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코트사이드] 옥범준 스킬트레이너 “선수들의 업그레이드를 돕겠습니다”

김용호 / 기사승인 : 2019-08-19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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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코트를 누비는 선수들만큼 그 곁에서 에너지를 뿜는 이들을 만난다. 34번째 코트사이드의 주인공은 한국농구의 미래, 후배 양성을 위해 1분 1초도 쉬지 않고 달리는 스킬트레이너다. 아마추어 선수 시절 많은 각광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인해 프로 무대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 빛을 한국농구의 미래에 더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OBJ농구교실의 대표이자, 스킬팩토리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인 옥범준 트레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KBL_최초의_얼리_드래프티 #지독하게_찾아왔던_부상_악령
초등학교 시절 농구를 하는 친형을 따라다니다 재미를 붙인 옥범준 트레이너는 이왕 시작할 거면 명문 농구부에서 해보라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방초로 향했다. 삼선중, 경복고, 그리고 구로고를 거친 그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 내내 꾸준히 우승 멤버가 되며 날개를 폈다. 옥범준 트레이너는 “양동근(현대모비스), 김도수(오리온 코치)와 대방초-삼선중 동기였어요. 도수와는 구로고에서도 함께 뛰었고요. 꾸준히 우승을 하면서 농구를 하다 성균관대에 입학을 하게 됐는데, 그때 정훈, 진경석, 이한권 선배님과도 우승을 일궜었죠”라며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아봤다.

큰 추락이 없었던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 입학 후에는 얘기가 달랐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라며 말을 이어간 옥 트레이너는 “제가 정말 농구밖에 몰랐거든요. 농구에 미쳤다는 소리도 듣고, 농구공을 껴안고 잘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런데 부상이 잦아지기 시작한거에요. 한참 뛰어야할 시기에 무릎 십자인데 파열이 왔고, 집안에도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악재들이 겹쳤던 거죠. 그래서 농구를 그만두려고도 했었어요”라고 말했다.

방황의 시기가 찾아온 그에게 다행이도 당시 성균관대 박성근 감독은 재차 손을 내밀었다. 옥범준 트레이너는 “딱 저 때부터 프로조기진출의 길이 열렸었어요. 그래서 박성근 감독님이 포기하지 말고 다시 재활해서 3학년을 마치고 도전해보자고 하셨죠.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는 정말 미친 듯이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복귀에 성공하고 성적도 잘 나와서 프로 무대에 도전을 하게 됐죠”라며 미소 지었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2003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옥범준 트레이너는 전체 2순위로 코리아텐더(현 KT)에 지명됐다. 프로농구 최초의 조기진출자가 된 것. 그는 “생각지도 못했죠. 걸출한 형들이 많았는데 운이 좋았어요. 그런데 결국 위기가 다시 오더라고요. 지명은 됐지만, 스스로 준비가 많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추일승 감독님 밑에 있었는데, 지금도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 많죠. 신인으로서 기회를 잡았어야하는 시기에 또 부상이 왔고, 결국 한 시즌만 뛰고 상무에 가게 됐어요. 입대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몸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발목을 다쳤던 제가 목발을 하고 병수발을 했던 기억이 나요”라고 힘든 시기를 회상했다.

제대 후 2007-2008시즌 안양 KT&G에 새 둥지를 틀었지만, 여전히 그의 재기는 녹록치 못했다. “2006-2007시즌에 KT에서 준우승을 하고 트레이드가 돼서 안양으로 향하게 됐어요. 세 시즌을 뛰었는데, 그 사이에 발목만 4번을 수술했죠. 가족도 생겨서 더 열심히 했고, FA 자격을 얻은 뒤에는 SK로 가게 됐는데, 이번엔 손가락이 부러지더라고요. 그래도 재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다친 곳을 빼고는 모든 부분에 대해 운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오버트레이닝이었는지 허리까지 다쳤죠. 그때는 서른이 돼서 그런지 더 이상 몸이 안돌아오더라고요. 그렇게 힘겹게 재활을 마치고, 문경은 코치님이 감독대행이 되셨을 때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는데, 연습 중에 허리가 또 나갔어요. 이젠 정말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죠. 그렇게 계약 기간이 남았지만 은퇴를 결심했고, 구단에서는 유소년클럽에서 일할 수 있게 제의를 해주셨지만, 그 당시에는 자존심이 있었는지 그대로 농구장을 떠나게 됐어요.”


