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NBA 스타] Mr.기본기 팀 던컨,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위대한 리더! - ①

양준민 / 기사승인 : 2018-06-16 2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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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양준민 기자] 2017-2018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팬들은 명가의 부진과 카와이 레너드와 구단 사이의 대립을 바라보며, 이 선수의 이름을 계속해 떠올렸을 것 같다. 바로 NBA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 명이자, 무려 19년이란 시간을 흔들림 없이 샌안토니오의 유니폼만을 입고 뛰었던 팀 던컨(42, 211cm)을 말이다.

1997년 던컨의 입단부터 선수은퇴를 결정한 2016년까지, 샌안토니오는 던컨과 함께 성장하며 5번의 NBA 파이널 우승 등 수많은 영광들을 함께 했다. 던컨 시대 이전에도 조지 거빈, 데이비드 로빈슨 등 리그의 전설이자 샌안토니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있었다. 다만, 이들은 샌안토니오를 리그 상위권 팀으로 만들었을 뿐, 결정적으로 팀에 우승트로피와 꾸준함은 가져다주지 못했다. 물론, 로빈슨의 경우, 2번의 파이널 우승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는 던컨이 팀에 들어오고 난 뒤 던컨에게 팀의 중심자리를 물려주면서 이루게 된 업적이었다.(*데이비드 로빈슨도 1989년부터 2003년까지 샌안토니오의 유니폼만을 입었다)

던컨과 함께 공포의 트윈타워를 구축했던 로빈슨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던컨과 함께 하면서, 던컨이 자신의 뒤를 이어 샌안토니오의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들을 줬다. 로빈슨은 팀의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량을 가졌음에도 던컨이 입단한 후에는 스스로 조연을 자처, 뒤에서 던컨을 묵묵히 보좌하며 1999년과 2003년, 팀의 파이널 우승을 일구었다. 2002-2003시즌을 끝으로 선수은퇴를 공식선언했던 로빈슨은 자신의 마지막 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 로빈슨의 은퇴와 함께 샌안토니오는 명실상부 로빈슨과 던컨의 팀이 아닌 ‘팀 던컨의 팀’이 됐다.

이후 던컨은 모두가 알다시피 영혼의 단짝이라 할 수 있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마누 지노빌리, 토니 파커 등 뛰어난 후배들과 함께 하며 3번의 NBA 파이널 우승, 3차례의 파이널 MVP 수상 등 수많은 업적들을 자신의 커리어에 남기며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수 중 한 명으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팀 선배인 로빈슨이 본인을 위해 희생했던 것처럼, 자신 역시 카와이 레너드(26, 201cm)가 자신을 대신할 팀의 중심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주역에서 조역으로 물러나,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그야말로 던컨은 1997년 입단부터 2016년 은퇴할 때까지 샌안토니오만을 생각했던 샌안토니오 바보였다.



▲허리케인이 바꿔놓은 버진 아일랜드 국가대표급 수영선수 던컨의 삶!

버진 아일랜드 출신의 던컨은 미국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로 거론될 정도로 뛰어난 수영선수였다. 그의 누나인 트리카 던컨도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정도로 던컨은 수영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1989년 허리케인 휴고가 버진 아일랜드 지역을 강타, 유일하게 올림픽 국제 규격을 갖추고 있던 연습장을 잃어버린 던컨은 바다로 나가 대회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던컨은 결국, 수영을 포기하고 농구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날부터 농구에만 매진하기 시작, 그 결과,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농구팀 스카우터의 눈에 띠여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던컨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프로에 진출하는 바람에 입학과 동시에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2학년에 올라와선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알려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3학년 때는 전국구 스타로 거듭났다. 특히, 1994년, 드림팀, 미국대표팀의 연습상대로 참가했던 던컨은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주가를 더욱 높였다. 당시, 던컨을 지도하던 데이브 오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감독은 “던컨의 플레이는 매우 심플하다. 그러나 효율성이 뛰어나고 인사이드에서의 움직임이 좋다.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뱅크 샷을 던질 줄 알고, 보기와 다르게 터프하다. 던컨은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미 대학교 2학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던컨을 향해 NBA의 많은 팀들이 구애를 펼쳤던 건 당연지사였다. 던컨은 1994-1995 NCAA 시즌 종료 후 같은 또래인 조 스미스, 라시드 왈라스, 제리 스택하우스 등과 함께 향후 NBA 리그를 책임질 예비 슈퍼스타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당시, LA 레이커스의 단장 직무를 맡고 있던 제리 웨스트는 던컨에게 1995 NBA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줄 것을 권유, 만일, 던컨이 신인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한다면 트레이드를 통해 1순위 지명권을 얻어올 의사까지 있음을 밝히는 등 던컨을 향한 NBA 팀들의 러브콜은 뜨거웠다. 스택하우스와 왈라스의 경우, 던컨과 달리 1995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 각각 3순위와 4순위로 NBA에 입성했다.

