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원한 전주의 전태풍입니다”

김종수 / 기사승인 : 2022-09-27 07: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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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55] '드리블 마스터' 전태풍

 

2009년 있었던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는 KBL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전에도 국내에 혼혈선수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서 농구를 배우고 커리어를 쌓은 이들을 불러들여 대대적으로 드래프트를 실시한 것은 사상 최초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걸맞게 출중한 기량의 선수들이 지명을 받으며 여러 팀의 운명을 바꿨다.


1~5순위 지명권을 얻게 된 KCC, 삼성, LG, KT&G(현 인삼공사), KTF(현 KT)가 권리를 행사했으며 6~10순위를 받았던 나머지 팀들은 지명권을 포기하고 국내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을 얻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해서 토니 애킨스, 에릭 산드린, 그레고리 스티븐슨, 케빈 미첼, 크리스 밴 등이 선택을 받았다. 앤서니 갤러웨이, 료스케 노자와는 아쉽게 지명을 받지 못했다.


각자 개성과 플레이 스타일이 남달랐던 가운데 이후 확실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는 토니 애킨스(전태풍), 에릭 산드린(이승준), 그레고리 스티븐슨(문태영) 등이다. 여기에 더해 다음해 그레고리의 형 재린 스티븐슨(문태종)이 들어오며 혼혈선수 돌풍을 이어갔다. 넷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KBL에서 커리어를 쌓아나갔고 여러모로 국내농구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선수는 단연 2009년 전체 1순위로 KCC의 지명을 받았던 전태풍(42‧179cm)이었다. 그간 국내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로도 주목을 끌었지만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이미지를 쌓아나가며 KBL 인기상승에도 한몫 거들었다는 평가다. 어머니의 나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지라 팬들이 느끼는 친근감도 상당했다.


이를 입증하듯 전태풍은 KBL 데뷔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단어는 물론 문장 사용 등에서 적지않은 실수를 범하며 당황스러운 장면도 많이 연출됐지만 꿋꿋하게 특유의 위트를 곁들여 한국무대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한 모습만큼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그만큼 어머니의 나라를 사랑했고 본인도 최선의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팬들 또한 그의 진심을 아는지라 전태풍이 말실수를 범해도 오히려 친근하게 느끼는 분위기였다.


은퇴후 한동안 전태풍은 하승진의 도움을 받아 예능에 집중했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예능도 좋지만 전태풍의 기술이 아깝다. 후배들을 성장시키는데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는 당사자 전태풍 역시 마찬가지였다. 농구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도 깊었던 그는 예능에 출연하면서도 누구보다 농구에 목말라했고 이제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다.
 

 

"방송도 좋지만 농구하고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워요”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선수 생활 은퇴 후 주로 방송 활동이나 유튜브 등 많이 하면서 시간 보냈어요. 그러다가 이제 아이들 가르치는 일 시작했어요. 예전부터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그동안 방송 너무 많았어요. 개인 시간 없었어요. 지금에서라도 하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일단 아는 동생 체육관에서 시작하고 있어요. 최고봉이라고 이 동생도 프로선수 출신이에요. 아직 홍보 많이 안했어요. 본격적으로 아이들 가르키려면 좀 더 많은 준비 필요해요. 우선은 동생 체육관을 빌리는 입장이니까 숫자가 많아지면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웹사이트도 만들었고 전용 체육관도 갖출 예정이에요. 본격적으로 아이들 가르칠 생각 가지고 있어요. 이제 시작이에요. 한 걸음씩 나갈 생각이에요.

Q.방송도 좋지만 농구 쪽에 기여를 해야죠. 기술이 아깝잖아요.
그것! 100프로 맞아요. 그리고 제 마음도 똑같아요. 방송은 노는 것 같아요. 하지만 농구는 제 열정, 제 진심이 막 올라와요.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조금 있다가 문자로 제 웹사이트 찍어 줄…, 아, 아니다. 아직은 시작단계라 너무 많이 오면 제가 감당 못할 것 같아요. 차근차근 가야해요. 홍보 안했어도 25명 정도 가르치고 있어요. 벌써 부담생겼어요. 지금은 많은 숫자를 가르치기 힘들어요. 체육관 열면 그때 홍보도 하고 더 많이 받을거에요. 마땅한 체육관 자리가 잘 안나와요. 멀리까지 알아보고 있어요. 당장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체육관도 준비 안됐는데 많이 몰리면 큰일나요.

