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는 2020년 1월 6일부터 2월 8일까지 전라남도 완도에서 동계훈련을 했다. 동계훈련을 마칠 때 만난 김준환은 “목표는 우승으로 잡았다. 힘든 목표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이겨나가면서 우리 팀 모든 선수들이 부상없이 1년을 보내는 게 중요하다”며 “수비는 확실히 좋아졌다. 1대1 수비는 지난해보다 더 잘 되고, 팀 수비 이해도도 높아졌다. 슛은 보완해야 한다. 감독님, 코치님께서 잡아주셔서 슛이 많이 좋아졌지만, 성공률을 더 높여야 한다”고 팀과 개인 목표를 밝혔다.
이어 “지는 건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경기를 이긴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어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며 “팀 성적이 좋으면 이용기와 저 모두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에 뽑힐 수 있을 거다. 그래서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3월 16일 개막 예정이었던 대학농구리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연기되고, 또 연기되었다. 10월이 되어서야 단일 대회 방식으로 겨우 열렸다.
김준환은 1차 대회에서 평균 33.7점 8.0리바운드 2.7어시스트 2.3스틸로 활약했다. 바라던 대로 3점슛 성공률도 54.2%(13/24)로 대폭 끌어올렸다. 다만, 팀이 3전패를 당해 예선 탈락한 것이 아쉬웠다. 득점력 하나만큼은 4학년 가운데 최고라는 걸 보여줬다.
1차 대회에서 혼자서 모든 것을 담당했던 김준환은 2차 대회에서 달라졌다. 동료들을 살려주는데 눈을 떴다. 김준환은 2차 대회에서 평균 19.8점 8.8리바운드 4.5어시스트 1.0스틸로 활약했다. 득점이 많이 줄었지만, 대신 어시스트가 늘었다. 경희대도 2차 대회에서는 4강 무대까지 밟았다.
김준환과 입학 동기였던 이용기는 “김준환이 1차 대회보다 팀을 위해서 희생을 많이 한다. (이사성이 부상으로 빠져) 센터가 없는데 리바운드에 많이 참여한다”며 “1차 대회 때 준환이가 득점을 많이 해서 상대가 이를 대비하고 나온다. 준환이가 이 때 외곽의 득점 기회도 많이 봐줘서 어시스트도 많이 했다”고 김준환의 플레이를 되짚었다.
이어 “준환이는 돌격대장이다. 상대방이 알고 있어도 막지 못한다. 4학년 때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훈련한다. 저와 준환이가 잘 하니까 후배들도 잘 따라온다”며 “준환이가 공격력이 좋았던 1차 대회처럼 2차 대회에서도 잘 해주고 있다. 준환이 외에도 다른 선수들이 공격을 해줘서 준환이도 자기 공격을 하면서 하고 싶은 플레이를 잘 한다. 그런 면이 잘 되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한 대학 감독은 “김준환은 빅맨이 없는 경희대를 잘 이끌고 나갔다. 후배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리더 역할이 굉장히 보기 좋았다. 고려대와 마지막 경기에선 부진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후배들에게 ‘끝까지 하자’고 이야기를 하더라”며 “득점을 못해도 힘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걸 팀 운영하는 감독 입장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시종일관 변함없는 리더 역할을 했기에 MVP감이다”고 김준환의 득점력 이외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칭찬했다.
김준환은 그럼에도 지난해 열린 KBL 국내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았다. 드래프트마다 아쉽게 탈락하는 선수들이 나온다. 김준환의 낙방은 KBL 역대 드래프트 통틀어서도 가장 아쉽게 떨어진 선수 중 한 명이다.
김준환은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뒤 잠깐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3대3 농구에서 선수로 생활하며 2021년 드래프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은 김준환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계속 3대3 대회에 나가고 있다. 프리미어리그(컴투스 KOREA 3X3 프리미어리그 2021)를 뛰면서 드래프트를 준비한다. 박진열 선생님 체육관에서 매일 운동한다. 3대3 대회에서 부족한 2대2 플레이를 보완하며 슛 중심으로 농구를 하고 있다. 재미 있다. 3대3농구가 공격적이다. 저에게 특화된 종목 같다. 앞으로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하고, 2대2 플레이 기술을 더 익혀야 한다.
