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31) 성균관대 김근현 "분위기 바꿀 수 있는 선수 되고파"

정다혜 / 기사승인 : 2022-08-31 08: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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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서른한 번째 미생은 성균관대 3학년 김근현(G/F, 190cm)이다. 농구계에 잔상을 남기길 원하는 김근현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운명처럼 시작된 농구와의 인연
김근현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스포츠와 접점이 없었다. 그의 일상은 학교에서 시작하고 학원에서 끝나는 흐름이었다. 반복되는 패턴에 지루함을 느낀 그는 아버지와 여러 스포츠를 시도해봤다. 축구, 배드민턴, 야구 등 재미를 붙이려고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농구를 해보자는 어머니를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모비스(現 현대모비스)에서 진행하는 유소년 농구 홍보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말했고 농구에 흥미가 생겼다. 얼마 후 송정초 하성기 코치는 김근현에게 엘리트 농구를 제안했다.

부모님은 걱정이 앞서 반대했지만, 농구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하성기 코치의 적극적인 권유도 설득에 도움이 됐다. 이후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 농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단체생활이었기에 어려움도 존재했지만, 코치와 팀원들 덕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가 준비운동이었다면 중학생 시절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중학교 땐 운동이 진짜 힘들었어요. 뛰는 거로 시작해서 뛰는 거로 끝나고 미치겠더라고요.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래도 버텼죠. ‘이왕 할 거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요".

학교 훈련도 성실히 임하면서 주말에는 아버지와 슛 연습을 했다. 1, 2학년 땐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3학년이 되고 나선 주전으로 코트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포텐이 터졌다. 제39회 협회장기. 김근현은 8강에서 성남중 상대로 39점을 꽂아 넣었다. 화봉중이 우승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득점에서 인상을 남긴 그가 협회장기 득점상의 주인공이 됐다. 농구 인생 첫 개인상이었다.

#위기도 막을 수 없었던 그의 노력

화봉중에서 삼일중으로 전학을 택한 그는 연계학교인 삼일상고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1학년 땐 오로지 성장을 위한 시간이었다. "삼일상고 농구가 정말 힘들었어요. 강혁 코치님(現 대구 한국가스공사 코치)이 2대2, 수비 등 섬세하게 많이 알려주셨고 정승원 코치님한테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그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던 대회는 종별선수권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와 동기였던 하윤기(수원 KT)가 경기 시작 30초 만에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다. 코치는 벤치에 앉아있던 김근현을 불렀고 그는 그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경기에 임했다. 결과는 1점 차 승리(76-75). 경기 후 강혁 코치는 칭찬을 건넸고 이는 동기부여가 됐다.

2학년 동계훈련부터 여러 대회를 걸쳐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던 그에게 악재가 찾아왔다. 그해 겨울 삼일상고는 고려대와 연습경기를 가졌다. 김근현은 레이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팀원과 부딪혀 중심을 잃었다. 한발로 착지하면서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일본에서 짧은 재활을 진행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재검을 받은 결과 십자인대 완파 및 반월상 연골까지 찢어진 상태였다.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곧바로 수술을 진행했고 복귀까지 약 11개월이 걸렸다.

재활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재활을 오전에 제일 먼저 나가서 하고 제일 늦게 나오고 그랬어요. 근데 무릎이 좋아지는 게 보이지도 않고 테스트를 하는 데도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그를 일어서게 한 말이 있었다. “도수치료 받으면서 (선생님께서)‘한 번만 더 꾹 참고 확실하게 복귀하는 게 낫다. 어설프게 했다가 또 다치면 다시 해야 한다’고 얘기하셨어요”. 그는 재활에만 전념했고 식사와 휴식도 거르지 않았다.

긴 공백기로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지만, 복귀전인 제55회 춘계전국남녀중고농구 연맹전 남고부 예선 첫 경기부터 16점을 기록했다. 복귀전부터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건 단순 운이 아니었다. 이후 김근현은 두 자릿수 득점은 기본으로 올렸다.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경기도 나날이 증가했다.

특히 2018 연맹회장기 예선(동아고전)에서 34점 1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만들어냈고 제73회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 남고부 예선 청주신흥고 상대로는 무려 27점 20리바운드를 폭발시켰다.

“다 코치님들 덕분이에요. 제가 1년을 쉬었으니까 경기 감각이 아예 바닥이잖아요. 연습경기에 들어가면 못했는데 못해도 계속 출전시간을 주면서 키워주셨어요. 제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발판이라고 할 수 있죠”.

#어두울 것만 같던 미래, 그 이면의 진가

힘들었던 순간과 화려한 복귀를 뒤로하고 대입을 준비하게 된 김근현. 하지만 또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수시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 실기와 면접 모두 자신 있었던 성균관대는 예비 1순위로 마감하게 됐다. 재수가 확정되자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부상으로)1년을 쉬었는데 또 쉬어야 하니까 ‘그만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엄청 했어요”.

방황하던 그를 다잡아준 사람은 정승원, 이중원 코치였다. 대학을 가기 위해선 꾸준한 운동과 경기 감각이 중요한데 이 기회를 제공해준 것. “대학가려면 경기를 뛰어야 하니까 고등학교 연습 경기할 때 10~15분씩 뛰게 해주시고 운동도 거기서 시켜주셨어요. 먹고 자는 것도 삼일상고 숙소에서 해결하게 해주셨고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1년을 불태웠고 다시 입시의 시기가 찾아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앞서 지원했던 학교들은 ‘불합격’을 통보했고 성균관대 발표만이 남아있는 상황. 1년 전 예비 1순위에 그쳤던 김근현은 성균관대에 최초 합격하게 됐다.

2년의 여백이 있었지만, 그는 대학교에서도 삼일상고 시절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1학년 땐 궂은일과 수비로 쏠쏠한 역할이 됐다. 2학년 대학리그 1차 대회 플레이오프 6강(고려대전)에선 22분 8초를 소화하면서 30점 9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기록한 30+득점이었다.

올해 3학년이 된 그는 이번 대학리그 득점 평균 15.5점을 기록했다. 연세대에게 대학리그 952일만의 패배를 안겼던 경기에선 더블더블에 가까운 활약(28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을 펼쳤다. 공격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팀의 활력소를 꿈꾸다

“솔직히 작년에 참가하려고 했어요. 작년에도 임팩트있게 뛴 게 있지만, 1년 더 해서 더 좋은 모습으로 좋은 순위에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서 올해 나왔습니다”. 그가 1년 일찍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이유다.

프로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한 김근현은 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많이 배울 수 있고 재밌을 거 같아요. 프로선수들은 기본적으로 농구를 할 줄 아는 선수들이니까 형들의 장점을 다 배워서 높은 선수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어 그는 “경기에 들어가면 중요할 때 한번 넣어줄 수 있고 궂은일 열심히 하면서 속공도 해주고, 그러면서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농구선수라는 꿈을 가졌으면 최고가 되는 게 목표잖아요. 저도 그런 꿈을 항상 가지고 있고 지금도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팀에 가든 감독님, 코치님이 원하시는 부분 다 실행해서 좋은 선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남겼다.

두 번의 폭풍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김근현. 다가오는 드래프트에서 그가 이뤄낸 성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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