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요? 제가 좀 잘 낚이는 스타일입니다“

김종수 / 기사승인 : 2022-08-09 04: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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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48)] '성리학자' 강을준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개그맨도 아니고 농구인일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쪽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더라고요. 하하핫…”


이제는 고양 오리온(현 데이원)의 마지막 감독으로 남게 된 농구인 강을준(57‧191cm)은 팬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 지도자 중 한명이다. 프로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대형사고를 친 것도 아니지만 어지간한 장수 감독보다도 이름값이 높다. 캐릭터적인 부분에서 유명세를 탄 이유가 크다.


“솔직히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이 농구만으로 평가를 받아야하는데 제가 하는 말 한마디가 계속 화제가 되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으니…,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억울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팬들이 좋아해주시면 만족합니다. 농구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과정에서 티클 만큼의 관심이라도 보탰다고 생각해야죠”


강을준의 첫 번째 지도 철학은 ‘소통’이다. 선수는 물론 코칭스탭이나 프런트 거기에 팬들까지…, 누구와도 터놓고 얘기하는 것을 즐긴다. 어차피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라 소통을 통해 오해 없이 발전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더불어 농구 실력에 앞서 인성, 자세 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고 윽박지르거나 욕설을 내뱉는 대신 상처받지 않게 돌려서 얘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말이 신세대 팬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특유의 사투리가 섞이면서 이른바 어록으로 둔갑하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유달리 제자들에게 관심 많은 선생님 정도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상황이 최근 트랜드와 맞물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는게 맞겠다.


최근 강을준은 자신이 아닌 아들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제77회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대회’ 남자 고등부에서 삼일상고가 용산고의 독주를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82-80으로 승부가 갈린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료부저가 울리는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용산고의 4관왕을 저지한 것을 비롯 2009년 이후 13년 만에 챔피언에 등극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날 승리의 주역은 종별 대회 MVP를 수상한 강을준의 장남 강지훈(203cm)이었다. 학창시절 강을준(1984년 수상)에 이어 부자 MVP 수상으로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골밑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제공권싸움에서 위력을 보이던 강지훈의 모습은 흡사 부친의 학창시절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장신 포워드는 많지만 빅맨 자원이 부족한 국내 농구 현실에서 좋은 재목이 나왔다는 극찬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이제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고 아직 갈 길이 멀죠. 아버지를 떠나 농구계 선배로서 대한민국 대표팀에도 기여할 수 있는 빅맨이 되면 좋겠지만 아직은 모든게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만하지 않고 더더욱 기본기를 갈고닦아 현재보다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하고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가져봅니다”


선수, 감독 시절에도 그랬듯이 강을준은 크게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 아들이 나아가는 길을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본인이 늘 지도 철학으로 가지고 있는 농구에 대한 기본기, 농구를 바라보는 바른 자세만 종종 얘기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팬들 사이에서 ‘성리학자’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강을준 오리온 전감독을 만나 그의 농구철학과 걸어온 길을 들어보았다.

 

 

 

“인성과 겸손함을 겸비한 농구인으로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Q.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당장은 별다른 것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은 두 아들 녀석 모두 농구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좀 가져주려고 해요. 감독 생활 하느라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시간이 있을 때라도 좀 더 바라봐주고 조언도 하고 그러려고 합니다. 아버지보다는 농구계 선배의 입장에서요. 사실 오리온 감독 그만둔 직후 몇몇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데이원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는 시점인지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까지는 기다리는게 맞을 듯 싶다는 생각이었죠. 매각절차도 마무리되고 창단식도 하고 그래야 정리가 되는 것이잖아요. 제가 막 배려가 넘치고 그런 성향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이 있잖아요. 구단이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전 감독이라는 사람이 인터뷰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오리온, 데이원 양쪽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마침 마무리가 된 상황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마음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네요. 연락 주신 타이밍이 딱 잘 맞았던 듯 싶어요.

Q.사실 오리온팬들은 감독님이 팀을 잘 이끌어주시고 이후 김병철 수석코치가 이어받아 가는 그림을 많이 원했잖아요.
아, 저도 그런 분위기는 압니다. 김병철 코치가 오리온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본인이나 이를 지켜본 팬들이나 서로간 애정이 남다르겠죠.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가타부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팀이 새롭게 바뀌었고, 또 바뀌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인사 구성에 대해서는 제가 의견을 꺼내는 것 조차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수, 코칭스탭, 구단프런트 등 각자 할 일이 다 다르잖아요. 능력도 좋고 준비된 코치이니만큼 좋은 기회가 생기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Q.지난달 29일 있었던 ‘제77회 전국남녀종별농구선수권대회’ 남자 고등부 우승팀 삼일상고 주전 센터 강지훈(MVP 수상)이 아들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사실은 외부적으로 아들 얘기를 잘 안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제 한창 배우는 아이들인데 혹시나 부담 느낄까 싶고 그래서요. 지금은 정말 아무 생각 안하고 자기 실력 쌓아가야 될 시기잖아요. 지훈이가 중2 때 농구를 처음 시작해서 기초나 그런 부분에서 부족한게 많아요. 공식적인 시합은 중3 때 좀 뛰고 이후에 고등학교 올라가서 얼마 있다 코로나가 터져서 1년 정도는 쭉 쉬었죠. 실전경험이 많이 부족해요. 농구시작한 이래 횟수로는 3년 정도 공식적인 시합을 뛰고 있는 것이죠. 다행히 열심히 훈련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은데 이제 시작이죠. 앞으로 갈길이 멀잖아요.

