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구계에서 2m는 상징적인 수치다. 항상 국제대회에서 높이 때문에 고생하는 상황에서 2m가 넘는 선수가 등장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시선이 모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큰 부상없이 건강하게 뛸 수만 있다면 사이즈만으로도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시대가 바뀌어 예전보다 평균신장이 훌쩍 올라갔음에도 여전히 2m대 선수는 드물다.
무대를 여자농구로 돌려보면 더욱 그렇다. 여자농구계에서 2m가 넘는 자원은 매우 귀했다. LA올림픽 은메달 멤버 김영희(58‧205cm) 이후 한참 동안 2m 근처까지 오는 선수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가뭄 속 단비처럼 등장한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아닌 ‘스카이’ 하은주(38‧202cm)였다. 부친 하동기(205cm)를 닮아 큰 유전자를 타고난 하은주는 남동생 하승진(36‧221cm)과 더불어 한국 농구의 희망으로 불렸다. ‘기량은 발전시킬 수 있어도 키는 늘리지 못한다’는 농구계 격언처럼 건강한 장신 기대주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계는 제대로 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지 못했다. 김영희는 병이 있는줄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무지함이 가득 섞인 혹사를 당하다 결국 20대 중반에 쓰러져 지금까지도 투병 중이다. 하은주 또한 아픔이 크다. 초등학교 당시부터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고생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졸업할 무렵에 크게 다쳤다.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중상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선수 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한참을 쉬고 있는 사이에도 키는 195cm까지 자랐다. 이를 지켜본 중학교 측에서는 끈질기게 농구부 입부를 권유했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례한 행보에 환멸을 느낀 하은주는 농구부 입부를 거절했고 전학까지 결심한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하은주가 농구부 입부를 거절하고 전학을 가려는 이유’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했다. 다른 학교에서 농구를 할까 걱정한 나머지 농구 포기 각서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결국 하은주는 농구포기 각서라는 말도 안되는 행동에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하은주의 농구 인생을 수렁에서 건져준 것은 국내가 아닌 일본이었다. 하은주는 ‘특별대접’을 원하지 않았다. 몸 관리와 공부도 하면서 농구를 겸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상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았다. 하은주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는 한편 공부는 물론 운동도 다시 할 수 있었다.
몸을 회복한 이후 일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돌아왔으며 신한은행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WKBL 최고의 센터로 거듭난다. 당시 그녀는 가성비의 ‘끝판왕’같은 모습을 보였다. 정규리그 통산 240경기에서 평균 8.41득점, 4.15리바운드는 명성에 비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평균 출장시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은주는 불과 14분 6초 정도만을 뛰고 이같은 기록을 작성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위력이 업그레이드됐다. 평균 13.13득점, 5.72리바운드로 중요한 순간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대 팀에서는 접전상황에서 하은주가 언제 나올까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치 과거 해태왕조에서 몸을 푸는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뿜어내던 선동렬처럼.
은퇴 후 하은주는 전공을 살려 재활운동센터를 운영중이다. 부상과 재활을 돕는 것은 물론 심리적인 부분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인터뷰하면서 느낀 하은주의 가장 큰 장점은 배려심이다. 다소 중구난방으로 물어보는 질문에도 미소와 함께 친절한 답변으로 일관했고 여러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말했음직한 부분 또한 처음 말하는 것처럼 세심하게 설명해줬다.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참고용으로 보낸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도 꼼꼼하게 읽어봐 줬으며 마지막까지 밝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녀의 선수 시절 별명 ‘스카이’만큼이나 인터뷰 내내, 체격이 아닌 마음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상과의 길었던 싸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 돕고싶어요”
Q.어떻게 지내세요?
