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의 농구 in] 하은주가 말하는 운동 총량 보존의 법칙

조원규 / 기사승인 : 2019-04-07 13: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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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 SAT(Scholastic Aptitude Test)에서 1320점을 받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농구선수가 있었습니다. 7피트(213cm)에 달하는 거인임에도 운동능력이 좋아 해군사관학교를 팀 역사상 유일한 ‘엘리트 8’로 이끄는 등 전미 최고의 센터 유망주로 주목받았죠. 1987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고, 이후 NBA가 선정한 위대한 50인의 농구선수 중 한명으로 선정된 ‘제독(The Admiral)’ 데이비드 로빈슨입니다.

국내에도 공부에 재능이 있는 농구선수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선수생활을 병행했음에도 반에서 2~3등을 유지했습니다. 부상으로 농구를 그만둔 이후에는 전교에서 1~2등을 했습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갔습니다. 일본에서 농구선수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가대표를 거부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도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WKBL 최고의 센터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레알 신한은행의 ‘끝판왕’ 하은주. 그녀가 재활센터(이하 센터)를 열었다는 소식을 최근 접했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낮선 타국에 갔고, 선수생활 내내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하은주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센터로 찾아간 이유입니다. 필자가 센터를 찾은 날, 남자고등학교 농구선수를 포함하여 운동선수로 보이는 여러 명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J. 만나서 반갑습니다. 은퇴 후 어떻게 지내셨어요?
은퇴한지 오래됐는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은퇴하고 국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작년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운동센터를 열었습니다.

J. 일부 언론에 재활센터장으로 소개가 됐어요. 뉴스를 보면서 하은주씨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활과정이 있는 운동센터입니다. 운동선수를 위한 재활과 심리 상담을 주로 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인들도 “너니까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어요. 선수생활 내내 아프고 부상이 많았으니까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8년을 있었습니다. 그 때 트레이너의 역량에 따라 선수생활이 늘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이런 센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 그런데 박사 학위 논문은 재활이 아니라 스포츠심리학이에요. 이유가 있나요?
제 심리가 궁금했습니다. 선수생활 내내 너무 힘들었거든요. 왜 계속 아픈지, 부상 이후 복귀할 때는 통증이 재발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아프면 내쳤다가 괜찮아지면 우쭈쭈 하는 분위기에 대한 회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덜 힘들더라. 그런 경험을 심리적인 이론과 접목하면 후배들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활은 저보다 잘하는 트레이너들이 많아요. 그 분들과 함께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J. 센터에서의 역할이 재활 트레이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역할은 선수들과 상담하는 것입니다. 저도 선수 시절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힘들어요. “멘탈이 약하다”거나 “정신병이 있나?”라는 얘기를 들을까 봐 두려운 거죠. 지금도 심리 상담을 받겠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우리 센터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재활 받으러 간다고 얘기하고 심리 상담을 함께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J. 센터의 주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나요?
재활이 범위가 넓습니다. 수술 후 재활은 기본이고요, 아프지만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닌 만성 통증에 대한 꾸준한 관리가 있습니다. 부상 예방을 위한 잠재적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린 수영선수 하나는 어깨근육이 약해서 미리 트레이닝을 시키고 있어요. 경기력을 높이는 목적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 파워를 키우기 위한 트레이닝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J. 블로그를 보니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허리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데 믿고 재활할 수 있는 곳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방법을 몰라 불편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에게 답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일반인 분들도 여기저기서 하다 안 되면 센터로 오십니다.

J. 제가 목 디스크가 있습니다. 저도 답이 있을까요? (웃음)
그럼요(웃음). 목 디스크나 척추 측만도 호전될 수 있습니다. 수술을 안 하는 것이 최선이에요. 수술은 마지막 선택입니다. 수술 후에도 다시 몸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런 내용을 알려드리면 희망이 생기고, 찾아주시는 분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일장기를 달고 뛰는 것은 용납이 안돼

하은주는 중학교 때 부상으로 은퇴를 강요당했습니다. 은퇴라고 명명하기에 너무 빠른 시기였죠. 부친의 권유로 일본에 갔습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조건입니다. 물론, 농구를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증상을 단기간에 치료할 수 없고, 수술 후 재활의 과정도 밟지 못했습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수술을 위해 농구 포기 각서를 써야 했던 기억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녀는 운동에 미련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J. 일본행은 아버지의 권유라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마지막 학기에 아버지가 권유하셨어요. 농구와 학업을 같이 할 수 있다고 하셨죠. 전 농구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냥,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운동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동기, 선후배들은 운동을 하고 있는데 저만 미운오리새끼가 된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는데, 전교에서 1~2등을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예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J.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땠어요?
소속은 농구부였지만 수업 듣고 트레이너 선생님과 재활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말이 안 통하잖아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고, 재활을 취미생활처럼 했습니다. 당시 재활은 농구를 다시 하기 위한 몸만들기가 아니었어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죠.