 

 

 


Q.늦게 시작한 것에 비하면 잘 성장하고 있네요. 아버님을 닮아 재능이 빼어난 듯 싶어요.
아닙니다.(웃음) 저야, 그냥저냥 선수 생활 보낸 사람이에요. 아버지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가 되어야죠. 대를 이어 운동하는 집의 모든 아버지들이 비슷한 마음 아닐까요. 재능보다는 성격적으로 하나에 몰두하면 되게 몰두하는 성향이 있어요. 이것은 운동선수로서 되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버지로서 생각하는 방향은 기본기에 더 충실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기본기가 튼튼하게 쌓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득점이 가능한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지금 키가 좀 크다고 이른바 신장빨로 골 넣는 맛만 들이면 어느 순간 정체기가 오게 될 경우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기본기, 기본기 강조하는 이유죠. 한창 관심을 많이 받아야 될 시기인데 감독 생활하면서 다소 소홀했던지라 늦게라도 많이 봐주려고 합니다. 경기장 등을 따라다니면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체크하면서 주말 같은 때 의견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잘하는 것은 따로 말할 필요 없고 못하는 것만 계속 잡아내고 있는 중이죠. 그러다보니 이 녀석이 엄마에게 가서 ‘아빠는 칭찬을 안해’라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웃음)

Q.꼭 축구선수 손흥민 아버님같아요. 어릴 때부터 유독 기본기를 강조하셨고, 해외 무대에서 알아주는 선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플레이적인 부분에서는 엄격하잖아요.
아휴…, 비교할 사람하고 비교해야죠. 저 욕먹습니다. 그냥 성장기 아들에게 신경 못 써준게 미안해서 시간 될 때 관심 가져주는 것 뿐입니다. 어쩌겠어요. 이왕지사 이쪽 길로 들어섰는데 그래도 잘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로 가서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면 더 이상 간섭이 필요없겠죠. 하지만 현재는 꿈나무잖아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아요. 그렇다보니 스스로가 더 신이 나서 계속 잘하게 될 가능성이 커요. 반면 못하는 부분은 감추고 싶고 때로는 짜증도 날거에요. 하지만 그것을 보완하지 못하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기 힘들죠. 어차피 큰 것은 감독, 코치님에게 배우겠고 저는 한 두발짝 떨어져서 그 부분에 대한 조언만 해주는 정도죠.

Q.현재 국내농구계에 장신포워드는 많지만 빅맨자원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아요. 그런 점에서 더욱 기대되는 선수같아요.
나중에 봐야죠. 저 역시 잘 성장해서 대표팀 골밑까지 지켜주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모든 면에서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잘하다가 대학교 혹은 프로가서 밀리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끊임없이 경쟁하고 살아남고를 반복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않을거에요. 자만하지 말고 묵묵하게 노력할 것을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맨발 신장으로 203cm거든요. 농구계 선배 입장에서 기대를 해보자면 205cm~207cm정도까지만 커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되면 신장대비 팔도 긴 편이니까 사이즈에서의 경쟁력 또한 확 올라갈 것 같아요. 말씀하신 데로 좋은 장신 포워드 자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지훈이가 잘 커서 수비, 리바운드 등 궂은일을 잘해주는 빅맨이 된다면 서로서로 얼마나 좋겠습니까. 키는 커도 잘 달리는 편이니까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열심히 해서 몸을 단단하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같습니다. 요새 추세는 빅맨도 어느 정도 슈팅 능력을 갖춰야 하니까 슛연습도 게을리하면 안되겠죠.

Q.잘 성장해서 예전 김주성같은 빅맨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핫…, 그렇게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김주성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보면 기량도 출중하면서 항상 겸손하잖아요. 성공한 선수들은 다 이유가 있어요. 늘 자신을 낮추고 성실하게 훈련하고 경기장에서는 치열하고, 이런 부분이 김주성을 스타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훈이에게도 늘 겸손을 배우고 경청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경청을 잘하고 대답도 크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마음을 가져야 이해도 빠른 법이거든요. 사실 초등학교 때 지훈이에게 농구를 권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본인이 거절하더라고요. 키가 크고 훤칠하니까 연예인 기획사 그런 곳에서 길거리 캐스팅도 당하고 그랬거든요. 물론 그런 쪽은 제가 반대했어요. 이후 키가 더 커지면서 중2 때 뒤늦게 농구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안 한다고 했다가 또 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한 3개월 정도는 반대했습니다. 공부도 곧잘 했는데 시기적으로 늦지 않았나 싶었어요. 하지만 본인 의지가 너무 강해서 결국 손을 들고 말았죠. 어쨌거나 늦게 농구를 시작한 친구들의 약점이 기본기거든요. 늦었다고 생각 말고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기초를 닦는 수밖에 없죠.

