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민준구 기자]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데도 대접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 팬들에게 잘해라.” -최희암 감독-
팬 사인회 중심으로 이뤄졌던 한국농구연맹(KBL) 출범 초기 팬 서비스는 시간이 흘러 점점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이어온 스타 선수들이 점점 노쇠화를 겪었고, 이제는 수천, 수만의 팬들을 이끌 스타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팬 서비스의 방식은 변화를 필요로 했고, KBL은 물론 구단 역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2007, 2008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는 농구 대잔치 세대를 대신할 예비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다. 이른바 ‘황금 드래프트’로 불리며 수많은 농구 팬들을 다시 불러모았고, 구단들 역시 스타 마케팅을 펼쳤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선수들의 마인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젊은 세대’였던 선수들은 팬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하면서 선수-팬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 과거보다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 역시 주효했다.
김성헌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선수들이 직접 팬 관리에 나선 시대가 바로 2000년대 중후반이다. 농구대잔치 이후 김승현, 김주성, 방성윤에 이어 황금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팬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후 2010년대부터 더 젊고 팬 친화적인 선수들이 대거 나타나면서 팬 서비스 문화는 급속도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했다.
긍정적인 변화 속, 모든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팬 서비스 행사가 많아짐에 따라 형평성을 요구하는 단체가 등장했고, 구단들은 관계 형성에 차질이 없는 차원에서 행사를 줄이기도 했다.
이흥섭 DB 홍보차장은 “이런저런 행사가 있으면 예전에는 대부분 소화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업계에서 형평성을 요구하는 사례가 수차례 나타나 곤욕을 치른 적도 많다. 예를 들자면 A에서 행사를 하면 경쟁업체인 B에서도 행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결했지만, 당시는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팬 서비스의 문화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우리 지역 선수라는 인식 역시 강해졌다. 물론 KBL 출범 초기에도 연고 지역 행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색이 연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연고 지역을 강조하는 팬 행사가 수차례 열리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지역 연고제다. 현재 KBL은 2022-2023시즌이 끝난 후, 지역 연고제가 완벽히 정착되기를 바라고 있다. 2016년 경기력 향상과 마케팅 활동 강화를 목적으로 합숙소 폐지와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고, 이제 단 3년이 남은 상황이다.
이미 DB, KGC인삼공사, 전자랜드, 오리온은 지역 연고제가 활성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구단들이다. 그러나 3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SK와 삼성, KT, 현대모비스, LG, KCC는 수원과 용인에서 비시즌을 지내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6개 구단이 연고 지역 행사를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시즌만 되면 선수들을 볼 수 없는 해당 지역 팬들은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준우 KBL 사무차장은 “2023-2024시즌이 시작되기 전, 모든 구단들은 각자의 연고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 당장 큰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권을 떠나야 하는 선수들의 아쉬움도 이해한다. 그러나 팬들을 위해선 최고의 선택이다. 선수들과 팬들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구 관계자 역시 “구단, 그리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은 시즌이 아닌 비시즌에도 그들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에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비시즌 기간 동안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오면 그때나 잠깐 들여다보는 정도다. 선수들의 마인드, 그리고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고 해도 빈도 수가 적으면 효과는 크지 않다. 결국 지역 연고제는 팬들을 위해 시행돼야 할 당연한 일이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은희석 연세대 감독은 “농구인, 그리고 일반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지역 연고제가 빨리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연세대 감독인 나 역시 연희동을 걸어 다니다 보면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다. 대학 감독인 만큼, 프로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지역, 내 선수라는 인식이 강해져야 팬들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팬 서비스의 의미와는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거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선수 연고제’ 역시 주목해야 할 제도다. KBL은 2017년부터 지역 연고제 활성화 및 농구 유망주 양성을 위해 선수 연고제를 도입했다. 각 구단은 산하 유소년 클럽 등에서 육성하는 만 14세 이하 선수를 대상으로 매년 최대 2명, 5년간 최대 10명과 연고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별도의 드래프트 없이 해당 구단에 입단할 수 있다. 현재 KBL에 등록된 선수 연고제 선발자는 총 9명. 안세환, 편시연(SK), 김동영(LG), 김경진(오리온), 조장우, 김권민(삼성), 장민규, 표시우(DB), 김민규(전자랜드)로 모두 엘리트 농구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해 정식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구단의 지속적인 지원 속 성장한 지역 연고 선수라면 팬들이 받아들이는 의미 역시 클 수밖에 없다. 해당 지역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구단에 입단해 뛴다는 건 낭만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값진 팬 서비스를 찾기는 힘들다.
이준우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선수 연고제로 등록된 9명을 시작으로 해마다 더 많은 인원을 선발할 생각이다. 초기 단계인 만큼, KBL이나 구단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선수 연고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팬 서비스라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소속감을 갖고 자란 선수가 팬들과의 교감 형성을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시작은 미미할 수 있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다양해진 팬 서비스 방식에도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의 자세다. 다행히 KBL 선수들의 주변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팬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있었고, 대화나 사인 등 소통에 대한 거리감도 없었다.
정민규 SK 매니저는 “김선형 세대의 선수들부터 젊은 세대가 KBL에 대거 들어오면서 문화가 바뀌고 있다. 우리 팀의 경우 (김)선형이가 솔선수범하며 팬들과 거리감을 좁히니 후배들도 알아서 팬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고 있다. 과거의 딱딱했던 선수들과는 달리 부드럽고 친근한 선수들의 등장이 팬 서비스의 발전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우리를 비롯해 다른 구단들 역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런 부분은 팬들이 농구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주는 데 한 몫 하고 있지 않나 싶다”라고 전했다.
팬 서비스 방식의 진화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선수들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개인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특정 행사가 있을 때만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겠지만, 개인적인 소통을 통해 팬들과 스킨십을 한다는 건 팬 서비스 방식이 또 한 번 변화했다는 걸 의미한다.
KBL, 그리고 각 구단은 지금도 팬 서비스를 더 확실하고,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다. 농구 인기의 하락, 낮아진 관심 등 긍정보다 부정이 더 앞선 농구이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노력이 꽃을 피울 때, 농구는 다시 부활 할 수 있다.
# 사진_점프볼 DB,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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