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네 장의 사진으로 돌아보는 선수들의 농구인생. 아홉 번째 주인공은 인천 전자랜드의 캡틴 정영삼(35, 187cm)이다. 계성고-건국대를 거쳐 전자랜드로 온 정영삼. 벌써 프로 데뷔 10시즌째를 맞았다는 그는 전자랜드의 대표적인 원클럽맨이다.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그와 4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나눠봤다.

#1. 대구에서의 상경
계성고 시절 정영삼은 ‘돌파의 달인’이었다. 해결사 능력까지 갖췄던 정영삼은 건국대 선배들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건국대로 상경했고, 비주류 대학으로 분류됐던 건국대에서 공격형 가드로 성장했다. 슛이 다소 기복이 있다고 평가됐지만, 슛 하나에 일가견이 있었던 1년 선배 노경석이 본보기가 됐다. 우승 트로피 한 번 들어 올리지 못해 “추웠다”라고 회상했지만, 황금 드래프트로 손꼽혔던 2007년, 그는 전체 4순위로 전자랜드에 왔다.
"드래프트장이 참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장소에요. 쓰러지시고, 눈물바다가 되는 가족들이 있다면 잘 돼서 기뻐하는 가족들이 있죠. 그래도 저희 드래프트 때 선수들이 아직 주축으로 많이 남아 있네요. (김)영환이(KT)도 플레이오프에서 뛰고 있잖아요(웃음). 저 역시도 전자랜드의 주장을 맡고 있는데, 자랑스러운 것 같아요. 아, (박)상오 형(오리온)이랑 (함)지훈이도 있네요."
당시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는 33명. 장신 포워드 이동준에 이어 라이벌로 꼽혔던 양희종과 김영환, 리바운드상을 받으면서 최고 빅맨임을 증명한 함지훈에 시야와 패스, 클러치능력까지 갖춘 김태술에 이광재, 우승연, 박구영, 송창무 등등… ‘월척’들이 정말 많았다.
정영삼이 프로 무대에 이름을 알린 건 1년차 때부터. 2007-2008시즌 51경기 평균 31분 10초간 뛰며 10.8득점 1.9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당찬 신인’으로 임팩트를 남겼다. “훌륭한 선배들이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스피드나 웨이트에서는 뒤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부딪혔죠. 하지만 경기를 읽는 능력들이 짬에서 차이가 나더라고요(웃음). 경험에서 나오는 세심한 부분들이 있는데, 젊은 패기로는 이길 수 없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2. 최희암 감독
그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절도 이 신인 시절이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 온 프로 생활을 돌이켜 보면 최희암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나요. 절 믿고 키워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절 다독여주시고, 지지해주셔서 자신 있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 그가 떠올린 경기는 2007년 10월 30일, 전주 KCC와의 경기. 당시 정영삼은 30득점 3어시스트. 테런스 섀넌이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에서 4쿼터 중후반 크리스토퍼 무어까지 부상을 당했다. 정영삼이 '슈퍼 루키'로서 진가를 발휘한 순간. 그는 4쿼터에만 13점을 터뜨려주는 덕분에 79-79, 연장전으로 향했고, 추가 5분에서 9점을 더한 정영삼은 이날 경기의 수훈선수가 됐다. 이날의 30점은 정영삼의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최희암 감독님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때 제가 그렇게 기회를 부여받을 줄 몰랐거든요.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었는데, 정신없이 한 시즌을 보냈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지금 유도훈 감독님도 마찬가지고요.”

#3. 국가대표 정영삼
정영삼하면 빼놓을 수 없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 생애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뽑힌 그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18득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국제무대에도 알렸다.
“농구월드컵 예선전에 떨어지고, 올림픽 최종 예선에 뽑히게 됐는데, 이때 세대교체를 한다고 젊은 선수들이 많이 갔는데, 운이 좋게 뽑혔던 것 같아요. 젊고, 몸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생각하는 대로 플레이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했거든요.”
한국은 슬로베니아와 캐나다를 만나 1승을 따내야 올림픽 출전권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슬로베니아 전은 76-88, 캐나다 전은 77-79, 2패를 떠안으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영삼은 “선배들한테 농구의 수에서 모자란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만 노련하게 했더라면 캐나다는 이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이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아쉽게 졌거든요. 그러면서 팀으로 돌아와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어요”라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도약의 시즌이 될 뻔한 2008-2009시즌. 전자랜드는 6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KCC와 맞붙었지만, 2승 3패로 봄 농구를 일찍이 끝냈다. 그가 가장 아쉽다고 꼽은 플레이오프,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앞두고 치른 서울 SK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왼쪽 어깨 파열 진단을 받으면서 수술대에 오르게 된 것.
돌파가 전매특허였던 그가 슛을 장착하게 된 배경이었다. “처음 수술을 하게 됐는데, 그 후에 시간이 날 때마다 오른쪽 한 손으로 슛 연습을 하곤 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슛이 약한 선수였거든요. 돌파해서 선수들에게 슛 찬스를 봐주거나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부상 때문인지 미드레인지 슛을 던지고 하다 보니 슛 성공률이 조금씩 올라왔던 것 같아요.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었던 때였어요.”

#4. V1
전자랜드는 2010-2011시즌 처음으로 정규리그 2위로 4강 직행을 따냈다. 하지만 KCC를 만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좌절,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올 시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LG와 KT의 6강 플레이오프를 지켜보고 있는 것.
허리 부상으로 올 시즌 정규리그 5~6라운드 일부 경기를 결장했지만, 막판 3경기에서 복귀한 그는 평균 13분 51초간 뛰면서 3.3득점을 보탰다. 팀적으로 올 시즌을 돌아본 그는 “만족스러운 시즌이었죠. 아무도 우리가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할지 예상 못했잖아요. 시즌 전 미디어데이에서도 우리 팀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외국 선수들이 안정적이었고, (박)찬희와 (강)상재, (정)효근이가 꾸준하게 활약해준 덕분에 깜짝 놀랄 만한 시즌이 아니었나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더 놀랄 일이 남았다”라며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의 모습을 기대케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아요. 팀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개인적으로도 데뷔 10년째라 뭔가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쉽지만, 일단 팀에게 미안하죠”라고 되돌아보며 “플레이오프 때라도 도움이 되고자 몸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힘줘 말했다.
전자랜드는 오는 4일부터 LG와 KT, 6강 플레이오프 승자와 5선 3선승제 4강 플레이오프에 돌입한다. LG와 KT의 6강 시리즈는 현재까지 2대2, 전자랜드가 바랐던 것처럼 5차전까지 치르게 됐다. “현대모비스가 포지션별로 최강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는데, 일단 우리가 4강에서 이겨야 해요(웃음). 최근 대학팀이랑 연습 경기를 하면서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는데, 부상 회복을 하면서 팀플레이에 맞춰가고 있어요. ‘잘 될 거다’라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라고 웃어 보인 정영삼.
그는 “팀 분위기가 좋아요. 동생들의 성장도 눈에 띄고, ‘드라마를 쓰자’는 전자랜드의 꿈이 올 시즌에는 진짜가 되지 않을까 한다”며 V1에 시선의 끝을 뒀다. 과연 캡틴이 염원하고, 팀 전체가 챔피언결정전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희망은 진짜가 될 수 있을까.
# 사진_ 점프볼 DB,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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