J. 다시 농구에 전념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 전력이 정말 좋았어요. 무조건 전관왕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죠. 그런데 가을 전국대회 준결승에서 졌습니다. 제가 원인이었어요. 선배 언니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엄청 울고…. 이후 운동에 올인 했고 다음 해에 전관왕을 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농구가 재미있고 계속 농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J.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샹송화장품에 입단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걸었어요.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배려해달라는 것과 일본 국가대표로는 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국가대표에 들어가라는 압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너무 즐겁게 운동을 해서 일본을 떠난다는 생각은 절대 안 했어요. 그런데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는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됐어요.

J. 일본이라 그랬을까요? 다른 나라였다면 다른 판단을 했을까요?
아니요.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어도 제 선택은 같습니다. 전 일본에 고마운 것이 너무 많고, 고마운 사람도 너무 많아요. 그런데 조국은 변하지 않잖아요. 수업시간에도 그랬습니다. 역사시간에 한국 식민지 얘기는 딱 한 줄로 끝나요. 그래서 엄청 싸웠죠.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제가 그랬습니다(웃음).



운동 총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새로운 출발. 그 여정에 빠지면 안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박은경 전 신한은행 에스버드 농구팀 수석 트레이너입니다. 물리치료사 출신의 박은경 트레이너는 10여 년의 시간을 운동선수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은주 원장과 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J. 박은경 센터장과 인연이 깊어요. 인터뷰에서 몇 번 고마움을 언급하기도 했고, 지금은 동업자가 됐습니다.
신한은행에 입단했을 당시, 2년 정도 무릎이 아파 고생했습니다. 방법을 못 찾아서 포기 단계에 있었죠. 병원에 가면 의사가 “이 사람 걸을 수 있냐”고 “어떻게 운동을 하죠?”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시기에 박은경 트레이너가 들어와서 치료와 재활에 도움을 줬습니다. 8시즌 이상 선수생활을 더 했는데, 박은경 트레이너를 못 만났다면 불가능했어요. 당시부터 “나는 선생님과 재활센터를 꼭 오픈할거야” 계속 얘기를 했고, 선생님은 콧방귀를 뀌었죠(웃음).

J.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돌렸어요?
선생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하게 얘기했죠. 고민을 하다 뜻을 함께 해주셨어요. 이후 마음이 맞는 트레이너들을 모았습니다.

J. 박은경 센터장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나요?
지금까지 만난 트레이너 중에 최고입니다. 타고난 센스 같은 것이 있어요. 아프다고 얘기하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압니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풍부한 경험으로 인해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권위의식이 없고, 이론적인 베이스에 경험이 접목돼야 하는데 선생님은 둘의 밸런스가 좋아요.

J. 국내 재활 트레이너 시장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일본은 트레이너 교육과정 자체가 단단합니다. 커리큘럼이 탄탄하고 그래서 트레이너가 많이 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은 fail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론과 경험의 조화가 필요한데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진 사례들이 있어요. 트레이너에게 사명감은 필수입니다. 선수들은 트레이너의 선택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거든요. 따라서 교육과 재교육 과정에 충실하고, 경험을 접목시켜야 합니다.

J. 동생 하승진 선수도 올해 부상으로 고생을 했어요. 신장이 부상과 관계가 있을까요?
동생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도의 부상이에요. KCC 팀만 봐도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했다 돌아오고 하잖아요. 그런데 유독 동생의 부상만 크게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해요.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키가 너무 커서 눈에 잘 띄는 건지(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팀에서 비중이 크다는 의미겠죠. 키가 크면 관절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어린 선수들 중 신장이 큰 선수들은 운동량이나 강도를 조절해주는 것이 맞아요. 그게 공평한 운동량입니다. 그들의 신체에 맞춰서 관절을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J. 학생선수 하은주도 관절을 보호받지 못했어요.
저는 다친 것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 아직 관절이 영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게 운동을 해서 연골이 다 상했습니다. 그 상태로 이십몇 년 운동을 하면서 더 아프고 더 다쳤어요.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들은 운동시간이 너무 길어요. 전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요. 평생 선수 생활하는 동안 뛸 수 있는 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J. 앞에서 국가대표 얘기를 했는데, 국가대표 경기에서 하은주 선수가 뛰는 시간이 적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오해도 많이 받았는데 정말 안 좋았어요. 이 무릎에 어떤 좋은 수술을 해도 10분, 15분 이상 뛰게 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를 의사들이 했어요. 그래서 팀 훈련도 20~30%만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 경기를 뛰면 다음날 하루는 아무 것도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신한은행이 고맙습니다. 회사와 감독님의 배려가 있어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꿈을 향한 리바운드

