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용호 기자] 코트를 누비는 선수들만큼 그 곁에서 에너지를 뿜는 이들을 만난다. 코트사이드의 16번째 주인공은 프로 구단 전력분석원이다. 경기 중 벤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 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즌 중에는 팀 내에서, 비시즌이 되면 아마추어 무대까지 돌며 365일 발 빠르게 뛰는 이들. 그 중에서도 선수시절 아쉬움을 털어내고 전력분석으로서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27일 고양 오리온과 전주 KCC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앞두고 오리온 윤지광(37) 전력분석을 만나봤다.

#아쉬움_남은_선수시절 #지원스탭은_매니저부터
윤지광 전력분석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농구부 생활을 한 건 5학년, 그리고 6학년 때 168cm까지 키가 부쩍 크면서 지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긴 했는데, 처음 시작한 건 제가 비만이었어서 살을 빼려고 했던 거예요. 사실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 했었어요(웃음). 그러다 5학년 때 제대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동광초 멤버가 좋았어요. 그래서 소년체전 우승도 했죠. 덕분에 중, 고등학교 농구부가 없던 김해에 임호중, 가야고 팀이 창단됐죠. 제가 그 창단 멤버였고요. 참 고생도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가야고 3학년 시절 청소년대표팀까지 선발된 윤지광 전력분석은 당시 강을준 감독이 지휘봉을 새로 잡은 명지대로 향한다. “같이 농구하던 친구들과 명지대로 가게 됐어요. 그때는 뭣도 모르고 대학을 갔죠. 입학 전에 고3 시절 청소년대표팀에 갔었는데 다른 학교 친구들이 강을준 감독님이 그렇게 무서우시다고 하더라고요. 버틸 수 있겠냐고 할 정도였죠. 근데 정말 힘들었어요. 하하. 방황도 많았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선배도 없었던지라 적응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사실상 4학년이 돼서야 운동을 제대로 했는데 운 좋게 대구 오리온스에 지명이 됐죠. 근데 확실히 즐기지를 못하니까 마음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2005-2006시즌 대구 오리온스의 신인으로 데뷔한 그는 프로선수로서 오랜 커리어를 이어가지는 못했다. 데뷔 두 시즌 동안 정규리그 10경기 출전에 그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고, 복귀 후에는 2010 KBL 윈터리그(現 D-리그)를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돌아본 그는 오히려 대학 시절에 더 아쉬움이 남는다고. 그는 “대학 때 마음을 더 독하게 먹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너무 여렸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도, 프로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있죠. 마지막 윈터리그도 무릎이 안 좋아져서 끝까지 뛰지 못했거든요. 그렇게 선수 생활을 끝내고 명지대 코치로 향하게 됐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_시작된_오리온과의_인연 #매니저에서_전력분석으로
2011년 초 명지대 코치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윤지광 전력분석은 2년 반 가량의 계약기간 동안 후배 양성에 힘쓰다 오리온으로 컴백했다. 당시 그의 위치는 현재와는 다른 ‘매니저’였다. “명지대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잠시 휴식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추일승 감독님이 매니저 자리가 비어있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찾아갔는데 마음을 정할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날부터 매니저 일을 시작하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정신없이 시작을 해서 매니저로 두 시즌을 보냈죠. 2015-2016시즌에 우승할 때 제가 매니저였어요. 그 후에 전력분석으로 보직을 바꾸게 된 거죠.” 윤지광 전력분석의 말이다.
매니저라는 자리에 적응할 때 쯤 다시 찾아온 변화. 혹시 전력분석으로의 변신에 고민은 없었을까. 그는 “큰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라고 웃어 보이며 “감독님이 어떤 의도로 저에게 전력분석을 맡기셨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일단 저희 지원스탭들은 포지션에 상관없이 서로의 일을 돕기 때문에 힘든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저와 함께하던 LG 박유진 선배도 똑같이 매니저를 하다가 전력분석을 하셨거든요. 이제는 저에게 전력분석 후배가 생겼는데 호흡도 잘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에는 어떤걸 해야 할지 잘 몰랐죠. 적응하고 나서 지금은 시즌 중에 상대팀의 패턴을 분석하는 영상작업이 주를 이뤄요. 비시즌에는 대학 선수들을 열심히 보러 다니고요. 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저희는 감독님께서 외국선수도 분석하시길 원해서, 아직은 지식이 부족하지만 일단 같이 분석을 하고 있어요”라며 자신의 역할을 소개했다.
그 역시도 새로운 역할을 해내면서 뿌듯할 때가 있었다고. 그는 “매니저를 할 때는 농구 외적인 부분을 주로 담당하잖아요. 전력분석을 하면서는 경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을 하는데 제가 잡아냈던 부분들을 선수들이 흡수하고 코트에서 결과를 보여줄 때 보람을 느껴요. 선수들도 상대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때가 있는데, 제가 해준 답변이 경기에서 맞아떨어지면 너무 좋죠”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시즌 중에는 코칭스탭과 미팅도 자주하는데, 추일승 감독님께 특히 많이 배우죠. 다들 아시지만 감독님이 농구를 정말 많이 아시잖아요. 그래서 미팅을 통해 다음에는 어떤걸 더 준비할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와 함께 한솥밥을 먹던 LG 박유진 전력분석은 오리온을 떠나며 그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남기기도 했단다. “박유진 선배 밑에서 정말 많이 배웠죠. 떠나면서 열심히 하라고, 오래 살아남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발전의_의지 #해외로도_공부하러_가보고파
전력분석이라는 위치에 자리하게 되면서 그는 스스로 발전의 의지가 강했다. 이는 지난해 있었던 한 미팅에서 동기부여가 있었다고. 윤지광 전력분석은 “지금 스포츠코드라고 영상편집 때 쓰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관계자와 작년 말 미팅을 했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미국에 있는 업체에서 만들어서 NBA의 전력분석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국내 전력분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저희는 아직 시작 단계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전력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NBA를 보면 전력분석도 파트별로 세세하게 역할이 나눠져 있잖아요. 그리고 팀장급의 코치가 최종적으로 컨펌을 하고, 코칭스탭과의 미팅에 들어가죠. 해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전력분석원 자체가 하나의 존재로서 존중받는 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도 그렇게 되려면 더 전문성을 갖춰야한다고 생각했고요.”
직접 그들의 시스템을 체험해보고 싶은 의지 또한 강했다. 윤지광 전력분석은 “아직 빅리그에서 전력분석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제대로 본 건 아니잖아요. 그때 미팅에서 얘기만 잠깐 나눠봐도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투자도 늘어나야하고요. 그래서 시즌이 끝나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그래서 코칭스탭, 선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이 되고 싶고요. 지금도 영상을 최대한 보기 편하게 만들려하고, 감독님께 드리는 보고서도 최대한 깔끔하게 쓰려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그걸 떠나서 전문성을 더 갖추고 싶어요”라며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도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해외에 직접 가서 전력분석하는 모습을 보고싶고요. 정말 전력분석이라는 분야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굳은 의지를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Wish on Courtside
“매니저로 우승을 했을 때 정말 고생했던 만큼 보람 있었거든요. 그 포지션에서 선수들을 묵묵히 서포트해주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우승을 하니 보상받는 느낌도 있었고, 홀가분했죠. 해방감도 들었고요. 하하. 그래서 전력분석을 하는 동안에도 우승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역시 가장 원하는 순간은 우승이죠.”
# 영상촬영_ 김용호 기자
# 영상편집_ 주민영 에디터
# 사진_ 김용호 기자, 고양 오리온,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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