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201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나오는 예비 프로들이 쓰는 취업이력서. 열 번째 주인공은 성균관대 이윤수(C, 204cm)이다. 타고 났던 큰 신장 때문에 농구를 시작한 이윤수. 역시나 가능성은 컸다. 농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대회 MVP를 차지하면서 아마추어 대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젠 프로 무대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릴 차례다.
#1. ‘신장’ 콤플렉스가 최대 장점으로
어렸을 때부터 유달리 신장이 컸던 이윤수는 문성곤(KGC인삼공사) 어머니의 권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신장이 195cm, 키가 큰 게 부끄러웠던 이윤수는 동아중 농구부에 들어갔다. 콤플렉스가 됐던 신장은 싹 지워졌다.
“아버지가 신장이 컸거든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성동초)부터 농구부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제가 안 한다고 했어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내성적인 모범생이었거든요. 키가 큰 게 싫었죠. 그래서 초등학교 때 반장, 부반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키가 커서 위축됐던 걸 깨보려고 반장, 부반장을 했었어요.”
그렇게 들어간 농구부에서 처음은 행복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했는데, 원 없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었기 때문. 이윤수는 “그전까지는 키가 클까봐 밥을 덜 먹고 했었는데, 농구를 시작하고는 밥을 세 공기씩 먹고 그랬었어요. 워낙 운동량이 많았고 하다 보니 살이 안 쪘던 것 같아요”라고 농구부에 들어간 처음을 회상했다.
성동중 2학년 때 동아중으로 전학을 간 이윤수는 그때부터 1년 유급을 결정하고는 본격적으로 체격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근력을 키우기 시작한 것. 그리고 농구 시작 후 두 번째로 나간 대회에서 MVP(2011년, 4월 연맹회장기)를 거머쥐었다. 그가 농구를 시작한 지 1년만이었고, 당시 동아중은 송도중을 꺾고 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첫 경기에서도 20점 정도 넣었던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공식 첫 경기를 회상한 그는 “사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주전 선수들과 뛰었던 첫 연습 경기에요. 그 마지막 한 골이 기억이 남거든요. 제 비공식 첫 득점이었죠. 화봉중과 연습 경기를 하는데, 득점 없이 계속 리바운드 기록만 쌓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경기 종료 10초 정도를 남겨두고 어시스트를 받아 골밑 슛을 성공시켰는데, 그 한 골이 아직 기억에 남아요. 골 맛이 좋았거든요(웃음)”라고 덧붙였다.
#2. 성실함 하나는 최고
동아중 시절과 그리고 지금 성균관대에서 이윤수를 지도하고 있는 이상열 코치는 “윤수가 농구를 늦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잘했다. 농구를 시작한 지 1년을 조금 넘겨 MVP를 받았고, (중학교)3학년 때는 전형준(연세대)과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하지만 뒤를 받쳐주는 선수들이 약해서 준우승, 4강권에 맴돌았다”라고 그 시절을 되돌아봤다.
대학교 4년까지 포함해 농구선수 이윤수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본 이 코치는 “프로에서 전력에 포함되려면 기동력과 골밑 결정력이 좋아져야 한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발목을)다치지 않았더라면 올 시즌 대학리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수 있다. 그래도 윤수의 최고 장점은 성실함, 열정이다. 리바운드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골밑에서 몸싸움에도 능하다. 프로에서도 윤수의 적극성이 플러스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이윤수의 장단점을 설명했다.
부산(성남중)에서 서울(용산고)로 전학을 간 이윤수는 전학 징계로 1학년을 쉬어간다. 다시 준비의 시간에 들어간 가운데, 이윤수를 긴장케 했던 건 마산고 박정현. 2013년 대회에서 득점, 리바운드 등 상을 쓸어가며 활개를 쳤다. 이윤수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많았을 때였죠. 박규훈 코치님이 그러셨었어요. 2학년 때 대회에 나갈 땐 칼을 갈고 나가라고요. 그래서 운동에만 매진하면서 1년을 보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 느낀 점을 말했다.

