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양준민 기자] 지금의 디트로이트는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영광의 시간은 있었다. 바로 1980년대 후반 배드보이즈 시대와 함께 6시즌 연속으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동부를 호령했던 2000년대 초반이 그것이다.
2004 NBA 파이널의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LA 레이커스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맞붙은 당시 경기는 모두의 우세를 깨고, 디트로이트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이미 파이널 3연패를 이룩하며 왕조 건설에 성공한 레이커스는 2003-2004시즌을 앞두고 칼 말론과 게리 페이튼까지 팀에 합류, 이른바 전당포 라인업을 구축한다. 정규리그에선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의 불화와 부상까지 악재가 겹치며 주춤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들어와선 시리즈를 모두 6차전 내에서 끝내는 등 파죽지세로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레이커스의 우세를 점쳤던 주된 이유는 로스터의 전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전당포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레이커스 주전 라인업은 리그 정상급 기량을 갖춘 선수들로 구성됐다. 반면 디트로이트는 랴시드 왈라스를 제외하곤 올스타급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이는 천시 빌럽스도 인정한 부분이다. 빌럽스는 4월 디트로이트 우승 1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야후 스포츠를 만나 “사람들이 레이커스의 우세를 점쳤던 것은 당시로선 당연했다. 우리는 리그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선수가 팀 내 아무도 없었다. 이것만 봐도 레이커스와 디트로이트의 객관적인 전력 차가 확연히 드러났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트로이트가 레이커스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던 원동력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단단한 수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인사이드를 지킨 벤 왈라스-라시드 왈라스 듀오의 수비는 샤킬 오닐-칼 말론 콤비의 인사이드 파괴력을 억제했다.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2002년부터 3년 연속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선정, 리그 최고의 인사이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벤 왈라스는 장기인 파워를 앞세워 오닐의 득점력을 떨어뜨렸다. 라시드 왈라스도 공격과 수비에서 말론을 압도했다. 당시 오른쪽 무릎에 부상을 안고 있던 말론은 상대적으로 활동량이 많은 라시드 왈라스를 제어하지 못했고, 결국 은퇴 전 파이널 우승이란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퍼리미터 수비에선 테이션 프린스-천시 빌럽스-리차드 해밀턴의 활약이 빛났다. 206cm의 신장과 함께 긴팔원숭이란 별칭에서 알 수 있듯 윙스팬까지 좋은 프린스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수비를 전담, 코비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마찬가지 빌럽스·해밀턴도 평균 42.4득점을 합작, 공격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대인 수비와 적절한 타이밍에 도움 수비를 들어가는 등 수비에서도 많은 역할을 했다. 래리 브라운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진 디트로이트는 모든 포지션에서 빈틈없는 수비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디트로이트의 우승은 특출난 스타 플레이어가 없음에도 조직적인 팀 농구만으로도 우승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지금까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예로 최근 야후 스포츠는 “2004 파이널 디트로이트의 우승은 우승을 위해 스타 플레이어들이 결집하는 지금 트렌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팀으로서 완벽에 가까웠다. 디트로이트는 레이커스의 히어로 볼에 모든 선수가 혼연일체가 된 조직력의 농구로 맞섰다. 디트로이트 베스트 5는 자신들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팀에 생동감이 더해졌다. 사람들이 디트로이트의 우승을 리그 역사상 가장 놀라운 우승으로 꼽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선수들은 경기를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다. 그들은 레이커스를 맞아 도전자로서 겸손했고, 승리를 갈망했다.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의 우승이 깜짝 우승이라 말하지만 그들의 우승은 오랜 시간을 공들인 노력의 결과물이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조 듀마스의 과감한 개혁, 파이널 우승의 기틀을 마련하다!