Q.차남 강영빈군도 농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현재 천안쌍룡고 1학년에 재학 중인데 아직까지는 너무 말라서 아비로서 좀 걱정되고 그러네요. 현재 맨발로 193cm인데 발가락, 손가락까지 성장판이 열려있다고 하니까 사이즈적인 부분에서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빈이에게도 지훈이에게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하고 있어요. 서두르지 말고 기초에 충실해라. 열심히 몸 만들고 기초를 탄탄하게 쌓으면 기술적인 부분은 이후에라도 충분히 장착할 수 있다. 무조건 기초다. 하면서 그 뿌리를 튼튼히 할 것을 강조중이죠.

 

 

 

“이현중같은 선수가 태어나는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Q.아참! 이현중이 태어나는데 도움을 주셨더라고요?

하핫…, 그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태어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표현은 너무 거창합니다. 무슨 탄생 설화도 아니고요.(웃음) 사실은 (이)현중이 아빠 엄마인 이윤환씨, 성정아씨와 모두 제가 친구입니다. 현중이 아빠와는 대학동문에 삼성에서도 같이 뛰었어요. 엄마는 삼성생명 전신 동방생명출신이고요. 대학교 시절이었어요. 어느날 윤환이 그 친구 사물함에 성정아씨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죠. 그래서 ‘저 사진이 왜 저기에 있냐?’고 물어봤더니 ‘저 선수 정말 매력 있지 않냐?’고 저한테 반문하는거에요. 그래서 ‘내 친구인데 한번 소개시켜 줄까?’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인연이 된거죠. 저희 집사람이 현중이 엄마 농구 후배에요. 그래서 종종 연락도 하고 지내는데 어느날 같이 가족끼리 치킨을 함께 먹은 적이 있어요. 그날은 현중이랑 저희 지훈이도 함께 있었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일거에요. 잠깐 밖에 나왔는데 현중이가 따라 나오더니 저한테 ‘부모님께 얘기들었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는거에요. 그 순간 현중이가 너무 귀엽고 기특해 보여서 허허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솔직히 제가 아니라고 해도 현중이 아빠 엄마는 인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될 인연은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그래도 어쨌든 거기에 끼어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그 자체로 정말 기쁜 일입니다.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권유였죠. 어릴 때 복도에서 막 뛰어놀다가 선생님께 딱 걸렸는데, 저한테 농구를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막 사이즈가 아주 좋거나 운동 능력이 돋보이는 케이스도 아니었는데 활발한 모습이 좋게 보였나 봐요. 당시 저는 농구가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그저 실컷 뛰어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냥 시작하게 된 거죠. 초등학교 때야 하다 안하다 그랬고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습니다. 반에서 뒤에 앉기는 했지만 눈에 띌 만큼의 키는 아니었고요. 외려 농구를 하면서 키가 큰 것 같아요. 아버님이 173cm 어머님이 165cm 정도 되셨어요. 예전 분치고는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빅 사이즈도 아니었죠. 형제 친척들 중에서도 제가 제일 크니까 장신 집안 그런 것은 아닌 듯 싶어요. 제가 191cm인데 신기한 것은 현역시절보다 나중에 더 키가 컸습니다. 한창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뛸 때는 188cm 그 정도 됐거든요. 은퇴 후에 키가 커지더라고요. 사회 생활하다 보면 키 재고 그럴 일은 별로 없잖아요. 어느날 건강검진 때 키가 그렇게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Q.처음부터 센터를 맡으셨나요?
아니요. 저는 가드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농구부에서 큰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중2 때 키가 부쩍 자랐고 4번 역할을 주로 맡게 됐죠.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대학교도 파워포워드로 입학했어요. 그런 관계로 고려대 시절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팀 내에 장신자원이 없어서 제가 센터를 보게 됐는데 언더사이즈인데다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이라 당황스럽더라고요. 어쨌든 이후 실업 시절까지 센터로 마무리를 하게 됐죠. 아무리 예전이었다고 해도 제 키로 센터는 벅찬 영역이었습니다. 2m안팎의 빅맨들이 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신장에서 밀리는 제가 할 일은 주로 수비였습니다. 제 입으로 센스있다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노하우와 요령으로 열심히 버티었어요. 체중도 80kg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큰 선수들을 맡았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한팀에서 뼈를 묻는 개념이라서 각팀간 라이벌 의식도 강했고 플레이 자체가 매우 터프했습니다. 매 경기가 전쟁이었죠. 전투력이 특출났던 시대라고 할까요.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싸웠습니다.

