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이 추천하는 농구교실③ 경기도 광주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

김지용 / 기사승인 : 2019-04-10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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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지용 기자]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이 유소년 농구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지난 1년간 전국 각지의 유소년 농구교실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점프볼은 유소년 농구 저변 확대와 체계적인 홍보 시스템 구축, 유소년 농구의 브랜드화를 위해 ‘점프볼이 추천하는 유소년 농구교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점프볼과 함께 할 새로운 식구는 바로 경기도 광주시의 박진열 농구교실이다.



# KBL 1라운드 출신의 사명감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에 위치한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은 박진열 대표와 함께 1명의 강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농구교실 전용체육관을 건립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박 대표의 노력은 9년간 농구교실을 운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현재의 위치에 농구교실을 개원하기 전, 분당에서 3년간 농구교실을 운영했던 박진열 대표는 “농구교실을 운영한 게 벌써 9년이나 됐다. 현재 위치에 자리 잡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늘 농구가 좋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농구를 가르치기 위한 열정이 지금에 이르게 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1981년생인 박진열 대표는 경희대 출신으로 SK와 삼성에서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현대모비스 양동근과 드래트프 동기로서 당시 1라운드 7순위라는 높은 순번으로 프로에 입성했다.



“호기롭게 프로에 입성했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늘 아쉬움이 컸다. 승부에 집착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어려움을 느꼈고, 농구가 싫어지는 단계까지 갔었다. 여기서 더 선수생활을 이어갔다가는 농구를 평생 떠날 것 같아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결정했다.”




아쉽게 프로무대에서 은퇴했지만, 농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은퇴 후 생활체육 농구를 접하며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는 박 대표. 그러다 승패를 떠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농구하는 동호인들을 보며 유소년 농구교실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은퇴 후 친구들과 자유롭게 농구를 하면서 새롭게 눈을 뜨게 됐다. 경쟁이 없다보니 스트레스도 없었고, 생활체육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농구만 20년을 하다 보니 농구를 위해 무언가 헌신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 재미있는 농구를 가르치기 위해 유소년 농구교실을 개원하게 됐다.” 박진열 대표의 말이다.



유소년 농구교실 사업에 뛰어든 박 대표의 각오는 남달랐다. 프로출신으로서 본인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박 대표는 “아무래도 프로 출신이다 보니 부모님들이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거기다 1라운드 출신이라는 소문까지 나면서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며 아무런 준비 없이 농구교실 문을 연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어 그는 “프로출신이라는 타이틀만 내세우는 건 스스로 용납이 안 됐다. 오히려 프로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부담도 됐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설렁설렁해선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농구의 노하우를 통해 아이들이 농구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중점을 뒀다”고 힘주어 말했다.



# 예상치 못했던 변수 ‘해외연수’
개원 후 순조롭게 승승장구 하던 박진열 대표는 현재 100명이 넘는 아이들과 농구로 소통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전용체육관까지 건립한 박 대표는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학부모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렇게 순조로워 보이던 박 대표의 농구교실은 지난해 3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맞닥뜨리게 됐다. 박 대표의 아내의 해외연수가 결정되며 가족 모두가 해외로 떠나야 했던 것.



긴 고민 끝에 아내와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한 박 대표는 부모님들 개개인에게 일일이 사죄의 말을 전하며 농구교실 회원을 정리했다. 그렇게 해외로 떠날 준비를 마친 박 대표는 출국을 1주일 남겨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아내의 발병소식을 듣게 된 것. 준비했던 계획도 모두 틀어졌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는 박 대표는 “아내가 모 기업 PD로 근무 중인데 지난해 좋은 기회가 있어 해외연수를 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아내를 위해 해외로 터전을 옮길 준비를 했다. 출국 1주일 전 아내가 갑자기 아프면서 계획이 모두 변경됐다. 농구교실을 다니던 아이들에게 폐원 소식을 알린 후라 어안이 벙벙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농구교실의 폐원이 문제가 아니라 아내가 갑작스레 병을 얻은 것이 더 큰 충격이었다. 더구나 아내에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갑작스런 투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아내를 보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그래도 지금은 건강이 많이 호전돼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며 아내에 대해 말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농구교실 문을 닫게 된 박진열 대표. 하지만 그는 긴 고민 끝에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농구교실을 떠났던 아이들에게 재개원 소식을 다시 알렸고, 광주 지역에 홍보를 시작했다.



