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코트사이드] JBJ 이항범 대표 “농구 콘서트가 열리는 그 날까지 파이팅”

김용호 / 기사승인 : 2019-05-22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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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코트를 누비는 선수들만큼 그 곁에서 에너지를 뿜는 이들을 만난다. 코트사이드가 23번째로 만나본 주인공은 모든 이들에게 농구의 에너지를 전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 때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프로 선수였지만,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거쳐 이제는 모두가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긍정의 힘을 나누고 있다. 바로 JBJ 바스켓볼클럽 이항범 대표가 이번 주의 주인공이다. ‘극복’과 ‘긍정’이라는 두 키워드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솔직담백한 스토리를 들어보자.



#길거리농구에서_프로가_되기까지 #농구와_멀어졌던_두번의_위기
2004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당시 1순위 양동근(현대모비스)과 2순위 이정석(연세대 코치)만큼이나 주목을 받았던 건 14순위로 선발된 KBL 드래프트 최초의 고졸선수 이항범이었다. 당시 모비스(현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그는 지명권 트레이드로 인해 KCC로 향했다. 168cm의 당시 최단신 선수가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일 때까지의 과정은 썩 녹록치 않았다. 이항범 대표는 어떻게 농구와의 인연이 시작됐을까.

중1 시절을 회상한 이 대표는 “어렸을 때 1회 나이키 길거리 농구대회를 나갔었어요. 그때 지도자들의 눈에 띄어 예전에 경복고에 계시던 신동찬 감독님께 스카웃 제의를 받았어요. 그렇게 여름방학 때 경복고에 가서 합숙을 시작했고, 삼선중으로 들어가게 됐죠. 근데 이미 삼선중에 TO가 꽉 차서 홍익중으로 자리를 옮겨 선수를 시작하게 된 거에요. 고등학교도 홍대부고로 가게 됐고, 김진수 감독님, 이상민, 김택훈 선배님이 이뻐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뒤늦은 시작이었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펼친 이항범 대표는 성균관대로 향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그의 첫 고비가 찾아왔다. 그는 “너무 많은 힘듦을 겪어서 농구를 그만두게 됐어요. 제가 성균관대에 가게 되면 감독님이 가드를 더 영입하지 않겠다 할 정도로 신뢰를 주셨는데, 너무 힘들어서 농구를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그렇게 1년을 방황하며 농구장 근처에 가지도 않다가 입대를 했죠. 근데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다보니 결국 농구가 떠오르더라고요”라며 시련의 시기를 돌아봤다.

“제가 중학교 때 스카웃 제의를 받았을 때 아버지가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그때 홍익중이 체육관이 없어 야외코트에서 주전 5명을 상대로 1대1을 하는 오디션을 본거였는데 4명을 이겼죠. 그렇게 인정을 받아왔는데, 스스로와의 싸움에 지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상병때 휴가를 나왔는데 주변에서 대학 진학 포기 후 2년이 지나면 KBL 신인드래프트 참가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반인 드래프트부터 다시 시작했던 거죠.” 이항범 대표의 말이다.

그렇게 그는 프로 입성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시련이 곧장 찾아왔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배부른 자의 건방짐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 목표는 수련 선수 정도였는데 말이죠. 다시 프로라는 목표를 잡고 나서 웨이트라는 숙제부터 극복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트라이아웃이라는 5분간의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때 저를 잘 봐주셔서 지명해주신 것 같아요. 그때는 제 기사가 사회면에 날 정도로 이슈였어요. 그러다보니 그 관심이 두려웠어요. 은퇴 당시 인터뷰에서는 운동이 힘들다했지만, 운동은 정말 뭐든 다 했었거든요. 훈련이 끝나면 체육관에서 숙소를 뛰어가기도 했으니까요. 운동이 힘들었다면 애초에 도전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다시_가까워진_농구 #키작은선수_스토리_전하는_JBJ
프로 은퇴를 선언한 이항범 대표는 많은 마음고생으로 인해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그는 “프로 은퇴 후에 뭘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대인기피증이 생겼거든요.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죠. 하필 저에게 많은 시간을 희생해주셨던 어머니도 아프시기 시작했어요. 제가 어머니의 낙이었는데 그게 없어졌잖아요. 은퇴를 결정할 때는 어머니와 상의도 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정말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았죠”라며 반성의 나날을 되돌아봤다.

“결국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급식 지원, 택배, 가구 운반, 배수관 청소까지…. 여기서 제가 제 자신을 포기해버리면 정말 패배자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그래서 인생의 후반전은 꼭 성공하자는 다짐을 했죠. 그래서 극복, 긍정이라는 두 단어를 모토로 ‘키 작은 선수’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거에요.”