 

 


Q.그럼 지금 가드 포지션에서 뛰고있는 193cm의 이대성보다도 작으셨네요.
아! 그래요? (이)대성이가 키가 그렇게 되나요? 이상하다. 같이 서있으면 제가 더 크던데요. 키를 속인건가.(웃음)

Q.2002년 12월에 ‘농구선수들의 경쟁불안이 자유투 성공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석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어요.
명지대에서 석사마칠 때 쓴것이에요. 석사학위를 따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는 학업에 대한 열정도 강한 시절이에요. 석사 이후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다가 프로팀 LG감독으로 가게 됐죠. 정확하게 말하면 박사수료에요. 수료만 해도 강의하는 데는 아무 지장 없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 있던 시절이니까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사실 당시 논문을 좀 더 섬세하게 작성하고 싶었어요. 심리학적인 부분뿐 아니라 육체적인 상호관계까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경기 전 후에 선수들 피를 다 뽑아서 실험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잖아요. 명지대 뿐 아니라 타팀 선수들까지 함께 피를 뽑아야 되는데 누가 그렇게까지 해주겠습니까. 그래서 딴 방향으로 대처했던 기억이 납니다. 꼭 지도자 쪽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스포츠 심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까 이후에도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Q.무릎 부상으로 30대 초반에 은퇴했어요. 아쉬움이 컸을 듯 싶어요.
제가 무릎 수술만 3번을 했습니다. 구단에서는 몇 년만 더 해보자고 했지만 제가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일본에서 최종적으로 상태에 대한 진단을 받고 서울에서 마지막 3번째 수술을 했어요. 선수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수술이었습니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죠. 은퇴할 때 삼성전자 대리 말년이었거든요. 회사로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현중 부친 이윤환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삼일상고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농구에 대한 피가 꿈틀거리더라고요. 고마운 친구죠. 삼일상고에서 1년반 정도 했는게 그 기간 중 삼일중에도 공백이 생겨서 3개월 정도 겸하기도 했어요. 당시 삼일중 제자 중 한명이 이정석입니다. 이후 명지고로 갔는데 그때 김동우를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횟수로 4년 정도를 하다가 명지대로 간 것이죠. 명지대와 명지고는 같은 재단 소속이에요. 명지고 역시 명지대 소속으로 파견을 나간 겁니다. 때문에 명지대로 간 것은 복직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듯 싶습니다. 진효준 감독님이 골드뱅크로 가시면서 제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됐죠.

 

 


“우연의 연속, LG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명지대의 38년만의 창단 첫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다음해까지 2년 연속으로 정상에 섰죠. 그 전까지 우승경력이 없다가 갑자기 팍 성적이 나오니까 더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당시는 사정에 따라서 대회에 참가하는 팀 숫자가 달랐거든요.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우승도 기뻤지만 대다수 강팀들이 참가한 가운데 만들어낸 두 번째 우승이 더 값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진검승부의 성격이 강했으니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명지고 시절에도 그랬지만 처음 팀을 맡을 때는 성적이 안 좋은 상태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분위기와 전력을 다잡아서 우승을 시켰죠. 그래서 더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에도 저의 지도 철학은 비슷했습니다. 훈련시에는 기본기를 가장 중시했고요. 예의범절 또한 계속 강조했어요. 선수로서의 기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코트에 나가면 지더라도 적극성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또 말했죠.

Q.프로 등에서 스카웃 제의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명지고 시절부터 프로팀, 고려대 등에서 코치제의가 있었어요. 이후 명지대에서 10년을 있으면서 성적도 내고 하니까 어느새 꽤 이름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명지대를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자 여자 프로팀에서도 감독제의가 들어왔고요. 프로팀 코치도 여러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무엇보다 저에게 기회를 준 명지대에 대한 고마움이 컸고요. 더불어 전국 곳곳에서 발품 발아서 직접 스카웃한 송창무, 김봉수, 이시준, 변현수, 윤여권, 박대남, 김영수 등 유망주들의 성장도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프로 쪽으로 가면 경제적으로는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꼭 그것으로 모든 가치가 판단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결국 그 선수들 가지고 우승도 했고요. 저는 고려대를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도 제2의 모교는 명지대라고 항상 말하고 다닙니다. 제가 그 학교 출신도 아닌데 기회를 줬고 정말 많은 시간 동안 좋은 추억을 함께한 곳이니까요.

