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윤호 칼럼니스트] 쉽지 않을 것 같았던 뉴질랜드 원정경기의 결과는 86-80,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홈 앤 어웨이 매치 체제로 개편된 이후의 첫 조별예선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아시안컵에서의 기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동시에 이 경기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이 향후 예선을 어떻게 준비할 지에 대해서도 방향성을 대략적으로 보여줬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을 잡아가며 미궁을 빠져나오듯, 사상 첫 월드컵 예선을 앞으로 임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하프코트가 아닌 코트 전체를 써라
뉴질랜드는 1쿼터부터 풀 코트 프레스를 사용했다.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전한 셰아 일리는 한국의 인바운드 패스 시점부터 박찬희에게 바짝 붙었다. 박찬희뿐만 아니라 허훈, 김시래 등 포인트가드들이 공만 잡으면 수비수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한국이 최대한 늦게 하프라인을 넘어오게 만들어서 공격에 쓸 수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의도였으며, 이는 아시안컵을 통해 알려진 한국의 공격 템포를 늦추기 위한 수비이기도 했다.
단순히 전담 수비수만 붙은 게 아니었다. 일리의 뒤에서는 코리 웹스터와 토마스 아베크롬비가 하프라인 근처에 서서 한국 선수들을 견제했다. 이정현 같은 스윙맨들의 공격 기회를 최대한 막는 수비였다. 하프코트에서 수비를 정비하는 게 아니라, 코트 전체에 선수를 배치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존 프레스 수비를 통해 한국 선수들을 압박한 것이다. 한국이 1쿼터에 야투율 27.8%에 그치며 고전했던 것도 뉴질랜드의 강한 압박으로 인해 공격의 실마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코트를 넓게 쓰는 것은 공격에서만 해당되지 않는다. 수비에도 해당되는 얘기이다. 풀 코트 프레스는 그 동안 승부처에서 비장의 무기로만 쓰는 단기간의 수비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뉴질랜드 뿐만 아니라, 월드컵 예선에 나서는 팀들 대부분이 40분 내내 풀 코트 프레스를 쓸 수 있다. 본선에 나간다면 대회 내내 1-2-2 존 프레스 수비를 상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수층이 두꺼운 일부 팀들은 아예 공격을 포기하고 강력한 압박 수비로만 40분을 풀어나갈 것이다.
한국도 이 수비를 쓰지 말란 법은 없다. 박찬희나 최준용을 중심으로 상대를 엔드 라인부터 강하게 압박한다면 빠른 공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물론 체력 소모가 많기 때문에, 한국이 앞으로 A매치에서 풀 코트 프레스를 자주 사용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확실한 건, 상대가 코트 전체를 수비 구역으로 활용한다면 한국 역시 코트 전 지역을 공격의 교두보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3번의 패스를 통해 상대의 존 프레스를 뚫어내는 장면들을 여러 번 보여줬는데, 이러한 전개는 한국의 압박 수비 대응을 위한 결정적 힌트가 될 것이다. 공격의 시작은 하프코트의 탑 지점이 아니라, 인바운드 패스이다.

살을 주고 뼈를 얻는다
예상대로 웹스터 형제는 한국의 수비를 괴롭혔다. 2대2 이후 원 드리블 점퍼를 적중시키거나, 45도 지점에서 지체없이 돌파하여 득점을 해냈다. 특히 형인 코리 웹스터는 전반전에 13득점, 야투율 66.7%라는 고효율 득점을 보여줬다. 대인방어를 쓰든, 2-3 드롭 존 디펜스를 쓰든 스크린을 한 번만 타면 바로 오픈 찬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것이 후반전에는 독이 되었다. 코리 웹스터가 후반전에 기록한 득점은 단 3득점이다. 좌측 코너에서 성공시킨 3점슛 한 개가 전부였다. 동생인 타이 웹스터는 4쿼터에 슛 2개만 던졌고, 그마저도 실패했다. 뉴질랜드는 전반전에 활약했던 웹스터 형제의 후반전 부진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추진력을 낼 수 없었다.
이는 한국의 수비 전략의 성공이었다. 웹스터 형제에게 웬만하면 더블팀을 가지 않았다. 이정현이나 전준범이 지역방어 상황에서 그를 체크하거나, 대인방어 상태에서 따라다녔을 뿐이다. 최준용 중심의 2-3 드롭 존 디펜스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뉴질랜드가 제대로 공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골밑에서 아이작 파투나 마이클 부코나가 공을 잡으면 더블팀으로 슈팅 실패를 유도했다.
웹스터 형제가 얼마나 득점을 하든 상관없었다. 뉴질랜드의 거친 빅맨들로부터 리바운드만 확실하게 사수하고 빠른 공수 전환과 외곽슛으로 득점을 차곡차곡 올리면 된다는 게 허재 감독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웹스터 형제는 지칠 것이고, 그럴수록 한국에게 계속 기회가 오게 된다는 복안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생각대로 맞아 떨어졌다. 웹스터 형제는 지쳤고, 뉴질랜드의 빅맨들도 계속된 골밑 싸움으로 지치면서 역으로 공격의 빈틈을 내주고 말았다. 이른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었다.
