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용-강상재 "우정과 라이벌 사이" ①

이재범 / 기사승인 : 2017-01-03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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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바스켓코리아기자] 농구를 시작할 무렵부터 알고 지내던 두 경상도 사나이가 서울로 상경해 우정을 다졌다. 이종현이란 공통분모를 두고 라이벌 대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2016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2, 3순위에 지명되어 프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서울 SK 최준용(23, 200cm)과 인천 전자랜드 강상재(23, 200cm)의 이야기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정의 첫 발
강상재는 대구 칠곡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최준용은 그보다 1년 늦은 5학년 때 창원 회원초등학교에서 농구공을 잡았다. 두 선수의 인연은 칠곡초가 회원초로 전지훈련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강상재는 “회원초등학교에 전지훈련을 갔을 때 준용이를 처음 봤다”고 정확하게 기억했다. 최준용은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냈다는 것만 알 뿐 강상재처럼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했다. 단지 “상재는 조용하고 착한 선수였다”라고 떠올렸다. 강상재는 당시 전지훈련에서 농구를 그만둘 뻔한 사연이 있어 더 뚜렷하게 기억한다. 강상재는 “그 때 전지훈련에 부모님도 따라오셨는데, 소극적인 성격으로 훈련하는 저를 보시고 화가 나셔서 농구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만 두었다가 선생님 설득으로 다시 농구를 시작했다”고 일화를 들려줬다.


경상도에서 맺은 인연은 서울 고교에 진학하며 우정으로 발전했다. 강상재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비슷한 상황이라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더욱 친해진 계기를 설명했다. 최준용은 경복고에 진학한 이유가 재미있다. 최준용은 “서울 어디든 가고 싶었다. 어디라도 부르면 간다는 마음이었는데 경복고에서 불러서 갔다”고 했다. 두 선수는 또 공통점이 있다. 강상재는 홍대부고의 주득점원이었고, 최준용은 이종현과 함께 경복고를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다. 유망주였던 두 선수는 2012년 일본에서 열린 ‘NBA 국경 없는 농구’란 캠프에 참석했을 뿐, 서울 SK의 빅맨 캠프나 KBL 주최 농구캠프 등에는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두 선수가 처음으로 같은 유니폼을 입은 건 2012년 U18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다. 강상재는 “준용이가 패스 센스가 좋고, 리바운드 후 드리블로 잘 치고 나오니까 경기 전에 서로 눈을 맞추자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또 받아먹는 득점을 잘 하니까 준용이가 내 움직임을 보고 패스를 잘 넣어줬다”며 “대표팀에 가면 항상 눈을 맞춘 뒤 경기를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고 두 선수의 호흡을 자랑했다. 최준용은 “상재가 그 때는 지금의 농구와 달랐다. 슛이 좋고 느린 선수가 아니었다. 대표팀에 가서 살이 찐 뒤 스타일이 바뀐 거 같다”고 했다.


강상재가 국가대표에서 살이 찐 건 2013년 19세 이하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이하 U19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강상재는 살이 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려대에 입학 한 뒤 U19 대회가 열린 체코로 갈 때 90kg정도였다. 체코에 가서 밥을 못 먹고 인스턴트 음식만 먹었다. 대회 끝나고 오니까 (이)승현이 형이 ‘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냐’고 했다. 체중을 재보니 100kg으로 10kg나 쪘다. 그 이후 살이 안 빠졌다. 체형도 바뀌었다. 그 전에는 야식을 먹어도 살이 안 쪘는데, 그 이후 쉽게 살이 찌고 잘 안 빠진다.”





라이벌
두 선수는 서로의 초, 중학교 시절을 희미하게 떠올린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야 명확한 그림을 그린다. 강상재는 “농구를 시작한 뒤 준용이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준용이의 다른 것들을 항상 보고 배우려고 했다”며 “나는 플레이 스타일이 묵묵하고, 준용이는 화려해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것도 준용이가 또 앞섰다. 난 경기가 끝나면 ‘어, 이만큼이나 넣었어’라고 하는 반면에 준용이는 2점을 넣어도 화려하게 덩크를 해서 팬들이 잘 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고 최준용을 부러워했다. 최준용은 “상재는 중학교 때 스윙맨으로 3점슛을 많이 던진 거 같은데, 고등학교 때 골밑에서 플레이를 많이 하며 거의 4번(파워포워드)을 본 거 같다”고 했다. 최준용에겐 부질없는 만약을 던졌다. 최준용이 강상재 대신 경복고가 아닌 홍대부고에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홍대부고의 이미지는 지금과 다를 거다. 그냥 잘 하는 팀으로 기억에 남을 거다. 안 좋은 학교에 가서 내가 못 컸다는 것보다 내가 그 학교를 크게 만들면 된다. 마인드 차이다.” 최준용다운 답변이다.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는 “상재가 입학할 때 슛이 좋은, 신장 190cm정도의 선수여서 슈터로 키우려고 했다. 신장이 2m까지 클지 몰랐다. 학년이 올라가며 골밑에서 더 많은 많은 플레이를 했다”며 “팀 사정상 골밑에서 안정적인 득점을 올려줬는데, 외곽에서 슛을 던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신 대표팀에 가서 (이)종현이나 (박)인태 등 장신선수들이 있으니까 3점슛을 많이 던졌다”고 강상재의 고교시절을 회상했다. 강상재는 2013년 U19대회에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43개의 3점슛을 던져 20개를 성공, 성공률 46.5%를 기록하며 평균 19.2점을 올렸다. 최고의 득점원이었다.


