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존스와 크리스 랭 조합? 저도 궁금합니다”

김종수 / 기사승인 : 2022-05-03 05: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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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34)] '잡초' 이상윤

 

 

 

현재 수원 KT의 전신은 광주 나산 플라망스다. 농구대잔치 시절 기업은행을 이어 프로 원년부터 함께한 나산은 두텁지않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선전을 거듭하며 만만치않은 위상을 과시했다. 문제는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모기업이 자본이 튼튼하지 않았던 관계로 선수단 운영에서부터 늘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팀은 구단 식당에서 뷔페를 먹고 호텔에서 잠을 잘 때 백반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아파트 한 채에서 선수단 전원이 잠자리를 해결하는 등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쌍방울 레이더스와 비슷했다.


이는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등 모기업과 연고지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전력보강은 커녕 팀 운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동미사일’ 김상식, ‘백만돌이’ 전형수 등 팀내 간판급 스타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눈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팀 분위기 만큼은 매우 좋았다. 당시 핵심 멤버로 활약했던 중국 지린 청소년팀 김용식 총감독, 변청운 성남초등학교 농구부 코치 등은 ‘농구人터뷰’를 통해 “이런저런 것을 떠나 기본적인 숙식에서부터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서로가 아끼는 마음 만큼은 정말 깊었다. 외부의 시선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끼리는 정말 돈독했다. 트레이드 등으로 팀을 떠나야 되는 선수들 조차 눈물을 흘리며 가기싫다고 표현했을 정도다”며 서로간 애뜻했던 시절을 회고했다.


그중 2002~03 시즌 플레이오프때의 코리안텐더가 일으켰던 돌풍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전력만 놓고 보면 꼴찌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더니 6강에서 강호 삼성까지 격파해버린 것이다. 비록 최강팀 동양과의 4강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전력 이상의 투지를 보여준 코리아텐더 선수단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주가가 크게 오른 인물이 있었으니 당시 팀을 이끌었던 ‘형님 리더십’의 이상윤(60‧184cm) 감독대행이다. 어려운 팀 상황 속에서 선수들과 동거동락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40대 초반 지도자를 향한 주변의 관심은 대단했다. 이전까지 철저히 무명이었던 그는 단숨에 농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으로 떠올랐다.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졌고 결국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SK 사령탑으로 전격 발탁되기에 이른다.


이후 이상윤은 SK, 구리 금호생명을 거쳐 상명대학교 농구부까지 지도하며 KBL, WKBL, 대학농구를 모두 경험한 지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현재는 프로농구, 대학농구리그 해설위원으로 팬들과 소통하고있는 농구인 이상윤을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해설위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팀을 만들면 안됩니다”

Q.드디어 챔피언결정전을 치를 두팀이 확정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은가요? (인터뷰는 챔피언결정전이 확정된 직후 진행되었다)
아휴…, 그건 정말 알수 없는 것 같아요. 우승후보 KT가 그렇게 허망하게 물러날줄 누가 알았겠고 전력누수가 만만치않은 KGC가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올지도 쉽게 짐작하기 힘든 부분이었잖아요. 보이는 전력만 놓고보면 SK가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요. 풀전력으로 붙으면 KGC도 해볼만하겠지만 6강부터 지금까지 7경기를 뛰었잖아요. 거기에 주전의존도도 높은 팀인데 오세근, 전성현, 변준형 등 주축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어요. 그동안 빠져있던 오마리 스펠맨이 돌아온다고는 하지만 몸상태는 둘째치고 컨디션 회복에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고요. 반면 SK는 3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고 팀을 정비하고 상대팀을 분석할 시간도 많았어요. 단기전으로 간다면 KGC의 업셋가능성도 있겠지만 시리즈가 길어질 경우 아무래도 SK가 유리한 부분이 많을 듯 싶습니다.

