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선일 인터넷기자]열 일곱번째 미생은 한양대 염재성(179cm, G)이다. 여러 번의 슬럼프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염재성을 이끌었던 것은 무엇일까.
#농구를 시작하게 만든 세글자 ‘양동근’
어릴 적 본가가 울산인 염재성의 집근처에는 울산 현대모비스의 홈 구장인 울산 동천체육관이 있었다. 바로 그 곳에서 염재성의 농구가 시작됐다. “친구를 따라서 동천체육관에 농구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양동근 선수를 보고 한 눈에 반했어요(웃음). 나도 나중에 저 선수처럼 팬들을 열광시키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죠"
또한 다른 구기 종목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기도 했다. “저랑 건국대 (백)지웅이랑 농구 선수하기 전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였어요. 당시 친구들이랑 축구도 많이 했는데 지웅이도 저도 발 재간이 너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같이 농구하자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염재성은 학교 쉬는 시간과 방과 후에 늘 손에 농구공을 쥐고 있었고, 공부를 하거나 학원에 갈 때도 늘 농구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클럽 스포츠로 농구를 시작한 염재성은 재미와 실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진짜 제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전국대회 나가서도 우승하고, 개인상도 혼자 다 받고 했으니까. 선수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초등학교 때 까지는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제 학교 같은 경우에 선수가 없어서 방과후 교실 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대회를 나가기도 했거든요. 그럼에도 전국소년체전 3위를 했었어요. 제가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염재성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충격을 받는다. “중학교 형들을 봤을 때 ‘이게 진짜 선수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막상 보니까 제가 우물안의 개구리 더라고요(웃음)”
중학교 진학과 함께 찾아온 부상도 염재성을 힘들게 했다. 초등학교와 비교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운동량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농구 선수에 대한 간절함을 떠올리며 힘든 시간들을 버텼다.
산 넘어 산이었다. 어려운 시간들을 버티고 무룡고에 진학한 염재성은 훈련량에 다시 한번 놀란다. “중학교 때도 진짜 힘들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오니까 더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버티자는 생각으로 뛰었고, 2학년에 올라와서는 벤치 자원으로 경기에 많이 나섰죠”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자 쟁쟁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왔다. 염재성은 이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다 부상을 당하고 만다. “(양)준석(연세대)이랑 (문)정현(고려대)이가 올라오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죠. 쟁쟁한 선수들이니까. 그러다가 동계훈련에서 손가락이 부러졌어요. 2~3개월 정도 운동을 쉬었는데, 복귀하니까 경쟁에서 밀린 느낌이어서 그 때 많이 힘들었어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부모님의 응원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염재성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부모님의 응원이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까지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부모님을 보고 버텼죠. 부모님도 옆에서 많이 응원해주시고, 거기에 감사함과 책임감을 느꼈어요”
열띤 응원에 힘을 얻은 염재성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 있을 지 찾기 시작했다. 답은 수비였다. “잠깐 뛰더라도 에너지를 통해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수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개인 시간에도 사이드 스텝 연습을 포함해 수비 연습을 열심히 했죠. 또한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공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때 부터 리바운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죠”
피나는 연습은 곧 결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전국체전에서 삼일상고와 맞붙었던 적이 있어요. 그 경기에서 이현중 선수가 50점을 넘게 넣었는데, 제가 뛴 16분 동안에는 (이현중에게) 10점도 주지 않았어요. 죽기 살기로 막았죠(웃음). 감사하게도 그 경기를 코치님도 인정해주시고, 농구 관계자 분들도 인상깊게 봐주셨어요”
대학 진학 후에도 저학년 시기에는 출전 시간이 적었지만, 이를 한 두 번 이겨 내본 염재성이 아니었다. “이미 이런 것에 준비가 돼있었죠. 이전에 슬럼프도 여러 번 이겨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형들 이랑 많이 뛸 수 있도록 계속 준비를 했죠”

#많은 관중의 환호가 가득한 ‘꿈의 무대’
염재성이 프로 데뷔 후 가장 기대하는 것은 관중의 환호였다. 염재성은 “그렇게 관중이 많은 곳에서 뛰는 것 자체가 설레요. 그리고 그런 환호 소리를 들으면서 뛰는 것이 너무 부러웠어요”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염재성은 특정 프로 선수의 능력 중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고민 없이 대답했다. “비록 은퇴하셨지만 양동근 코치님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요. 공수 밸런스나 신체 밸런스 흠 잡을 곳이 없잖아요. 닮고 싶은 점을 뽑자면 너무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닮고 싶어요. 양동근 코치님 때문에 농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버틴 힘이고 롤모델이에요”
마지막으로 “볼 핸들러 수비는 누구 한테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수비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수비에서 팀에 공헌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비나 투지, 근성, 활동량으로 팀의 에너자이저가 되고 싶어요. 이를 통해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서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남긴 염재성이다.
양동근의 플레이를 보며 환호하던 아이는 어느새 그런 환호를 받는 프로 선수가 되는 순간을 앞두고 있다. 염재성이 드래프트 지명을 통해 프로 무대에서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선수가 될 수 있을 지 지켜보자.
#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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