지난해 12월 “이렇게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몸을 만들려면 농구를 계속 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건 스킬 트레이닝 같은 훈련보다 일본(B리그)에서 경기를 뛰는 게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계속 일본에 있을 수도 있고, 다시 KBL에 도전할 수도 있다. 정해진 건 없다”며 일본 진출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한국에서 농구를 할까 말까 고민을 계속 하니까 말도 통하는 한국에 있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농구를 시작했나?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친구들끼리 강동희 농구교실을 다니며 취미로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공부가 제 길이 아니어서(웃음), 공부를 못한 건 아니고 제 스타일 아니었다. 제 스타일은 밖에서 뛰어 놀고 싶어하는 거였고, 그 중에 재미있게 했던 게 농구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교실에 들어갔다. 그 때는 선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중학교에서도 취미로 하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인천에 있는 송도중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농구 외 어떤 종목을 했었나?
선수는 아닌데 축구도 많이 하고, 배드민턴도 기가 막히게 친다(웃음). 어릴 때 수영도 했었다. 그 때는 다 취미였다.
박태준에게도 했던 이야기인데, 지금의 신체 조건이면 축구 공격수로 최상이지 않나?
사실 개발이었다. 저는 (축구 할 때) 치고 달리기 스타일이었다(웃음).
여러 종목 중에 농구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농구교실 다닐 때도 득점을 잘 했다(웃음). 그래서 재미있었다. 손끝 감각이 좋았던 거 같다.
중학교 때 엘리트 농구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처음에 좀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으면 기본기가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늦었지만,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어떤 게 힘들었나?
힘든 건 없었다. 재미있었다. 처음에 왼손 레이업도 못 했는데 빠르게 익혀서 재미있었다(웃음).
늦게 시작한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이 전술 훈련이나 연습경기를 할 때 따로 기본기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간을 이겨내는 게 힘들지 않았나?
저희는 다른 지역에서 스카우트를 잘 하지 않고 송림초, 송도중, 송도고로 이어지는 연계학교 선수들로 구성되어서 형들이 더 잘 챙겨주고, 잘해줬다.
언제부터 제대로 경기를 뛰었나?
중학교 1학년 때 조금 뛰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중후반 즈음 뛰었고, 3학년 때 주장을 맡았다.
갓 시작한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었다면 선수가 적었던 건가?
박준영, 신민철, 장태빈 등 선배들의 기량이 좋았다. 1학년 때 우승도 했었다. 그 때는 못 뛰었다. 박세원 형, 김무성이 형, 정의엽 형이 있던 (2학년) 때 조금 뛰었다. 1학년 때는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송도중이 기본기 훈련을 많이 시켜서 기본기가 빨리 늘었다.
기본기를 빨리 다졌나 보다.
그 때 김상우 코치님께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드리블부터 레이업도 정상 레이업이 아닌 더블 클러치, 송도 특유의 레이업을 많이 배웠다.
3학년 때 주장을 맡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나?
기량이 빨리 올라왔다. 득점도 많이 했다. 그 때도 레이업을 중심으로 3점슛도 간간이 들어갔다.
그 때 3점슛이 잘 들어갔나?
(웃음)들어갔다. 연습벌레였다. 하루에 슛 1000개씩도 쏘고, 주말에 아버지랑 코트에 나가서도 훈련하고, 선수들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했었다. 훈련 중에 안 되었던 걸 혼자서 연습했다. 박스 같은 걸 수비수라고 생각하면서 개인 훈련을 많이 했다.
중학교 3학년 말에 무릎 시술, 수술 아니고 시술을 해서 쉬었다. 제가 1학년 때 3학년 형들이 우승했던 짱짱한 선수들이었다. 그 때는 못 뛰었고, 2학년 때 3학년들이 5명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부상이어서 그 자리에 제가 들어가서 기회를 잘 잡았다. 형들이 너무 잘 해서 2학년 때 식스맨으로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주전으로 뛰었다.