Q.여러 악재를 딛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른 KGC의 저력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도 많더라고요.
보통 정규리그같으면 객관적인 전력에 따라서 순위가 비슷하게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장기레이스이다 보니 좋은 선수가 많고 선수층 두터운 팀이 유리하죠. 반면 플레이오프는 좀 달라요. 전력에서 앞서는 팀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겠지만 정규리그와 비교해 변수도 많고, 또 특정팀이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 무섭게 변하기도 하거든요. KGC가 좋은 예가 아닐까 싶어요. 1옵션 외국인선수가 빠져서 힘들 것이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한번 분위기가 올라가니까 그야말로 파죽지세잖아요. 서로간 차이는 조금씩 있어도 플레이오프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 전력은 있다는 증거에요. 그 상태에서 어떤 페이스를 타느냐가 적지않게 중요한 요소같습니다. KGC는 그런 부분이 잘되고 있죠.

Q.양팀에서 키포인트가 될 선수로는 누굴 꼽을 수 있을까요?
다들 KGC에서는 전성현을 많이 꼽더라고요. 워낙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외곽슛을 넣어주는데다가 폭발력까지 있으니까요. 또 분위기 바꾸는데는 중요한 순간 터지는 3점슛만한게 없잖아요. 전성현의 슛이 잘 들어갈수록 나머지 동료들에게 찬스도 많이 갈 것이고요. 본인이 해결사이자 미끼도 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오세근의 활약상을 주목하고 싶어요. 아무리 그래도 KGC는 오세근의 팀이잖아요. 전성현의 외곽슛, 변준형의 돌파, 양희종과 문성곤의 미친 수비 등 옵션이 많은 팀이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들이 잘되는 데에는 오세근이 골밑에서 중심을 잘잡아주고 있는 영향이 크죠. 당장 오세근이 빠진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머지 선수들이 엄청난 집중견제에 시달리면서 특유의 색깔이 옅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 봐요. 아무리 그래도 농구는 확률의 스포츠잖아요. KGC는 오세근이 존재하기에 가지고가는 장점이 많은 팀이에요. SK와의 포지션 비교에서도 KGC가 자신있게 앞선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고요. 반면 SK에서는 최준용이 오세근 역할을 해줘야겠죠. 그렇지않아도 잘하는 선수였지만 최근에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달리고 있잖아요. 기량에 노련미까지 더해지면서 SK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죠. 오세근이 골밑에서 활약해준다면 최준용은 내외곽을 오가며 득점에 패싱게임까지 다 관여하고 있잖아요. SK의 컨트롤타워가 잘 돌아갈수록 팀은 더 강해지겠죠.

 

 

 

 

Q.지도자 출신으로서 플레이오프 등을 보고 있노라면 피가 끓고 막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웃음) 이건 저뿐만 아니라 농구인들이라면 다 비슷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최근 해설자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농구에 대해 새로운 눈도 떠지는 느낌이에요. 안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는 또 달라요. 좀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할까요. 해설을 하려면 많은 준비와 공부를 하게되는데 그러다보면 한경기 한경기 되게 분석적으로 보게되고 그런 점이 흥미를 더 유발시킬 때도 많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농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기는 했어요. 더불어 데이터의 중요성도 한결 더 느끼고 있습니다.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아, 이래서 이팀이 더 잘할 수밖에 없었구나’등이 어느정도 나와요. 아무래도 데이터 등이 발전하지않은 예전에 지도자 생활을 했던지라 여유가 좀 부족했다고 할까요. 매경기 고민하고 생각은 많이 했지만 데이터에 따른 분석 부분은 지금보다는 소홀했죠. 상대팀 비디오나 보고 그런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요.