야후 스포츠의 평가처럼 디트로이트의 2004 파이널 우승은 그저 운이 아닐지도 모른다. 디트로이트는 2002년 여름을 시작으로 배드 보이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 예로 2000-2001시즌이 끝나고 신임 단장으로 부임한 조 듀마스는 과감한 개혁들로 팀 재건의 기틀 마련에 주력했다. 1985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5순위로 디트로이트에 입단한 듀마스는 1999년 농구화를 벗을 때까지 디트로이트 유니폼만을 입은 팀의 레전드다. 마이클 조던이 “지금까지 나를 가장 잘 막었던 선수”라는 말을 전하는 등 현역 시절 듀마스는 단단한 수비력으로 배드 보이즈의 한 축을 담당, 팀에 2번(1989·1990)의 우승을 안겼다. 무엇보다 듀마스는 빌 레임비어 등 거친 파울들로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며 악명을 떨쳤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코트 안팎에서 보여준 깔끔한 경기 매너와 선행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듀마스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팀의 단장직을 역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이 때문인지 듀마스는 팀 리빌딩 슬로건을 배드 보이즈의 부활로 설정했다. 1980년대 후반 배드 보이즈는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한 농구가 아닌 강력한 피지컬과 조직적인 수비로 리그를 호령했다. 듀마스는 2002년 여름 본인이 직접 나서 천시 빌럽스·리차드 해밀턴의 영입을 주도했다. 듀마스는 조직력을 중시하는 팀 색깔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시 팀 내 공격 1옵션이던 제리 스택하우스와 해밀턴이 골자가 된 트레이드를 추진, 해밀턴을 영입했다. FA시장 개막을 앞두고는 미네소타와 재계약을 고심하던 빌럽스를 찾아가 설득을 벌인 끝에 빌럽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듀마스는 빌럽스의 수비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영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3순위로 테이션 프린스를 지명한 것도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그의 수비가 팀 색깔과 어울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파격적인 개혁은 따로 있었다. 2002-2003시즌 팀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이끈 릭 칼라일 감독을 경질한 것이 그것이다. 2001년 여름 디트로이트에 부임한 칼라일 감독은 2시즌 연속 50승 32패를 기록, 디트로이트를 동부 컨퍼런스 상위 시드로 이끌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점점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듀마스가 추구한 팀 운영 방향과 칼라일이 추구한 방식이 달라 마찰을 빚었고 이는 칼라일의 경질로 이어졌다. 듀마스가 칼라일을 경질한 이유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이들의 성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역할 배분을 두고 팀 내 몇몇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점도 칼라일이 경질된 또 다른 이유. 때마침 리그 최고 명장 중 한 명인 래리 브라운 감독이 시장에 나왔다는 점도 듀마스 단장이 칼라일 감독의 경질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래리 브라운, 배드 보이즈의 DNA를 되살리다!
평소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조직력과 수비를 중시하는 브라운 감독의 농구 철학은 듀마스 단장이 추구한 방향과 부합했다. 이에 듀마스 단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브라운 감독은 부임과 함께 대대적인 전술 개편에 들어간다. 브라운 감독은 빌럽스와 해밀턴을 중심으로 공격 전술을 운용했다. 볼 없는 움직임이 좋은 해밀턴은 브라운 감독의 오프 더 볼 스크린 전술과 시너지 효과를 냈다. 빌럽스는 안정적인 볼 배급과 경기운영으로 해밀턴의 득점을 도왔다. 빌럽스도 브라운 감독의 스크린 전술을 통해 돌파에 자신을 갖는 등 디트로이트 입단 후 기량이 부쩍 늘었다. 브라운 감독은 평소 해밀턴에게 공격을 맡겼다. 다만 클러치 상황에선 해밀턴보다 슛이 좋은 빌럽스에게 공격을 맡겼고, 그 결과 빌럽스는 ‘미스터 빅샷’이란 닉네임을 갖게 됐다.(*파이널에서 게리 페이튼을 압도한 빌럽스는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칼라일 감독 체제에선 중용 받지 못했던 테이션 프린스·메멧 오쿠어도 브라운 감독 부임 후 팀 내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2003 플레이오프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전담 마크, 대형 수비수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프린스는 상대 스코어러 수비를 전담했다. 프린스는 206cm의 장신에 운동능력까지 좋아 인사이드와 퍼리미터 수비 모두 가능했다.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왕성한 활동량도 프린스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프린스는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패스에도 두각을 드러내며 다재다능한 팀의 살림꾼으로 변신했다. 오쿠어도 벤치와 선발을 오가며 팀에 힘을 보탰다. 오쿠어는 보드장악력·림 프로텍팅 능력과 함께 커리어 평균 37.5%(0.9개 성공)의 3점 성공률을 기록할 정도로 슛까지 좋았다. 이에 브라운 감독은 센터부터 스트레치형 포워드까지 다양하게 오쿠어를 활용했다.
