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열린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아쉽게 탈락한 선수들이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김준환(전 경희대)과 김태호(전 단국대)다.
김준환은 2020년 대학농구리그 1차 대회에서 평균 33.7점을 기록했다. 비록 예선 3경기였지만, 대단한 득점력을 발휘했고, 약점으로 지적 받던 33점슛 성공률도 54.2%(13/24)로 끌어올렸다. 2차 대회에서 평균 19.8점 3점슛 성공률 30.8%(8/26)로 1차 대회보다 부진했더라도 득점력이 확실히 뛰어났다. 하지만, 어느 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김태호는 2019년 대학농구리그 신인왕 출신이다. 신인왕 출신들은 아무리 늦어도 1라운드에 지명을 받았지만, 김태호는 예외였다. 2학년만 마치고 프로 진출을 노렸던 김태호는 대학무대에서 1~2년 더 활약한 뒤 드래프트에 나섰다면 신인왕 선배들의 뒤를 그대로 따랐을 가능성이 높은 선수였다.
여기에 박태준(179cm, G)도 아쉽게 탈락한 선수로 꼽힌다. 드래프트 직후 스카우트의 의견을 들어보면 선발 가능성의 경계에 있었던 선수인 건 분명하다.
A스카우트는 “박태준을 (선발할 선수) 리스트 후반에 올려놨었다. 신장이 작고, 이런 선수는 많이 나온다. 이 선수를 프로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선발의 관건이었다”고 했고, B스카우트는 “우리 팀에선 박태준을 뽑을 선수 명단의 상위 순번에 올려놨다. 높이 본 이유는 수비라도 확실하게 잘 하기 때문이다. 만약 뽑았다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2라운드 이후 뽑을 선수로 봤다”고 했다.
중앙대 재학 시절 박태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기량을 다졌던 이준희(DB)는 “수비 근성과 자세가 너무 좋아서 상대가 누구든 끝까지 쫓아가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손질이 좋고, 수비의 기술이 굉장한 장점이다. 수비에서 스피드도 잘 나온다. 힘도 좋아서 큰 선수나 작은 선수나 가리지 않고 잘 막아서 팀에 굉장한 도움을 주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수비를 한다”며 “공격에서는 욕심 내지 않고 좋은 기회일 때 슛을 던지는데 잘 들어간다. 뛰어난 수비와 간결한 공격이 장점이다”고 박태준을 설명한 바 있다.
작은 신장과 들쭉날쭉한 3점슛, 의욕이 넘쳐 나오는 실책은 박태준의 단점이었다.
박태준은 2020년 11월 13일 명지대와 맞대결에서 10점 13어시스트 10스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스틸 포함 트리플더블은 프로농구에서도 흔치 않은, 대학무대 최초의 기록이었다. 박태준은 2020년 대학농구리그 수비상도 수상했다.
박태준은 한 번 더 프로 진출에 도전하기 위해 드래프트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다음은 박태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LG 세이커스(유소년 농구 클럽)에서 농구를 하면서 축구도 겸사겸사 같이 했다. 축구와 농구 사이에서 되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농구가 저에게 더 재미있는 운동이라서 중학교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예전에도 이야기를 한 거 같다. 현재 신체 조건이면 축구를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다.
그건 맞는 거 같다. 그 때 당시에는 농구가 재미있었다. 농구하는 동안 후회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농구가 왜 그렇게 재미 있었나?
육상부 출신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80m와 100m를 뛰고, 6학년 때 800m로 종목을 바꿨다. 초등학교 때는 아무 것도 모르니까, 농구에선 공 하나 가지고 들고 뛰어가면 되었다. 그런 게 좀 더 재미있었다. 축구는 포지션이 구분되어 있는데 농구는 리바운드를 잡으면 치고 나가도 아무 상관 없었다. 그런 게 재미 있었다.
중학교 진학 후 선수 생활을 했으면 엘리트와 클럽 농구의 차이 때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거다.