Q.감독, 코치 제의가 들어온 팀들이 많다는데 한팀이라도 밝혀 주실 수 없으실까요?
되도록 팀명을 밝히지않는 것은 어차피 저와 인연이 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거절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가 큽니다. 구태여 한팀만 말씀드린다면 그래도 친한 선배가 계시던 곳이 덜 부담스럽겠네요. 코치제의가 들어왔던 팀 중 김진 감독님이 계시던 동양 오리온스도 있었습니다. 당시는 명지대를 맡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믿고 맡겨주셨는데 프로팀에서 코치 제의가 왔다고 홀라당 가버리면 그건 정말 배신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절차상은 가능했지만 도의상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리온스에서도 좋게 봤는지 계속 연락이 왔고 안되겠다 싶어서 단장님을 직접 만나 사정을 설명했죠. 그리고 저 대신 다른 사람을 코치로 추천했습니다. 이후 오리온스는 김승현,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의 삼각편대에 김병철, 전희철까지 함께하며 우승을 차지했어요. 비록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축하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Q.프로에서 여러팀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들었는데 최종 선택은 LG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연이 계속해서 겹친 영향이 컸어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명지대 시절에 직접 발품을 팔아서 선수들을 보고 다니고 스카우트도 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시간 될 때마다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요. 어느날 스카우트차 부산을 가려고 비행기를 탔는데 그 안에서 당시 LG 이영환 단장님과 현재 KGC 사무국장으로 있는 김성기 국장님하고 마주쳤어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후 계속해서 학생들 시합이 있는 경기장 등에서 3번을 마주치게 됐죠. 단장님이 열정이 많으셔서 고등학교 시합도 보러 다니시더라고요. 어쨌거나 이런 인연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주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후 안덕수 KB국민은행 전 감독과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렸는데 거기에도 계신거에요. 마침 LG 선수들 전체가 회식을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전혀 몰랐죠. 그렇게 자꾸 마주치고 말을 섞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Q.그렇게해서 자연스럽게 LG감독으로 가게 된 것인가요?
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당시 구단 측에서 되게 세심하게 접근을 했어요. 어느날 스카웃 때문에 군산을 가있는데 김성기 국장님에게 전화가 왔더라고요. 당시 명지대 시절 제자인 송창무가 LG에 선발이 된 상태였거든요. 송창무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한번 만날 수 있냐는 거에요.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장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이 녀석이 혹시 사고라도 쳤나 등등 가는 내내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가니까…, 송창무건은 뻥이었고요.(웃음) 저를 올라오게 하려고 던진 말이었다고 하더군요. 핵심은 LG감독을 맡아달라는 것이었고, 그 정도까지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거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간 계속 마주쳤던 것도 운명으로 느껴졌고요.

“각종 어록이 나오게 된 비결요? 만화책을 많이 봐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Q.아마 시절에는 이것저것 간섭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는데 프로는 성인들이다 보니 한계가 있을 듯 싶어요.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저는 크게 신경 안 씁니다. 어차피 저는 팀을 이끌어야 되는 수장이고, 가르치는데 있어서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는게 신념입니다. 쓸데없이 자꾸 간섭하게 되면 정말 간섭이 되겠지만 경기력이나 팀에 관련된 부분은 제 스타일대로 해야죠. 제가 뭐 선수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는 것이고, 제가 잘 가르쳐서 선수가 잘되면 그게 만족인 것이잖아요. 예를 들자면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요리를 못하면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 없어요. 설사 재료가 다소 아쉬워도 잘 다듬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는게 요리사의 역할인 것이죠. 아무리 프로선수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하는게 맞습니다. 감독은 선수가 잘되게끔 이끌어 줘야 하잖아요. 하지만 같은 성인이니까 험한 말이나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직접적인 말은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돌려서 말하는 것을 많이 선택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말들이 팬들 눈에는 재미있게 느껴져서 어록으로 표현되기도 했죠.

Q.눈치를 안보신다는 점에서 특유의 신념이 느껴져요.
신념이랄 것도 없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프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프로가 프로답지 못하면 지적을 받고 잔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라고 지도자가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열 번을 칭찬받다가도 한번 지적을 당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열 번을 혼나다가 한번 칭찬받으면 그 기분이 한달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좋은 방향이 아니다. 프로라면 열 번을 칭찬받을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안될 경우에는 그렇게 되도록 나아갈 길을 만들어줘야죠. 물론 개성이 강하거나 고집이 센 선수는 이런 의도를 곡해하거나 귀를 꽉 막기도 해요. 하지만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도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가 잘못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발전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실천하는 선수가 결국은 성공합니다.

Q.팀 분위기 등에 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요. 농구는 단체 스포츠잖아요. 누구 한 두사람 잘하는 것 만으로는 성적이 나질 않아요. 다 함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결과물이 좋게 나오는 것이죠. 지난 시즌만 해도 코로나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위기가 많이 왔습니다. 그럴 때면 팀 분위기가 다운되기 십상이죠. 그럴수록 기 죽지 말고 어깨를 쭉 펴라고 강조합니다. 인상쓰고 있어서 잘 풀릴 것 같으면 저부터도 얼굴에 검정칠하고 눈에 힘주고 있겠죠. 하지만 그럴수록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개개인의 컨디션도 덩달아 떨어집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웃어라. 그리고 경기에서 지고 있다고 고개 숙이지 말고 더 당당하게 마음껏 플레이해라. 한 경기로 승부가 끝나는 것도 아니고 장기레이스에서는 언제든지 만회할 기회가 온다. 당당하게 할 것만 다하면 나머지는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습니다.