Q.에전부터 은퇴 후 농구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듯 싶어요.
있었어요. 저도 생각도 많았고 제의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은퇴 후 바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방송제의가 들어와서 방송하다 보니까 시간이 흘렀어요. 무조건 할 생각은 있었어요. 이제 시간 된 것 같아요. 가르치는 것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아이들 엄청 많이 좋아졌어요.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요.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요.

Q.아이들하고 눈높이를 잘 맞춰줄 것 같아요.
맞아요. 이왕 가르치는 것 재미있게 가르치고 싶어요.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캐치 잘 못할 때도 많아요. 그렇다고 뭐라고 하지 않아요. 배우는 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어요. 답답하다고 뭐라고 하면 아이들 배우지 못해요. 뭐라고 할 필요없어요. 다시 설명하면 되요. 그래서 ‘서두르지 말고 쉬었다가 천천히 가자’고 말해요. 윽박지르고 화내면 더 잘 못 배워요. ‘바보야? 돌대가리야?’ 등 폭언 내뱉는 지도자도 많아요. 그것 효과 없어요.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아이들도 서로 스트레스 받아요. 농구는 즐기면서 해야되요. 우리 아들, 국제학교 친구들이랑 농구하고 있어요. 엘리트 아니에요. 재능있으면 선수하고 아니면 그냥 즐기면 되요. 기분 좋게 농구를 받아들이면 되요. 우리 딸 작년에 대회 나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이제 막 10살 남짓된 아이들에게 심한 말 하는 지도자 많아요. 이해가 안되요. 아이들이 농구가 즐겁겠어요? 즐겁지 않으면 농구는 늘지않아요. 부모 입장에서 너무 화가 나요. 많이 싸웠어요.

 

 

Q.슬프지만 그래도 최근에 많이 좋아진게 그 정도에요.
예전에는 막 주먹으로 때렸죠.(웃음) 이제는 그냥 밀어요. 이게 좋아진 것이라고 하니 아직 멀었어요. 가르치는 방식 많이 바꿔야 해요. 저는 아무 욕심 없어요. 제가 도맡아서 다 가르칠 생각없어요. 원하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배우고 저한테는 스킬만 일부 배워도 만족해요. 아이들이 발전하고 즐거워하면 그걸로 만족해요.

Q.아이들 가르친다고하니까 하승진은 뭐라고 해요?
승진이? 하하핫…, 처음에 은퇴하고 아이들 가르치고 싶다고 하니까 ‘형, 그냥 방송해. 뭐하러 스트레스받게 가르치는 일 하려고 그래’라고 말렸어요. 사실 예전부터 ‘형은 한국농구문화 바꾸고 싶다’고 승진이에게 계속 얘기했어요. 하지만 승진이는 ‘형, 절대 못 바꿔요. 그러니까 그냥 방송이나 하자’고 말해요. 그래서 방송했지만 가슴속이 뭔가 허전해요. 방송 재미있어요. 하지만 농구는 다른 문제에요. 저는 농구를 정말 사랑해요. 즐거움을 나눠주고 싶어요.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승진이도 와서 아이들 가르키는 것 몇 번 봤어요. 사실 승진이 아들도 가르치고 있어요. 승진이도 직접 보니까 마음 바뀐 것 같아요. ‘형은 농구 가르쳐야겠다. 너무 즐거워 보인다’라고 말해줬어요. 성인부, 엘리트, 아이들까지 대상은 가리지 않아요. 일반부도 5명 정도 있어요. 정말 열심히 해요. 열정이 엘리트선수 못지않아요.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보기 좋아요. 이렇게 즐겁게 농구할 수 있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이면 실력을 떠나 행복할 수 있어요. 나중에 체육관 생기고 규모가 커지면 낮은 농구대도 설치해서 미국처럼 5~6살 완전 어린아이들도 가르치고 싶어요.