솔직히 중학교 2학년까지 많이 힘들었다. 제가 (집과 가까운) 팔룡중이 아니라 마산동중으로 가서 통학하는 것부터 엘리트 농구를 처음 접하면서 하는 운동, 한 번도 안 해봤던 단체생활, 선후배 관계 등이 힘들었는데 선택을 했기에 후회는 없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서 기량을 닦았는지 궁금하다.
대학 때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1,2학년 때 경기를 많이 못 뛰었다. 다른 선수들은 엘리트 농구를 한 선수들이고, 저는 그렇지 않아서 제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다. 대학 때도, 고등학교 때도 경기를 못 뛸 때 다 그랬다.
어떻게 노력했나?
중학교 때는 김도완 선생님께서 기본기만 죽도록 가르쳐주셨다. 아침 첫 차를 타고 학교에 가서 가르쳐주신 드리블을 연습했다. 선생님이 국가대표 코치 선임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김도형 선생님께서 1대1로 저를 잡아주셨다. 아무래도 엘리트 농구를 처음 접하고, 애들보다 기량이 떨어지니까 1대1이나 드리블, 슈팅 자세 등 기본기를 가르쳐주셔서 연습을 많이 했다. 또 야간에 팀 운동이 거의 없었다. 후배 한 명과 야간 운동을 한 뒤 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어서 맛있는 걸 사줬다. 슈팅 연습이나 1대1을 많이 했었다.
고등학교 때도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지방인 것도 이유인 거 같고, 제가 고등학교 때 박정현(LG) 형이 전학을 가고, 다른 형들도 전학 가거나 그만 뒀다. 학교 자체도 힘들었다.
운동에 집중할 분위기가 아니었겠다.
고등학교 때 감독(코치) 선생님도 많이 바뀌었다. 다행스럽게 바뀌시는 감독님마다 수비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처음에는 무조건 공격을 추구하는 분이셨는데 그 이후에는 수비와 악착 같은 근성을 보셔서 제가 운 좋게 많이 뛰었다.
지도자가 바뀌면 훈련 방식 등도 모두 바뀌어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다.
적응하는 건 좋았다. 중고등학교 때 감독님께서 생각없이 열심히 하는 선수를 좋아하셨다. 저는 적응을 다 잘 했다.
고등학교 때 팀이 혼란스러웠다면 대학 가는 것도 힘들었을 거다.
지방이라서 개인 기록은 좋아서 운이 따랐다.

중앙대만 지원했다. 그런 시스템을 몰랐다. 학교(마산고)에서 중앙대만 넣으라고 들었다. 실기를 볼 때 모집정원과 비슷한 인원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운이었다. 지금은 (모집 정원의) 5~6배 이상 몰린다.
중앙대가 선수를 많이 뽑는 대신 1,2학년 때 그만 두는 선수도 많다.
저도 솔직히 3학년 초반까지 많이 힘들었다. 1,2학년 때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경쟁을 했다. 경쟁하는 건 좋은데 경기를 못 뛰었다. 2학년, 3학년 초반까지 경기를 못 뛰어서 스스로 많이 힘들었다. 심상문 코치님께서 오시면서 저에게 기회도 오고, 감독님께서도 좋게 봐주셨다. 운이 따랐다.
입학 동기들이 한 명씩 그만둘 때 그만두고 싶지 않았나?
저도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동기인 이기준과 성광민, 박진철 형은 계속 경기를 뛰는데 후배들이 올라와서 후배들도 경기를 뛰었다. 저는 계속 벤치에만 있으니까 솔직히 진짜 많이 힘들었다. 생각하기도 싫다.
어떻게 버텼나?
부모님이 제일 컸다. 지인들의 격려도 많이 받았다. 솔직히 저는 그 때 당시 대학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농구를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한 번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 때는 저도 들어갈 줄 몰랐다. 그 날 출전한 뒤 조금씩 뛰었다.
한양대와 경기가 농구 인생을 좌우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솔직히 한양대와 경기도 그런데 중앙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는 3학년 때 연세대와 경기였다. 홈에서 한 번 붙어서 이겼다.