2014년, 돌아온 이윤수는 달라졌다. 춘계연맹전에서 30-20(34득점 24리바운드)을 기록, 자신의 복귀를 알리면서 대회 우수상, 리바운드상을 따냈고, 이어진 협회장기에서도 대활약을 펼치며 대회 MVP를 따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숱한 러브콜이 끊이질 않았지만, 그는 김상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성균관대로 진학했다. 김 감독이 중앙대를 이끌고 있었던 당시 학교 캠프에 참가해 인연이 닿았고, 이윤수는 김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고, 또 출전 기회를 얻고 싶었다.
# 수상이력
- 2011년 협회장기 남중부 최우수상
- 2012년 연맹회장기 남중부 득점상, 감투상, 수비상
- 2014년 춘계연맹전 남고부 우수상, 리바운드상
- 2014년 협회장기 남고부 최우수상, 리바운드상
- 2015년 춘계연맹전 남고부 우수상
- 2016년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감투상, 득점상, 수비상
- 2017년 대학농구리그 남대부 리바운드상
- 2018년 종별농구선수권대회 남대부 최우수상
- 2018년 대학농구리그 남대부 리바운드상
# 경력사항
- 2014년 u18 남자농구대표팀
- 2017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 2018년 이상백배 한일대학농구대회 대학선발팀
- 2019년 이상백배 한일대학농구대회 대학선발팀
# 대학리그 정규리그 기록
- 2016년 14경기 평균 15.2득점 12.5리바운드 1.6어시스트 1.6블록
- 2017년 16경기 평균 17.6득점 14.8리바운드 1.8어시스트 2.1블록
- 2018년 16경기 평균 21.8득점 14.6리바운드 3.3어시스트 1.8블록
- 2019년 11경기 평균 18득점 13리바운드 2.1어시스트 1블록(6월 18일 기준)
# 이윤수의 플레이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보기
#3. 니콜라 ‘윤’키치, 스티븐 아담‘수’
이윤수는 성균관대 4년 동안 평균 30분 이상 뛰며 팀의 기둥이 됐다. 2년 연속 리바운드상을 거머쥐었고, 팀 득점 또한 그가 가장 높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아쉽기는 마찬가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이윤수는 “경험을 얻은 것 같지만, 또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았어요. 계속 꾸준하게 연습을 했다면 성장세도 꾸준했을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부상으로 쉬어갔죠. 발전 폭이 크지 않았다 보니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그를 지도해 온 이상열 코치가 기본기와 체력을 중시한 덕분에 그는 풀타임에 뛰는 법을 터득했다. 이윤수는 “지금도 40분을 뛸 수 있는 이유가 정신력 때문인 것 같아요. 정신력으로 버티고, 또 힘을 줄 때와 주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았죠. 지금도 발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결장 없이 뛰는 것이 지금까지 이 코치님의 그러한 가르침이 밑바탕 되지 않았나해요”라고 설명했다.
롤 모델은 한 선수로 정해두지 않았다. “내가 필요한 것들이 생기면 그 선수들을 모델로 하고 플레이를 보고, 연습한다”는 그는 스티븐 아담스의 골밑슛, 니콜라 요키치의 다재다능함, 오세근 선수의 힘에서 나오는 미들슛, 김종규 선수라고 하면 높이와 속공, 라건아의 힘, 골밑 플레이 등을 모두 닮고 싶다고 말했다.
니콜라 ’윤‘키치, 스티븐 아담’수’ 라고 별칭을 불러보면 어떻겠냐며 웃어 보인 그는 “팀이 필요로 하는 것에서 묵묵히 버텨내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팀을 빛나게 하는 선수보다 꾸준히 팀을 위해 희생하면서 플레이를 해 언젠가는 꽃을 피워보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진 이윤수는 “부상 없이, 처음으로 대학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해보겠다”고 목표를 전했다.
“프로무대에서 기량이 만개한 이윤수를 보여드리겠다“라고 한 다부진 이윤수의 각오처럼 꿈의 무대를 향한 그의 패기 있는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일 것으로 보인다.
# 사진_ 점프볼 DB, 홍기웅 기자
# 영상_ 김남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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