Q.해설을 하다보면 후배 지도자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싶을 때도 많을 듯 싶어요.
있기야하죠.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좀전에 얘기한데로 안에서는 미처 보기 힘든 것들이 밖에서는 보이니까요. 원래 바둑이나 장기도 훈수두는 사람이 더 잘 본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되도록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제가 지도자를 해봤으니까 그 고충을 잘안다고 할까요. 한 예로 과거 SK 감독을 할 때 중요한 경기에서 막판 박빙의 승부를 한 적이 있어요. 경기종료까지 승패를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그러다가 종료를 1분여정도 남겨놓은 작전타임때 조상현 현 LG감독이 허리가 아파서 못뛰겠다는거에요. 중요한 순간인데 못뛰겠다고하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선수도 도저히 안되겠으니까 그런 말을 한 것 아니겠어요.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수를 대신 내보냈고 그 경기를 졌어요. 그랬더니 중계를 하고있던 해설위원이 ‘박빙의 상황에서 주전 슈터를 빼는 경우가 어디있느냐. 엉뚱한 교체 때문에 팀이 졌다’고 막 비난하는거에요. 경기 종료 후 팬들 역시 난리가 났었죠. 정말 억울하더라고요. 누구는 빼고싶어서 뺐겠냐고요. 이렇듯 경기장 안에서는 미처 알기 힘든 변수가 많아요. 때문에 저도 해설을 하다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순간이 와도 어림짐작으로 속단은 하지않으려고합니다. 다 알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Q.10개구단 중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이 있으실까요?
이건 단호하게 얘기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없습니다.(웃음) 어차피 10개 구단 지도자, 선수들 고르게 알고 있기도 하고 해설위원이라는 직책까지 가지고 있는지라 매사에 공정성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경기를 보려고해요. ‘해설위원은 농구팬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는 모르겠으나 해설위원이 된 다음에는 그런 마음은 버리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해설위원의 한마디에 따라 팬들이 특정 팀이나 해당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거든요. 어쩌다 지고 있는 팀에 감정이입이 될때도 있기는한데 그럴때면 금세 정신을 추스르고 이기고있는 팀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언급하려고 노력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팬들은 다들 본인 응원팀에 대한 애착이 강하잖아요. ‘어…, 저 해설 왜그래?’라는 소리는 안들으려고합니다. 때문에 쿼터가 끝난 후에 캐스터에게 ‘나 어떤 팀에 너무 집중된 것 같아요?’라고 한번씩 물어보기도해요.


 

 

 

“처음에는 키가 커서 빅맨을 맡았습니다”

Q.농구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중학교 2학년때였어요. 농구부에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당시 키가 큰 편이었던지라 추천을 받아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당시 키가 175cm정도 됐던 것 같은데 그때 기준으로는 큰편이었죠. 180cm까지는 금방 자랐고 이른바 키빨을 좀 받았습니다. 이후에 아예 안커버려서 문제가 됐지만요.(웃음)

Q.처음에 포지션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무래도 키가 컸으니까 4번 포워드를 봤죠. 이후 키가 크지않으면서 고등학교 때는 3번, 대학교, 실업에서는 2번까지 내려가게 됐습니다. 처음에 키가 작아서 가드를 봤다가 이후 성장하면서 빅맨까지 가는 선수들 같은 경우 유리한 점이 많아요. 가드시절에 훈련했던 볼핸들링이나 슈팅능력 등이 큰 자산이 되거든요. 하지만 저는 반대 케이스인지라 손해본 것도 있었죠. 하지만 뭐 세상 모든 일은 결과론이니까요. 어차피 한때 키가 커서 농구계에 입문하게된 케이스인데 처음부터 작았더라면 다른 길을 갔을지도 모를일이죠.