왜?
제가 그 전까지 경희대와 경기에서 김세창 형이 다쳐서 주전으로 한 번 뛰었다. 감독님께서 그 때 당시(연세대와 경기) 지시를 내리셨다. 그때 임무를 받고 뛰었던 첫 경기였다. 수비에서 박스앤드원으로 이정현이나 박지원(KT) 선수를 막으라고 하셨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옆에서 선배들이나 세창이 형이 도와줘서 잘 이행하지 않았나 싶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었다.
힘들게 버틴 끝에 살아남아 4학년 때 주축으로 뛰었다.
제가 뛸 때와 벤치에만 앉아 있는 기분을 안다. 뛸 때는 숨차고 힘든데 벤치에서는 심리적으로 힘들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뛰었다. 벤치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을 때보다 코트에서 힘들어도 그게 좋았다.
농구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드래프트에서 탈락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억울하다. 진짜. 말 못할 것도 많은데 저는 후회없이 농구를 했다. 진짜 억울하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고쳐야 하는 것도 있는데 억울하다. 뽑힌 선수들도 각자 장점이 있어서 뽑혔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 뽑히는 순간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장면들이 다 지나가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걸 잘 했고, 어떤 걸 더 보완했어야 했나?
수비와 스틸, 그런 부분이 장점이었고, 단점은 신장과 실책, 3점슛도 못 끌어올린 게 아쉽다.
수비가 장점이다.
수비는 잘 한다기보다 근성과 투지라고 생각한다. 근성과 투지만 있으면 알아서 잘 된다. 유소년농구를 할 때부터 그랬다.
대학농구리그 1차 대회 때 수비를 잘 했지만, 슛감이 좋다는 걸 못 보여줬다. 실책이 또 너무 많아서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런 부분에서는 부족하니까 고쳐나가야 하고, 할 말이 없다. 4학년이고 책임감을 가지고 (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3학년 때와 달리 의욕과 욕심이 앞섰다. 기회도 아닌데 3점슛도 몇 번 던졌다. 대회가 없다가 갑자기 열려서 1차 대회 때 그렇게 했는데 2차 대회 때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마음으로 임했다.
얼리가 드래프트에 많이 나오지 않았다면 뽑힐 가능성이 높았을 거다. 더구나 얼리 중 가드들이 많았기에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나?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뽑힐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네.
확신은 아니지만 낮은 순위라도 뽑히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 것처럼 3학년 초반까지는 경기를 못 뛰고 심리적으로 쫓기니까 중앙대 농구부원으로, 농구선수였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졸업하자는 마음이었다. 조금씩 경기를 뛰니까 욕심이 생겼다. 욕심을 냈던 건 사실이다.
대학 4학년 때 경기내용만 봤을 때 실책이 많고 3점슛 성공률이 떨어지는 게 문제지만, 농구 선수 통틀어서 보면, 일부 스카우트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의 활약상을 보기에, 1,2학년 때 거의 못 뛴 것도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이유이지 않을까? 다른 선수들은 대학 입학하자마자 1,2학년부터 꾸준하게 출전하면서 4학년까지 활약한다. 4학년이 아닌 대학 전체를 봤을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하는데 저는 그래도 경기를 못 뛴 게 심적으로 경쟁심을 더 불러일으켰다. 경기를 못 뛴 부분은 후회하지 않는다.
드래프트 결과만 놓고 볼 때 만약 1,2학년 때부터 경기를 뛸 수 있었던, 중앙대보다 전력이 약한 대학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 대학 가서도 열심히 하면 (경기를) 뛸 수 있을 거라고 여기며 중앙대에 갔다. 저는 솔직히 (중앙대에 입학할 때) 광민이나 기준이가 어떤 기량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랐다. 대학 가서 보니까 차이가 조금씩 나더라. 그게 저에게 득이 되었다. 저 정도 키에도 나보다 많이 뛰는 선수들이 있구나라는 걸 알았다. 애들이 훈련하는 걸 보면서 나도 배웠다. 실력 차이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보시는 입장이 다르다. 같은 포지션인데 전 못 뛰니까 벤치에 앉아서 광민이의 리딩과 패스를 배울 수 있었고, 기준이의 슛과 움직임을 배웠다. 그런 부분을 배우면서 자극을 받았다.