그렇게 재기를 꿈꾼 이 대표는 농구와 바로 가까워지지는 못했다. 제2의 인생 시작점을 돌아본 그는 “유아 체육을 가르치는 일로 재출발을 했어요. 근데 농구는 선뜻 가르치지 못했어요. 프로에 갔다가 제 발로 뛰쳐나온 놈이 다시 농구를 가르친다는 게 미쳐 보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결국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농구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프로 선수일 때는 제가 코트를 뛰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전달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어린 아이들부터 만나면서 직접 전하려고 한 거죠. 그래서 서울 삼성 유소년 클럽에서 농구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5~6년 경력을 쌓은 뒤에 지금의 JBJ 바스켓볼클럽을 만들게 됐어요”라며 JBJ의 출발을 알렸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유소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기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게 그가 클럽을 만든 목적이었단다.

“제가 JBJ 바스켓볼클럽을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킬 트레이닝 센터가 될 거라는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라며 말을 이어간 이 대표는 “하지만 농구는 매개체일 뿐 어린 아이들에게 제 스토리를 전하고 ‘인간 승리’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게 더 컸어요. 제가 프로에 입단했을 때 제 뉴스가 스포츠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온 이유가 있지 않았을 까요. 물론 엘리트 선수들을 상대로 스킬 트레이닝을 하는 게 저에겐 더 수월한 일이긴 하죠. 지금 SK에서 전력분석을 하는 (이)현준이 형도 저한테 한국에 스킬 트레이닝이 도입되기 전에 저보고 먼저 해보라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퀀텀의 김현중, 스킬팩토리의 박대남 트레이너처럼 선수로서 모아둔 사업을 할 자본도 없었고, 일단 그저 유소년과의 만남이 먼저였어요”라며 자신의 방향성을 전했다.

JBJ 바스켓볼클럽의 행보를 알리는 데에 적극적인 이 대표이지만 적어도 스킬 트레이닝에 대해서는 먼저 앞장서 홍보를 하지는 않는다고. 이 대표는 “저에게 스킬 트레이닝을 받는 경우는 거의 입소문으로 찾아오시는 경우에요. 저는 저에게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스킬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다 배우라고 하거든요. 저는 제 장기로서 전해줄 수 있는 걸 알려줄 뿐인 거죠. 제가 농구 선수로서 가져야 하는 스킬을 모두 다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저답게 아이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싶어요. 제게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서요”라고 솔직함을 보였다.

그런 그가 제2의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서는 감사함 투성이라고 한다. “감사한 게 너무 많아요. 제대로 된 홍보를 해본적도 없는데 하나하나 모이면서 팀이 만들어졌고, 지금 JBJ라는 이름으로 성인 대회를 나가면 30여명정도가 모이는데 저의 스탭같은 존재들이죠. 저의 부족한 점을 모두 채워주세요. 제가 처음 이 클럽을 만들었을 때는 몰텐 이근식 본부장님이 공 10개를 들고 찾아오셔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팬이었다면서 시작을 도와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다하면 욕심인거죠. 그저 농구장 안에서 소통을 하며 제가 전달하고자하는 것만 잃지 않는다면 성공인 것 같아요.”


#농구를_좋아하는_사람이_많아졌으면 #농구라는_멋진_이름으로
농구 인생의 후반전에서 부지런히 뛰고 있는 이항범 대표. 그는 “이미 농구계에서 저보다 잘 가르치고 시설이 좋은 곳은 많아요”라며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이 아이들은 커서 프로농구의 팬도 되겠죠. 선수로서 인재 발굴을 하는 곳은 많으니, 저는 정말 농구장의 관중을 만드는, 농구를 좋아하게 하는 역할을 해내고 싶어요”라고 다시 한 번 자신이 걸어갈 길을 바라봤다.

“저만 봐도 키가 커서 농구를 한 케이스도 아니고, 정말 농구가 미치도록 좋아서 시작한 사람이잖아요”라며 열정을 드러낸 이 대표는 “지금은 농구 팬들의 규모가 한정되어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서 관중들이 어느 농구장이든 자리를 꽉 메워주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금의 길을 걷는 거예요. 그게 저랑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며 함성 가득한 농구장을 꿈꿨다.

“주위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 아무것도 되지 못했을 거예요”라며 다시 한 번 진심을 전한 그는 “제가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농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멋진 이름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저희 JBJ 바스켓볼클럽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농구로 좋은 영향력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해요”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끝으로 이항범 대표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한 뒤로는 왜 그렇게 착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도 아픈 시간이 있었고,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에 변한거에요. 그런데 이런 변화의 과정을 모두가 꼭 겪을 필요는 없잖아요. 설령 겪게 되더라도 저로 인해 3년의 시간이 필요한 게 1년으로라도 줄어들었으면 해요. 그렇게 희망, 극복의 에너지를 전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Wish on Courtside
“정말 많은 사람들이 농구장에 가득한 날을 꿈꿔요. 애기들부터 어른들까지 말이죠. 예전에는 장충체육관이 그렇게 꽉 찼었거든요. 또, 개인적으로는 그런 날이 왔을 때 농구 콘서트가 열렸으면 해요. 단순히 농구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도 가지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팬들을 보면서 후배 선수들도 더 흥이 나서 뛰길 바라요.”

# 영상촬영_ 김용호 기자
# 영상편집_ 주민영 에디터
# 사진_ 김용호 기자, KBL, 이항범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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