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의 농구 in] 전 농구감독 최인선 “한국농구, 스타를 키워야 합니다”

조원규 / 기사승인 : 2019-01-04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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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내가 암이라니’라는 팟캐스트 방송이 있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박PD와 황배우, 방송을 만드는 사람 모두 암 환자입니다. 암 환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암 생존자의 성공적인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뜻을 모았습니다. 2016년 현재 국립암센터에 등록된 암환자 수는 161만 명이라고 합니다. 암환자의 3명 중 2명은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일자리를 갖고 경제적 능력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절반 이상은 “암 생존자가 일반인보다 직업 능력이 낮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동서울골프연습장에서 만난 최인선 감독도 그랬습니다. 2005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해에 세 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지도자로 복귀를 원했지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후 농구 해설가로 변신했고, 2014년부터 골프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 티칭 프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에게 티칭프로 자격증은 건강함을 알리기 위한 도구였다고 합니다. 암을 이기고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최인선 감독을 만났습니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18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편집했습니다.


Q. 오랜만에 농구팬들과 만났습니다. 먼저 감독님의 근황이 궁금하네요.
골프 인스트럭터로 일하면서 농구는 재능기부만 하고 있습니다. 은퇴를 하더라도 꼭 보답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재능기부로 동호회나 사회체육에 기술보급을 하는 것이죠. 연예인농구팀 감독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기술을 가르치고 대회도 참가하는데, 농구 인기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들이 유소년농구교실을 운영하는데 그 곳에서 가끔 어린이들을 지도하기도 합니다.

Q. 골프 인스트럭터란 직업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골프를 가르치는 티칭 프로입니다. 여전히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웃음). 내가 골프선수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프로 지망생들을 위한 티칭은 생각을 안 해요. 일반인들이 즐겁게, 부상 없이 빨리 배울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죠. 내가 농구 코칭을 오래 했잖아요. 공백 기간을 제외해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코칭 능력이 뛰어나데요. 아마추어 골퍼 30년의 경력도 아마추어 코칭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골프 인스트럭터로 변신한 계기가 있었나요?
농구 감독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몰라요. 만나면 매일 술만 먹었죠. 그래서 운동을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골프였습니다. 골프를 시작은 했는데 정작 골프를 칠 시간은 없었어요(웃음). 7년 동안 코치 없는 감독 생활을 했거든. 그래도 골프는 좋아했습니다. 필드에 가면 눈썰매장의 시원함이랄까?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내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난 건강한데 농구계에서 알아주지를 않으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골프 티칭 프로에 도전했습니다. 골프가 사람들과 만나기 좋은 운동이기도 하고요.

Q. 골프와 농구, 공통점이 있을까요?
농구가 드리블이나 슛의 동작 같은 기초를 배우지 않으면 할 수가 없잖아요. 골프도 그래요.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점이야. 차이점은 아주 많아요. 운동 자체가 정반대에요. 장소가 실내체육관과 야외로 달라요. 농구는 움직이는 공을 컨트롤하고 골프는 멈춰 있는 공을 컨트롤합니다. 농구는 앞을 봐야 하고 골프는 헤드업을 하면 안 돼요. 농구는 시끄러워야 하고 골프는 조용해야 하고, 근육 쓰는 것도 달라요.

최인선 농구감독은 골프코치로 변신했습니다. 농구계 인사들에게 건강을 확인시키기 위한 도구였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생계가 목적은 아니라고 하네요.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만 저렴한 금액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직업으로 골프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 암을 이긴 운동선수 특유의 승부기질
‘농구감독’ 최인선은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농구인’ 최인선이 됐습니다. 농구 해설을 하고 인스트럭터를 했지만 원하는 지도자 생활을 지속하지는 못했습니다. 모 구단에 기술 감독으로 복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골프로 건강을 확인시켜도 제약이 있었습니다. 물론 암 환자의 전력이 원인의 전부는 아닐 수 있습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요?

