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2017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예비 프로’가 쓰는 취업 이력서. 스물두 번째의 주인공은 프로 조기 진출을 택한 양홍석(20, 197cm, 중앙대 휴학), 양성훈(19, 188cm, 부산 중앙고) 형제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천안에서 훈련 중이었던 두 선수를 만나 그들의 농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1탄은 #성장과정, #경력사항에 대한 이야기다.
# 성장과정
Q. 두 선수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 양홍석 :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농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처음 왔었어요. 그땐 거절했었는데, 4학년 때 아버지 차를 세차 맡기고 밥을 먹으러 갔던 곳이 (전)태영(단국대)이 형네 가게였던 거예요. 어머니가 키가 큰 저를 보고 농구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죠. 그때가 태영이 형이 초등학교 6학년, 제가 4학년 때였어요.
아버지가 처음 농구부를 해보라고 했었을 땐 안 한다고 했었어요. 그땐 부끄러움도 많고, 남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내성적이었어요. 그러다 농구 실력이 좋아지면서 제 성격도 조금 바뀐 것 같아요. 그러면서 농구에 재미도 붙였고요.
- 양성훈 : 저도 형과 같이 시작했죠. 형이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같이 해보라고 하셨어요. 전 처음부터 재밌었어요. 형이랑 전주에서 부산으로 학교를 같이 옮기기도 했고요. 전주 남중에서 금명중으로 전학을 같이 왔죠.
- 양홍석 : 박영민 코치님(현 부산 중앙고 코치)이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셔서 전주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 됐어요. (경기를 뛸)기회도 많이 주셨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기량이 좋지 못했고, 궂은일을 했는데, 2학년 때부터는 1대1 훈련, 또 농구를 잘 할 수 있는 길을 배우면서 실력이 조금 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팀을 이끌어 간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고요.
Q. 양홍석 선수는 1년 유급을 언제 한 건가요?
- 양홍석 : 중학교 2학년 때요. 발목이 골절되면서 유급을 결정했어요. 그때 쉬면서 키가 많이 컸었어요. 먹고, 쉬다 보니 키가 190cm정도 컸었어요. 체중도 98kg정도 나갔었죠(웃음).
Q. 양성훈 선수는 형과 같은 학교를 계속 다녔는데, 형과 실력이 비교되기도 했었을 것 같아요.
- 양성훈 :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크게 신경 안 쓰는 스타일이에요. 주변에서 비교를 해도 운동은 각자 하는 거잖아요.
저도 박영민 코치님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었어요. 덕분에 농구를 좀 더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요. 경기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또 (홍석)형 하는 것을 많이 따라 했어요. 개인 운동하면서 형이 시키는 것도 따라 하고 그랬죠.
Q. 형이 부산 중앙고를 졸업하고, 3학년으로서 팀을 이끌었어요. 형이 있을 때와 졸업한 후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 양성훈 : 형이 있을 땐 운동 분위기가 잘 잡혔었어요. 제가 3학년이 되니깐 느슨해지는 부분이 생겨서 잘못 이끌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형이 있을 때 운동 분위기는 더 좋죠.
Q. 형이 최근 중앙대를 휴학하고, 부산 중앙고에서 훈련을 함께하고 있잖아요. 형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어떤가요?
- 양성훈 : 다들 힘들어해요(웃음). 쉬고 싶은데, 형이 쉬지 못하게 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요즘 형이 슛 자세를 많이 알려줘요.
Q. 성인 대표팀에서 프로 형들과 생활하면서 양홍석 선수 스스로 도움 된 부분이 많았죠?
- 양홍석 : 형들 하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전)준범이 형 슛 던지는 걸 자주 봤고요. 전문 슈터다 보니 돌아다니면서 슛을 던지는 스타일이거든요.
- 양성훈 : 전 형이 대표팀에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러웠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난 언제 한 번 대표팀에서 뛰어보나’라는 생각도 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됐죠.
