 왜냐하면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선수들이 많아. 농구만 잘 한다고 버텨온 선수들이 얼마 없어. 사람 사귀는 것도 중요해. 왜냐하면 혼자 농구하는 것이 아니거든. 회사와 이야기해야 하고, 관련 있는 다 되어 있는 사람들이야.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처음에 왔을 때 열심히, 성실한 모습 보이잖아. 그럼 그게 인식이 돼. 그럼 네가 부진할 때에도 ‘극복해 낼 거야’라고 생각해. 대학 때 입학부터 열심히 하는 선수, 사람들한테도 그런 인상을 심어준다면 농구도 더 많이 늘 거야.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니깐.
BONUS ONE SHOT | 부산중앙의 첫 전성시대
2016년, 박영민 코치가 이끄는 부산 중앙고가 '양홍석 전성시대'를 달리기 전까지, 이 팀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1992년 고교농구 우승컵이었다. 청소년대표 콤비 박훈근과 추승균이 활약한 부산 중앙고는 1992년 4월 제17회 협회장기 고등부 우승을 차지했다. 개교이래 첫 우승이었다. 추승균은 이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된다. 부산 중앙고의 강세는 그 해 10월까지 계속됐다. 전국체전에서 대전고에 79-77로 승리한 것. 이후 박훈근은 고려대로, 추승균은 한양대로 진학했다. 부산 중앙고 후배들은 1992년의 여세를 몰아 다음해 쌍용기에서도 현주엽이 이끄는 휘문고를 꺾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1992년 2관왕의 영예는 한동안 재현되지 않았다. 3학년 양홍석이 코트를 휘저은 2016년까지.
#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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