Q.대학시절까지 쭉 무명이었음에도 성균관대 출신으로는 2번째로 실업 무대에 들어갔어요.
그렇죠. 박광호 선배님 다음이죠. 대학시절 주장을 맡으면서 게임도 많이 뛰고 4학년 때는 농구대잔치 8강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고 고려대를 꺾고 대학부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어요. 나름 성적이 좋아지면서 실업팀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삼성전자로 들어간 후에는 경기를 거의 못뛴 것으로 알고있는데 당시 팀내에 쟁쟁한 스타가 많았던 듯 싶어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굉장했어요. 당시 15~16명중 전현직 국가대표가 12명인가 됐어요. 김현준, 신동찬, 조동우, 임정명, 김진 등 쟁쟁했죠. 제가 파고들 틈이 없었습니다. 그때 동기인 전창진 감독하고 둘이 고생 많이 했죠. 같이 투덜투덜거리면서 볼닦고 물뜨러다니고 그랬어요. 본래는 한국은행하고 입단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어요. 당시 한국은행 측에서 ‘군문제는 해결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신검 받을 예정이다’고 했더니 ‘상무에 입대하면 안되고 방위가 되면 받아주겠다’고 답변이 왔어요. 당시는 32개월 시절인데 상무에 가서 몸이 망가져서 돌아오는 선수가 워낙 많았어요. 일정도 타이트하고 훈련도 고된 편이었죠. 지금과는 사뭇 달라요. 어쨌든 신검을 받았는데 ‘3급을’이 나와서 현역 입대자로 분류됐어요. 재미있는 것은 저까지만 그렇고 다음 해부터는 방위 케이스로 분류되더라고요. 인연이 없었던 것이죠. 그런 이유로 삼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한국은행으로 갔으면 지금과는 인생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은행원의 인생을 쭉 살았을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결국 군대가서 산악훈련받다가 무릎연골 나가고 의병 전역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 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 같았으면 은퇴를 안하고 한번 더 기회를 받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의술이 발달해서 어지간한 연골파열 등은 수술과 재활도 가능해졌잖아요.


 

 

 

“우연한 기회로 농구와 다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Q.삼성전자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영업사원으로 취직해서 10년을 계셨어요. 말 그대로 냉장고를 팔러다니는 일이었나요?

아…, 이게 일반적으로 아는 영업사원 등처럼 가가호호 찾아가서 물건팔고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영업부로서 업체를 상대로 하는 일이었죠. 아이스크림 냉장고라는게 일반인들이 막 취급하고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밤새가면서 일을 배우는 등 나름 열심히해서 한때 80억대 매출도 올리고 그랬어요. 당시를 생각하면 상당한 규모인거죠. 처음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래처들을 많이 맡았어요. 아무래도 농구인 출신인지라 기대치가 적었던 이유가 컸겠죠.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지않고 정말 열심히했고 나중에는 경쟁사들 다 이겼어요.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물론 커피 자판기 등도 많이 팔았어요.

Q.당시에는 농구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별로 안들었을 것 같아요.
농구관련 일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기회가 올까 싶었죠. 그러던 중 삼성전자가 농구단 프런트쪽에 결원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거론되었습니다. 이인표 부장님이 직접 저희 영업부에 오셔서 ‘이상윤이 필요하니 우리에게 달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영업 일을 10년 정도하다보니 지겨워지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시기였거든요. 더욱이 농구 관련 일이면 얼마나 좋아요.

Q.그럼 바로 합류하신 것인가요?
아뇨.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나요. 회사 생활하신 분들 아시잖아요. 내가 하고 싶다고 즉각즉각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당시 사업부장님께서 거절하셨어요. 제가 실적이 좋았기도했지만 앞으로 저말고도 은퇴한 농구 선수 출신들이 영업부로 올 수도 있는데 완전히 정착해서 성공한 케이스로 선례를 남겨놓는 것도 좋을 듯 싶다는게 이유였죠. 본래 제가 은퇴하고 얼마 안되었을 당시 성균관대에서 지도자 제의도 들어온 적이 있어요. 잠깐 고민도 했지만 영업부 계신 분들이 ‘여기가 더 안정적이고 낫다’라고 해서 남게된 것이거든요. 하지만 가슴 한켠에서는 농구쪽 일을 하고 싶다는 미련이 남게 되더라고요. 그대로 농구와의 인연은 끊기는가 싶었는데 반전이 일어났죠. 허락이고 뭐고 그룹 비서실에서 직접 발령이 떨어져버렸습니다.

