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쓰는이력서] 연세대 허훈 ① 제1의 허훈을 꿈꾸다

강현지 / 기사승인 : 2017-09-08 0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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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강현지 기자]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예비 프로'의 취업 이력서. 열세 번째 주인공은 연세대학교 주장 허훈(22, 180cm)이다. 용산중-용산고-연세대까지. 이력서에 적은 것처럼 농구선수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2013년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큰 경기에서 쌓은 경험, 그리고 그가 가진 실력에 허훈은 2017년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유력한 1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다. 프로 무대 진출을 앞에 두고 있는 허훈을 만나 그가 걸어온 #성장과정, #경력사항을 들어봤다.



# 성장과정
농구가 운명도 아니었고, ‘농구 한 번 해볼래’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농구 대통령’ 허재(현 농구대표팀 감독)였기에 경기장만 찾아도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오히려 주변에서는 허훈이 언제 농구공을 잡을지 만을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형의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싶다’는 이유로 의사를 꿈꾸던 허훈이 농구선수의 꿈을 가지게 된 때 말이다. 데뷔전은 2006년 4월, 서울시협회장기였다.


Q. 허훈 선수에게 농구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 것 같아요. 농구공은 어떻게 잡게 됐나요?
농구를 하면서 이 질문만 한 백번 정도 받은 것 같아요(웃음). 아버지가 현역 선수로서 은퇴하시고, 미국 연수를 가셨었어요. (2005년) 그때 가족들이 다 같이 갔죠. 원래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살 생각이었는데, 미국은 워낙 스포츠 인프라가 좋잖아요. 그러다가 형이 농구 매력에 빠진 거예요. 형이 먼저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죠. 선수로서 꿈을 가질 거면 한국에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용산중으로 갔어요. 저는 삼광초를 다니게 됐고요. 그때부터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미국에 있을 때 농구를 하긴 했었는데, 흥미는 없었어요. 형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 됐죠.


Q. 원래 꿈은 농구 선수가 아니었잖아요. 형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겠다고 의사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어린 마음에 꿈은 크게 가진 거죠. 또 외가 쪽에 의사가 많아서 그랬는데, 의사를 꿈꿨다면 연세대에 못 왔을걸요?(웃음). 공부는 형이 더 잘했어요. 미국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요. 전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요.


Q. 농구를 시작했을 때 본인이 느꼈던 실력은 어땠나요?
특별히 잘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평범했어요. 미국에서도 아버지, 형이랑 농구를 했었는데, 그냥 따라 하는 수준이었어요. 보통 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 실력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Q. 어릴 때부터 ‘허재의 차남’으로서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인지 허훈 선수가 경기를 뛸 때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긴장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주목받는 것에 부담이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부담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재밌고, 즐겁게 했었거든요. 한 경기를 못 했다면 ‘다음 경기에 잘하면 되지’라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대학교 3,4학년이 되니깐 (부담이)생기더라고요. 큰 경기에서 못하면 아버지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주변 평가를)신경 안 쓸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하다 보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그런 이야기도 안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 해야죠 먼저.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있었는데,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이겨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요.


Q. 농구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매 순간 겨울이요(웃음). 매년 여름, 겨울 체력훈련이 힘들어요. 시즌 시작하기 전에 동계 훈련을 해요. 온 종일 뛰거든요. 그리고 농구가 워낙 힘든 운동이잖아요. 그래도 그 순간이 힘들지 나중엔 추억이 돼요. 아, 이번 대표팀도 힘들었죠(웃음).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Q. 그럼 농구가 더 잘 보이기 시작한 때는 언제 였나요?
대학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갈 때요. 그때 농구의 길을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정재근 감독님(전 연세대 감독)은 수비는 열심히 하면서, 공격은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시는 스타일이었는데, 은희석 감독님(현 연세대 감독)으로 바뀌면서 프로에서 하는 농구 스타일을 알려주셨죠. 그 틀 안에서 응용하는 플레이를 했어요. 그때부터 알게 된 것 같아요. 또 학년이 거듭할수록 출전 시간이 늘어나서 더 잘하게 된 것도 있어요.


Q. 아버지의 모교인 중앙대를 거부했고, 용산고를 진학하기 전에도 ‘내 스타일에 맞는 학교(경복고)에 가겠다’고 선언했다고 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어떻게 경복고를 가요(웃음). 용산고 훈련이 힘들어서 그런 말이 있었는데, 당연히 용산고를 갔었어야죠. 연세대를 택한 것도 형이 있어서였어요. 고려대를 고민하기도 했었죠. 당시 연세대에는 (김)기윤이 형, (천)기범이 형이 있었고, 고려대는 가드 포지션 선수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럼 (김)낙현이랑 같이 뛰었거나, 아니면 낙현이가 연세대를 왔을 수도 있겠죠(웃음). 그래도 나누어졌긴 했겠죠. 근데 제가 만약 고려대를 갔었다면 부모님은 어딜 응원하셨을까요(웃음).