Q.기사나 여러 커뮤니티 게시글, 댓글 등에서 아쉬운 내용을 보게 될 경우 속상할 때도 있으시죠?
어차피 사람 감정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나에 대해 좋게 쓴 것을 보면 기분 좋고, 반대의 경우에는 축 가라앉거나 울컥할 때도 있죠. 하지만 그것도 프로스포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훈련해서 성적을 내기 위해 계속해서 뛰고, 팬들은 경기를 보거나 아님 각종 인터넷 게시글, 기사 등을 통해서 거기에 관한 정보를 얻고 소통을 하겠죠. 그런 것 또한 관심의 하나입니다. 감수해야 될 부분은 감수하고 그 안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려고 노력해야겠죠. 선수들에게도 늘 말합니다. 우리 혹은 나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좋아요. 화나요 숫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이 또한 팬들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라고. 솔직히 억울하거나 속상할 때가 왜 없겠습니까.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퍼져나갈 때는 정말 답답하죠. 저희도 노력할테니 팬분들께서도 그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너무 감사 할 것 같습니다.

Q.한두명도 아니고 선수단 전체를 돌보다보면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도 위치가 감독이고 나이를 먹었어도 한참 더 먹은지라 담대하게 언행을 가져가려고 하지만 한번 씩은 감정적으로 확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경기력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엄격하려고 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얘기도 많이 들어주고 되도록 따뜻하게 안아주려 합니다. 하지만 감독도 사람입니다. 늘 평정심이 유지되고 그러지는 않더라고요. 그럴 때면 저도 장난스레 선수들에게 ‘어떻게 내가 시즌 내내 맞춰주냐. 나도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알아서 할 때는 좀 척척척 해봐라’하고 볼멘소리를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선수들에게 고마운 것은 그런 말을 한 다음 날은 정말로 알아서 열심히 하더라고요.  

 

 

 


Q.인터뷰를 해보니 상남자 스타일이세요. 흔히 말하는 경상도 사나이? 선생님 느낌도 나고요.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약간 개그 캐릭터같이 된 부분도 있어요.
아이, 그러니까요. 저는 개그맨이 아니고 스포츠맨인데…, 그것을 또 요구하기도 해요.(웃음) 아마 그런 캐릭터로 자꾸 비쳐지는데는 이른바 어록 탓도 큰 것 같아요. 앞서도 말했다시피 저는 직접 적으로 험한 말을 하기보다는 돌려서 얘기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팬들 눈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나 봐요. 농구 중계가 시작되면 작전타임시 풍경도 자주 전파를 타잖아요. 경기가 안 풀릴 경우 감독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기울어진 분위기를 다잡아줘야 해요. 그렇다 보면 언성도 커질 수 있고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말도 나갈 공산이 크죠. 흥분을 안해야 되지만 흥분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하지만 선수들도 가족이 있잖아요. 선수들이 혼나는 경우 지켜보는 가족들 심정은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말을 돌려서 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Q.팬들 눈에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저도 당시에는 왜 그런 단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녹화된 화면같은 것 보면 저도 실소가 나올 때가 있어요. 제가 생각해도 참 신선한 단어나 문장이 마구 튀어나오더라고요. 어떤 기자님이 ‘어쩌면 그런 말을 실시간으로 그렇게 하세요. 혹시 책을 많이 보십니까?’라고 묻길래 ‘맞습니다. 저 책 많이 읽습니다. 만화책!’그렇게 답변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언젠가는 (이)대성이가 이해가 안되는 플레이를 하기에 ‘왜 그렇게 했어?’ 물었더니 ‘못봤는데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안 보이면 렌즈를 껴야지’라고 했더니 그게 또 화제를 모으더군요. 작전타임이 기대된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Q.때로는 그런 반응에 화나거나 어이없을 때도 있으시죠?
요즘은 스포츠 기사에 댓글기능이 없어져서 팬들 중에서는 소통공간이 줄었다고 아쉬워 하는 분도 있을 듯 싶어요. 공감 버튼으로만 의사표시를 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하지만 이것하나만 예를 들고 싶어요. 연못에서 개구리가 울고 있잖아요. 그것을 보고 우리는 장난으로 돌을 던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 돌에 맞으면 개구리는 죽어요. 어떤 선수도 지고 싶어서 경기장에 나가는 선수는 없어요. 경기에서 이기고 잘해야 본인 연봉도 올라가잖아요. 하지만 경기가 컴퓨터 게임처럼 척척 풀리는 것은 아닌지라 변수도 많고 뜻대로 잘 안될 때도 부지기수에요. 그러다 보면 팬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화나고 그럴거에요. 거기다가 작전타임 때 허탈해서 선수가 웃음이라도 지으면 ‘그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고요. 너무 상황 상황의 변화폭이 빠르다 보니 잘못 비쳐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생기게 됩니다. 조금만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왜 자꾸 이대성만 갈구냐고요?”

Q.어록이 뜨게 된 배경에는 특유의 사투리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생활을 많이 하셨는데도 사투리가 강하세요.