Q.한국 농구에 대해 쓴소리를 좀 해서, 이러다 미움받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더라고요.
맞아요. 사실 저도 잠깐 그런 걱정한적 있어요. 하지만 이제 걱정 안해요. KBL에서도 오해 안하고 저도 여전히 KBL 좋아해요. KBL아니었으면 지금의 전태풍도 없어요. 선수 생활 할 때 아쉬운 것은 조금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지나면 다 이해되요. 제 인생이 잘 안 풀렸으면 삐지고 그런 것도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지금 충분히 만족해요. 삐질일 없어요. 저도 한국인이에요. 한국농구가 잘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어요.

 

 


Q.미국시민권은 완전히 포기하고 한국 단일국적자가 됐어요.
다시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신청하지 않았어요. 필요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생활에 충분히 만족해요. 한국에서 살면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어요. 예전에 기분 나쁜 일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얼굴이 잘 알려져서 그런지 어딜가도 잘해줘요. 불만없어요. 적응도 잘했어요. 더불어 다문화에 대해서 관심많아요. 와이프랑 함께 종종 다문화 시설을 방문해서 시간 많이 보내고 있어요. 농구 교실이 잘되면 생활이 힘든 친구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도 하고 재능기부 많이 하고 싶어요.

“개인훈련 많이 해야 실력늘어요”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어릴때부터 공 좋아했어요. 처음에 야구하고 그 다음에 농구랑 미식축구 시작했는데 다 재미있었어요. 아빠도 미국 꼰대 스타일이라서 빡세게 가르쳤어요. 밤늦게까지 계속했는데 저도 즐거웠어요. 스포츠는 잘 맞는 취미였던 것 같아요. 농구는 처음부터 포인트가드를 했어요. 어릴 때는 키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중간이었어요. 그런데 15살 이후로는 키가 크지 않았어요. 함께 농구 했던 다른 친구들은 크는데 혼자만 크지 않아서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하지만 옆에서 엄마를 보면 ‘이 정도 키만 해도 잘 컸다’는 생각들어요. 아빠는 188cm로 나쁘지 않은데 우리 엄마가 엄청 작아요. 150cm가 안될거에요. 아빠와 엄마에서 제가 딱 중간 정도에요.

Q.본인이 생각하는 플레이스타일은 어떤가요? 정통가드와 듀얼가드중에서
듀얼가드 스타일로 컸어요. 아빠도 어릴 때부터 득점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식을 추천했어요. 10살 정도 돼서는 다른 친구들하고 차이 생겼어요. 제가 그냥 가지고 놀았어요. 실력 차이가 많이 났어요. 나중에는 득점보다는 친구들 살려주는 플레이 했어요. ‘저기 서있어. 내가 패스해줄게’ 그렇게 플레이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좋은 대학가려면 너가 득점을 더 많이 해야 돼’라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라고 주문했어요. 무리해서 어시스트 주지말고 그냥 찬스나면 슛 던지라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빈틈이 나면 패스보다 슛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 생겼어요.

Q.조지아 공대시절 NBA 레전드 마크 프라이스로부터 미들슛을 배웠다고 들었어요.
코치로 1년있었어요.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슛도 배우고 포인트가드로서의 센스? 이런저런 상황에서 흐름을 읽는 것을 가르쳐 줬어요. 그때 제가 막 들어왔을 때 19살이었는데 그 코치는 40살 넘었어요. 하지만 와! 여전히 진짜 농구 잘했어요. ‘이 아저씨 아직도 이렇게 잘 움직여?’ 깜짝 놀랐어요. 슛이 잘 들어가고 힘도 엄청 셌어요.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에 팀을 이끌면서 전성기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와 동부에서 경쟁했어요. 키도 별로 안 크지만 슛과 센스 정말 좋았어요. 아저씨 되어서도 그 정도였으면 선수 시절에는 얼마나 잘했을지 상상이 안가요. 

 

 

Q.전태풍의 트레이드마크는 드리블이잖아요. 드리블은 누구한테 배운건가요?
‘저는 어떻게 드리블을 잘하게 됐냐고?’ 우리 아빠한테 물어봤어요. ‘너는 어릴 때부터 드리블 센스가 있었다고’ 아빠가 대답했어요. 드리블은 모든 움직임의 기초에요. 특히 가드는 드리블을 잘해야 되요. 연습도 많이 했어요. 롤모델이 앨런 아이버슨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엄청 좋아했어요. 여러 가지 영상보면서 많이 따라 했어요. 처음에는 잘 안됐어요. ‘이게 아닌데…’ 그래도 하루종일 계속 했어요. 아이버슨처럼 드리블을 잘하고 싶었어요. 모든 위치에서 드리블을 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여야 되요. 그래야 다른 플레이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요.