그 때도 득점을 많이 했던 건가?
2학년 때는 궂은일과 수비, 간간이 득점을 했는데 3학년 때 잠재력을 터트렸다(웃음).
3학년 때 팀 내 키 큰 선수가 없어서 모든 걸 다 했다.
2,3,4,5번(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센터)을 다 봤다.
50점(춘계연맹전 2016년 2월 17일 vs. 휘문고)을 넘은 기록도 있더라.
기록이 워낙 많아서(웃음)…
기억에 남는 기록이 있나?
기억에 남는 기록보다 기억에 남는 경기는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선 토너먼트 홍대부고와 경기서 위닝샷을 넣어서 이긴 거다. 처음이자 마지막 위닝샷이었다.
다양한 포지션을 보긴 했지만, 골밑 플레이가 좀 더 많았다.
돌파를 많이 했었다.
돌파도 결국은 페인트존 득점이다. 키가 크지 않은데도 페인트존에서 득점을 많이 했던 이유가 있나?
고등학교는 대학과 달라서 힘과 스피드가 앞섰다. 그 때 한 명은 무조건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돌파를 막으려고 하면 슛을 쏘고, 그럼 슛이 들어갔다(웃음).
돌파가 좋았던 비결은 뭔가?
비결이라기보다 힘과 스피드가 좋다. 또,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연습을 많이 했다.
기억으론 슛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록을 찾아보면 슛이 잘 들어간 경기가 있다(2016년 춘계연맹전 평균 1.8개, 협회장기 2.8개, 연맹회장기 3.7개, 왕중왕전 1.8개).
들어갈 때 잘 들어간다. 기복이 있었다.
다른 학교와 고민을 했는데 경희대가 네임밸류가 높은 편이었고, 제가 좋아했던 선배(박세원)가 경희대가 좋으니까 너도 오라고 했었다.
송도고 출신이 또 있지 않나?
저 포함해서 3명 있었다. 농구부는 윤성현만 있고, 다른 선수들은 일반 학생이다.
프로 진출 여부를 떠나서 경희대에 입학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나? 만약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간다면 혹시 가고 싶은 학교가 있나?
그래도 경희대 와야 한다(웃음). 경희대 입학해서 수비도 늘고, 기량이 많이 좋아졌다.
대학 1학년 때는 기회를 못 받는 선수도 있는데 식스맨부터 시작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예전에도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1학년 때 어떤 마음으로 경기를 뛰었나?
솔직히 연습경기 때 이용기가 저보다 많이 뛰고 잘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대학농구리그) 첫 경기(건국대) 때 제 이름이 먼저 불려서 이게 맞나 싶었다. 나가서 열심히 하자고 했는데 첫 경기 때 나쁘지 않아서 기회를 잡았다.
(2017년 3월 17일 건국대와 경기서 15분 29초 출전해 3점 1어시스트 기록함)
어떻게 플레이를 했나?
그 때는 에이스를 막았다. 안영준이나 김국찬 형들을 막으며 궂은일을 하고, 속공을 뛰고, 돌파로 득점을 했다. 그렇게 경기를 했었다.
공격력이 좋으면 수비를 등한시 할 수 있다. 김현국 감독은 수비도 잘 한다고 했다. 자신만의 수비 방법 등이 있나?
저학년 때 욕을 많이 먹었다. 훼이크에 많이 속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훼이크에 속지 않고 발로 따라가고, 상대가 어디로 가는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예측이 되었다. 같은 포지션에서 힘에서도 안 밀려서 수비를 잘 할 수 있었다.
수비와 궂은일을 하면서 득점을 꼬박꼬박 했다.
주로 속공이나 레이업 득점이었을 거다.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서 득점을 많이 올렸는데 고등학교와 대학의 차이는 없었나?
스피드에서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데 힘의 차이는 느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해서 점점 따라잡았다.
1학년 때 이건 확실하게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
속공 처리와 돌파는 잘 했다.
2학년부터 주전급으로 뛰다 부상 당하지 않았나?