사실 평소에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생각나는게 하나 있는데…, 3~4년전 쯤 코로나 터지기 전 어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자님하고 똑같은 질문이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아, 저는 고향이 서울입니다’라고 농담으로 대답한 적이 있어요. 아니라 다를까 아무도 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제가 서울말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 고향이 서울이에요~’라고 말하니까 다들 뒤집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개그콘서트에 나왔던 허경환 같았나 봅니다. 제 말투는 서울말하고 경상도 사투리하고 중간이라고 보면 되요. 일부러 뭔가를 의식하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작전타임 등 긴박한 상황 속에서는 아무래도 익숙한 고향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그것도 그냥 순수하게 사투리로 나오면 차라리 나으련만 막 섞이는 것 있죠. 서울말인데 특정 부분에서 사투리가 강하게 섞어버리는? 쌀을 살이라고 하고 승리를 성리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팬들 눈에는 더 인상적으로 보여졌을겁니다. 심지어 선수들 조차도 가끔은 ‘감독님, 지금 저희는 어록을 라이브로 듣고 있습니다’라고 장난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저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이놈아, 나는 감독이지. 개그맨이 아니야’라고 답변하기도 합니다.(웃음)

Q.선수들과의 목욕탕 미팅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저는 소통을 중시합니다.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원팀’인데 그러려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소통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서로 할말 못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원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허리를 낮춰서라도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유죠. 목욕탕에서 선수들과 미팅하고 그런 것도 그런 이유가 컸어요. 어휴…, 그 장면이 스포츠뉴스에 나와 가지고. 아내가 교회 집사거든요. 어느날 교회를 나가니까 다른 분들이 ‘집사님, 목욕신 잘봤습니다’하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하더라고요.

 

 


Q.이대성과의 티키타카라고 할까요? 주거니 받거니하는 관계에 눈길이 많이 갔어요.
아…, 그 친구는 자유계약으로 오리온에 올 때부터 여러 가지로 참 재미있었죠. 기량도 좋고 예전부터 탐나던 선수였습니다. 어느날 중계를 보니까 인상이 어둡고 몸이 참 무거워 보였어요. 그래서 데려오려고 협상을 하던 시기에 ‘요즘 몸이 안 좋냐?’고 물어보니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하지만 제 눈에는 뭔가 너무 가라앉아있는 것 같아 보였어요. 마치 무거운 갑옷을 입고 축 쳐져 있는 듯한? 농구선수는 유니폼을 입어야지 갑옷을 입고 입으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갑옷을 벗겨주고 싶다는 발언도 하게 됐죠. 이후 훈련 등을 할 때 엉뚱한 모습을 보이면 ‘내가 너보고 갑옷을 벗으라고 했지. 갑빠를 내리라고 하지는 않았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대성이가 능글능글 성격이 좋아요. 제가 재미있게 말을 걸면 기가 막히게 받아쳐요. 그러다 보니 주거니 받거니 하는 그림이 나오고 기자님들이나, 팬분들 눈에 재미있게 비쳐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Q.작전타임시 이대성의 플레이에 대해 지적하는 장면도 많이 보였어요.
일단 대성이는 팀 내에서 참 좋은 모범 동료입니다. 후배들 잘 챙기고 선배들에게도 싹싹하게 잘하고 팀에게 건의할 것 있으면 본인이 나서서 말하는 등 솔선수범 그 자체죠. 다만 팬분들이 보시기에는 플레이에 기복이 심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 싶더라고요. 특히 클러치 타임 때 실수도 많이 나오고요. 너무 볼을 혼자 오래가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죠. 그것은 지나친 승부욕 때문입니다. 대성이는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워낙 강해요. 승부의 화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본인이 해결하려는 마음이 강해지고 더 내달리는 것 같아요. 결과가 좋으면 ‘역시 이대성은 승부사’다는 칭찬을 받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속내와 다르게 ‘왜 저러냐?’는 얘기도 나오겠죠. 일단 저는 감독이잖아요. 대성이 마음은 충분히 잘 알아요. 하지만 진정시켜줘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작전타임시 특히 대성이 쪽으로 잔소리가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이 보면 대성이만 갈구는 악덕 감독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어쨌거나 대성이가 키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도 만들어지는 겁니다. 한팀의 분위기를 잡고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선수죠.

Q.말씀 속에서 이대성을 아끼는게 느껴져요.
특별히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냥 이대성이 그런 선수다라고 말한 것 뿐입니다. 저는 성격상 누구를 특별히 예뻐하고 그런 성향은 적어요. 있는 그대로 말하기에 욕도 많이 먹고 그런 케이스입니다. 대성이는 운동화 끈을 푸는 순간 천사에요. 참 착한 친구에요. 자기 개성 확실하게 가져가고. 뭐라고 정확하게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주변과 사회에 좋은 일도 많이 합니다.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 친구죠.

Q.가감없이 말하다보니 손해도 좀 보시잖아요.
그렇죠. 언론에다가도 좀 영리하게 말해야 하는데 곧이 곧대로 말하다보니 안 먹어도 될 욕도 먹고 그랬죠. 이른바 낚는다고 하죠. 제가 직선적이기도 하고 뭔가를 인용하는 답변을 많이 하다 보니 일부러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많아요. 안 물 것은 안 물어야 되는데 저는 또 덥썩 물어버립니다. 잘 낚이는 스타일이죠. 하하핫…, 그래도 팬들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개그맨도 상관없습니다. 국내 농구 많이 사랑해주세요”

Q.LG시절부터 오리온까지, 외국인선수들과 마찰이 좀 잦으셨어요.