2011년, 하은주와 하승진은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동반 MVP에 올랐습니다. 아들과 딸이 같은 해에, 같은 종목에서 MVP를 받은 것은 국내 처음이라고 하네요. 이듬해 두 선수의 부친 하동기씨는 『꿈을 향한 리바운드』를 출간했습니다. 하 씨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구에서 안 들어간 슈팅을 잡아내는 게 리바운드다. 실패를 딛고 성공을 향해 도전하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실패와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련과 실패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하은주 원장은 농구는 실패했지만 공부는 이기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탓으로 전관왕이 무산된 것을 계기로 농구에 다시 전념했습니다. 주변의 격려와 도움이 컸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힘을 준 것은 역시 가족입니다.

J. 하승진 선수가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어요. 시즌 중이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너무 행복하게 잘 하고 있어요. 행복한 가정생활과 행복한 선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J. 만나면 농구 얘기는 많이 하나요?
절대 안 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속속들이 다 얘기하지는 않지만, 저도 운동을 해봤으니, 마냥 좋을 수는 없겠죠. 힘든 점도 있을 텐데 티 내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성숙하게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때는 듬직한 오빠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J. 아버지는 어때요? 아버지도 농구선수 출신이잖아요.
부모님도 못하게 했어요. 밖에서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집에서는 애기하지 말자고 했죠. 왜 집에도 코치가 있냐고…(웃음). “고생했다, 몸은 괜찮지?” 이 정도만 합니다.

J. 코치 얘기가 나왔네요(웃음).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지도자의 리더십이에요. 좋은 지도자란 어떤 지도자일까요?
좋은 지도자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본인의 경험에만 의존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본인만의 정확한 철학이나 이론의 바탕 위에 유연성도 있으면 좋겠죠. 이론적 준비가 없으면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나 선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화를 내는 것도 리더십의 전략에 들어가야 해요. 내 감정의 발산이 되면 곤란합니다.

J. 상담 과정에서 지도자들에 대한 고민도 접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상담했던 선수들의 절반은 지도자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리더십은 복합적인 리더십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덕장, 맹장, 지장으로 구분하잖아요. 형님 리더십도 유행했었고. 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해요. 문제는 강하게만 하면 선수들이 지친다는 점이죠. 내 기분이 아닌 선수들의 감성지수를 캐치하는 감성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J. 지금 하은주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요?
제 학문에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상담을 하면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국내 스포츠 심리학이 경기력 향상 쪽으로만 많이 발전해 있어요.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정신건강(Mental Health)인데 그런 부분은 스포츠 심리학에서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J. 당장은 해결이 쉽지 않은 고민이네요.
센터를 오픈한지 1년, 확장을 한지 이제 몇 달이 지났습니다. 센터를 안정시키는 것과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 두 가지를 모두 잡아야죠. 공부가 좋아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좋습니다.

J. 최근 운동선수의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후배 선수들에게 세컨드 커리어를 위한 조언을 한다면?
본인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난 운동밖에 할 줄 몰라.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가장 큰 적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빼고 절대 0이 아니에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루 30분만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쓰면, 그 시간을 모으면 어마어마하거든요. 운동선수들이 마음을 먹으면 정말 무섭습니다. 운동선수가 무식하다는 얘기를 밖에서는 안하는데 선수들이 해요. 운동 외의 영역도 자존감을 높여야 합니다.

J. 마지막 질문입니다. 하은주에게 농구란?
세 단계가 있었네요. 어느 순간 농구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물음표가 됐죠. 몸이 안 좋아지면서 전부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농구는 저의 기초공사입니다. 그 발판에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발판이 사라지지 않고, 긍정적인 힘들을 많이 받습니다. 은퇴를 하고 보니 농구를 해서 얻은 건 정말 튼튼한 기반입니다. 어떤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을 것인지는 앞으로의 몫이에요.

하은주 원장의 당면한 목표는 센터를 알리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포기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 분들이 “제 삶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하고,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데이비드 로빈슨은 은퇴 후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학원을 설립했습니다. 천백만 달러가 넘는 설립자금을 내놓았고, 지인들과 공동창업한 회사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학원 운영비로 낸다고 하네요. 하은주 원장의 목표를 들으면서 ‘은퇴 후 제독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선수 시절 그녀의 무릎은 시련이고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무릎은, ‘꿈을 향한 리바운드’를 보다 높은 곳에서 잡기에 충분할 만큼 건강해 보였습니다.

#사진_ 박상혁,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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