Q.국내 선수들도 전태풍처럼 드리블을 잘 치는 선수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한국 와서 정말 놀란게 있어요. 미국에서는 비시즌은 거의 선수의 시간이에요. 실력은 그때 많이 늘어요. 선수가 알아서 스케줄 짜서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스킬 다듬고 그래요. 시간이 많다고 놀지 않아요. 경쟁자들 많아요. 놀면 안되요. 개인 실력 향상해야 되요. 하지만 한국은 달랐어요. 비시즌에 팀에 합류해서 한달 동안 공을 안만졌어요. 산 뛰고 서킷트레이닝 훈련하고 계속 팀 스케줄에 맞춰서 따라갔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살이 쭉 빠졌어요. 미국에서는 벌크업을 하는데 한국에서 팀훈련을 하다 보니 그냥 살만 빠지면서 제대로 힘이 붙지 않았어요. 시즌 시작되기 전에 힘을 키워야 되는데 힘만 빼요. 이상하다 싶어서 감독, 코치에게 몇 번 얘기했는데 ‘이것이 한국농구 스타일이야’하면서 무시했어요. 바꿀 수 있는데 바꾸지 않아요. 이해가 안되요. 탄력, 폭발성, 드리블, 개인기 등을 비시즌에 키워야 되는데 그럴 시간을 안줘요. 동양 선수들은 운동능력이나 탄력이 안 좋다는 말 많이 해요. 신체적인 특성 차이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향상 시킬 기회도 없어요. 신경을 쓰지 않아요. 이게 팩트에요.

“처음에 한국와서 농구로 적응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Q.NBA 진출에 실패한 후 미련 없이 유럽무대로 갔어요. 끈질기게 재도전하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을까요?

있었어요. NBA는 모든 선수들의 꿈이에요. 나도 마찬가지였어요. 드래프트 탈락 후 진짜 거짓말 안하고 D리그 관계자한테 본인의 팀으로 합류하라고 수시로 전화왔어요. 그곳에서 실력가다듬으면서 NBA로 가는 선수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우리집 잘사는 집 아니었어요. 돈이 필요했어요. D리그에서 1년 정도 뛰면 2만 4천불? 정도 연봉나오는데 그 돈 받을 바에는 어디 편의점가서 일하는게 나아요. 요새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유로 NBA 포기하고 유럽으로 가는 선수들 많아요. 바로 NBA 입성못하는 이상 집에 돈 없으면 다음 기회 기다리기 어려워요. 그러고 바로 러시아 갔는데 연봉이 1억넘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비교를 해요. 유럽에서 계속 뛸 수밖에 없었어요.


 

Q.러시아, 프랑스, 폴란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불가리아 등 많은 나라에서 뛰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일까요?
유럽에서 7년 정도 뛰었어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크로아티아에요. 그중에서도 제가 뛰었던 팀은 바닷가를 연고지로 하는 곳이었어요. 풍경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솔직히 옛날 얘기지만 여자들도 예쁘고(웃음) 그랬던 기억이 나요. 구단과도 잘 맞았고 모든게 다 좋았어요. 직전 시즌에 중위권 정도였는데 제가 가서 우승 직전까지 갔어요.

Q.국내에서 뛰었을 당시 전성기였을까요?
그럼요. 전성기였어요. 딱 좋았어요. 하지만 얼마 안 있어서 몸 상태가 점점 내려갔어요. 거기에 기술도 늘지 못했어요. 몸도, 기술도 발전 못하고 그대로 갔어요. 몸이 다운된 상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경기력 자체도 내려가게 됐어요. 사람마다 플레이 스타일 달라요. 팀이 이기려면 개개인의 그런 특성 살려줘야 해요. 개인이 모여서 팀이 되요. 하지만 한국 오자마자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 왜 그렇게 플레이해? 그것 하지마’였어요. 첫 연습 때부터 그랬어요. 자유롭지 못했어요. 솔직히 말할께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불만없어요. 왜 그렇게 행복한가 생각해봤어요. 처음 한국와서 고생 많이 했어요. 그걸 다 겪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이 완전 행복해요.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야지.