사실 던컨 역시 3학년을 마치고, NBA 진출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1995-1996시즌 NCAA 토너먼트에서 8강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지만 ACC 올해의 선수상과 수비수상에 선정되는 등 대학무대에서 더 이상은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이 무의해보였던 던컨이었다. 그러나 던컨은 본인이 14살 때,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대학졸업 후 NBA에 진출하기로 결심을 굳혔다는 후문. 던컨의 어머니가 생을 마감할 당시, 던컨을 비롯한 자신의 아이들에게 대학교 졸업학위를 꼭 받으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일화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2남 2녀 중 막내였던 던컨의 두 누나와 형 역시 던컨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대학 졸업장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던컨은 4년이란 시간을 대학무대에서 보내며 NCAA 역사상 최초로 1,500득점-1,000리바운드-400블록-200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에 이름을 올리는 등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당시, 대학졸업장보단 조기 프로진출을 우선시했던 분위기 속에서 학업을 모두 마치고, NBA 진출을 선언하게 된 던컨은 자연스레 1997 NBA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로 떠올랐다. 美 현지에선 1997 NBA 신인드래프트를 두고 ‘팀 던컨 드래프트’라는 말을 전하는 등 팀 던컨이란 전설의 시작은 1997년 6월 26일(이하 한국시간) 그 막이 오르게 된다.(*던컨은 대학시절 통산 128경기 출장 2,117득점 1,570리바운드 481블록 28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7 팀 던컨 드래프트, 샌안토니오에 안착한 공포의 트윈타워!

1997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던컨이란 행운을 잡게 된 구단은 다름 아닌 샌안토니오 스퍼스. 샌안토니오는 1996-1997시즌 로빈슨이 부상으로 낙마, 리그 승률 하위권을 기록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면서, 전체 1순위로 던컨을 품에 안게 됐다. 던컨과 로빈슨이 공포의 트윈타워를 구축한 샌안토니오의 성적은 1997-1998시즌 정규리그 56승 26패, 서부 컨퍼런스 2위까지 수직상승, 전 시즌인 1996-1997시즌에 20승 62패로 서부 컨퍼런스 14위를 기록했던 부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선 유타 재즈에 패해 2라운드 진출에 만족해야했지만 트윈타워의 성공적인 안착과 함께 로빈슨 이후의 시대를 책임질 던컨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던컨은 데뷔시즌 82경기에서 평균 39.1분 출장 21.1득점(FG 54.9%) 11.9리바운드 2.5블록을 기록, 신인왕과 함께 리그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만 입성한다는 올-NBA 퍼스트 팀에도 선정됐다. NBA 역사상 신인이 올-NBA 퍼스트 팀에 입성한 건 던컨과 래리 버드, 단 둘 뿐이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다 보니 감독추천으로 1998 NBA 올스타전에도 초대받았고, 같이 경기를 뛴 찰스 바클리는 “앞으로 NBA의 미래는 저 21번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책임질 것이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시즌 데니스 로드맨을 상대로 22개의 리바운드를 거둬내는 등 던컨은 대학시절에 보여줬던 압도적인 보드장악력과 수비력을 그대로 NBA 무대까지 옮겨오면서, 데뷔 첫해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뽑히는 등 성공적으로 NBA 무대에 안착했다.

