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회 없이 잘할 수 있지?” 백지웅을 울린 아버지의 한마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공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던 백지웅은 그중 농구를 가장 즐겼다. 울산광역시에 살았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현대모비스 유소년 농구단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팀에는 고학년이 많았고 백지웅과 비슷한 또래는 거의 없었다. 형들을 따라 즐겁게 농구를 하던 중, 하성기 코치가 그에게 농구선수의 길을 제안했다. 백지웅은 엘리트 농구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농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께서 아직 어리니까 다른 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4학년 때 농구를 그만두고 일반 학생으로 다시 돌아갔죠.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아마추어 농구를 계속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아리 농구대회 결승 때 제가 부정선수 신분이라 몰수패를 당했던 기억이 나요. 선수 출신은 2년 동안 못 뛰는데 규정을 몰랐어요. 처음으로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 있었는데 기회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죠. 이후로 농구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죠.”
“중학교 2학년 끝나갈 때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데 화봉중 김현수 코치님께서 저보고 '뭐 하는 놈'이냐고 하시면서 농구를 정식으로 해보자고 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선수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지만 너무 간절한 마음에 매일 설득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가족 외식 자리에서 그의 아버지가 백지웅에게 농구 이야기를 꺼냈다. 백지웅이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대를 거듭한 그의 아버지였지만 결국 아들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백지웅의 아버지는 “후회 없이 잘할 수 있지? 못해도 되니까 열심히만 해봐”라며 아들의 농구선수의 길을 허락했다.

백지웅은 화봉중에서 3학년 동계훈련 들어갈 때쯤 농구를 시작했다. 남들에 비해 농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유급을 할 수도 있었지만 김현수 코치의 배려로 유급 없이 농구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 농구 인생 첫 공식 경기가 동아중과 경기였어요. 워낙 강한 팀이었죠. 팀은 완패를 당했지만 첫 경기임에도 20점 정도를 넣었어요. 이후에도 농구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U-16 예비 명단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너무 뿌듯했고 부모님도 정말 기뻐하셨죠. 결국 대표팀 명단은 안 됐지만 예비 24명 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항상 기본기부터 기술까지 많은 것을 알려주신 김현수 코치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무룡고에 진학한 백지웅은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신석 코치는 그의 슈팅 감각과 잠재력을 높이 사는 등 애정을 쏟았다. 백지웅은 선배 윤원상(현 LG)과 개인 훈련을 병행하며 기량을 한 단계 발전시켰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우승도 경험했어요. 아무래도 문정현, 양준석과 함께 팀을 이끌며 우승했던 협회장기 대회가 정말 기억에 남죠. 너무 짜릿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이어서 더 기뻤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18세 대표도 뽑히고, 신석 코치님 밑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좋은 기억이 많았죠.”

“건국대가 외곽 선수들을 잘 살려주는 대학이라고 형들이 자주 말했어요. 황준삼 감독님도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관심 가져 주시고 신경 써주셨거든요. 예뻐해 주실 때마다 느낀 게 이렇게 신뢰받으면서 농구를 하면 행복한 농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건국대에 입학한 백지웅은 1학년 때 피로골절로 수술한 후 1년을 쉬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안 좋았던 발목이 말썽이었다. 백지웅은 회복 기간을 4개월에서 5개월 정도로 예상했지만 그의 부상 부위는 운이 안 좋게도 희귀했다.
“어느 병원을 가도 다른 병원에 한번 가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일단은 뼈가 안 붙더라도 경과를 지켜보자 했죠. 결국에는 뼈가 너무 안 붙어서 재수술에 들어갔어요. 딱 1년 쉬고 복귀를 한 것 같아요. 부상으로 쉬고 있을 때 황준삼 감독님, 문혁주 코치님께서 하나부터 다 신경 써주시고 병원도 알아 봐주셨던 기억이 나요. 저를 많이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었죠.”
농구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큰 어려움이나 내리막길 없이 평탄했던 그의 농구 인생은 부상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부상을 회복한 2학년 때부터 다시금 폼을 끌어올렸다. 100% 만족할 만한 활약은 아니었지만 대학 대표로 선발되고 올해는 팀의 주장도 맡는 등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올해 건국대 주장을 맡은 백지웅은 고민이 많다. 프레디가 가세하며 팀 전력이 상승했지만 U-리그와 MBC배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백지웅 개인적으로도 신인 드래프트 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컨디션 난조를 겪기도 했다.
“팀 성적이 안 좋았던 이유는 저희의 집중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U-리그도 그렇고 MBC배에서도 시소게임을 하다 무너진 적이 많았어요. 대학생으로서 남은 경기가 많진 않지만 질 때 지더라도 우리의 농구를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지웅은 “제 단점 중 하나가 기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저는 슛이 좀 안 들어가도 항상 자신 있게 던지거든요. 4쿼터에 필요한 한방을 넣으면 그게 슈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확률을 더 높여서 정확한 슛을 가진 선수가 되고 싶어요. 프로에 간다면 제 슛은 정확히 넣고 상대 슈터는 슛을 못 쏘게 만드는 선수가 될 것입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프로 무대에서 4쿼터에 중요한 한방을 터뜨릴 백지웅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비교적 늦은 나이에 농구를 시작한 백지웅이 꿈의 무대를 밟을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백지웅은 대학생 신분으로 종별 선수권대회와 U-리그 본선 무대를 남겨두고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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