Q.규제가 정말 많았네요?
그때 엄청 스트레스 받았어요. 피부를 그냥 찢고 싶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미국에서는 각자 플레이 스타일을 존중해줬어요. 한국에서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맞추기를 원했어요. 한국와서 처음에는 빅맨들이 앞에 있어도 신경쓰지 않고 달고 떴어요. 조금 시간 지나자 그것 하지 못했어요. 막았어요. 어떨 때는 공격 그만하고 패스하라고 했어요. 선수 생활 말년에는 아예 포인트가드안하고 슈팅가드로 갔어요. 드리블안치고 가만히 서서 슛만 쐈어요. 답답했어요. 아직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까지 나를 무시했다 싶어서 속상했어요. 포기하는 마음으로 받아서 그냥 슛만 쐈어요.

“허재 감독님 쿨해요. 좋은 사람이에요”

Q.허재 감독과는 잘 맞았나요?

처음 1년 동안은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1년 지나면서 허재 감독님이 마음을 바꾼 것 같아요. 같이 술 먹으면서 얘기 많이 했어요. 선수 시절에도 그랬지만 함께 예능찍으면서도 술 자주 먹었어요. 은퇴하고 나서는 부담이 없어서 더 솔직하게 물어봤어요. ‘감독님, 처음에 그렇게 다 하지 말라고 하고서 갑자기 왜 풀어줬어요?’라고. ‘처음에 태풍이 들어오고 열정 많이 보여줘서 한국 선수처럼 대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태풍이 표정도 안좋고 해서 그게 안맞는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생각 많이했다. 한국사람 느낌 있어도 한국 사람아닌데, 미국에서 농구 배웠는데…, 용병처럼 대해야겠다’고 대답했어요. 사실 그 뒤로 너무 편했어요. 잘 뛰기 시작했어요.

Q.오리온에 가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KCC에서는 허재 감독님이 마음 바꿔먹었어요. 그 다음부터 편하고 적응하고 잘 지냈어요. 하지만 오리온에서는 완전 리셋됐어요. 아니 한국 와서 처음보다 더 심했어요. 허재 감독님은 아메리칸 스타일 느낌도 있어요. 하고 싶은말 있으면 가리지 않고 바로 말해요. 다른 사람 말도 일단 들어줘요. 소통이 잘됐어요. 반면 추일승 감독님은 약간 바로 소통을 안해요. 앞에서 대놓고 말은 잘 안해요. 하지만 뒤에서 장난아니에요. 서로 의견주고 받는 것 어려웠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도 저에게는 허재 감독님이 최고 지도자에요. 추일승 감독님 나쁘다는 것 아니에요. 서로간 스타일이 안맞은거에요. 허재 감독님이 보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잘 받아줬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해요. 진짜 남자에요.

 


Q.허재 감독에게 욕도 많이 배웠다고 들었어요.
아이고…(웃음), 그 부분에 대해서도 너무 고마워요. 욕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요. 모르는 사람들은 허재 감독님과 사이 안좋은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아니에요. 우리 사이 너무 좋아요.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허재 감독님 현역시절 영상봤어요. 몸 장난 아니더라고요. 어깨도 엄청 크고 빠르고 대단해 보였어요. 감독하고는 망가졌어요. 몸이 따라가지를 않아요. 술 많이 먹고 담배 많이 피우니까 어쩔 수 없어요.