Q. 대장암 증세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나요?
시즌이 되면 변이 가늘고 혈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아닌데 그런 증상이 있어요. 기분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고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의사가 대장암이라고 할 때는 실감이 안 났어요. 다음날 바로 수술을 했는데…. 그러니까 실감이 나는 거야.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Q. 발병 당시 심경을 자포자기라고 표현한 과거 인터뷰를 봤습니다.
당시에는 그랬죠. 우승도 많이 했으니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승부욕이 생기더라고. 내가 이긴다. 내가 암을 이긴다. 병원 복도에서 걷기를 시작했고, 한강 둔치에 나가서 걸었어요. 운동선수 특유의 승부기질이 발동한 거지. 지금은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해요. 큰 병을 겪으면서 매일 운동을 했잖아.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건강해(웃음).

Q. 수술을 받고 농구 행정가로, TV 해설위원으로 복귀했습니다.
장루를 차고 한 달을 기다리는데 연락이 왔어요. 용평에서 유소년 코칭 클리닉이 있는데 올 수 있냐고…. 다녀왔죠. 한 달이 지나서 직장을 다시 넣는 수술을 했습니다. 이후 방송 중계를 시작했어요. 원주로, 전주로, 창원으로 가야 하는데 고속버스를 못 타. 화장실을 가야 하니까. 차에 휴대용 변기를 갖고 다녔습니다. 캐스터와 밥도 같이 못 먹었어요. 4시간 전에는 밥을 먹고 속을 비워야 되니까.

Q. 의사는 괜찮다고 했어요?
많이 먹으면 고생하니까 좋은 것만 알차게 먹으라고 했어요. 아침에는 오색 채소와 견과류, 닭가슴살, 우유, 곡물 식빵을 먹습니다. 양이 많아서 하루는 그냥 먹고 하루는 해독주스로 먹어요. 점심과 저녁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는데 짜거나 기름진 음식은 피해요. 설렁탕에도 소금을 안 넣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소금을 안 넣으면 더 고소해요.

Q. 2003년이 지도자 생활의 끝이었어요. 대장암도 이유가 됐을까요?
지도자로 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암 환자라는 전력이 걸림돌이 됐죠. 자격증을 땄는데도 안 통해. 그래서 어시스턴트 코치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말이 많아. 내가 감독을 쫒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거다. 일부 구단에서는 환영하는 단장도 있었는데. 암 환자에 나이 많은 코치가 구단이나 감독이나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겠죠.

Q. 2014년에 KGC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난 죽어도 감독을 안 해. 어시스턴트 코치를 원했는데 그것이 안 되서 기술 감독*을 했어요. 감독 생활을 오래 하고 우승도 많이 했습니다. 감독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꿈은 후계자를 키워서 내 모든 경험을 전수해주는 것이에요. 젊은 코치를 감독으로 올리고 내가 어시스턴트 코치를 하고 싶었어. 이걸 꼭 이루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움이 커요. 감독 물망에 올랐다는 기사도 나왔는데, 나중에 이상범 감독을 만나서 오해를 풀었습니다.
※ 최인선 감독이 기술 감독으로 표현했지만 당신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전술적, 기술적 조언을 하는 기술 고문입니다.


▲ 김종규가 전희철보다 못할까요?
한국농구가 팬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기는 1990년대입니다. 오빠들을 보기 위해 많은 여학생들이 체육관 앞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연세대 농구부 숙소에는 매일 선물이 넘쳐났다고 하죠. 그 시기에, 최인선 감독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지도했던 기아자동차는 대한민국 최고의 팀이었고, 그에 맞는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최인선 감독의 부임 이후 기아자동차는, 농구대잔치에서 7년 동안 6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프로 첫 시즌 우승팀 감독도 최인선입니다. 외국인선수들의 합류도 기아 우승의 변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1998-1999시즌 중에 SK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 다음 해에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인선 감독만큼 화려한 이력을 갖춘 지도자는 많지 않습니다.

Q. 청주 SK(현 서울 SK) 안준호 감독이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을 뽑고 “우승이다”라고 외친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현주엽을 트레이드 했어요. 감독님의 결정인가요?
그럼. 둘이 너무 안 좋았어요. 겉으로만 좋아 보인거지. 개인적으로는 현주엽의 플레이를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팀이 우승하려면 서장훈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재키 존스는 한계가 있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서장훈을 쓰려면 재키 존스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재키 존스를 뽑고 하니발을 뽑았어요. 상품가치만 보면 현주엽이 어마어마하지. 그런데 팀을 생각하면 조상현과 조합이 더 좋았어요. 외국선수와의 조합에서 슈터가 필요했거든. 프로스포츠는 비즈니스잖아요. 그래서 4억을 받고 조상현을 데려왔습니다.