보통 드래프트에서 탈락해도 4학년 2학기 학교 수업을 듣는데 곧바로 창원 집에 내려와 있었다.
1학기 때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학교에서 2학기 때 경기를 뛰려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학기 때는 수업을 아예 듣지 않고 과제만 하면 되는 과목을 들었다.
4학년들이 대부분 그런 건가?
저는 미리미리 학점을 다 땄다. (한 학기에 들을 수 있는) 학점을 조금씩 안 남기고 꽉꽉 채워서 다 들었다. 4학년 2학기가 더 중요한 시기라서 운동에만 집중하며 드래프트를 준비하려고 했다. 드래프트에서 뽑히면 수업을 안 들어가도 되도록 준비했던 거다.
그렇게 수업을 들었으면 3학년까지 더 힘들었을 건데?
학점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수업이 워낙 많아서 힘들긴 했다. 저는 미리 힘들고 나중에 편하게 지내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어차피 다 들어야 하는 학점이니까 미리 힘든 게 낫다고 생각했다.
1학년이 아니라 2학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이걸 알려준 선배가 있나?
제 스스로 생각한 거다. 학기마다 평점 4.0을 넘기면 4학점 가량을 추가로 더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보다 수업 2개 정도를 더 들었다.
다른 선수들도 4.0 이상을 받았나?
우리 학교가 운동부 선수들에게 학생 멘토를 붙여서 과제나 공부를 도와준다. 운 좋게 외울 거 외워서 4.0을 넘었다.

드래프트에서 안 뽑힌 뒤 일주일 동안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항상 뛰다가 누워만 있으니까 갑갑해서 움직여야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운동보다 다른 부분에서 힘든데 좋은 부분도 있었다. 유소년 때 배웠던 선생님 체육관에서 어릴 때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과 함께 운동도 했다. 지금은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말에는 LG 유소년 농구 클럽에서 아이들도 가르친다.
올해 드래프트에 다시 도전할 생각인가?
처음에는 곧바로 드래프트에 참가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하려고 했다. 그 시기가 올해가 될 수도, 내년이 될 수도 있었다. 생각을 계속 하다가 올해 마지막으로 도전을 해보려고 마음 먹었다. 힘든 아르바이트를 해보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한 번 더 도전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저의 길을 찾자는 마음이다.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매일 선수 시절보다 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예전 선생님의 체육관에서 평소 드리블 등 기본기를 훈련하고, 동호회 대회도 나간다. 1~2달 뒤에는 운동할 곳을 찾아서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려고 한다. NYS라는 3대3 팀에도 들어갔다. 김남건 형, 이정민 형 등이 있는 팀이다. 3대3 대회에서는 슛이 정말 중요하더라. 슛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느껴서 웨이트와 함께 슈팅 연습을 가장 많이 한다. 지난 번 코리아투어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한 번은 3대3 대회에 나갈 듯 하다.
없어서는 안 될, 인생의 반을 농구를 했기 때문에 농구에서 손을 못 뗄 거 같다. (프로 진출을) 다시 도전해서 안 뽑히더라도 취미 생활로 농구를 계속 할 거 같다. 보기 싫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제가 해온 게 아깝다. 맨 처음에는 농구하는 게 싫었지만, 집에서 누워 생각을 하면서 안 뽑힌 이유가 있고, 제가 부족해서 안 뽑혔을 거라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앙대) 양형석 감독님과 심상문 코치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인터뷰를 할 때 감독님, 코치님에 대한 보답하겠다고 항상 말했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믿어주셨는데 드래프트에서 낙방해서 죄송한 마음이었다.
#사진_ 점프볼 DB
점프볼 / 이재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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