이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필리핀을 상대로 했던 경기 운영과 흡사하다. 한국은 테렌스 로메오가 20득점을 넣든, 30득점을 넣든 개의치 않고 수비의 기틀을 유지하면서 빠른 공수 전환으로 필리핀의 수비를 무너뜨렸다. 마침 그 경기에서도 로메오는 4쿼터에 지쳐서 득점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만일 한국이 로메오를 막으려고 더블팀을 붙었다면, 필리핀에게 더 많은 외곽슛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강팀과 만나는 A매치에서 상대의 모든 수를 막을 수는 없다. 모든 공격을 막으려다 단 하나의 공격도 못 막는다. 강팀의 수준에 올라서면,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는 무기들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100% 완벽한 수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상대의 공격을 일부분 받아주면서, 상대의 결점을 찾아 정확하게 찌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앞으로 한국의 A매치 전략은 대부분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높이로 견제하고 하체로 막는다
선발 출장한 빅맨은 오세근, 김종규였지만 경기를 마무리한 빅맨은 오세근, 이승현이었다. 둘 다 국제무대에서는 신장에서 열세를 드러내는 언더사이즈 빅맨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박스아웃과 힘으로 높이의 열세를 견뎌내면서 승리의 방점을 찍었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오세근, 이승현으로 선발 라인업을 짜지 않았을까? 골밑 기선제압 때문이다.
김종규의 키는 207cm이다. 뉴질랜드의 주전 센터였던 아이작 포투는 206cm이다. 포투가 김종규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에 골밑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김종규를 몸싸움으로 제압하고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포투는 탄력이 뛰어난 빅맨은 아니기 때문에 김종규의 높이와 점프력은 부담스럽다. 따라서 골밑에서 대등한 수준으로 맞서면서, 포투가 골밑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의 심리 상, 첫 시도를 실패하면 그 뒤의 재시도를 꺼려하기 마련이다. 농구에서 빅맨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골밑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골밑 싸움에서 더 위축된다. 반대로 처음에 골밑에서 수월하게 자리를 잡으면, 경기 내내 상대의 골밑을 제 집처럼 드나들 정도로 편안하게 경기를 한다. 이는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드레이먼드 그린을 경기 내내 센터로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자자 파출리아, 자베일 맥기를 통해 높이의 압박을 줘야 상대의 골밑 공략을 심리적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한 견제가 받쳐주는 전제 하에 오세근과 이승현이 골밑에서 전투를 벌여야만 상대의 심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뉴질랜드 빅맨의 입장에서, 만약 이승현과의 리바운드 싸움을 높이 차이로 이겼다면 한국은 바로 김종규나 이종현을 투입할 것이다. 반대로 김종규를 힘으로 밀어낸다면 이승현이나 오세근으로 카드가 바뀐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국이 골밑에서의 가위 바위 보를 주도해야 골밑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종규, 이종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이들이 5-10분 정도 출전하면서 높이로 대응을 해줘야 심리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늘 출전한 포투, 부코나 정도의 빅맨이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제어할 수 있었지만, 만약 뉴질랜드의 주전 센터가 NBA에서 뛰는 스티븐 애덤스였다고 생각해보라. 높이 맞대응이 더더욱 중요하다. 김종규는 발목 부상 때문에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은데, 향후 A매치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소화할 필요가 있다.
심판은 앞으로도 이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심판 관련 얘기를 짚고 넘어가보자. 경기 중반에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흔들렸고 역전도 허용했다. 심판의 오심 때문이었다. 심판의 오심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의 선수들, 한국의 농구 팬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77-75 상황에서 전준범의 결정적인 3점슛으로 80-75가 되지 않았다면, 직전 상황에서 오세근이 겪은 오심이 역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심판의 오심은 되도록 없어야 한다. 하지만 향후 경기에서 심판의 판정이 지금보다 눈에 띄게 공정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FIBA 경기 심판들의 판정 수준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에서 열리는 FIBA A매치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오심이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KBL 심판들이 FIBA 심판들보다 수준이 더 높다는 얘기가 그냥 웃고 넘어갈 농담은 아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홈 경기는 오심의 피해 사례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겠지만, 원정 경기에서는 오늘과 같은 판정 오류를 계속 목격할 수 있다. 여기에 흔들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A매치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은 이번 경기를 바탕으로, 심판의 휘슬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심이 익숙해져야 한다. 물론 KBL에서 오심을 수차례 겪은 선수들에게는 그저 웃음만 나오겠지만 말이다.
A매치, 특히 원정 경기에서는 같은 팀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적이다. 코트 바닥 상태부터 심판의 농구 지능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에 드는 게 거의 없다. 심지어 관중들의 목소리도 낯설고 기분 나쁠 수 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연습도 앞으로 대표팀이 병행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사진=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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