인사이드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던컨과 반대로, 포지션은 센터지만 돌파를 비롯한 페이스업, 중거리 슛으로 경기를 지배했던 로빈슨과 던컨의 궁합은 백점 만점이었다. 두 선수 모두 어시스트에 능한 선수라 트윈타워의 하이 로우 게임은 상대팀의 입장에선 여간 막기가 까다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두 선수가 지키는 샌안토니오의 골밑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그 결과, 트윈타워는 1997-1998시즌 서부 컨퍼런스 2번 시드를 차지한 데 이어, 1998-1999시즌 파이널에선 뉴욕 닉스를 물리치고 구단 첫 우승트로피를 가져왔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당해시즌에서 37승 13패로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차지한 샌안토니오는 플레이오프에서도 15승 2패를 기록하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던컨은 2년차 시즌이던 1998-1999시즌, 정규리그 50경기에서 평균 39.3분 출장 21.7득점(FG 49.2%) 11.4리바운드 2.5블록으로 2년 연속 올-NBA 퍼스트 팀에 뽑힌 데 이어 첫 시즌 아쉽게 놓쳤던 NBA 올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도 들어가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파이널 MVP 수상의 영예도 던컨의 몫이었다. 뉴욕은 라트웰 스프리웰을 앞세워 샌안토니오의 트윈타워에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던컨은 우승을 결정지은 5차전, 31득점(FG 54.5%) 9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등 플레이오프 내내 존재감을 발휘하며 데뷔 2시즌 만에 리그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이 당시, 뉴욕을 이끌고 있던 제프 밴 건디 감독에게 “나에겐 던컨이 있었지만 당신은 그렇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나와 당신이 가장 큰 차이였다”는 말을 전한 것만 봐도 그때 샌안토니오에서 던컨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던컨이 무조건 꽃길만을 걸은 것은 아니다. 던컨은 1999-2000시즌 정규리그 74경기에서 평균 23.2득점(FG 49%) 12.4리바운드 2.2블록을 기록, 계속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3년 연속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정규리그 막판 무릎부상을 당하며 플레이오프 출전이 무산, 샌안토니오는 팀의 미래를 위해 던컨의 플레이오프 출전을 막았다. 샌안토니오도 로빈슨이 분전했지만 1라운드 피닉스 선즈에게 3-1로 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던컨은 3년 연속으로 올-NBA 퍼스트 팀과 NBA 올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선정되는 것은 물론, 오닐과 함께 2000 NBA 올스타전 MVP까지 공동으로 수상, 빠르게 리그 최고의 빅맨으로 성장해나갔다.(*커리어 통산 10차례의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된 던컨은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 연속 올-NBA 퍼스트 팀에 선정됐다)

그러던 도중에 2000년 여름, 생애 첫 FA를 맞이한 던컨은 샌안토니오를 떠나 올랜도 매직으로의 이적을 고려, 계약이 성사직전까지 갔다. 올랜도는 던컨에게 리그 최고의 대우와 함께 그랜트 힐과 팀의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 던컨의 마음잡기에 성공했다. 이에 샌안토니오에선 구단 관계자들 전부와 로빈슨이 나서 던컨을 설득, 결국 던컨은 올랜도로 향하던 자신의 마음을 접고, 샌안토니오 잔류를 선택했다.