Q.하승진과는 어떻게해서 그렇게 절친이 되었나요?
승진이요. 하하핫…, 그러게요. 정말 가까운 사람이에요. 이렇게 얘기하기 미안하지만, 승진이도 예전에(어릴 때) 특별하게 생겨서 왕따 많이 느꼈데요. 그리고 미국 갔을 때 말도 잘 못하고 여러모로 힘들었다고 해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 저 많이 이해해주고 챙겨줬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도와주고 천천히 설명해주고…, 그것 때문에 서로서로 마음이 통해서 친하게 됐어요. 한국에 적응하는데 도움 많이 줬어요. 승진이 최고에요. KCC에서 마지막에 열 많이 받았어요. 은퇴하고 바로 미국 가려고 그랬어요. ‘형 제발, 여기에도 좋은 사람 많아요’하면서 위로해주고 방송도 경험하게 해줬어요. 승진이 때문에 마음 잡았어요. ‘그래, 그럼 여기서 당분간 있어볼께’ 그렇게 남아있게 되면서 자리도 잡게 됐어요. 승진이 몫이 커요. 확실히 KBL 안에 있을 때하고 나와서 하고 느낌 완전 틀려요.

Q.길거리 농구도 가끔 하죠?
해야죠. 배에 살 좀 빼야하고 가끔 농구 땡겨요.(웃음)

“지금도 KCC좋아요. 팬들 때문이에요”


Q.서운한 것도 많았을텐데 여전히 KCC라는 팀에 애정이 많아 보여요.

네네. 맞아요. 100프로에요. 서운한 것 많았어요. 그래도 KCC 싫어하지 않아요. 속상했어요. KCC있을 때 많이 희생했어요. 연봉적으로도 희생하고 경기 외적으로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노력했어요.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 있을 때 통역을 많이 도왔다고 알려졌는데 그것 말고도 많았어요. 얘들 모이게 하고 분위기 업 시켜주려고 하고 그랬는데 생각만큼 결과가 안 좋아서 속상했어요. 하지만 KCC가 잘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어요. 난 스스로 KCC맨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SK에서 잠깐 뛰었는데 작게 은퇴식 해줬어요. KCC에서는 아예 연락 한번 없었어요. 이것 말이 돼? 은퇴식 그것 그렇게 힘든거에요? NBA하고 다르게 KBL보면 회사 힘이 훨씬 세요. 한국 스포츠에서 농구 인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 그런 것 같아요. 모두가 노력해야 해요. 농구 인기 올라가서 야구, 축구 이상 차지하면 회사와 팀의 관계도 바뀔거에요. 그러면 농구 더 잘될 수 있어요. 그런날 왔으면 좋겠어요.

Q.전태풍같은 선수가 5명만 있어도 팀이 흥행할 것 같아요.
맞아요. 하지만 감독이 머리 다 빠질 수 있어요.(웃음) 

 


Q.그럼에도 불구하고 KCC맨으로 본인을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팬들 때문이에요. 팬들은 죄가 없어요. 늘 저를 응원해줬고 지금도 KCC가 잘 되는 것만 바래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순수한 사랑을 줘요. 그게 진짜 애정이에요. 팬들 보면서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그래서 더 팬들에게 잘해야 해요. 저도 팬들 때문에 한국에 남아있게 된거에요. KCC말고 다른 팀들도 오래 활약해준 선수들에게는 잘했으면 좋겠어요. 팬들도 그걸 원해요. 그래야 더 충성심 생기고 사랑할 수 있어요. 천천히 조금씩 바꾸다 보면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오래 걸려도 해야 해요. 70~80살 되어서 바뀐 문화나 환경 볼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할아버지 되어서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Q.경기장에서는 다혈질일 때도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정말 순하고 유쾌해보여요.
밝고 유쾌하려고 항상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그게 성격이 되요. 제가 지금도 한국말 서툴러요. 제가 이야기하면 사람들 웃을 때 많아요. 가끔 개그맨이 된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전혀 상관없어요. 그렇게 팬들 즐거워하면 저도 즐거워요. 나 때문에 즐거웠으면 만족해요.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달라요. 선수는 승부욕이 있어야 해요.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팀과 팬을 위해 열심히 경기해야 해요. 하지만 더티하지는 않았어요.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려고 했어요. 남자라면 페어플레이하고 힘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노력해야 해요.

​Q.마지막으로 농구인 전태풍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릴께요.
팬들의 응원과 사랑 때문에 한국 와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팬들 때문에 힘받고 용기 얻고 끝까지 간거에요. 고마운 것 너무너무 많아요. 행복한 느낌받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싶어요. 유망주도 키우고 무엇보다 농구가 이렇게 즐겁다는 것 알려줄거에요. 열심히 할께요. 응원해주세요.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KBL 제공,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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