# 수상이력
- 2014년 KB국민은행 대학농구리그 신인상
- 2013년 38회 협회장기 남고부 최우수상
- 2012년 37회 협회장기 남고부 최우수상
- 2007년 36회 소년체전 남초부 최우수상


# 경력사항
- 2017년 FIBA 아시아컵 동아시아대회 대표팀
- 2017년 제40회 이상백배 한·일 대학선발 농구대회 대표팀
- 2016년 FIBA 아시아챌린지대회 대표팀
- 2016년 제39회 이상백배 한·일 대학선발 농구대회 대표팀
- 2016년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한국 A팀
- 2013년 제11회 FIBA U19 세계남자농구선수권 대회
- 2012년 제22회 FIBA U18 남자농구선수권 대회
- 2011년 제2회 FIBA U16 남자농구선수권 대회


Q. 연세대 1학년 때는 등번호를 23번, 형이 프로에 입단한 이후부터는 9번(허재 감독의 현역 시절 번호)을 달았더라고요. 형도 그렇고 아버지의 등번호를 계속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버지가 9번이었기 때문에 계속 달고 있는 것 같아요. 23번은 1학년이니깐 남은 번호를 골랐는데,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번호였어요. 달고 싶은 번호도, 좋아하는 숫자도 딱히 없거든요. 이전까지는 9번 아니면 6번을 달았었어요. 6번은 뭔가 예쁘고 좋거든요. 프로에 가면 저만의 번호를 만들어 보려고요.


Q. 형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당분간 코트에서 만나기 힘들겠지만, 아버지가 영구결번으로 등록된 팀(원주 동부)에 가서 뛰었어요. 프로에서 형과 다른 팀에서 맞붙는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 같은데.
상상해봤죠. 만약에 만난다면 죽기 살기로 해야죠. 프로는 냉정하니까요. 프로에 문태종, 문태영 형제가 있잖아요. 두 선수 보니깐 피 터지게 하더라고요. 저희도 그렇게 해야죠. 형이 슛이 좋으니까 그 부분을 막고, 파울도 과격하게 해보려고요.


Q. 작년에 박찬희 선수(전자랜드)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이 됐어요. 아버지, 형과 드디어 한 팀에서 만났어요.
작년에 처음 들어가서 긴장도 되고, 부자가 만났다고 관심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 운동하는데, 정말 운동할 수 있는 환경도 좋고, 밥도 잘 나오더라고요. 그런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서 꼭 대표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좀 더 농구가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프로에서 잘한다는 형들이랑 같이 있고, 알려주고 하니깐 많이 도움 된 거 같아요.


Q. 오세근 선수(KGC인삼공사)의 경우에는 대학교 2학년 때 대표팀에 뽑혔을 때 김주성 선수(동부)를 보고, 느꼈던 점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허훈 선수도 프로 형들과 같이 운동을 하면서 그런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드가 (김)선형이 형, (이)재도 형이 있었어요.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양동근 형이 빠졌다는 거예요. 제가 좀 더 빨리 뽑혔다거나 아니면 형이 (대표팀을) 오래 했다면 배울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같이 뛰지 못해서)아쉬웠어요. 같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무래도 프로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고, 모든 면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관리 면에서도 철저하시고요.


Q. 올해 정규리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종현-강상재가 빠진 고려대보다 최준용-박인태가 빠진 연세대가 이번시즌에 더 강할 것이다 평가 받았는데, 첫 경기에서 아쉽게 고려대에게 발목이 잡혔어요.
전체적으로 고려대가 약해졌고, 연세대가 강해졌다며 주목을 많이 받았었어요. 그래서 다들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당연히 이길거라고 생각하고, 고려대가 죽기살기로 넘겨들어서 경기가 뒤집혔던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는 성인 대표팀, 이상백배, 연세대 소속으로 왔다갔다하며 정신이 없었을 것 같아요. 허훈 선수뿐만 아니라 안영준, 박지원, 한승희까지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팀 성적이 좋지 못했어요.
제가 주장이었는데, 자리를 많이 비웠죠. 그런 부분에서 선수들에게 미안한 점도 있고요. 영준이랑 진용이가 제가 없을 때 잘해줬거든요. 그래서 4학년 마무리를 더 잘하고 싶어요. 정기전이랑 플레이오프가 남았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허리가 안 좋거든요. 동아시아컵(6월-일본 나가노)에 다녀와서 팀 훈련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었어요. 그러다 존스컵(7월-대만)을 가야하는 상황이었어요.


Q. 8월 아시아컵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하차하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시기와 겹쳐서 U대표에 합류할 기회도 못 잡게 됐어요.
시기도 겹쳤고, 몸 상태가 안 좋았어요. 컨디션이 안좋은데 경기까지 원하는 대로 안되서 더 속상했죠. 욕도 많이 먹었고요. 그런데 주변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남은 경기에 더 집중하려고요. 아쉽긴 했지만, 몸도 안 만들어진 상태에서 시합 뛰고 하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몸은 안 좋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허리도 안 좋았던 것 같고요.



※ 허훈의 대학리그 정규리그 성적
2017시즌 19.18득점 2.45리바운드 6.18어시스트
2016시즌 18.4득점 3.2리바운드 3.6어시스트
2015시즌 14.3득점 3.9리바운드 2.7어시스트
2014시즌 5.6득점 2.1리바운드 1.4어시스트


※ #성격, #입사 후 포부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한필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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