지금은 前 부인이 된 에이미 던컨과 닥 리버스 감독 사이의 일화도 던컨이 마음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이미는 던컨의 경기를 보기 위해 던컨과 샌안토니오의 팀 비행기에 동행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때문에 에이미는 올랜도의 감독으로 있던 닥 리버스 現 클리퍼스 감독에게도 던컨과 팀 비행기 동행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했다. 평소 그런 사례를 거의 보고 들은 적이 없었던 리버스는 에이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 이 역시도 던컨의 샌안토니오 잔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샌안토니오에 남게 된 던컨은 점점 더 로빈슨의 영향력을 지워내고, 샌안토니오의 중심으로 발돋움해갔다. 던컨의 개인성적은 계속해 상승곡선을 그렸고, 2002년 생애 처음으로 정규리그 MVP까지 수상했다. 샌안토니오도 던컨과 함께 서부 컨퍼런스 강호의 자리를 유지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선 오닐이 이끄는 LA 레이커스에 2년 연속으로 발목을 잡히며 2000-2001시즌과 2001-2002시즌 파이널은 TV로 지켜봐야만 했다. 레이커스에 덜미를 잡힌 것에 대해 던컨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자, 로빈슨은 “던컨은 그 누가 뭐래도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개인의 기량은 레이커스와 스퍼스, 양 팀 선수들을 통틀어 최고였다. 그저 레이커스가 팀으로서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것뿐이다. 던컨이란 선수 개인은 최고다”는 말로 위로를 전했다.
결국, 선배의 위로가 위안이 됐던 것일까. 던컨은 로빈슨이 공식적으로 선수은퇴를 선언한 2002-2003시즌, 초인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을 다시 한 번 리그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던컨은 2002-2003시즌, 2년 연속으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한 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도 피닉스, 레이커스, 댈러스, 뉴저지 네츠를 물리치고 로빈슨에게 우승을 은퇴선물로 안겨줬다. 던컨은 당시 대부분의 기록에서 팀 내 1위를 차지하는 등 파이널 MVP까지 수상, 대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했고, 또, 성공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던컨은 파이널 종료 직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항상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오늘의 결과가 그 증거다”라는 말과 로빈슨의 은퇴에 대한 슬픔을 함께 전하는 등 샌안토니오는 ‘팀 던컨’이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던컨-지노빌리-파커의 빅3, 샌안토니오 왕조를 구축하다!

샌안토니오의 진정한 리더가 된 던컨은 2003-2004시즌 정규리그 69경기에서 평균 22.3득점(FG 50.1%) 12.4리바운드 2.7블록을 기록, 샌안토니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또 다시 레이커스에게 넘어서지 못했지만, 정규리그를 57승 25패, 서부 컨퍼런스 3번 시드로 마치는 등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알렸다. 이는 오래 전부터 던컨의 시대를 준비했던 결과물로, 포포비치 감독은 던컨이 신인이던 시절, 경기 내적인 것부터 외적인 것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며 던컨이 올바른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반대로, 로빈슨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 던컨이 샌안토니오의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후문.