#싫어도_다시_생각났던_농구 #제천에서_펼쳐진_제2의_삶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프로 무대를 떠난 옥범준 트레이너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을 아예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은퇴 직후에는 서울에 있는 것조차 싫어서 처가댁이 있는 제천으로 이사를 갔어요. 친구들도 볼 명목이 없었고요. 제천에 내려가서 6개월 정도 재활을 하면서 쉬고 나니, 결국 농구가 다시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공원이나 대학교 코트에 가서 조금씩 농구를 했었는데,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죠. 처음엔 20명에서 60명까지 늘어나 결국 동호인팀을 만들게 됐어요. 그때 만든 팀이 WEAVE인데, 창단 1년 만에 동호인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했죠. 그러다 자연스럽게 제천 생활체육회에 농구지도사로 입사하게 되면서 제 사회생활이 시작됐어요”라고 제2의 삶이 시작된 배경을 전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결국 농구뿐이었어요”라고 웃어보인 옥 트레이너는 “점점 범위를 넓혀가면서 유소년 농구팀을 창단하고, 주위에서 농구교실을 할 생각을 없냐는 제안을 덥석 물었어요. 그렇게 OBJ농구교실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은퇴하고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었죠. 동호인팀도 규모가 커지다보니 SPEARS라는 팀을 또 만들어 우승까지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생활체육쪽에서 짧은 시간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선수 시절에 남은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엘리트 선수들과의 만남을 원했고, 스킬 트레이닝의 길에 접어들게 됐다. “엘리트 선수를 가르치고 싶은 열망이 컸는데, 그러다 스킬팩토리의 영상을 많이 보게 됐어요. (박)대남이가 대표인데, 사실 처음에는 후배한테 선뜻 전화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됐죠. 그래서 제천에서 하남을 오가며 스킬 트레이닝을 배웠고, 미국 연수도 열심히 받았어요. 정말 죽기 살기로 배웠죠 그 나이에. 하하. 그렇게 스킬트레이너로서의 삶도 시작됐어요. 지금은 제 농구교실과 더불어 스킬팩토리에서는 전라도 광주, 경상도 대구 지점에서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


활발한 활동 덕분에 최근에는 그리웠던 프로 무대와도 작은 인연을 맺었다. 올해 비시즌 부산 KT 선수들을 대상으로 스킬트레이닝을 도운 것. 옥범준 트레이너는 “대남이를 도와서 여자프로팀은 몇 번씩 트레이닝을 해본 적이 있었어요. WKBL 유소녀 캠프도 함께했었고요. 이번에는 KT와 함께했었는데, 지금 KT 최현준 단장님이 제 신인시절이었던 코리아텐더 사무국 직원이셨거든요. 그때부터 저를 엄청 잘 챙겨주셨어서 꾸준히 연락을 했었어요. 보답하는 의미로 제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먼저 연락을 드렸죠. 서동철 감독님과 코치님들, 선수들의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았어요”라고 반가운 인연을 소개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남자프로팀도 반가웠다고. 그는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오랜만에 프로팀에 가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트레이닝을 하는데, 옛날 제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그저 이 선수들이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에 더 열정적으로 트레이닝을 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한국농구의_밝은_미래를_위해 #친형처럼_보듬어주는_트레이너로
순조롭게 트레이너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옥범준 트레이너는 현재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자부심 그리고 필요성을 느낀다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스킬트레이너가 굉장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꼭 필요한 포지션이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NBA 선수들도 트레이닝을 받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한국농구 미래가 더 밝게 발전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은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지금은 국제대회를 보면 스킬의 차이가 있잖아요. 어린 선수들부터 프로 선수들까지 업그레이드를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사명감을 가지고 트레이닝 하는 만큼 선수들도 자신감을 얻어 시합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라며 개인적인 목표를 전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트레이닝의 많은 목표들 중에 멘탈적인 부분, 그리고 스킬의 효율을 극대화시켜 주고 싶어요. 정신적인 부분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요. 또한, 현재 스킬트레이닝의 현실에 있어서 지방에 있는 선수들도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힘쓰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굳은 각오를 전한 옥범준 트레이너는 자신을 기억해주는 팬들에게도 진심어린 한 마디를 전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안 좋게 평가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많이 아쉬웠던 선수라고 기억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다양한 경험이 축적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성공도 실패도 해봤고, 우여곡절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이나, 생활의 어려움들을 친형처럼 보듬어줄 수 있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지금도 매년 미국에 연수를 가면서 트레이닝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고, 트레이너로서 정확한 시범과 지도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 노력하는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자리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거에요. 그래서 꼭 한국농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힘줘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Wish on Courtside
“WKBL 프로팀들은 비시즌에 국내 스킬트레이닝 센터를 많이 찾아주는 편이에요. 아직 KBL은 그러지 못한데, 국내 트레이너들도 뛰어다나는 걸 알리고, 농구계에서 더 범위를 넓혀가고 싶어요. 또, 저에게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어린 선수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돼서 농구 강국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사진_ KBL, 옥범준 트레이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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