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작년 대학농구리그 최대 이변 중의 하나는 경희대의 플레이오프 탈락입니다. 경희대는 원년 준우승과 그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이었죠. 그런데 작년에 처음으로 초청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입니다. 윤영빈과 정지우, 박세원 등 주축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권혁준도 오랜 기간 부상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루키 시즌에 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뛰었던 권혁준의 빈자리는 컸습니다.
올해 경희대는 대학리그에서 순항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올린 7승을 전반기에 이미 올렸습니다. 7승 3패 단독 3위로 전반기 마감. 우승후보 고려대에게 두 경기를 내주고, 단국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뿐 다른 팀들에게는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심에 3학년 가드 권혁준이 있습니다. 권혁준은 10경기 평균 33분 06초를 소화하며 17.9득점 5.6리바운드 4.4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면서 2점슛 성공률이 54.7%, 3점슛 성공률은 무려 57.6%입니다. 어시스트 역시 팀 내 1위입니다. 권혁준은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가 선정한 대학리그 전반기 경희대 최우수선수로 뽑혔습니다.
■ 엘리트 코스를 밟다
권혁준은 될성부른 나무입니다. 16세 대표를 시작으로 연령별 대표를 차례로 거쳤습니다. 16세 대표팀은 주전 가드였습니다. 한 살 위의 형들과 뛴 18세, 19세 대표팀은 식스맨으로 제 역할을 했죠. 대학 유니폼을 입은 2016년. 전통적으로 가드진이 풍부한 경희대에서 권혁준보다 오래 코트에 머물렀던 선수는 없었습니다. 김철욱, 이민영도 권혁준보다 출전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권혁준이지만 성장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슈팅가드에 가까운 플레이를 하는데 180cm의 신장은 작다는 지적입니다. 본인도 이런 평가에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리딩이 약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현대농구에서 리딩은 가드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권혁준의 탁월한 일대일능력과 슈팅능력은 상대 수비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공을 소유하는 시간 대비 생산성이 높은 것도 장점입니다. 시야와 패스의 감각도 있습니다. 권혁준을 지도하고 있는 경희대학교 김현국 감독의 평가 역시 비슷합니다.
“신장이 작은 대신 빠릅니다. 일대일 능력이 있고 슈팅능력도 좋아요.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그런지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그것을 코트에서 풀어낼 수 있는 선수에요. 재활이 쉽지 않은데, 그 과정도 이겨냈습니다. 부상 이후 하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졌어요.”
■ 부상 그리고 재활
“동계훈련에서 단 하루도 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나 봅니다. 동계훈련이 끝나고 용산고와 연습경기를 했는데, 레이업을 하고 내려오면서 통증을 느꼈습니다. 병원에서 피로골절이래요. 피로골절은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3개월 이상을 쉬었던 것 같아요.”
작년 권혁준은 대학리그에서 다섯 경기만 출전했습니다. 명지대와의 복귀전은 3초만 뛰었으니 실질적으로는 네 경기죠. 출전했던 네 경기를 모두 졌고 경희대는 플레이오프 탈락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다음 달 열린 MBC배에서 4강에 진출하며 자존심을 일부 회복했지만 온전한 위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MBC배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날, 비에 젖은 돌에 미끄러지면서 이번에는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재활을 하는 병원에 입원실이 부족했습니다. 병원이 강동구에 있는데, 근처에 방을 구해서 토요일 오전까지 재활훈련을 했어요. 기초적인 훈련만 반복해서 지루했고... 지루함도 힘들었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잘 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힘들었습니다.”
‘재활’이란 단어 앞에 붙는 가장 일반적인 수식어는 ‘고통스러운’이 아닐까요? 팀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반복되는 훈련에 대한 지루함, 다시 좋았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큽니다. 강한 정신력과 절제 없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프로와 달리 학생 선수들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희대는 좋은 환경이라고 권혁준은 이야기합니다. 치료와 초기 재활은 병원에서 하고, 훈련과 경기에 복귀할 때까지 관리는 학교에서 받았다고 하네요. 학교에 AT(athletic trainer)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 트레이너’로 번역되는 AT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선수들의 부상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입니다.
김현국 감독에 의하면, 경희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AT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AT실이 별도로 있고, 농구부 전담 트레이너가 있습니다. 그들에 의해 데이터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학부에 스포츠의학과가 있어서 선수 트레이너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의학과를 졸업한 선배들 중 다수가 프로에 진출했고, 그 선배들은 최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합니다.
모든 운동선수는 부상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선수기간 내내 겪는 크고 작은 부상은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습니다. 그래서 재활은 중요합니다.
시즌 전에 만난 성균관대 김상준 감독은 올해부터 재활 트레이너가 합류했다며 높은 기대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 재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 자기 몸을 아끼는 습관
“선수들이 자기 몸을 아끼는 것에 인색합니다. 아프면 병원을 찾거나 트레이너를 찾아가야 하는데 참다가 부상을 키워요. 아이싱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질적인 부상이 되는 경우도 있고...”