Q. 현역 감독 시절 우승을 많이 했습니다. 말씀하신 조합의 힘인가요?
성적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높이입니다. 서장훈과 재키 존스의 더블포스트에 하니발과 조상현도 작지 않았잖아요. 기아도 그랬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더블포스트를 가동했어요.

Q. 더블포스트는 중앙대가 원조 아닌가요?
중앙대가 원조 맞는데 좋은 것을 내가 버릴 이유가 없지. 실업에서 처음이라고 정정해야겠네요(웃음). 그 전에 한국 농구는 가드 위주, 슈터 위주였습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가 한국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꿨어요. 그리고 조합입니다. 포스트만 높은 것이 아니라 허재와 김영만도 높이에서 경쟁력이 있었어요. 강동희라는 좋은 가드가 있었고, 이훈재라는 좋은 수비수도 있었습니다. 이훈재는 정말 수비를 잘하는 선수였어요. SK도 그랬습니다. 서장훈이라는 좋은 센터가 있었고, 거기에 맞는 조합을 만든거죠.

Q. 많은 스타들과 함께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일까요?
선수가 아니라 팀으로 얘기해야지. 허재는 농구팬이 많았어요. 그런데 안티가 있어. 유재학과 강동희는 허재보다 작아요. 그런데 안티가 없었어요. 팀의 마스코트는 유재학과 강동희였고, 기량은 허재였습니다. 허재 같은 선수는 다시 나올 것 같지가 않아요. 허재 같은 선수가 한두 명 더 있었으면 허재의 농구선수 수명이 더 늘어났을 겁니다. 라이벌이 없어서 수명이 짧아졌어요.

Q.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을 ‘작은 거인’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팀의 리더였어요. 아주 영리하고, 생각이 깊고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대범한 면도 있었어요. 좋은 선수였고, 지도자로도 성공할 것 같았어요.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기아가 워낙 멤버가 좋았잖아요. 경기에 많이 못 뛰는 선수들에게 늘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춘천에서 열린 코리안리그에서 이 선수들이 우승을 했어요. 주전이 모두 대표팀으로 빠져서 크게 기대를 안했어요.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았죠. 만들어서 우승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심성은 좋은데 경기 출전이 쉽지 않은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뛰었으니까. 남들은 기아니까 우승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니에요. 기사에는 대부분 허재만 나오는데 숨은 공로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기자들을 만나면 이 선수들도 기사화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기자들도 이해해달라고 해요. 허재가 1면에 올라와야 신문이 팔린다고.

Q. 당시와 비교해 농구의 인기가 많이 줄었습니다.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외국선수 제도가 변해야 합니다.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점점 외국선수의 비중을 줄이고 국내 선수의 역할을 늘려야 되요. 외국선수는 언젠가 떠나잖아요. 내 선수라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화려한 플레이를 보고 싶은 팬들은 NBA를 봅니다. 올해 김민욱 같은 장신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아요. 이런 선수들이 계속 경기에 나오면 기량이 늘어요. 그렇게 스타를 만들어야 합니다.


▲ 한국농구, 스타를 키워야 합니다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최인선 감독을 알아보네요. 여전히 농구감독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농구대잔치는 오래된 기억입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잊힌 기억은 아닙니다. 지금의 선수들은 어떨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동근, 김선형, 이승현의 얼굴을 알까요? KBL을 대표하는 이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을까요?

최인선 감독은 과거 NBA 경기 해설을 했습니다. 당시 가장 재미있게 본 팀은 피닉스 선즈입니다. 빠르게 달리고 공격하는 팀컬러가 그를 매료시킨 것이죠. 우승은 오직 한 팀에게만 허락됩니다. 그러나 팀의 독특한 컬러는 모든 팀에게 허락됩니다. 팀의 색깔이 다양해질수록 팬들의 선택지는 넓어집니다. 그런데 외국선수가 다양성을 가로막습니다. 코트에 있는 5명, 벤치를 포함한 12명의 조합이 아닌 외국선수 중심의 단조로운 경기 운영이 농구의 인기를 축소시킨다는 것이 최인선 감독의 생각입니다.