이와 맞물려 샌안토니오는 던컨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팀 개편까지 단행했다. 이때 등장한 선수들이 바로 던컨과 마지막까지 함께 한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다. 또, 코비 브라이언트의 대항마로 영입된 브루스 보웬도 8년이란 시간을 샌안토니오에서 보내며 3번의 파이널 우승을 차지, 샌안토니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보웬의 등번호 12번 역시 샌안토니오의 영구결번이다. 커리어 내내 보웬은 리그 최정상급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샌안토니오에서 뛰었던 8년 모두 NBA 올-디펜시브 팀에 선정된 것이 그 증거. 그러나 때로는 거친 반칙들로 상대팀 선수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등 수많은 안티 팬을 거느리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보웬은 샌안토니오에서만 630경기를 뛰며 평균 6.4득점(FG 42.1%) 3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반면, 2001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8순위로 샌안토니오에 입단한 파커는 데뷔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낙점, 던컨과 함께 팀을 이끌 가드진의 핵심으로 포포비치 감독의 중용을 받았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포포비치 감독은 스카우터를 통해 파커의 기량에 대한 평가들을 전해들은 뒤 직접 파커를 여러 차례 팀 캠프에 초청, 그의 기량을 살펴봤고, 2번째 워크아웃에서 파커의 지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의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파커는 뛰어난 공격력에 반해, 신체적 조건의 열세에서 나오는 수비력이 약점인 선수였다. 어릴 적의 파커는 농구보단 풋볼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간 시카고 여행에서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보고 농구에 반해, 농구선수의 꿈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파커는 데뷔시즌인 2001-2002시즌, NBA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됐고, 2002-2003시즌에는 본인의 첫 우승을 달성했다. 파커는 드래프트 당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과 달리, 리그 입성 이후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으며, NBA 역사상 유럽출신 최초로 파이널 MVP에 선정되는 등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데뷔 당시의 파커는 공격 앞으로밖에 모르던 돌격형 가드였다. 하지만 포포비치 감독의 지도하에 공격과 경기조율의 밸런스를 모두 갖춘 포인트가드로 성장, 던컨이 은퇴한 지금까지 샌안토니오를 지키고 있다. 2017-2018시즌, 디욘테 머레이에게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양보하는 등 파커도 어느새 선수생활의 끝을 준비하고 있다.(*파커는 정규리그 통산 1,198경기에서 커리어 평균 15.8득점(FG 49.2%) 2.8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마찬가지 현재까지도 샌안토니오의 선수들과 경기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노빌리는 1999 NBA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57순위로 샌안토니오에 지명됐다. 이미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족적을 남기고 있던 지노빌리는 포포비치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돼 샌안토니오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노빌리는 당해시즌 샌안토니오와 계약하지 않고, 곧장 유럽으로 돌아갔다. 지노빌리는 2000-2001시즌 유로리그 파이널 MVP를 수상하는 등 더 이상 유럽에서 이룰 것이 없다고 판단되자, 2002-2003시즌 샌안토니오와 정식계약을 맺고 팀에 합류했다. 데뷔 첫 시즌은 잦은 부상과 리그 스타일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면서 애를 먹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실력을 발휘, 급기야 3월, 이달의 서부 컨퍼런스 신인에 뽑히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파커처럼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지노빌리는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식스맨으로 성장해 2007-2008시즌 올해의 식스맨상을 수상하는 등 샌안토니오의 벤치에이스로 활약했다. 아이솔레이션 공격에 강점을 보이는 지노빌리는 데뷔 초 미드레인지 점퍼 능력은 떨어졌지만, 수비가 알고도 막지 못한다는 유로스텝을 활용, 샌안토니오가 활로를 찾지 못할 때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그저 돌파에만 강점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슈팅능력까지 일취월장, 결국은 내·외곽을 넘나드는 전천후 공격수로 거듭났다. 올 시즌도 지노빌리는 40살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왜 지난해 여름, 포포비치 감독이 직접 나서 그의 은퇴를 만류했는지 그 이유를 증명하며 2017-2018시즌을 마쳤고, 올 여름 은퇴여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노빌리는 정규리그 통산 1,057경기에서 커리어 평균 13.3득점(FG 44.7%) 3.5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던컨은 이들과 함께 2002-2003시즌 이후 두 번의 우승을 더 일궈내며 샌안토니오 왕조를 구축했다. 특히, 샌안토니오는 2005년과 2007년, 홀수 해에 열린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 퐁당퐁당 우승공식을 보여줬다. 커리어 3번째 우승을 차지한 2004-2005시즌, 던컨은 정규리그 66경기에서 평균 20.3득점(FG 49.6%) 11.1리바운드 2.6블록을 기록, 이전의 시즌들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파커와 지노빌리 등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샌안토니오는 정규리그를 59승 23패, 서부 컨퍼런스 2번 시드로 마쳤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덴버 너게츠, 시애틀 소닉스(現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피닉스 선즈를 가볍게 물리치고 서부 컨퍼런스를 재패한 샌안토니오와 던컨은 2005 파이널, 디펜딩 챔피언인 베드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격돌한다.

리그를 대표하는 방패간의 맞대결로 NBA 파이널 역사상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두 팀의 시리즈는 실제 경기의 내용도 공격보단 수비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켜보는 재미는 떨어졌다. 두 팀의 시리즈는 단 한 번도 +100득점 경기가 나오지 않는 등 저득점 양상이 이어졌다. 파커가 디트로이트의 조직적인 수비에 막혀 고전했고, 던컨도 3차전부터 디트로이트의 협력수비에 시달리는 등 두 팀은 매 경기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결국 두 팀의 승부는 마지막인 7차전에 가서야 결정됐다. 샌안토니오는 7차전, 던컨이 디트로이트의 협력수비를 이겨내고 25득점(FG 37%) 11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 팀에 승리를 안겨주며 3번째 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던컨을 상대한 벤 왈라스는 “던컨의 두 어께엔 책임감이 달려있다. 그 책임감이 때론 부담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던컨처럼 그 중압감을 이겨내고 오히려 경기력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선수들이 결국은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는 후문. 2004-2005시즌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받은 왈라스는 시리즈 내내 던컨과 불꽃 튀는 맞대결을 이어갔다.