이렇게 브라운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진 디트로이트는 전반기 짠물에 가까운 수비를 보여주며 33승 21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을 찍은 건 라시드 왈라스의 영입이었다. 디트로이트는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라시드 왈라스 영입에 성공, 전력을 강화했다. 공·수 모두에서 리그 평균 이상의 기량을 갖춘 라시드 왈라스는 디트로이트 빅맨 로테이션에 다양성을 더했다. 림 프로텍팅에 능한 왈라스 듀오는 디트로이트 림을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공격력은 제로지만 내·외곽 수비가 모두 좋은 벤 왈라스와 상대적으로 수비보단 공격에 강점이 있는 라시드 왈라스 조합은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라시드 왈라스는 디트로이트 합류 전 심판을 위협해 출전정지를 당하는 등 리그를 대표하는 악동이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에 온 후 브라운 감독의 통제 아래 악동 기질이 수그러들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브라운 감독은 주전 베스트 5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을 골고루 활용했다. 그 예로 득점력이 좋은 콜리스 윌리엄슨은 벤치 득점을 주도, 당해 시즌 올해의 식스맨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마이크 제임스와 린지 헌터도 강한 압박 수비로 상대의 턴오버를 유발하는 등 짠물 수비를 추구하는 디트로이트의 컨셉에 어울리는 선수들이었다. 2003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뽑은 다르코 밀리시치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음에도 그 공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이처럼 팀 로스터가 전체적으로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디트로이트는 후반기에만 21승 7패를 기록, 전반기와 합산해 54승 28패를 올리며 1997년 이후 구단 최다승을 기록하게 된다. 라시드 왈라스 합류로 더욱 짜임새를 갖춘 디트로이트 수비벽은 플레이오프에 들어와 한층 더 단단해졌다. 그 결과 디트로이트는 단단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밀워키 벅스·뉴저지 네츠·인디애나 페이서스를 물리치고, 1990년 이후 처음 파이널에 진출한다. 디트로이트는 공격이 강점인 뉴저지와 인디애나 화력을 수비조직력으로 억제했다. 제이슨 키드·리차드 제퍼슨을 앞세운 뉴저지는 2-2 동률을 이룬 상황에서 5차전을 승리, 3-2로 시리즈를 앞서며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하지만 해밀턴의 활약으로 6차전과 7차전을 모두 승리해 시리즈를 뒤집는 저력을 보여줬다. 해밀턴은 마지막 2경기에서 평균 22.5득점 5.5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 탈락 위기의 디트로이트를 구해냈다.
인디애나도 디트로이트에서 경질된 칼라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팀 내 1옵션인 저메인 오닐이 왈라스 듀오의 협력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해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해밀턴은 공격에서 동료들의 오프 더 볼 스크린을 활용해 끊임없이 움직여 레지 밀러의 체력을 빼놓았다. 수비에선 프린스가 밀러를 전담 마크하며 밀러의 득점 봉쇄에 나섰다. 브라운 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도 로스터의 전 선수를 활용해 주축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했다. 디트로이트가 파이널에서 주전 베스트 5에 과하게 의존했음에도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던 건 브라운 감독의 철저한 출전시간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브라운 감독은 2004 파이널 우승으로 리그 역사상 최초로 NCAA와 NBA를 모두 제패한 감독으로 남게 됐다)
조 듀마스 단장의 부임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배드 보이즈의 부활을 준비했던 디트로이트는 결국 앞서 언급했듯 2004 파이널 우승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우승이 획기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역대 파이널 우승팀 중 유일하게 사치세 라인을 벗어난 팀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이후 디트로이트는 2004-2005시즌도 파이널에 진출하는 등 6시즌 연속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 동부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디트로이트는 2005년 여름 브라운 감독이 팀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수비와 팀플레이를 앞세운 경기 스타일로 꾸준히 동부 컨퍼런스 상위 시드에 이름을 올렸다. 디트로이트의 베스트 5도 올스타와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리며 어느새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해갔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디트로이트는 2006년 여름 벤 왈라스의 시카고 이적과 함께 영광의 순간들을 함께 했던 주축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그 위력을 잃어갔다. 벤 왈라스의 뒤를 이어 천시 빌럽스·라시드 왈라스·리차드 해밀턴이 차례로 팀을 떠났다. 2013년 테이션 프린스의 멤피스 이적을 마지막으로, 2004 파이널 우승 주역들 모두 팀을 떠나게 된다. 빌럽스·왈라스가 팀을 떠난 2008년 여름을 기점으로 리빌딩에 들어간 디트로이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현재 블레이크 그리핀과 안드레 드러먼드 듀오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고 있다. 지난 시즌 디트로이트는 정규리그 41승 41패 동부 컨퍼런스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무려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디트로이트의 2004 파이널 우승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승을 위해 슈퍼스타들이 결집하는 지금 리그 트렌드에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팬사이디드는 2018-2019시즌 파이널 개막을 앞두고, “근래 파이널은 대부분 스타 파워가 시리즈를 지배했다. 2004 파이널과 극명하게 대비된 것이 이 부분이다. 디트로이트는 2003-2004시즌 개막을 앞두고 물음표만 가득했던 팀이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시스템을 굳게 믿었고, 우승까지 만들어냈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우승은 NBA에서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는 말을 전하는 등 디트로이트의 2004 파이널 우승은 분명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인 사건임이 분명했다.
#사진-점프볼 DB, 아디다스, 유튜브 영상 캡처
#기록참조-BASKETBALL REFERENCE, NB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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