Q.아 그럼 드디어 농구쪽 일을 하게 된 것인가요?
아니요.(웃음) 비서실에서 1년 남짓 일을 했어요. 한마디로 10년동안 일했던 영업부일만 안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프로농구가 시작되면서 농구단 쪽에 인력이 더 필요해지고 아무래도 제가 농구인 출신이니까 그쪽으로 불려가서 창단업무 일을 담당하게 됐어요. 그렇게해서 농구 프런트일을 하게된거고 농구계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삶은 계란 두어판 사서 나눠먹으면 그게 회식이었죠”

Q.2002~03 시즌에 감독 대행으로 코리아텐더를 지휘하게 됐어요.

말이 감독대행이지 거의 빈자리 메우기였어요. 그것도 거의 형식상만요. 전임감독님께서 그만두신게 구단이 너무 가난해서 돈을 줄 수가 없었던 이유가 컸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가까스로 구단은 유지해야 되니까 저에게 감독 대행자리를 제시한 것뿐인데 코치도 없었고 계약조건도 연봉이 아니라 월봉으로 받았습니다. 액수도 적었을뿐더러 매월 갱신하는 방식이었어요.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이번달 월급주고 다음달부터 하지말라고하면 바로 그만둬야 되는 상황이었죠. 실업시절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케이스가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전 농구가 좋았고 우리팀 선수들이 좋았기에 함께 갔습니다.

Q.재정난 때문에 팀의 미래로 불리던 전형수까지 현금 트레이드 될 때는 앞이 캄캄 했을 듯 싶어요.
휴우…, 어쩔 수 없었죠. 구단에서도 금전적인 부분 등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거에요. 구단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테니까요. 감독대행 입장에서는 있는 자원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언론을 통해서 이미 많이 보도된바 있지만 당시 다들 고생 정말 많이했어요. 34평짜리 아파트 두채서 한 채는 선수단 15명이 포개서 자고 나머지 한 채에서는 저, 운전기사, 트레이너, 밥 해주는 아줌마 등이 함께 지냈죠. 식사시간이 오면 저희가 묵던 곳으로 와서 교자상 피고 함께 밥먹고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장정 15명이 아파트 한 채에서 잔다는게 정말 믿기 힘들 정도죠. 더욱이 농구선수들 아닙니까. 작은 선수도 180cm는 되는데, 어찌 지냈을까 싶어요. 잠자리도 그렇고 먹는 것도 많이 부실했습니다. 운동선수들 아닙니까. 얼마나 식성이 대단했겠어요. 돈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죠. 경기후 승리 수당이라는게 있었어요. 큰돈은 아니지만 조금씩 차등지급되었는데 A로 평가되면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더 받았거든요. 그래봤자 몇만원 정도지만. 그럼 그 돈을 받은 선수들이 쏘는거에요. 목욕탕가서 목욕하고 음료수랑 삶은 계란 두어판 사서 함께 나눠먹는 것이죠. 일종의 회식이었습니다.

Q.그래도 팀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팀원들간에도 끈끈하고요.
좋았죠. 함께 고생을 해서인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 안에서 있었던 서로가 공유할 뿐이죠. 어려움도 함께 하고 마음도 나누다보니 끈끈한 정같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Q.당시 외국인선수가 에릭 이버츠와 안드레 페리였어요. 둘다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들인데 팀컬러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뽑으신 것이겠죠?
이버츠는 재계약을 한 것이고요. 페리는 그전 시즌에 삼보(현 DB)에서 뛰었었죠. 페리가 기량은 좋은데 성깔이 좀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전 소속팀이랑 재계약을 못한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는 경험자가 필요했어요. 구단에서도 그것을 요구했고요. 있는 자원 중에서는 페리가 안정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신장은 크지않지만 운동능력이나 탄력이 좋은지라 골밑에서 몸싸움, 리바운드 등을 잘해줬고 이버츠가 내외곽을 오가면서 득점을 올려줬죠. 이버츠야 워낙 묵묵하고 성실했고요. 페리 역시 투덜투덜대면서도 할 것은 다 했어요. 무엇보다 뛰는 농구를 추구하는 팀 색깔과 잘 맞았던 선수들이었죠.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열심히 함께 해줬다는 점에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궁금합니다. 단테 존스와 크리스 랭의 조합”

Q.이후 좋은 조건으로 SK로 가셨어요. 가면서도 함께 고생했던 코리아텐더 식구들이 눈에 밟혔을 듯 싶어요.