재활운동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 안에서 심리상담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선수 시절 내내 부상에 시달렸잖아요. 부상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경험자로서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에게 건강을 찾아주고 싶어요. 그 외 틈틈이 강의 등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Q.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본인만의 공부 노하우 같은 것도 있을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저는 선수 때부터 공부를 함께 병행해서 몸에 배인 부분이 있어요. 많이 한다기보다는 일상처럼 꾸준하게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은 예전처럼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고요. 그간 공부한 것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부라는 것은 일종의 습관같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공부도 운동처럼 하나의 영역인지라 잘하는 사람 혹은 조금 못하는 사람이 나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꾸준함이 더 중요하지않나 싶어요. 정말 열정을 가지고 짧은 기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분들도 계세요. 대단하죠. 저 역시 그래본적도 있고요. 하지만 그렇게되면 조금 힘든 부분도 있어요. 그런 집중력이 잘 발휘되지않는 분들도 분명 계시고요. 성향의 차이는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보다는 평소에 틈틈이라도 멈추지 않고 하는 꾸준함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설사 공부하는 양이 적어서 당장은 티가 덜날지 몰라도 그러한 꾸준함이 쌓이게되면 어느새 ‘공부하는 습관’이 갖춰지게 되거든요. 일단 그러한 습관이 만들어져야 집중력도 더 잘 발휘되고 그러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말처럼 각자 노하우나 스타일이 다를 수 있겠죠. 저는 꾸준함, 습관 그런 기본이 참 중요하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Q.운동선수 같은 경우 예전에는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잖아요.
맞습니다. 많이 달라졌죠. 외국 같은 경우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학업성적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시스템이잖아요. 반면 이제는 예전 얘기가 됐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죠. 지금은 공부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운동하는 친구들도 시간을 내서 교과서를 펴고 참고서를 푸는 등 좋은 쪽으로 변화가 오는 것 같아요. 진작에 이랬어야했고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Q.운동선수에게 공부는 왜 필요할까요?
하핫…, 범위가 크네요.(웃음) 정말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같습니다. 일단 공부라는 것은 운동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특히 학생 신분이라면 그 시기에 기본적으로 배워야 될 것은 당연히 갖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 같은 경우 변수가 커요. 몇 년씩 운동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재능이나 열정이 있으니까 그러겠지만 그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운동으로 대성하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렇지않은 경우도 분명 생겨납니다. 더불어 만약 공부를 거의 안한 상태에서 중간에 부상으로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 등이 생겨버리면 난처해지기도 해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선택지도 좁아지고 스타트도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오래오래 즐기면서 뭔가를 하는게 최상이겠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으니 또 다른 준비 역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Q.하은주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 같은 경우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현재 하고 있는 일로 이어지게 됐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공부는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뭔가를 써먹는다는 개념보다는 또 다른 혹은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되게 든든함을 주는 존재로 느껴져요. 자신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요.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보통의 또래들이 하는 정도만이라도 공부를 했다면 이후에 무엇을 하던지간에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다른 일을 할때 ‘운동밖에 안한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서는 경우도 많아요. 물론 그렇다해도 잘 이겨내고 제2의 삶을 살아가고있는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출발선에서의 자신감 차이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기본은 따라가자’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Q.꾸준히 공부를 했기에 지금 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럼요. 일찍부터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했기에 재활운동센터도 할 수 있는거죠. 운동선수 출신이든 아님 다른 쪽 사람이건 간에 사회에 나가면 시작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본래 뭔가를 제대로 하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도 배워가고 경험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운동선수 출신 중에는 운동 외에는 해본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움추려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선택지를 좁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거에요. 하지만 이전부터 공부도 하면서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수시절 워낙 부상에 시달리셔서 일찌감치 재활 쪽에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맞습니다. 선수 시절에 너무 많이 아팠던 영향이 큽니다.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부상이 있어 버리면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온전히 발휘할 수가 없잖아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만큼 고통은 없어요. 날개가 있는데 날지 못하는 기분이랄까요. 저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많았어요. 기술도 좋고 정말 재능있는 선수인데 잦은 부상으로 힘들고 지쳐서 은퇴하는 선수를 보면 너무 안타까웠어요. 조금만 쉬면서 재충전하면 되는데 지도자들의 욕심 혹은 선수 개인의 과한 의욕으로 무리를 하다가 망가지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선수생활을 좀더 길게 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쉬웠죠. 어찌보면 알면서도 참 고쳐지지않는 부분들이죠. 운동을 못해서 그만두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이유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속상한 일이잖아요. 마음같아서는 당장 나서서 도움을 주고싶었지만 그때는 저도 선수 신분이기도하고 아는게 한정적이었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죠. 이제라도 재활운동센터를 하고있으니 선수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아파서 몸을 제대로 쓰지못하는 사람이 최대한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후배들도 많이 도움을 받았겠어요.