우리끼리 연습하다가 이사성에게 깔려서 손목이 꺾여 부상을 당했다(웃음). 사성이를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웃음).
농구 시작한 뒤 가장 큰 부상이지 않나?
수술을 한 건 처음이었다.
어땠나? 보통 재활하고, 복귀하기까지 힘들어 한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형들이 경기를 뛰는 걸 병원에서 봤다. 경기를 뛰는 게 부러웠다. 재활을 할 때는 주위에서 잘 챙겨주셨다. 특히, 트레이너 형들이 신경을 많이 썼다. 재활이 잘 되었다.
복귀했을 때 경기 감은 어땠나?
그건 타고 난 거 같다(웃음). 쉬어도 몸이 금세 올라온다. 그 때도 몸 관리를 잘 해서 체지방도 늘지 않고, 근육량도 줄지 않았다. (수술한 뒤) 먹고 자고 했는데 살이 찌지 않았다.
3학년 때 팀 내 득점(평균 17.4점)을 가장 많이 올렸다.
그 때는 돌파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고, 슛(3점슛 성공률 31.4%)이 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대가 막기 힘들어했다.
권혁준, 박세원, 박찬호 등 득점을 해줄 4학년이 있었다. 그런데도 득점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그 때는 (선수들이) 골고루 득점했다. 제가 스틸이 많아서 단독 레이업이나 속공을 빨리 뛰어서 그랬던 거 같다.
4학년을 앞둔 동계훈련 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경희대는 초반에 잘 나가다가 5월이나 6월부터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김현국 감독은 개인 플레이가 원인이라고 보고, 김준환과 이용기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팀을 잘 이끈다고 했다. 만약 2020년 대회가 정상적으로 열렸다면 어땠을 거 같나?
분위기가 훨씬 좋았을 거다. 코로나19 때문에 석 달 쉬다가 복귀하고, 한 달 쉬다가 복귀하고 그랬다. 저뿐 아니라 우리 선수들 모두 몸이 들쑥날쑥 해서 몸을 올리는 게 힘들었다.
지난해에는 경희대가 특히 더 운동을 많이 못한 팀이었다.
2월 말에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왔는데 그 때부터 3개월 동안 학교에 못 가서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천에서 단일 대회 방식이 아닌 제대로 리그로 치렀다면 중앙대, 동국대, 단국대 등과 함께 경희대도 더 나은 성적을 거뒀을 팀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힘든 부분도 있었을 거지만, 자신감은 있었다.
왜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감이 있었나?
주축으로 뛰었던 4학년 4명이 한 번에 졸업했다.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는 저 한 명이었다. 다시 (신입생) 4명이 들어와서 그게 불안한 부분이었다. 확실한 에이스가 없었다. 저도 확실한 에이스가 아니라 고르게 득점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어쩌다 보니 저만 득점하게 되었다.
박민채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성적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민채가 빠진 게 컸다. 김동준은 공격형 가드이고, 민채는 리딩을 맡았다. 그 전에는 최재화 형과 제가 눈만 맞으면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 4학년 때는 민채와 잘 맞아서 (박민채에게)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민채가 빠진 게 아쉽다. 고려대와 경기를 할 때만 해도 민채가 있었다. 두 번째 경기 때 다쳤다.
고려대와 경기에서 대등했고, 득점을 많이 한 것도 박민채의 영향이 있었던 건가?
민채와 눈이 맞으면 볼이 들어오고, 패스가 기가 막혔다.
지난해 이천 대회는 2019년 대학농구리그 이후 약 1년 만에 열렸다. 1년이란 시간이 있었기에 3점슛을 보완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쉴 때 중점적으로 연습한 게 맞다. 그게 슛 성공률이 오른 이유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박진열 선생님 체육관에 매일 가서 무빙슛 등 세트 슛이 아닌 움직이면서 슛 연습을 많이 했다. 할 때(슛을 던지는 위치)마다 10개 중 8개를 넣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자세를 잡아주시고, 어떻게 해야 잘 들어가는지 포인트를 알려줘 도움이 되었다.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곳까지 오가는 게 힘들지 않았나?