Q. 감독으로 한국 농구 최고의 전성기를 함께 했습니다. 지금의 한국농구가 위기라는 진단도 있는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상민을 보기 위해, 허재를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려왔잖아요. 라이벌이 형성되고, 이 선수들의 팬들이 싸우면서 팬덤은 더 강해졌습니다. 국내 선수를 스타로 만들어야 해요. 외국선수는 허재와 이상민이 될 수 없습니다.

Q. 외국선수가 없으면 경기력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BTS로 예를 들어볼까요? BTS가 최고의 아이돌이죠. 그런데 다른 많은 아이돌도 BTS에 비해 부족하지 않아요. 주목을 덜 받을 뿐이죠. 착시현상입니다. 김병철과 전희철은 정말 좋은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선수들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문제는 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국내선수들은 과거 김병철, 전희철의 역할을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올해 김민욱이 많이 늘었습니다. 김종규가 전희철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종현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기량의 차이보다, 역할의 제한으로 인한 팬덤 크기의 차이를 더 주목해야 합니다.

Q. 농구 외적인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여가문화가 적었던 90년대와 비교해 지금은 즐길 거리가 많습니다. 여가를 즐기는 방법도 달라졌고요.
맞습니다. 과거 농구대잔치의 인기를 그대로 복원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더 좋은 선수들로 더 화려한 농구대잔치를 만들 수는 있어요. 작은 농구 코트에 깊은 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이 팀컬러고 조직력이에요. 충분히 재미있는 농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더 큰 선수들로, 더 재능 있는 선수들로 농구대잔치를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Q. 최근 KBL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고 팬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도 많은 부분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속공에서 파울을 안 하니까 경기가 빨라지고 화려해졌어요. 우승팀의 외국선수가 나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국내 장신 선수들은 역할이 많아졌고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여전히 국내선수는 주변인이에요. 가드 선수들은 벤치에 않아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죠. 외국선수 중심 농구는 그 팀 팬들만 좋아합니다. 저변이 넓어지지 않아요. 스타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합니다.

Q. 여전히 농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농구를 시작했어요(웃음). 반백년이 넘는 세월을 농구와 함께 살았지. 지금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재능기부도 하고…. NBA를 보면 나이 70 넘은 사람이 코치를 하잖아. 그런 모습을 보면 부러워요. 이제 감독은 못합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지도 몰라(웃음). 그런데 경험과 기술을 전수할 수는 있잖아요.

Q. 기회가 되면 다시 지도자로 복귀하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감독으로 우승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마무리를 못했어요. 젊은 코치를 감독으로 올리고 내가 어시스턴트 코치를 하는, 내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걸 꼭 이루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커요.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새의 좌우 날개는 위치만 다를 뿐 같은 기능을 합니다. 두 날개가 조화를 이뤄야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사회도 그렇습니다. 구성원 다수가 조화를 이룰 때 그 사회는 보다 안정적이 됩니다. 젊은 말의 질주가 필요할 때도 있고, 돌아갈 길을 아는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영화 「인턴」에서 앤 해서웨이는 로버트 드 니로를 통해 “쉼(休)”의 지혜를 알아갑니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알게 됩니다. “NBA는 70살이 넘은 코치들이 있잖아요. 우리도 그런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하는 최인선 감독의 눈에는 부러움의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최인선 감독은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암 환자라는 편견. 그래서 정상적인 농구 지도자 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또 하나는 나이에 대한 편견입니다. 나이 어린 감독과의 공존이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그것은 편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 기울어진 이념의 날개를 대신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성찰은 필요합니다.

“생계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건강하고, 농구 발전을 위해 제 경험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라고 애기하는 최인선 감독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에게 스타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프로필 | 농구인 최인선은…
1950년 9월 16일생인 최인선은 인창고, 중앙대 출신으로 1990년대 기아의 전성시대를 주도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1995년과 1996년에 두 차례 우승을 더 거머쥐었다. 프로농구 원년 우승팀이었던 기아(현 현대모비스)의 감독이었으며, 1999-2000시즌 SK의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이끌었다. 그 외 경인방송과 SBS 스포츠 등에서 프로농구 해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2004년부터 2년간 수퍼액션에서 NBA 농구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했다. 1997년 KBL 역대 최초의 감독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사진=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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