후아…, 좀 그랬었죠. 제가 경기 자세나 팀워크를 저해하는 행동을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 못하니까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일단 본격적으로 제 어록을 유명하게 만든 아이반 존슨을 예를 들면, 이 친구는 돌발행동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몰라요. 경기중에도 갑자기 체육관 밖으로 나가버려요. 왜 저러냐 싶어서 물어보면 화장실 간다고 하는 등 기분 내키는 데로 행동할 때가 잦았죠. 그들의 문화와 성향을 존중하지 않겠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개성을 표출하는 것과 규칙을 어기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더불어 외국인선수들도 적응하기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고요. 여기는 KBL입니다. NBA가 아니에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은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KBL에 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한 댓가를 받고 뛸 마음으로 온 것인데 그렇다면 지나친 돌발행동은 스스로 자제하려고 노력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그렇다면 아이반 존슨이 최악의 말썽꾸러기였을까요?
아닙니다. 존슨은 성격이 좀 그래서 그렇지 경기에서 이기려는 의지나 승부욕은 있었어요. 돌발행동도 하고 그랬지만 승부에 집중할 때는 잘 집중하기도 했고요. 실력 또한 출중한지라 당시에도 달래가면서 쓰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미로슬라브 라둘리차는 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외국인선수 유형이 국내 선수를 무시하는 케이스입니다. 어지간한 국내 선수들보다 잘하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팀전력에 보탬이 되려고 선택했죠. 하지만 본인 혼자만 잘났고 동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개인은 물론 팀워크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라둘리차의 경우 해외에서 커리어가 상당한 선수였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KBL에서는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팀원들까지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하도 화가 나서 개인적으로는 ‘라돌’이라고 불렀습니다. 팀 패턴에 참여할 생각도 안하고 설렁설렁 움직이기에 예전 리그에서 뛸 때 모습을 참고해서 새로운 패턴도 만들어줬어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위주로. 그래도 제대로 안하기에 물어봤더니 ‘쟤가 제대로 못 움직여줘서 슛 타이밍을 놓쳤다’는 등 온갖 변명만 늘어놓는 거에요.

Q.칼레이 해리스, 데릭 존슨, 아이반 존슨 등 KBL에서 악동으로 분류됐던 선수들은 그래도 경기장에서는 잘했는데요.
그러니까요. 아시다시피 경기력으로 보여준게 제대로 없음에도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맞춰주기를 원하고 마음에 안 들면 삐져서 마음대로 행동해요. 대성이가 영어가 좀 되거든요. 대성이가 어르고 달래도 말을 들어 먹지를 않아요. 동료들 무시하고, 구단 욕하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국내 선수들까지 모두 열이 받아버린거에요. 막말로 뭔가를 보여주고서 악동 짓을 하던지…, 부진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면서 그런다는 것은 너무 뻔뻔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팀 사기까지 떨어집니다. 오죽했으면 막내 (이)정현이가 ‘감독님, 그냥 저희끼리 뛰죠’라고 말할 정도였다니까요. 다른 것을 떠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도 말을 안합니다. 그냥 기간 채우고 돌아간다는 말만 반복하고요. 에이전트를 불러서 얘기해봐도 미안하다는 말만 하던데 그런 말을 듣자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이유를 알아야 내가 변하든 아님 대안을 마련할텐데 정말 답답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데본 윌리엄스같은 경우도 역시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경기도 제대로 안 뛰면서 불만만 가득했고 왜 그러는지 소통도 되지 않았고요. 다행히 머피 할로웨이같은 성실한 선수가 열심히 해줘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요. 할로웨이 봐요. 묵묵히 본인이 할 일을 잘해주니까 찾는 팀도 많잖아요.

Q.마지막으로 농구인 강을준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에게 인사말씀부탁드릴께요.
감독으로서 시즌을 치르면서 감동적인 순간도 많았습니다. 특히 팬들의 관심을 느낄 때면 더없이 가슴이 뭉클해 졌어요. 장난삼아 어록의 비결이 만화책이라고 하니까 어떤 어린이 팬이 ‘감독님, 저도 만화책 좋아해요’라는 현수막을 들고 응원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이런 것 하나까지도 기억하고 함께 해주는구나 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습니다. 플레이오프 치를 때는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와서 응원해주시는 모습에 너무너무 감사했고요. 그러한 관심에 좀 더 많은 승리로 보답했어야 하는데 죄송한 마음도 큽니다. 보내주신 사랑의 깊이를 아는 만큼 팬분들만 즐거울 수 있다면 어록 등을 통해 개그맨같은 이미지로 비쳐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국내 농구 사랑해주시고 발전해나가는 모습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KBL 제공, 유용우 기자, 박상혁 기자,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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