그게 참 이래저래 힘들었어요. 일부에서는 고생했던 팀원들 버리고 혼자만 쏙 빠져나갔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상황이 조금 달랐어요. 일단 SK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저한테는 일생일대의 기회잖아요. 코리안텐더가 다른 팀들처럼 평범한 구단이었으면 고민을 깊이 할 필요도 없었을겁니다. 이것저것 재면서 어떤게 저한테 유리한지 생각한 후 남던가 갔던가 그랬겠죠. 그게 일반적인 경우죠. 일단 저는 코리안텐더에 남는 것이 먼저였어요. 그래서 구단측에 ‘이렇게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하면 좋겠냐?’고 상의했죠. 그랬더니 구단에서는 ‘곧 새로운 곳에 인수될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라’그러는거에요. 아니, 어떻게 무작정 기다립니까. SK측에 싫다 좋다 답변을 해야만하잖아요. 그래서 ‘그럼 SK제안을 거절하고 남을테니 1년만이라도 재계약을 해줘라. 그래야 나도 선수들과 함께 기다릴 것 아니냐’고 말했는데 그것은 또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을 뽑는 것도 새로 인수할 구단에서 할 일이다는 거에요. 만약 제가 SK제안을 거절하고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새로운 구단에서 ‘너 안써’그러면 저는 공중에 붕뜨게 되는거잖아요. 저도 한가정의 가장인데 그럴수는 없었던말이에요. 최소한의 보장만해줬더라면 저는 끝까지 당시 멤버들과 함께 했을겁니다.

Q.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SK에 가셔서 성적이 안좋았고 결국 중도 경질된 후 더 이상 KBL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선택이 후회스럽지는 않으셨나요?
선택 자체에 대해서는 후회같은 것은 없어요. 다만 당시 저의 의견이 반영이 거의 안되서 아쉬움이 좀 있을 뿐이죠. 어차피 경기는 선수가 뛰는 것이잖아요. 일단 감독이 원하는 선수 구성이 되어야 뭔가를 해볼 것 아니에요. 그런 부분에서 뭔가 제대로 틀을 짜보지 못한 점이 속상하기는 했어요. 감독과 선수는 실과 바늘같은 존재에요. 선수도 감독을 잘 만나야 하지만 감독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가 필요해요. 그래야 서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펼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선수에게 충분한 출장시간과 기회를 줌으로서 성장을 할 수 있게해주고, 감독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성적이 나오면 이른바 명장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죠.

Q.예를 들면요?
시작부터 꼬였습니다. 제가 오기 직전 시즌에 리온 트리밍햄이라는 외국인선수가 SK에서 굉장한 활약을 펼쳤어요. 전시즌 득점왕도 차지했었죠. 당시 외국인선수하면 마르커스 힉스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겠지만 순수한 기량으로는 트리밍햄이 앞섰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양선수가 말그대로 경기 내내 쇼다운을 펼쳤는데 힉스가 일방적으로 당해버렸어요. 정말 수준차가 날정도로요. 막판에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지고 화가난 힉스가 엄청난 파워 덩크를 찍어버렸는데 사실상 승부가 결정난 상황에서 트리밍햄이 슬쩍 양보해준 것처럼 보일 정도였죠. 이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복이지만 문제는 부상이었어요. 전시즌 막판에 어깨가 빠지는 부상을 당했었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다 나았다고해서 재계약을 했어요. 근데 나은게 아니더라고요. 어깨가 아프니까 제대로 경기도 못뛰고, 뛴다고해도 예전 기량이 나오지않고요. 당시는 외국인선수가 2명이 뛰던 시절이에요. 한명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야말로 치명적이거든요. 안되겠다 싶어서 바꾸자고 했는데 구단측에서는 계속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는거에요. 패배는 쌓여가고 있는데요. 결국 여차저차해서 시즌 중반에 트레이드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여러 가지면에서 흐름이 넘어가버린 후였죠.