우승과 함께 본인의 3번째 파이널 MVP를 품에 안은 던컨은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매직 존슨과 함께 3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한 선수에 이름을 올리며 점점 더 리그를 대표하는 전설들과 그 어깨높이를 맞춰가고 있었다.(*2016년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도 파이널 MVP를 수상, 통산 3회 수상을 기록하며 NBA 역사상 3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한 선수는 5명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이어진 2005-2006시즌, 던컨은 시즌 내내 족저근막염 부상에 시달리며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20-10달성에 실패한다. 이미 당시의 샌안토니오는 던컨만의 팀이 아니었고, 다른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리그를 63승 19패,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마칠 수 있었다. 그 덕에 부담감을 덜어낸 던컨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고, 샌안토니오의 팬들은 2연속 우승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샌안토니오는 1라운드, 새크라멘토 킹스를 4-2대로 물리치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2라운드, 댈러스 매버릭스를 만난 샌안토니오는 7차전까지 접전 끝에 시리즈를 내주며 2005-2006시즌을 마감했다.(*던컨은 2005-2006시즌 정규리그 80경기에서 평균 18.6득점(FG 48.4%) 11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두 팀의 시리즈는 당대 리그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걸출한 파워포워드, 던컨과 더크 노비츠키의 맞대결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던컨은 2라운드 7경기에서 평균 32.2득점(FG 55.6%) 11.7리바운드 3.7어시스트 2.6블록을 기록, 노비츠키도 7경기 평균 27.1득점(FG 52.7%) 13.3리바운드 2.7어시스트로 응수했다. 두 팀의 경기는 7차전에서도 연장전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연장전, 4쿼터까지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주던 던컨이 서가나 좁과 에릭 뎀피어의 대인수비를 뚫지 못하고, 야투 7개를 던져 단 1개만을 성공시키는 바람에 승리는 댈러스에게로 돌아갔다. 이날 던컨은 자유투 17개를 포함해 41득점(FG 50%) 15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정작 승부처였던 연장전에 2득점(FG 12.5%)으로 부진, 샌안토니오는 백투백 우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던컨은 2006-2007시즌 생애 첫 4번째 파이널 우승을 달성한다. 정규리그를 3번 시드로 마친 샌안토니오는 파이널에 오르기까지 단 4패만을 기록하는 파죽지세를 보였고, 결국 파이널에서도 생애 첫 우승에 도전하는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시리즈 스윕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다. 던컨은 파이널 4경기에서 평균 18.3득점(FG 44.6%) 11.5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졌고, 파이널 MVP의 영광은 다름 아닌 파커에게로 돌아갔다. 던컨은 파이널 MVP 투표에서도 단 1표를 얻는 데 그쳤다. 파커는 당시, 4경기에서 평균 24.5득점(FG 56.8%) 5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기록, 돌격대장의 역할을 맡아 클리블랜드의 수비조직망을 완벽히 찢어버리며 팀에 4번째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당해 시리즈에서 던컨이 보여준 리더십에 많은 호평을 보냈다. 파커를 비롯한 샌안토니오의 동료들은 계속해 던컨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고,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로빈슨도 “지금의 샌안토니오는 바로 던컨의 시대다. 던컨은 나보다도 훨씬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말을 전했다. 마찬가지 포포비치 감독도 “던컨은 이미 4번의 우승 등 많은 것을 이룬 선수다. 그럼에도 여전히 겸손하고,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던컨을 따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던컨이 쉽게 농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던컨은 누구보다 기술이 다양하고, 무엇보다 기본기가 탄탄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는 말을 전하는 등 사실상 2007 파이널, 파커에게 밀려 조연의 역할을 맡았지만, 경기종료 후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던컨에게로 향했다.

이후 사람들은 홀수 해에 파이널이 열리는 시즌은 무조건 샌안토니오를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고 보는 등 트윈타워 시대의 샌안토니오가 왕조의 시작을 알리고, 왕조의 영원한 안녕을 위한 백년대계를 계획했다면, 던컨 시대의 샌안토니오는 그 백년대계를 현실에서 실현, 샌안토니오를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명문 팀으로 발돋움시켰다.

2부에서 계속.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점프볼 DB, 아디다스
#일러스트-광작가 제공
#자료참조-BASKETBALL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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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민 양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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