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용호 기자] 코트를 누비는 선수들만큼 그 곁에서 에너지를 뿜는 이들을 만난다. 코트사이드의 일곱 번째 주인공은 선수들의 몸 관리를 책임지는 트레이너다. 프로선수에게 있어서 몸 관리는 필수.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만큼 선수들도 트레이너들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여기, ‘농구가 좋아서’라는 이유로 선수들의 곁을 지키는 이가 있다. 고양 오리온의 우건영(35) 의무 트레이너가 바로 그 주인공. 오리온에서 또 한 번 우승의 영광을 꿈꾼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너무나_좋았던_농구 #트레이너_시작은_명지대에서
어릴 적부터 우건영 트레이너는 농구에 흥미가 많았다. “엘리트 선수도 하고 싶었어요”라고 운을 뗀 그는 “그런데 타이밍이 늦었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길거리 농구대회를 많이 나갔던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봤다.
사회로 향하는 문을 앞두고 그가 선택한 곳은 명지대 체육학과였다. 당시 명지대에 농구부가 있었던 게 선택의 이유 중 하나라고. “어릴 때부터 어디든 농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꿈이었어요.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아서 엄청 높은 대학은 못 갔지만…(웃음). 명지대에 농구부가 있다는 걸 알고 선택하게 됐죠. 사실 처음 대학을 갈 때만해도 트레이너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방향을 잃었었거든요. 그러다 군대를 다녀왔고, 여전히 농구는 좋았기 때문에 농구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었죠.”
그랬던 그는 전역 후 대한운동사회의 자격증 연수를 위해 찾았던 곳에서 트레이너와의 연을 맺었다. 우 트레이너는 “군대에 다녀와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찾아갔던 곳이에요. 그 전까지는 트레이너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도 잘 몰랐죠. 우여곡절 끝에 자격증을 땄고, 대학 4학년이 되어서는 명지대 운동부의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운명적으로 천직을 찾았던 걸까. 처음으로 트레이너 경험을 한 그는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재밌기도 했고요. 일단 운동부들을 따라다니면서 선수들이 경기에서나 평상시에나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죠. 저를 필요로 해서 함께 재활하는 것도 뿌듯했고요. 사실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테이핑, 마사지 정도가 업무의 전부였어요. 그래서 더 큰 발전을 꿈꿨던 것 같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수많은_인연맺은_JDI #여기는_졸업하는_곳이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트레이너로서의 더 큰 길을 걷기 위해 JDI 스포츠라는 재활트레이닝센터로 향한다. 이곳에서만 6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그는 선수들에게 신뢰도 높은 트레이너로 발전해갔다.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 거죠. 센터에서도 선수 재활을 도왔지만, 그 외에 축구대표팀이나 청소년농구대표팀, 프로구단 중에서는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와 동부(현 DB)의 훈련에도 함께했었어요. JDI 센터가 5개 정도 있는데, 종목을 불문하고 정말 많은 선수들이 찾아와요.”
현재의 우건영 트레이너는 JDI에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지금의 저는 그 때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책임감도 커졌고, 느끼는 게 많았죠. 운도 좋았고요. 지금은 돌아가신 조종현 대표님이 절 많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케이스를 접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었거든요”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조종현 대표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기억에 남는 선수들도 많을 터. “운동시켰던 선수들 중에 가장 유명한 건 김연경이죠”라며 입을 연 그는 “정말 운동 열심히 하는 선수에요. 연경이가 여러 문제로 힘들 때 함께 일본에 가서 개인 트레이너도 했었어요”라며 웃어보였다.
그 인연 덕분에 우 트레이너는 더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JDI를 나온 이후에 프로농구단에 가고 싶었는데 마땅히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잠깐 휴식기가 있었는데 그 때 연경이가 같이 운동할 수 있냐고 연락을 줬죠. 쉬려고 부산 집에 내려갔는데 일주일 만에 올라왔어요(웃음). 그 덕분에 여자배구대표팀까지 함께하게 됐었답니다.”

농구선수와의 인연도 많았다. 그는 “(오)세근이가 발목이 아플 때 재활을 함께했었어요. 그 때 제가 분당지점에 있었는데, 거기서 지금 해설위원인 (김)일두형의 재활을 돕고 있었거든요. 근데 대표님이 세근이가 있는 평창지점으로 파견을 보내셔서, 일두형의 재활을 끝까지 함께 못했던 기억이 나요. 또 지금은 은퇴한 김영옥 선수와도 함께했었어요. 재활을 함께하며 연을 맺었는데, WCBA(중국여자프로농구)에 진출할 때 개인 트레이너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그 후에 남자배구대표팀과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함께했고, 드디어 추일승 감독님과 운 좋게 연이 되면서 오리온에 오게 된 거에요”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수많은 선수들의 부활을 책임졌던 그가 재활을 마칠 때마다 꺼낸 단어는 ‘졸업’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재활이 끝나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해줄 때가 가장 뿌듯해요. 그래서 재활센터를 떠난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해서 관리를 해주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선수들을 회복시켜 보낼 때마다 ‘졸업’이라는 말을 썼었어요. 다시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라면서요”라고 말했다.

#오리온_첫시즌에_우승 #김동욱의_고군분투가_인상적
2015-2016시즌, 우건영 트레이너는 그렇게 고대하던 프로농구팀에 몸을 담게 된다. 오리온과의 첫 만남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우 트레이너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트레이너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가고 싶었던 팀이 농구단이었으니까요. 1차적인 목표는 이룬 셈이에요. 또 운이 좋게, 제가 오리온에 온 첫 시즌에 우승을 하기도 했어요. 당연히 오리온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죠.”
우승의 감격을 맛 본 그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던 오리온 선수는 김동욱(현 삼성)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한 야구단 트레이너와 얘기를 하다 또 나왔던 말이에요. 그 때가 챔프 6차전이었는데, 경기 결과는 대승이었지만 동욱이형이 안드레 에밋을 막으러 나갔다가 정말 온 에너지를 다 쓰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고는 경기가 끝나고 곧장 바닥에 누워버렸죠. 농구를 진짜 잘하는 형인데, 열심히 까지 하니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문)태종이형도 사람이 정말 좋았고, (허)일영이는 아픈데도 책임감 갖고 뛰는 모습이 멋있어요. 곧 돌아올 (이)승현이도 목표가 있으면 남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최고인 것 같아요”라며 함께한 선수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 농구단에 최대한 오래있고 싶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환경과 일이니까요. 일단 앞으로의 미래에 가장 첫 목표는 농구코트에 오래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후배 양성을 위해 교육에도 힘쓰고 싶고요. 정말 제가 더 성장하게 되면 제 센터를 하나 차리지 않을까요(웃음)”라며 큰 포부와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Wish on Courtside
“언젠가 먼 미래에 오리온을 떠날 텐데, 그 전에 다시 한 번 우승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첫 만남에 우승의 감격을 누렸으니, 헤어질 때도 같은 느낌을 받고 싶어요. 물론 그 사이에 우승이 많으면 더 좋고요(웃음). 그리고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선수들에게는 재활과 운동을 필요로 할 때 ‘꼭 너여야만 한다’라는 말을 듣는 게 가장 좋아요. 운동을 하는 순간에는 힘들어하지만 끝난 후에 너무 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 사진_ 점프볼 DB, 고양 오리온, 우건영 트레이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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