“처음 농구교실을 접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주변에서 농구교실을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믿고 여기까지 와준 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들을 다 내보냈다. 그런데 갑작스레 재개원을 한다고 하니 부모님들도 많이 당황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더구나 이미 다른 농구교실로 적을 옮긴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우리 농구교실로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재개원을 했을 때는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 나는 어차피 농구인!
재개원 후 힘든 시절을 보낸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 하지만 박 대표는 언제나 그랬듯 믿음과 신뢰로 재기했고, 현재는 10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농구교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을 다시 모집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그때 박진열 대표를 버티게 한 것은 바로 ‘농구인’이라는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차피 농구인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당시에 모 중학교 농구부에서 코치 제의도 왔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지 않았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은 소중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진 않았냐고 묻자 “불안하지 않았다. 도전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건데 한 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후에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에 대해선 크게 두려움이 없다. 그만큼 경력도 쌓였고, 노하우도 있어서 재개원을 할 때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 ‘끝까지 간다’고 마음을 먹어서 오히려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줘서 더 힘이 났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더 나은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틈날 때마다 농구영상을 찾아보며 벤치마킹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농구하는 걸 보는 게 참 좋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높은 퀄리티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지금은 여기서 농구를 배우지만 성인이 돼서도 내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아보였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어디서든 당당히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 제2의 도약을 꿈꾸는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
사실,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은 개원 초기부터 지난해까지 ‘제이앤제이 유소년 농구교실’이란 이름으로 농구교실을 운영했다. 그러나 제2의 도약을 위해 2019년부터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로 사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준비를 하고 해왔다. 8년 넘게 사용하던 이름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터. 과연 박 대표는 상호를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도 광주에서 농구만 가르치는 농구교실은 우리가 유일하다. 다른 곳은 축구, 인라인, 줄넘기 등 종합스포츠클럽을 운영하며 그 중에 한 종목으로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농구교실로서 자부심도 느끼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중 이런저런 일을 거치면서 상호 변경을 고려하게 됐고, 주변에서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운영해야 주변에서 더 신뢰한다’고 충고들을 해주셔서 이번에 농구교실 이름을 변경하게 됐다.”



그렇게 농구교실 이름을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로 변경한 박 대표는 휴무 없이 1주일 내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대상에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성인반도 운영하면서 의욕을 보이고 있다. 1회 수업에 1시간 20분을 진행하고 있는 박 대표는 올 3월 모 병원과 함께 성장클리닉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게 됐다. 성장클리닉 프로그램은 실력 증진 뿐 만 아니라 성장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박진열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2시간여 동안, 그에게서 누구보다도 농구를 사랑하는 애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농구를 통해 많은 것을 돌려받았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2년 전 중학교에 진학한 한 제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년 전에 중학교 농구부로 진학한 제자가 있다. 우리 농구교실에 취미로 농구를 배우던 아이인데 키도 크고, 실력도 월등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실력이 워낙에 뛰어다나 보니깐 경기에 나가도 적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울면서 나를 찾아와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며 펑펑 울음을 터트린 적이 있다. 본인은 너무 농구가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한다며 나에게 통곡을 했던 친구였는데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겨우겨우 엘리트 선수로 진학을 시켰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됐는데 벌써 키가 190cm까지 자라 팀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저렇게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는 게 참 고맙게 느껴져 지금도 그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도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게 됐고,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농구를 놓지 않았던 박진열 대표는 2019년 점프볼과 함께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체육관부터 유니폼까지 새 단장을 하느라 정신없는 박 대표였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많은 농구교실들이 있지만 우린 우리만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과의 비교보다는 우리만의 문화, 특색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말보다는 행동과 결과로 보여드리고 싶다.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우리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을 믿고 함께 열심히 해나갔으면 좋겠다.”


*박진열 유소년농구교실 INFORMATION*


주소 :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467-33번지 박진열 유소년 농구교실 체육관
대표자전화 : 010-2513-2838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2019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사진_김지용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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