# 양홍석 경력사항 및 수상이력
- 2017년 FIBA 아시아컵 동아시아대회 대표팀
- 2015년 U19 남자농구선수권 대회 대표팀
- 2016년 올해의 농구인상 수상
- 2016년 연맹회장기 남고부 최우수상, 득점상, 수비상
- 2015년 주말리그 남고부 미기상, 득점상, 리바운드상
- 2014년 51회 춘계연맹전 남고부 감투상
Q. 가장 농구를 재밌게 했을 땐 언제에요?
- 양홍석 : 고등학교 3학년 때(2016년)가 가장 재미있었죠. 성적이 나야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우승도 하고, 동기들이 많아서 재밌었어요. 감독님께서 믿어주시기도 했고요.
(부산 중앙고 3학년이었던 양홍석은 연맹협회장기, 종별선수권대회,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데 에이스로 활약했다. 또한 97회 전국체전 당시 청주 신흥고를 상대로 32득점 15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기록, 이에 앞서 양홍석은 2014년 협회장기에서도 명지고를 상대로 27득점 22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첫 번째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바 있다.)
- 양성훈 : (2016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했을 때요. 경기에 많이 뛰지 않았지만, 모든 팀이 금메달을 욕심내잖아요.지금까지 농구하면서 최고의 순간인 것 같아요.
Q. 반대로 농구가 힘들었을 땐 언젠가요?
- 양성훈 :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땐 전주 남중 때에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요. 저학년 때는 형들 볼을 잡아주면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거든요. 가장 힘들었을 때죠. 형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1학년 후배들이 들어오고, 그러면서 저도 운동할 환경이 생기면서 위기를 넘긴 것 같아요.
- 양홍석 : 저도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땐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전주 남중 때인데, 운동량이 많았거든요. 근데 힘든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땐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요.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농구를 해서 익히는 게 힘들었죠.
Q. 양홍석 선수는 청소년 국가대표로 뽑힌 경험이 있잖아요. 또 올해는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히면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아시아컵에 출전하기도 했고요. 두 대표팀의 차이는 어떤가요?
- 양홍석 : 분위기가 달라요. 성인 대표팀 형들은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기 때문에 운동 분위기가 진지해요. 주장 (오)세근이 형이랑은 10살 차이가 나요. 형들은 편하게 해주려고 하시는데 제가 조심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세근이 형이랑은 방도 같이 썼었는데, 몸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저도 형을 따라다니면서 운동을 많이 했었어요.
Q. 양성훈 선수는 형이 있었을 때와 본인이 팀을 이끌 때랑은 어땠나요?
- 양성훈 : 형이랑은 같이 뛸 땐 약간 손발이 안 맞았어요. 형이 공격적인 스타일이잖아요. 저도 패스를 주는 포인트가드인 스타일이 아니라 공격도 하고, 돌파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좀 안 맞았죠. 형이 졸업하고는 제가 공격을 좀 더 많이 했었어요.
Q. 각자 이번 시즌을 되돌아봤을 때 아쉬웠던 경기는 어떤 경긴가요?
- 양홍석 : 고려대 전(6월 22일)이죠. 제가 후반에 부진했거든요. 전반전에 득점이 제 쪽으로 몰려서 후반에는 패스로 (다슨 선수들을)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할 땐 해줬어야 했는데, 못 해줘서 아쉬웠죠.
- 양성훈 : 저는 주말리그에서 동아고랑 한 경기예요. 지역 라이벌전이라 무조건 이겨야 했는데, 후반기로 갈수록 저희 팀이 체력이 떨어지면서 점수 차가 벌어졌어요. 경기가 끝나고 나니 너무 아쉽더라고요. 이 경기를 마치고 경기에서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이팅 있게 마무리하는 게 더 멋진 경기가 될 것 같다‘라는 걸 깨달았죠.
동계훈련 이후 (서)명진이가 부상을 당하면서 1년 유급을 했고, (정)성훈이도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유급했어요. 3명이 같이 뛰면 멤버가 좋은데, 이 두 선수가 빠지다 보니 팀에서 가장 키가 큰 선수가 저였어요. 리바운드도 해야 하고, 공격도 해야 해서 힘들었죠.
# 사진_점프볼 DB(한필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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