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의 시원한 籠談] 성균관대 김상준 감독 “올해는 결승도 가능합니다”

조원규 기자 / 기사승인 : 2018-01-31 0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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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킹고(KINGO). 성균관대를 부르는 다른 이름입니다.

킹고의 어원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킹고의 어원은 성균관대학교의 상징이 은행나무(Ginko)로, Ginko의 어감을 좋게 만들기 위해 ‘K’와 ‘G’의 위치를 바꾼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은행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공손수(公孫樹)’ 입니다. ‘공손수’는 "공(할아버지)이 손자를 위하여 심은 나무"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는 15년을 자라야 비로소 열매를 맺으니 그 혜택은 손자가 누린다는 의미죠. 그래서 ‘공손수’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투자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킹고의 의미가 성균관대 농구부의 현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2년 농구부 해체 파동. 2013년 대학농구리그 전패. 성균관대 농구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있었습니다. 출구를 찾기 위해 선택은 중앙대 52연승의 신화를 만든 김상준 감독.

한 언론은 “김 감독은 과거 명지중 코치 시절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유망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수완이 있었다. 최근 신입생 영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성균관대로선 대반전의 계기를 잡았다”고 기대를 보였습니다.

‘대반전’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0위-12위-10위. 2016년까지 김상준 감독이 대학농구리그에서 받은 성적표입니다. 그러나 2016년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4강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고, 작년 대학리그에서 성균관대 역사상 최고인 5위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50% 이상 승률도 최초. 종별선수권에서 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대학리그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확인시켰습니다.


■ 올해는 결승 진출도 가능합니다

Q. 몇몇 선수들이 안보이네요.
부상인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 선수들은 치료가 먼저에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후 팀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김수환만 아직 불투명한데…. 2월에는 모두 합류할 것 같습니다.

Q. 이재우와 양준우, 주축 가드들이 부상입니다. 조직력을 만드는데 문제가 없을까요?
우리 팀은 고정된 1번이 없습니다. 위치에 따라 1번의 역할도 하고, 2번과 3번의 역할도 해요. 2월에 일본에 전지훈련을 가는데, 연습경기를 통해서 조직력을 끌어올릴 생각입니다. 손발을 맞추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Q. 작년에 성적이 좋았어요. 중앙대와 단국대의 전력이 약해지면서 올해는 4강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작년 성적이 나쁘지 않았죠. 그런데 부상선수가 있어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올해는 구상한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사고를 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사고라면?) 결승진출도 가능합니다. 결승에 올라갈 수 있고, 결승에서 지더라도 정말 재미있게 질 것 같아요.

Q. 결승에 가려면 연·고대 중 한 팀은 이겨야 합니다. 어느 팀이 타겟이에요?
한 팀은 이겨야죠. (웃음) 작년에 비해 높이가 좋아졌고, 가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하고 싶은 농구를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특별히 기대하는 선수가 있나요?
우리 팀은 에이스가 없습니다. 이윤수 선수가 작년에 잘했지만 그 선수에게만 의존하지는 않아요. 12명이 모두 잘해줘야 합니다. 우리 팀의 특징은 수비에서 강한 압박과 빠른 공수전환입니다. 체력소모가 크기 때문에 선수들을 자주 교체해야 합니다. 특정 선수가 없어도 일정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그래도 올해 특별히 주목할 선수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한 명만 얘기해야 하나요? (Q. 세 명까지 괜찮습니다) 세 명을 꼽아야 한다면 신입생인 조은후, 김수환, 최주영 등 세 명을 꼽겠습니다. 중앙대 시절에도 그랬는데, 강팀이 되려면 저학년이 강해야 되요. 실력 있는 저학년들이 치고 올라오면 선배들이 긴장하고, 자연스럽게 팀이 업그레이드됩니다. 그리고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선수가 많아집니다. 앞에 얘기한 세 선수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그리고 당장 올해부터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에요. 조은후는 패스가 좋습니다. 김수환은 수비가 좋고 슈팅능력도 있어요. 최주영은 장신인데 빠르고 잘 달립니다. 여기에 마산고를 졸업한 박지원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연습경기나 훈련할 때 최주영에게 주문이 많아요. 기대가 크다는 의미겠죠?
최주영의 키가 205cm입니다. 그런데 3번도 가능해요. 이건 엄청난 강점입니다. 고등학교까지 경기 경험이 부족해서 아직은 다듬을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농구 센스는 있어요. 최준용이 1번을 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205cm 3번은 없었습니다. 성장판이 열려 있어서 207cm까지 클 수 있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빅맨이 2m 내외에 잘 달리는 선수인데 최주영은 더 크면서 잘 달립니다. 가장 공을 들이는 선수가 최주영입니다.