경복고 신종석 코치는 “준용이는 성실하고 착하고, 의리와 리더십이 있는 선수였다. (이)종현이에게 관심이 쏠렸는데, 팀을 이끌어나간 건 준용이었다. 주로 4번을 맡으면서도 때론 1번(포인트가드)을 보고, 종현이가 없으면 5번(센터)도 맡았다.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라고 최준용의 고교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 강상재보다 최준용이 나은 점을 묻자 “만약 최준용이 고려대에 가고, 강상재가 연세대에 진학했다면 강상재가 연세대 팀을 이끌었을까? 최준용은 그걸 해낸 선수다”라며 자신의 제자가 확실히 낫다고 자랑했다.


애초 두 선수의 꿈은 연세대 진학이었다. 강상재는 “중학교 때 점프볼과 인터뷰를 할 때 연세대를 가고 싶다고 했었다. 연세대가 화려하고, 이름도 부드럽고, 활발한 이미지라면 고려대는 딱딱한 이미지였다”며 “그때는 멋모르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고려대가 멤버 구성도 좋아지고, 학교의 이미지도 바뀌어서 고려대로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강상재는 “고려대에 입학해서 다 좋았다. 우리 학번이 입학한 뒤 고려대의 성적이 계속 났다. 우리는 매년 우승을 해서 안 기뻤던 적이 없었다. 농구도 재미있었고, 4년 내내 항상 좋은 기억, 좋은 추억 밖에 없다”며 진로 변경에 대단히 만족했다.


최준용은 “초등학교부터 훈련일지를 쓸 때 연세대를 갈 거라고 했다. 어머님께서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 팬이어서 연세대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다”며 “원래 종현이와 고려대에 가는 거였다. 그런데 내 꿈인 연세대와 고려대는 너무 반대라서 연세대에 입학했다”고 자신의 생각대로 대학에 진학했다. 농구를 시작할 때부터 꿈이었던 연세대에 입학한 최준용은 “연세대 유니폼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선수들이 다 같이 모이는데, 그 때 기분이 묘했다. ‘이 선수들이 나와 같은 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연세대에 입학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되새겼다. 두 선수는 같은 꿈을 꿨지만, 영원한 라이벌 고려대와 연세대로 엇갈린 결정을 내렸다.



이종현과 정기전
두 선수는 대학에 진학하며 ‘이종현’이란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최준용은 경복고에서, 강상재는 고려대에서 이종현과 팀 동료로 지냈다. 최준용은 이종현에 대해 “고등학교 때 같은 팀이다가 대학 때 라이벌 팀의 선수가 됐다. 또 대표팀에 가면 같은 팀이라서 떨어졌다가 붙고, 떨어졌다가 붙고 그걸 반복하며 누구보다 이종현을 잘 알게 됐다”며 “같이 뛸 때 이종현이 나랑 같은 팀이라서 그게 장점이고, 상대팀이면 그게 또 단점이다. 상대팀으로, 같은 팀으로 뛰어보면 왜 이종현인지 다 알게 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강상재는 대학 입학 후 꾸준하게 주전급으로 활약한 최준용과 달리 이승현이 졸업한 3학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종현과 함께 고려대의 골밑을 책임지는 슛이 좋은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강상재는 4년 동안 함께 룸메이트로 지낸 이종현과 함께 코트에 서면 “종현이가 골밑에 있으면 공격할 때 자신감이 생긴다. 수비할 때도 내가 뚫려도 종현이가 받쳐줘서 좋았다”고 했다. 이종현이 국가대표 차출이나 부상으로 결장했을 때 고려대 골밑의 책임을 고스란히 졌다. 강상재는 “종현이가 못 뛸 때 골밑에서 공격을 많이 했다. 높이가 있는 연세대와 경기를 할 때는 종현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며 “종현이가 없어서 부담감을 안고 경기를 하고, 또 내 실력이 없어서 진 것도 있다. 그렇지만 ‘종현이가 없어서 졌다’는 기사 등을 봤을 때 기분이 안 좋았다”고 고백했다.



