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호중 인터넷기자] 보스턴의 모든 것, 톰 하인슨이 팬들의 곁을 떠났다.
톰 하인슨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그는 보스턴의 17번의 우승에 모두 관여한 인물. 보스턴 그 자체였던 하인슨의 별세 소식은 보스턴 팬들을 넘어 NBA를 침울하게 하고 있다.
너무나도 위대한 인물이었다. 하인슨은 보스턴의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다. 선수 시절에는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면서 팀의 왕조 건설에 기여했다. 보스턴의 감독으로도 빼어난 리더십을 보였고, 말년은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자로 보냈다. 이 수준으로 한 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인물은 하인슨이 유일하다.
보스턴의 팬이라면 그의 삶에는 하인슨의 자취가 깊이 새겨져있을 수 밖에 없다. 보스턴의 찬란한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 이런 그를 떠나보내는 보스턴 팬들은 초록색 눈물을 쏟아내며 절망감에 빠져있다.
빌 러셀을 제치고 신인왕을 받은 남자
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천하의 빌 러셀에게도 없는 기록이 하나 있다. 신인왕 기록이다.
1956년 하인슨과 러셀을 보스턴에 지명받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 러셀은 첫 시즌에 평균 14.7점 19.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신인왕은 팀의 파워포워드였던 신인 하인슨의 몫. 평균 16.2점 9.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동료 러셀을 제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하인슨의 NBA 커리어는 화려하게 시작했다. 첫 시즌부터 신인왕-올스타-우승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후 행보는 막힘이 없었다. 하인슨은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면서 불도저를 연상시키는 전투적인 면모를 보였다. 팀의 골밑을 러셀과 확실히 책임졌다.
그 덕에 보스턴은 1959년부터 1965년까지 7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며 전무후무한 왕조를 달성한다. 현재 몇몇 팀들에게 붙은 왕조라는 이름이 붙곤 하는데, 보스턴의 7시즌 연속 우승 기록을 들으면 다소 무색해진다.
그는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커리어동안 누적 12194점 5749리바운드 131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불도저 하인슨이 은퇴를 결정하자 보스턴은 당연히 그의 등번호였던 15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었다.
하인슨은 9시즌(1956-1957시즌~1964-1865시즌)동안 평균 18.6점 8.8리바운드를 기록한채 선수로서 모든 영광을 누려보고 유니폼을 벗게 된다.

하인슨은 선수 시절부터 선수 협회 회장을 하는 등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를 알아본 보스턴은 1969-1970 시즌부터 하인슨에게 감독직을 맡겼다.
하인슨은 첫해부터 팀을 68승 14패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을 거머쥐었다. 그의 리더십은 상당히 화끈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심판 판정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인슨은 1974년, 1976년 팀을 감독으로서 우승시켰다. 1969년부터 1978년까지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427승 263패 기록을 완성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감독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명예의 전당 연설에서 하인슨은 “보스턴의 감독직을 제의받았을 때 행복했다. 경쟁심이 있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보스턴을 위해 선수-감독으로 모든 것을 바친 남자. 도전정신이 남달랐던 그는 말년을 해설자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역대급 편파해설자, 그럼에도 NBA 팬들을 그를 사랑했다
하인슨의 해설은 집 소파에서 농구를 보는 열혈 농구팬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쉽다.
하인슨은 보스턴에 편향된 해설을 했다. 보스턴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심판 판정이 나오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한다. 심판을 열렬히 비판하는 것은 기본. 보스턴이 조금이라도 잘하면 해설 중에도 박수와 환호를 건넨다.
처음에는 “저 해설자는 누구길래”라며 눈살을 찌푸리던 이들도 이내 하인슨의 커리어를 들으면 유쾌하게 이해하게 된다. 보스턴을 위해 선수-감독으로 인생을 헌신해온 노장이기에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바뀐다. (물론, 편파해설은 NBA 특유의 지역방송제가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전국방송’이었으면 하인슨의 해설은 허용 불가 수준. 하인슨은 NBC SPORTS BOSTON, 보스턴 팬들을 위한 지역 방송의 해설자였다)
"하인슨과 고먼의 해설을 듣는게 너무나도 즐겁다. 잊지말자. 그는 선수로도 위대했지만, 챔피언십 감독이기도 하다" (ABC 제프 밴 건디 해설자)
'하인슨과 고먼? 레전드.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ABC 마크 잭슨 해설자)
그와 마이크 고먼 캐스터는 영혼의 듀오로 불린다. 고먼 캐스터가 방송을 매끄럽게 리드했고, 하인슨은 선수 및 감독 시절의 연륜이 묻어나오는 해설을 곁들였다. 이 조합은 지금까지도 보스턴 팬들이 아닌 이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영혼의 듀오는 래리 버드가 뛰던 시절부터 폴 피어스-케빈 가넷이 뛰던 시절, 아이재아 토마스가 뛰던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 상당히 긴 시간 마이크를 잡고 있다. 보스턴의 중계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시중에 있는 보스턴 하이라이트를 찾아본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늘 묻어있다.
최근 흐름이 묘했다. 방송을 한 번도 결장한 적 없는 하인슨이 근 1~2년 사이 결방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화이트 맘바 브라이언 스칼라브리니가 그를 대신해 해설했으나 보스턴 팬들이 익숙한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인슨은 병 투병중에도 전화 연결로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몸이 조금이라도 회복되면 다시 마이크에 앉아 보스턴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런 하인슨을 떠올리면 보스턴의 감성이 뚝뚝 묻어나온다. 투지, 열정, 헌신, 희생. 보스턴의 팀 컬러를 가장 잘 구현한 인물임에 이견이 없다.
보스턴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남자, 톰 하인슨 씨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일평생 초록 피를 흘리고 있다고 외쳤던 남자 톰 하인슨 씨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은 선수(the little guy)란 별명은 하인슨이 내게 붙여준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물론 그가 농구에 이바지한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 (아이재아 토마스)
"천국에서 푹 쉬길. '레전드' 톰 하인슨" (켄드릭 퍼킨스)
"내 사랑과 기도를 하인슨 가족에게 보낸다. 살아생전 농구에 미친 영향력에 감사하다. 이제는 없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을 존재다" (에반 터너)
"타미 어워드를 이기는 것은 늘 영광이었다. 편안하게 쉬길 바랍니다" (셰인 라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해설을 듣는 것은 행복함 그 자체였다" (제일런 브라운)
"하인슨은 내 첫 감독이었다. 환상적인 감독이었다. 훌륭한 멘토였고... 그 무엇보다 나에게 최고의 친구였다. 당신을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세드릭 맥스웰)
#톰 하인슨 프로필
1934년 8월 26일생 미국 뉴저지 출신
201cm 99kg
홀리 크로스 대학교 졸업(1953`1956)
1956년 지역 인재로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
선수로서
NBA 챔피언 8회(1957, 1959-1965)
NBA 올스타 6회(1957,1961-1965)
올 NBA 세컨 팀 4회(1961-1964)
NBA 신인왕(1957)
등번호 15번 영구결번
명예의 전당 입성
감독으로서
NBA 챔피언 2회(1974,1976)
NBA 감독상(1973)
올스타전 감독 4회(1972-1974, 1976)
#사진_보스턴 셀틱스 공식 SNS, 보스턴 셀틱스 구단 유튜브 캡쳐
점프볼/ 김호중 인터넷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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