Q. 이윤수 선수가 덜 외롭겠네요.
올해 (이)윤수와 상대하는 빅맨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점이 없는데, 힘이 정말 좋아졌어요. 웨이트트레이닝에 재미를 붙이면서 근육이 단단해졌습니다. 여기에 윤수는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패스 센스도 있어요. 작년 종별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큰 이유가 윤수가 로우포스트의 (최)우연이에게 넣어준 패스입니다. (최)주영이와 좋은 호흡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이윤수와 최주영의 더블포스트의 높이는 대학 최고입니다. 올해 볼 수 있을까요?
(이)윤수가 203cm입니다. 고려대가 가장 높이가 좋은데, 주영이와 같이 서면 고려대보다 신장이 더 커요. 그런데, 시즌 초반에는 더블 포스트가 쉽지 않습니다. 빠르면 하반기, 적어도 플레이오프에서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블 포스트를 가동하면 우리의 강점인 프레스가 힘들어지는데, 그 점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구상중입니다.

Q. 김상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프레스에요. 더블 포스트와 프레스 중 선택해야 한다면?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해야겠죠. (웃음)

김상준 감독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상입니다. 작년 5위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도 부상입니다. 부상만 없으면 더 좋은 성적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부상도 감독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 감독책임입니다. 멤버가 없어서? 부상이 많아서? 그게 감독의 운이고 실력이죠. 핑계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꼴찌를 했으면 꼴지팀 감독이에요.”

그의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식스맨으로 프로에서 3년. 중학교 코치로 5년. 이 단출한 경력의 주인공을 농구 명문 중앙대 신임 감독으로 발표했을 당시,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례적인 결정은 파격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김상준 감독은 대학농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이후 프로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 애들이랑 뒹굴면서 썩을 자신 있나?

Q. 중앙대 감독으로 부임 당시 모두 파격이라고 했어요.
30대의 어린 나이였고, 지도자 경력은 중학교 5년이 전부였습니다.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었고요. 농구에서 중앙대의 위상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결정이 맞습니다.

Q. 왜 감독님을 선택했을까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당시 18세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었는데, 저녁에 허재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다른 생각 없이 애들이랑 안성에서 뒹굴면서 썩을 자신이 있냐”고 물어보셨죠. 일단 대회를 다녀와서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회를 다녀와서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결혼도 안했고, 애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어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죠. 그날 밤 정봉섭 부장님을 만났고, 다음날 발표했습니다.

Q. 감독으로 중앙대 체육관을 찾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당시 중앙대는 준우승도 만족하지 못하는 팀이었습니다.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엄청났죠. 선수들과 훈련을 시작하고 이틀을 정봉섭 부장님이 지켜보셨습니다. 만족하셨는지 삼일째 되는 날부터 안 나오셨는데, 그 이틀 동안 몸무게가 5kg 빠졌습니다. (웃음)

Q. 부임 후 첫 대회에서 한 번 패하고 이후 52연승을 했습니다. 부담이 성적으로 이어졌나 봅니다. (웃음)
선수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4학년에 함지훈, 박상오, 허효진이 있었고 3학년에 강병현과 윤호영이 있었습니다. 1,2학년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한 번 호흡이 맞으니까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잘 풀렸어요. 선수들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진다는 생각을 안했습니다. ‘이긴다’와 ‘이길 수 있다’는 많이 다릅니다. 선수들은 이긴다고 생각을 했고, 항상 부담을 갖는 것은 상대였어요.