그 때 학교 기숙사에서 살지 못 해서 학교 근처에 있는 트레이너 형 집에서 살았다. 트레이너 형이나 (우승연) 코치님께서 데려다 주셨다. 저뿐 아니라 용기, 동준이, 정민혁 등 3,4학년 몇 명이 다녀왔다. 동준이도 효과를 봤다. (김동준은) 프로와 연습경기를 할 때만 해도 (슛이) 기가 막혔다. 그런데 대회 들어가면서 긴장을 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생각처럼 안 들어갔다.
그 때 멤버가 저에게 볼이 올 수 없는 구성이었다.
가드는 너무 많고, 센터는 거의 없었다. 한승희가 속한 팀이 나았고, 나머지 두 팀은 자기 혼자만 농구하는 팀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패스가 오지 않았다.
지나고 나니까 트라이아웃 때 3점슛이 좋아졌다는 걸 보여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이아웃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뽑힐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드래프트가 끝나는 순간 기분은?
2라운드가 끝날 때부터 꿈인 줄 알았다.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끝났을 때 진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드래프트에 참석할 때는 1라운드 지명을 생각하지 않았나?
기대만 했다. 기사나 사전 평가에서 빠르면 1라운드 후반이고, 늦어도 2라운드 초반에 뽑힐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그 순위에 뽑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명 순위가 밀릴수록 처참해졌다. 많이 속상했다. 아쉬운 것보다는 창피하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다.
드래프트가 끝나고 어떻게 지냈나? 기사에서는 술을 진탕 마셨다고 했다.
드래프트가 있었던 주에는 술과 살았다. 술만 마신 거 같다. 아무 생각이 안 들고,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웃음). 친구들과도 마시고, 박진열 선생님과도 마시고, 지인들과 마셨다. 그래도 힘이 되었던 게 떨어진 뒤 생각보다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아서 그에 힘을 많이 얻었다.
이용기와 같이 드래프트에서 떨어졌다.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봤을 거다.
룸메이트였다. 매일 봤다(웃음). 사이가 나쁘지 않기에 끝난 뒤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하고, 용기는 ‘넌 빨리 몸 만들어서 농구하라’고 했었다. 저도 ‘용기야, 같이 몸 만들러 가자’고 했다.
드래프트 후 농구가 하기 싫지 않았나?
술을 마시는 그 때는 ‘농구는 아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제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걸로 좀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3대3 대회를 위한 훈련을 어떻게 하나?
소속팀 데상트 범퍼스 선수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운동한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대회에 나간다. 5대5 농구와 3대3 농구 모두 할 때는 이기는 것에 중점을 둔다. 프로 진출에 이득이 되도록 저를 알리려고 한다.
드래프트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계속 몸을 만든다. 몸이 작년보다 더 두꺼워졌다. 보완해야 할 점도 보완한다. 박진열 선생님 체육관에서 슈팅 중심으로 2대2 플레이를 많이 연습한다. 작년보다 슛 폼이 더 부드러워졌다. 계속 슈팅 능력이 발전하고, 몸에 익혔다. 주말에 경희대나 고등학교 등 엘리트 선수들도 운동하러 오는데 그 때는 같이 운동하기도 한다.
3대3과 5대5 농구는 달라서 5대5 농구도 계속 해야 하지 않나?
5대5 농구는 시간 날 때마다 동호회에 나가서 운동한다. 동호회에서 고등학교 엘리트 팀과 연습경기도 했다. 매주 나가서 연습하는 동호회 전력이 상위권이다. 또 드래프트가 다가오면 송도고나 경희대에 가서 같이 운동을 하려고 한다. 송도고에서 와서 운동하라고 했기에 송도고로 갈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게 했다. 할 때 재미있고, 즐거웠다. 지금도 농구를 하고 싶다. 안 하면 아쉽고, 할 때는 힘들어도 재미있게 한다. 막상 하지 않으면 몸이 아쉬워하고 계속 생각난다.
#사진_ 점프볼 DB
점프볼 / 이재범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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