제가 좀 그런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이것도 사업이니까 처음에는 지인들 위주로 시작하지말자. 그런 생각부터 했어요. 아무래도 사람이라는게 일을 시작하면 자신이 잘 아는 인맥이나 그런 쪽을 뚫으려고 하잖아요. 저같은 경우 농구선수 출신이니까 농구 쪽에 같은 선수 출신 선후배나 지도자들 거기에 이런저런 관계자까지 인맥이 많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 이것 하고 있으니 이용해줘’하면서 부담을 주기 싫었어요. 어차피 제가 잘하면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올거잖아요.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잘한 것 같아요. 농구뿐 아니라 타 종목분들 거기에 더해 일반인들까지 다양하게 찾아주고 계세요. 그로인해 시야도 더 넓어졌고 노하우도 제법 쌓였죠.
Q.아파본 입장에서 찾아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잘 아실 것 같아요.
잘 알죠. 그래서 심리치료 같은 부분도 함께하는 것이 큽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단순히 아픈 부위가 나았거나 좋아졌다고 금방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아요. 부상이 오래가서 치료나 재활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받게 되는 데미지가 상당해요.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을 수 있고, 현장과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내가 복귀해서 예전처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해요. 부상이 안 좋은 것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상처를 준다는 것이죠. 때문에 저는 몸뿐만 아니라 심리치료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께도 이런 점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에요.
Q.현역시절에 포지션이 센터셨는데 지금도 센터하고 계시네요.
하하핫…, 그러네요. 선수 시절에는 골밑을 지켰는데 앞으로는 부상으로 힘든 분들의 몸과 마음을 지키고 싶습니다.
“당시에는 아팠지만…, 지금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Q.조금 식상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사실 제 선택은 아니었어요. 아버님이 농구선수 출신이셨고 키가 또래들보다 큰 관계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선수로서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농구공을 잡았던 것이죠.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초반에는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희생해야 되고 감당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은거에요. 한창 친구들과 놀아야 될 어린 시절에 갑작스럽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라 여러 가지 부분이 더 힘들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상 한번 시작한 것은 포기하기 싫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것 같아요.
Q.어린 나이에 부상이 빨리 찾아온 것 같아요.
맞아요. 맞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무릎이 안 좋았어요, 사실 힘들었죠. 그 뒤로도 계속 아프고, 또 아프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이겨내고 또 이겨내고 하다보니까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진 부분도 있는 듯 싶어요. 어쨌거나 부상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까 이렇게 센터도 하게 됐잖아요.(웃음) 좋게 생각해야죠.
Q.부상 후 한참 농구를 쉬었는데 그 와중에서도 키는 계속 컸고 어느 정도 나아졌다 싶자 당시 중학교 농구부에서 입부를 권유했지만 거절했어요. 왠지 학교 측에서도 배려를 한다던가 그런 태도는 아니었을 것 같아요.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를 생각해서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어요. 어찌보면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서 일찍 몸이 망가졌던 것인데 다시 그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무서웠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떠나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잖아요. 이제 겨우 걸어 다닐만한데 혹시라도 다시 다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는 상태에서 농구가 머릿속에 들어오겠어요. 그들도 나름대로의 입장은 있었겠죠. 기본적으로 저의 신장이 아까웠을테고…, 하지만 섣불리 제가 농구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기에는 그곳은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제가 다치고 나서 한참이 지났음에도 뭔가가 개선됐다거나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않는거에요. 정말 한결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 속에는 불안감 밖에 안남더라고요.