이종현은 경복고와 고려대에서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을 맛봤다. 바꿔 말하면 최준용은 고교시절 우승만 하다 대학에서 잘 해야 준우승이었다. 강상재는 고교 시절 원맨팀처럼 고군분투하다 고려대에서 우승의 기쁨만 누렸다. 최준용은 4학년에 올라가서야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와 대학농구리그 챔피언에 등극했다. 강상재는 4학년 때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해 4년 동안 매년 우승을 최소 1번 이상은 경험하고 대학 무대를 졸업한다.


최준용과 강상재에게 다른 대회 우승과도 바꿀 수 없는 경기가 있다. 서로가 라이벌이라고 절실하게 느끼는 고려대와 연세대,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이다. 고려대는 정기전 5연승을 달리다 올해 무승부로 연승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연세대는 다 잡은 경기를 이기지 못해 아쉬우면서도 연패를 끊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최준용은 정기전을 입에 올리자 “아직까지도 후회가 된다. 정기전은 자존심인데, 자존심을 한 번도 못 챙기고 졸업한 게 제일 찜찜하다”며 “연패를 끊었다고 하면 다행일 수 있지만, 난 계속 열 받고 자존심도 상했다. 정기전을 다 져서 다 기억에 남는다. 4학년 때 뛰지도 못하고 끝나서 감독님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강상재는 “정기전은 자존심이다. 져서는 안 되는 경기다. 고려대와 연세대 선수만 느낄 수 있는 경기이기에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며 “2015년 정기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주전으로 처음으로 뛴 정기전이고 팀이 이기는데 기여를 했다”고 최준용과 달리 기분 좋게 돌아봤다. 이어 “선배들이 우리에게 좋은 성적을 물려주고 나가셨다. 우리도 6연승이란 좋은 성적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지고 있다가 비겼다. 지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좋은 성적을 후배에게 물려주지 못해서 미안함을 느꼈다”고 최준용과 비슷한 마음을 전했다.


등 번호 13번과 35번
이종현과 최준용, 강상재는 국가대표에 뽑히는 등 대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국내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빅3’였다. 드래프트 지명권 추첨식에도 나란히 참석해 화제를 모았던 세 선수는 1~3순위로 프로 팀의 지명을 받아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드래프트에 앞서 이종현이 1순위에 뽑히는 건 당연했다. 2순위를 놓고 최준용과 강상재가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두 선수는 정작 순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최준용은 “몇 순위로 가든 내가 프로에 가서 1순위보다 잘 하고, 기존의 형들보다도 더 잘 하면 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했다. 강상재는 “3학년 때 자존심이 있어서 2순위로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4학년이 되어 드래프트가 다가오니까 어느 순번에 가든 많이 뛰고 자신있게 할 수 있는 팀에 가면 그게 또 드래프트의 승자라고 여겼다”고 했다.


이번 드래프트는 지명권 추첨을 2주 빨리 했다. 각 팀에서는 1라운드에 어느 선수를 지명할지 대략적으로 윤곽을 잡았다. 유니폼에 이름뿐 아니라 등 번호까지 새겨서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신인 선수들이 저마다의 등 번호를 정한 사연들도 화제였다. 이종현과 최준용은 드래프트 현장에서 32번과 35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최준용과 강상재는 프로 데뷔 무대에서 등 번호를 35번과 13번으로 정했다.


최준용은 사실 대학 2학년부터 5번을 달았다. 현재 SK에선 김선형이 5번을 사용 중이다. SK 관계자는 “본인이 원하는 번호가 5번 계열이었다. 그런데 모두 그 번호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35번 사용한 경험이 있는데다 케빈 듀란트가 연상되는 것도 있어서 35번을 추천했다”고 했다. 최준용은 “고등학교 때도 하고 싶었던 번호(5번)을 뺏기기도 했다. 종현이와 같은 번호를 하고 싶은데 32번이 나에겐 안 어울린다. 그래서 3+2를 해서 5번을 달았다”며 “매년 번호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한다. 1번을 한 번 해보고 싶다. 윌리엄존스컵 국제농구대회 때 1번이었는데 좋은 거 같더라”고 했다.


지금까지 KBL에서 35번을 사용한 선수는 윤훈원, 정재헌, 서민수, 최지훈, 마퀸 챈들러, 스테이스 보스먼 등 10명 내외로 많지 않았다. 강상재의 등 번호 13번은 딱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고려대 선배인 전희철과 이규섭이다. 이외에도 고려대 출신인 김동욱, 유성호, 하재필, 김지후 등도 13번을 사용했거나 사용 중이다. SK 전희철 코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13번을 달았다. 전희철 코치는 “초등학교 때 11번이었다. 등 번호도 11번이면 더 말라 보여서 둥글둥글한 번호로 골랐다”며 13번을 평생 등 번호로 사용했다. 삼성 이규섭 코치는 “13번을 중학교 2학년부터 사용했다. 생일이 (11월) 13일이고, 청소년 대회 우승했을 때도 13회 대회였고, 우승한 날짜가 13일인 적도 있다”며 13과의 인연이 많았다고 했다.