김현국 감독은 자기 몸을 아끼는 습관을 얘기합니다. 아프면 필요한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야 하고, 완전하게 회복된 이후에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볍게 생각해서 부상을 키우고, 인내심이 부족해서 또 다시 부상을 키웁니다.
“대학과 고등학교는 운동의 강도가 달라요. 그런데 기본적인 동작들이 잘못된 경우가 많아서 몸에 과부하가 더 많이 옵니다. 정작 힘을 써야 할 곳에 쓰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써요. 그것도 부상의 원인이 되는데,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 습관을 바꾸고 트레이닝을 성실하게만 해도 부상의 위험은 많이 줄어듭니다.”
잘못된 운동습관이나 트레이닝 방법도 부상의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고등학교 농구부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피지컬 트레이닝이나 선수 트레이닝 같은 전문적인 영역을 코치 한 두 명이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 다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권혁준은 2학년 징크스가 있나 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손목 골절로 수술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못나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후유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칠까봐 블록슛을 자제했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재활 후 복귀도 경험일 수 있습니다. 올해는 경기에 나서면서 그런 부담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다친 부위를 다시 다치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던 대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부상에 대한 부담 없이, 재활과정에서 강해진 의지만 있는 권혁준은 다시 팀의 중심이 됐습니다. 대학리그 전반기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MBC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MBC배의 1차 목표는 예선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예선을 통과하고 더 큰 목표를 잡아야죠. 우승이 최종 목표고, 최소한 작년 성적(4강) 이상은 하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부상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웃음)”
경희대는 B조에서 연세대, 중앙대, 명지대를 만납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한 번도 상대하지 않은 팀들입니다. 연세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학 최강. 넘기 힘든 산입니다. 그래서 중앙대와 명지대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입니다. 특히 중앙대와의 첫 경기가 중요합니다.
중앙대는 작년 대학리그 4강팀입니다. 올해는 7위로 전반기를 마감했습니다. 초반에는 강병현과 박진철이 부상으로 결장했고, 두 선수가 복귀한 지금은 주전가드 김세창이 부상입니다. 주전가드의 공백은 승부처의 약점으로 나타났고, 팀 성적의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상은 모든 팀들에게 경계대상 1호이자 가장 큰 극복의 대상입니다.
“힘든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에게 부상의 위험은 항상 있죠. 부상은 준비한 전술응 활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전과 후보의 차이가 크지 않은 팀은 플랜B, 플랜C를 가동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팀은 많지 않아요. 100% 전력이 아닌 상태에서 경기를 하면 아무래도 패배가 늘어나고,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집니다. 경기도 지는데,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작년에 선수들의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김현국 감독의 말입니다. 권혁준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패배가 반복되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눈치를 많이 봤다고 하네요. 올해를 준비하는 각오가 그래서 더 남달랐다고 합니다. 다치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훈련에 임했습니다.
■ 양동근 선배님이 롤모델
“슛이나 드라이브인은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운영, 리딩은 아직 부족해요. 롤모델이 양동근 선배님입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잘하고, 리딩도 잘하고... 농구 실력이 출중한데 리더십도 훌륭해요.”
오랜 공백에도 권혁준의 기록은 수직 상승했습니다. 출전시간은 비슷한데 1학년 때와 비교해 득점 평균은 8.9점, 어시스트 평균은 2.8개가 늘었습니다. 수비 또한 준수합니다. 용산고 출신답게 일대일에 강하고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패스 길을 잘 읽고 손이 빨라 스틸도 많습니다. 그런데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보완할 점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김현국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요?
“권혁준은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선수입니다. 이제 고학년이 됐고요. 정신적으로도 팀을 이끌어야 합니다. 내 플레이만 잘하면 안 돼요. 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현국 감독은 기술이나 경험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보다 성숙해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권혁준이 언급한 “양동근의 리더십”을 김현국 감독도 원하는 것 같습니다. B조에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없습니다. ‘권혁준의 리더십’이 경희대에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승을 할 때 가장 기뻐요. 보람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아직 대학에서는 우승 경험이 없습니다. 졸업을 하기 전에 꼭 우승을 하고 싶고, 그 시작이 이번 대회였으면 좋겠네요. 연세대가 중앙대에게 고전했잖아요. 우리도 고려대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양동근처럼 모든 것을 잘 하고, 양동근의 리더십을 배우고 싶은 권혁준은 양동근처럼 큰 부상 없이 프로에서 오래 뛰기를 원합니다. 우승컵도 많이 들어올리길 원합니다. 우승에 대한 욕심은 이번 대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재활의 힘든 과정을 이겨낸 권혁준의 바램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10일 개막하는 MBC배에는 의지견정한 많은 권혁준이 뛰고 있습니다.
#사진=점프볼 DB(유용우, 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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