Q.다음 시즌에는 좀더 신중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싸워볼 틀을 만들어놓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준비를 꼼꼼하게 했죠. 일단 황성인을 LG에 주고 전형수를 받아오면서 외국인선수 1라운드 지명권까지 받아왔어요. 당시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제도는 전시즌 팀 성적이 반영됐어요. SK도 성적이 좋지못했고 LG도 그보다는 나았지만 높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결과적으로 저희팀은 1라운드 6순위 안에서 둘을 뽑을 수 있었어요. 엄청난 메리트였죠. 그런데 상황이 확 바뀌어버렸어요. 단장 회의에서 외국인선수 제도를 갑자기 자유계약제로 바꿔버리더라고요. SK가 6순위 안에서 외국인선수를 두명 뽑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서 극도의 견제가 들어간거죠. 결국 실컷 만들어놓은 플랜이 다 망가져버렸죠. 그럴 경우 당시 저희팀 단장께서는 반대를 했어야 맞지만 찬성을 하셨더라고요. 그게 뭡니까? 정말이지 허탈하더라고요.

Q.어쨌거나 새로 바뀐 제도에 맞춰서 외국인선수를 뽑는데 정성을 쏟았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자유계약제에 맞춰서 또 열심히 외국인선수 찾으러다녔죠. 이미 엎어진 물이니까요. 그렇게해서 데려온 선수가 크리스 랭하고 레너드 화이트에요. 랭이야 말할 것도 없고 화이트도 기량이 좋은 편이라서 처음부터 팀이 잘 돌아갔어요. 두선수가 활약하면서 시즌초 1위를 달리게 됐죠.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했어요. 경기중 갑자기 화이트가 아랫배가 아프다는거에요. 그래서 검진을 했는데 의무 트레이너는 물론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있던 주치의까지도 병명을 모르겠다는거에요. 선수는 아프다고하고 병원측에서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할 수 없이 대체 외국인선수를 부랴부랴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량적인 부분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연달아 실패가 났어요. 결국 랭 혼자 뛰는 경우까지 종종 생겨났고 그해 외국인선수 농사를 실패하면서 팀성적까지 급추락해버렸죠.


 

 

 

Q.대체 외국인선수를 뽑는 과정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아예 없었나요?
있었어요. 단테 존스라고. 그 선수가 SBS에 대체 선수로 들어가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잖아요. 거기 가기 전에 저희 레이더 망에도 들어왔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데리고 오고 싶었죠. 하지만 구단이 협상하는 과정에서 서로 안맞는게 있었고 결국 놓쳐버렸어요. 생각해보세요. 농구 팬들이라면 알잖아요. 랭이 어떤 빅맨이고, 존스가 어떤 스윙맨이었는지. 만약 두선수 조합이었다면 단숨에 우승권으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쉽게 두시즌이 지나갔지만 3년계약에서 1년이 남았던지라 마지막으로 심기일전하고 싶었지만 구단에서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참신하다는 기준이 뭘까요?”

Q.다시 감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까요?

있죠. 왜 없겠어요. 사실 SK로 가던 시절에는 제가 노련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불운이 연달아 터지기 전까지는 나름 선방했거든요. 그뒤에 여자농구, 대학농구 모두 경험했고 해설위원까지 하면서 농구에 대한 눈이 더 많이 트였다고 자신합니다. 적어도 40대 초반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아진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한국은 여전히 유교국가같아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우대받으면서 쉬는게 미덕이에요. 외국같은 경우 노감독들도 경험을 살려서 얼마든지 잘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특히 농구 쪽은 ‘참신해, 젊어, 새로운 피야’ 이런 단어들을 참 좋아하는 듯 싶어요.