Q. 그런데 프로에서는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초심을 잃어버렸어요. 선수들에게 제가 구상하는 농구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앙대에 처음 부임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훈련량이 많으니까…. 고학년 선수들이 면담을 요청했어요. “이렇게 훈련하지 않아도 저희는 우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맞다. 그런데 나는 너희가 프로에서 많은 연봉을 받으며 오래 뛰는 선수가 되기를 원한다. 너희들이 원하지 않으면 훈련량을 줄여주겠다.” 선수들이 그 다음부터 잘 따라왔어요. 그것이 성적으로 연결되고, 팀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처음 중앙대에 부임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사라진거죠.

Q. 지도자로서 극과 극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과 마음이 맞는 것입니다. 중앙대 시절에는 그랬고, 삼성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다음이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고, 세 번째가 선수들에게 미래를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 선수들과는 마음이 잘 맞나요? (웃음)
잘 맞습니다. 선수들이 잘 따라오고 있어요. 대화를 많이 하고 있고, 작년에 이기는 경험을 하면서 호흡이 좋아졌어요.

■ 수비는 타이트하게! 공격은 프리하게!

2009년 전국대학농구 2차 연맹전에서 중앙대는 충격의 예선탈락을 합니다. 대회가 끝나고 김상준 감독은 미국 연수를 결정했습니다. 미국에서 한층 정교해진 전면 강압수비를 배웠고, 다음해 MBC배 대학농구와 원년 대학리그의 챔피언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세근과 김선형을 중심으로 한 압박수비와 빠른 플레이는 어느 팀에게도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압박 수비를 보고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맞게 적용했고 중앙대에서 성공했어요. 제가 뺏는 수비를 좋아하는데…. (웃음) 앞선부터 강하게 압박해서 턴오버를 유발하고, 그것을 빠르게 공격으로 연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당시 중앙대와 지금 성균관대는 선수들이 다릅니다. 제가 원하는 농구를 접목시키는 과정인데, 지금까지 온전한 모양은 아니었어요. 올해부터는 원했던 수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의 훈련은 코치들이 지도합니다. 김상준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수비위치를 잡아주는 것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압박을 해야 하는지, 트랩이 들어가야 하는지 선수들에게 세세하게 알려줍니다. 반면 공격은 선수들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중앙대 시절이었어요. 경기 후반 접전 상황에서 김선형이 스틸을 했는데 덩크슛을 하는 거에요. ‘안돼’라는 소리를 속으로 삼켰습니다. 덩크슛을 실패했는데 김선형이 다시 스틸을 해서 또 덩크를 했어요.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냥 웃었습니다. 공격을 자유롭게 하라고 해요. 제가 덩크나 앨리웁 같은 화려한 플레이를 좋아합니다. 팬들도 좋아하잖아요. 프로에 가면 팬서비스 해야죠.”

김상준 감독의 자신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수들이 김상준의 농구에 적응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16학번부터는 본인이 충분히 관찰하고 선발한 선수들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의 지원입니다.

“선수들의 사기와 컨디션을 높이기 위해 브루나이에 2주를 다녀왔습니다. 2월에는 실전 훈련을 위해 일본으로 가요. 올해부터는 재활 트레이너가 팀에 상주합니다. 특히 재활 트레이너 상주는 정말 큰 선물이에요.”


■ 밥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순간 지도자 생활은 끝이다

당신에게 농구란 무엇입니까? 인터뷰를 하면서 항상 묻는 질문입니다. 김상준 감독은 “인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삼성 썬더스 감독에서 물러나고 농구가 싫어서 호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보름 만에 돌아와서 미국으로 다시 지도자 연수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대학 감독으로 복귀했습니다.

“30대 초반부터 청춘의 시절을 모두 바쳤습니다. 50대가 지나면 꺾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있어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지금 이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전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만큼까지 잘 살 자신이 없어요.”

중앙대 시절은 하루하루가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선수들을 칼날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서 프로에 진출시키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성장일 뿐, 지도자는 노력의 대가를 계산하면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그것을 계산하는 순간 아이들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균관대 교정에는 4그루의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공자가 은행나무 밑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를 따라 1519년에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옛 선비들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성균관대에는 김상준이라는 경험 많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 지도자는 영광과 굴욕의 세월을 지나, 이제 지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성균관대 농구부는 그 지도자와 함께 뒹굴며 ‘사고 칠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점프볼 DB(문복주, 유용우,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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