강상재도 선배들과 마찬가지다. “앞 번호를 원했는데 13번이 남았다. 2013년에 고려대에 입학해서 그 해 정기전 때도 잘 했었다. 그 때 박훈근(현 삼성) 코치님께서 ‘올해 2013년인데 13번을 달아서 잘 했나 보다’라고 장난스럽게 말씀을 해주셨다. 그 때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13번을 계속 달았다. 사실 프로에서는 23번을 달고 싶었다. 그런데 종현이가 ‘너 국가대표팀에서 23번 달고 다쳤으니까 그냥 13번 해’라고 해서 프로에서도 13번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최준용과 마찬가지로 “프로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번호보다 의미 있는 번호를 달고 싶다. 의미 있는 번호를 찾거나 생각나면 나중에 등 번호를 바꾸고 싶다”고 했다.


프로 무대 데뷔전
최준용과 강상재는 이종현과 함께 국가대표팀에서 부상으로 하차해 드래프트 전부터 당장 경기에 제대로 출전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붙었다. 강상재가 가장 먼저 회복했다. 최준용의 부상 정도가 가장 심하다고 알려졌다. 현실은 이종현이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언제 데뷔할지 미지수다. 최준용은 데뷔전부터 30분가량 출전하며 펄펄 날고 있는 반면 강상재는 몸을 만들며 출전시간을 조절 받고 있다.


최준용은 “다치고 나서 ‘대학에서 해 놓은 것도 없는데 후배들에게 넘기고 졸업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원래 몸 관리를 열심히 안 하는데 온갖 치료방법을 해보면서 간절히 바라니까 빨리 나았다. 의사 선생님도 이렇게 빨리 붙을 리가 없다고 했다”며 “옛날 고등학교 때 발목이 부러진 적이 있다 한 달 반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2주 반 만에 깁스를 풀고 운동했다. 운동을 하니까 뼈가 더 빨리 붙더라”라고 웃었다. SK 문경은 감독은 “2순위가 나왔을 때 만세를 불렀는데, 빅3 몸 상태를 확인했을 때 최준용이 가장 좋아서 그랬다”고 말했다.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드래프트 전에 강상재를 선발하면 군살부터 뺄 거라고 했다. 강상재는 앞서 U19대회 이후 살이 잘 안 빠지는 체질이라고 했다. 전자랜드에 입단 2주 만에 5kg가량 감량했다. 강상재는 “2주 만에 5kg면 정말 많이 뺀 거다. 운동하고 식단조절 하니까 살이 빠졌다”며 스스로 놀라워했다. 유도훈 감독은 “상재를 뽑아서 체력과 근력 테스트를 해보니까 근력이 떨어졌다. 부상을 당한 뒤 쉬어서 속 근육이 없고, 겉 근육만 두루뭉실하게 있다”며 “트레이너를 붙여서 속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한 달 보름가량 예상하는데 본인의 의지가 있으면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거다. 새롭게 하려는 의지는 좋다”고 훈련 경과에 만족했다.


두 선수는 나란히 10월 22일 데뷔전을 치렀다. 최준용은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12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국내선수 중 데뷔전에서 9리바운드 이상 기록한 선수는 서장훈(24점 14리바운드), 김주성(19점 11리바운드), 하승진(14점 9리바운드)에 이어 4번째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강상재는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5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활약이었다. 고려대에서 이종현과의 하이-로우 게임 경험을 살려 하이포스트에서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을 맡아 모비스의 지역방어를 깨는데 한몫 했다.


프로 무대를 먼저 경험한 두 선수는 대학무대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걸 경험했다. 이 경험을 살려 재활을 하며 프로 데뷔를 준비 중인 이종현에게 한 마디씩 남겼다. 최준용은 “미리 뛰어본 결과, 종현이는 복귀하면 나보다 더 잘 할 거다”고 확신했다. 이어 “종현이는 욕을 많이 먹었다. 상재와 나까지 빅3가 대학 때 잘 하면 당연히 그 정도 하는 거고, 조금만 못 하면 ‘무슨 빅3냐’라는 욕을 먹었다”며 “종현이는 욕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다 깰 거다. 복귀하면 이종현이 잘 할 거라는 믿음 밖에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강상재는 “우리가 생각했던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강전에서 붙었던 프로와 전혀 차원이 다르다. 같은 프로 선수로서 붙으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플레이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우리가 대학에서 했던 플레이를 믿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 사진_점프볼 자료사진(문복주,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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