Q.실망이 크셨을 듯 싶어요.
그렇죠.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3학년 때 잠깐 들어가기는 했어요. 불신을 했으면서도 아주 조그만 희망이라도 가져보고 싶었어요. 한데 역시나더라고요. ‘이곳은 정말 여전하구나. 그대로 있다가는 나는 다시 또 망가지겠구나’라는 안 좋은 방향으로의 확신만 들었죠. 잘 아시다시피 아파서 농구를 못할 것 같아서 전학을 가겠다는데 혹시나 다른 학교에서 농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농구포기각서까지 쓰게 했잖아요. 오죽했으면 각서까지 쓰고 전학을 갈 생각을 했겠어요. 당시 공부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냥 공부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Q.다른 길을 찾다가 일본으로 가셨어요. 일본은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다 경험해본 것은 아니니까 일본의 모든 곳이 그렇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하지만 당시 제가 갔던 학교는 재활과 운동, 학업을 모두 병행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마치 프로팀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었다고 보면 될까요. 트레이닝 시설은 물론 상주하는 트레이너가 있었고 심지어 병원까지 갖춰졌더라고요. 당시 어린 저의 눈으로 봐도 정말 완벽했어요. 내심 포기하고 있던 상황에서 ‘어, 다시 할 수 있겠는데…’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결과적으로 재기에 성공했고요.
Q.그래도 지금은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학원스포츠를 대하는 풍경이 달라진 것 같아요.
맞아요. 센터를 하면서 더 느끼고 있어요. 예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인식이 달라졌어요. 특히 부모님들은 좋은 쪽으로 적극적이세요. 아이들이 조금만 아프거나 좋지 않다 싶으면 바로 센터에 데려와서 재활하고 맞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이른바 몸 귀한 줄을 알아요. 사실 어릴 때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서 제대로 성장시키는게 중요하거든요. 몸 다 망가져서 기술 배워 놓으면 뭐해요. 몸이 제대로 안 따라주면 써먹지도 못하잖아요. 부모님들의 그런 모습은 정말 보기 좋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인식 자체가 달라진 것은 사실 같아요. 지도자 분들도 달라지셨어요. 그 시절에는 재활은 수술을 한 경우에나 하는 것이고 아파도 참고 뛰는게 미덕이라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지도자분들께서 먼저 제자들을 데려와서 이곳에서 2~3주 몸을 회복한 후에 복귀하라던지 몸 관리에 신경을 써주세요. 열려있는 분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확실히 그 시절보다는 지금이 환경은 더 좋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어려운 시절을 극복하시고 WKBL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셨어요.
즐겁게 농구했던 것 같아요. 성적도 잘나왔고 전주원, 정선민 언니같이 기량도 뛰어나고 모범적인 선배들과 함께 뛰면서 배워가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구태여 제가 얘기 안해도 정말 모든 팬들이 인정하는 레전드들이잖아요. 언니들의 대단함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은퇴 후에 더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대단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구나 하는…, 농구선수로서 복 받은 것이었죠. 저같은 경우 무릎부상을 달고 살았던지라 출장 시간조절이 필요했어요. 조금 무리했다싶으면 바로 영향이 오거든요. 그래서 정규시즌에는 항상 팀에서 시간을 조절해주셨고, 플레이오프같은 경우 단기전이니까 조금 더 뛰었던 기억이 나요. 언니들이 잘 끌어주고 팀에서 배려해줘서 좋은 성적도 내고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Q.마지막으로 여전히 선수 하은주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항상 선수 시절에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셔서 제가 중간에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은퇴 후의 삶까지도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계셔서 항상 감사해요. 제게 주셨던 관심과 사랑을 웨이크업바디에 오는 선수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여자농구 많이 사랑해주시고, 후배들에게도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펼쳐 나아가고 있는 저 하은주도 항상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박상혁 기자, 신승규 기자, 유용우 기자, 윤희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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