Q.말씀을 듣다보니 공감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오히려 이런 쪽은 예전보다 더 보수적인 것 같아요. 참신하다는 기준이 뭐에요? 나이 밖에 없잖아요. 물론 젊은 감독도 잘할 수 있죠. 다만 아쉬운 것은 피가 뜨거운 젊은 감독에게도, 혹은 경험많은 노감독에게도 똑같이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농구 스타일이 있으니까 리그에 다양한 색깔의 감독이 있으면 보는 재미도 더 할 것 아니에요. 나이에 대한 편견보다는 순수하게 그 사람의 능력을 보고 판단하고 혹여라도 의심이 간다면 테스트할 기회라도 주고 그러면 좋겠어요. 솔직히 우리 아버님 세대 때는 40살만 넘어도 엄청 나이먹었다고 하고 60살되면 할아버지 취급받았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건강상태도, 외형도 많아 달라요. 백세시대에 맞춰서 나이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감독이 선수들하고 같이 코트에서 뛰는 것도 아니잖아요. 농구판에서 오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치도 높고 다방면으로 내공이 깊다는 얘기에요. 그런 분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노하우나 지식을 빼먹어야죠. 아깝잖아요. 그대로 가지고 뒷문으로 퇴장하기에는.


 

 

 

Q.개인적으로 국내 농구계에 바라는 것이 있으실까요?

제가 여전히 농구인으로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지라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직접 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속사정들도 많거든요. 다만 외국인선수 제도는 언제가 됐든 손을 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해도 우리는 외국인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요. 팀내 전력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당장 저같아도 SK 시절 성적을 내기위해서 외국인선수 뽑는데 정말 많은 신경을 썼으니까요. 어쨌거나 외국인선수 비중이 클수록 국내선수가 설자리는 좁아집니다. 선수간에도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회 자체를 못받아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케이스도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친구들이 종종 쓰는 말중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라고 있더라고요. 농구에 갑툭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하는 운동은 정직하거든요. 노력한 만큼,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옵니다. 간혹 갑툭튀같이 보여지는 선수들도 있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팀내 여러 가지 상황이나 사정에 따라서 출장기회 등을 좀 더 받게됐고 그러한 과정에서 성장을 하게 된거죠. 잘하는 일부의 선수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리그 전체가 발전하고 국제 경쟁력이 올라가려면 이른바 선수층이 깊어져야 하지 않겠어요.

 

Q.말씀을 듣다보니 큰틀에서의 변화가 필요할 듯 싶기는해요.

외국인선수 선발 자체를 팀당 한명으로 제한하는 등 장기적 플랜에서의 제도적 개선은 분명 돌아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지는 않지만 그로인한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더라고요. 그 문제는 어정쩡한 금액으로 외국인선수를 2명 데려오느니 확실한 선수 한명을 뽑으면 되지않을까 싶어요. 어쨌거나 그렇게되면 외국인선수가 매경기 풀타임을 소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국내선수 비중도 꽤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불어 한쿼터 정도는 국내선수로만 경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도 있는지라 당장 바뀌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같은 농구인들이 자꾸 언급을 해야 조그만 변화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의견을 한번 말씀드려보았습니다.

Q.마지막으로 여전히 농구인 이상윤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실 잊혀진 농구인들도 정말 많은데 다행히 저는 해설위원이라도 하고 있어서 팬분들과 뵐수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요즘은 팬분들께서도 다양한 데이터를 참고하시고 뽑아내기까지 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저희 해설위원들의 해설이 성에 안찰 수도 있겠고요. 말하는 스타일, 캐릭터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해설위원들이 그냥 막 해설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준비를 정말 많이합니다. 그것을 잘 풀고 녹여서 편하게 설명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겠죠. 저역시 잘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여전히 서툰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설위원을 하시는 분들은 저마다 농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사랑 변하지말고 함께 응원하다보면 농구 인기도 점점 올라갈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함께 파이팅 외쳐보자고요.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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