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첫 경기

/ 기사승인 : 2022-03-29 18:32:4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⑳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간 뒤, 그러니까 담임선생에게 학업에 충실할 것을 전제로 농구부에 남기를 허락받은 다음 김영기는 더 어려운 입장이 되었다. 담임선생은 김영기와 ‘공범’이 되어 제자가 농구부원으로 남도록 눈감아주었지만 부모에게는 농구를 그만둔 것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김영기는 농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학교가 파하면 가능한 일찍 집에 돌아갔다. 그리곤 얼른 몸을 씻고 제 방에 들어가서는 두문불출한 것이다. 부모와 마주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소년의 심사로야 신경전쯤 되었겠지만 부모인들 눈치를 채지 못했겠는가.

김영기가 농구부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서울시 고등학교 대회가 서울 환도 이후 처음으로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배재고등학교 농구부는 이 대회 참가를 목표로 맹훈련에 들어갔다. 이들에게는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전국 최강이었다는 자부심이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코치도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김영기는 이때의 훈련을 맹훈련(猛訓練)이 아니라 맹훈련(盲訓練)이라고 표현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뚜렷한 방향성이나 계획 없이 무작정 열심히 땀만 흘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불안했기에, 배재고등학교 농구부원들은 한 가지 궁여지책을 끌어냈다. 며칠만이라도 코치를 어디서 빌려오자는 데 뜻을 함께 한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뜻이 있는 데 길이 있다고, 농구부원인 유철규의 형이 한때 세무서 팀의 선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년들은 이 사람을 코치로 초빙했다. 유 코치는 선선히 지도를 맡아 주었지만 농구부원들에게는 새로운 괴로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배재고 농구부 학생들이 첫 훈련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첫마디부터 호통이었다.

“이게 누구한테 배운 농구야! 도대체 기초부터 돼먹지 않았어!”

대회 나흘을 앞두고 코치를 모셔다 시작한 훈련이었다. 학생들은 경기 계획을 짜기는커녕 기초 자세부터 뜯어고치게 되었다. 어처구니없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농구부원들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발놀림에서부터 드리블, 슛 자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유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를 따질 계제(階梯)가 아니었다. 농구부원들은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김영기는 이때 처음으로 농구의 ‘작전’을 배웠다. 그는 훗날 이때 배운 작전이라는 것이 대인방어(對人防禦)에 대비한 스크린 블록(수비자가 공격하는 팀 선수의 가로막기에 걸리도록 하는 움직임)이었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당시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다. 배운 작전을 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었다. 모르는 가운데 어찌됐든 열심히 귀담아듣고 익혔다.

경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김영기는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서 우쭐한 기분으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내일 우리 경기를 해요!”
“무어라고?”
어머니는 놀랐는지 한참을 서서 아들을 바라봤다. 김영기는 달아나듯 2층에 있는 제 방으로 달음질쳤다. 자꾸 웃음이 났다. 후련하기도 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반응을 기다렸다. ‘어머니가 대성통곡할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아버지의 불벼락이 떨어질 거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우핫핫핫….”
김영기는 귀를 의심했다.
“우핫핫핫….”
아버지다! 아버지의 웃음소리다! 그런데 이내 잠잠해졌다. 어라?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김영기는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영기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저녁밥을 혼자 먹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므로 식구들은 모두 저녁을 먹은 뒤였다. 김영기가 밥을 다 먹은 뒤에도 아무 일 없었다. 그는 맥이 풀렸다. 무언가 회오리바람 아니면 평지풍파가 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예상 외로 조용한 것이다. 멋쩍어졌다.

김영기는 방문을 잠갔다. 내일 경기를 곰곰이 생각하자니 벌써 흥분이 됐다. 난생 처음 선수로 대회에 나가는 것이다! 두 볼이 달아올랐다. 김영기는 지난번 아궁이 소동이 벌어진 뒤로 처음 집에 가져온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발에는 딱딱한 미군 작업화까지 꺼내 신었다. 날씬한 ‘김영기 선수’가 거울 앞에 나타났다. 코치에게 배운 대로 드리블 자세를 해보았다. 멋지다! 이번엔 패스 자세. 이것도 굿! 자유투 자세를 잡아 보았다. 성공! 나머지 하나 더. 클린 슛! 이번에는 드라이브인 슛. 원더풀! 그리고는 점프슛. 이건 더 멋지군. 수비 자세로 들어가서 푸트워크. 세상에 이런 스텝이 또 있을까! 눈앞에 상상의 공격수가 나타났다. 마크, 또 마크…!

“야, 영기야! 뭘 하기에 밤새도록 쿵쾅쿵쾅이냐? 엉? 그만 자지 못해?”
한참동안 몽상에 빠졌던 김영기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문을 열고 나가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캄캄했다. 시계를 보았다. 잘 시간이 지난 지 오래. 소풍가기 전날 저녁 아이처럼 내일 날씨가 좋기를 빌면서, 내일 파인 플레이를 꿈꾸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유니폼을 벗어 잘 개 두어야 한다는 생각과 벗기 싫다는 마음이 내면에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김영기는 유니폼을 입은 채 깊이깊이 잠들었다.

경기가 열리는 날, 날씨는 좋았다. 경기장에는 관중이 꽉 들어차 있었다. 양교(兩校) 학생들의 응원도 대단했다. 상대는 경동고등학교. 배재고 선수들은 관중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김영기는 관중이 모두 자기만 바라보는 것 같아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팔다리에 짜르르 전기가 흐르는 기분. 동작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다리가 자꾸 후들거렸다. 양 팀 선수들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인사도 마쳤다. 응원단 앞에 한 줄로 서서 힘찬 응원가도 들었다. 그래도 김영기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이상했다.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껏 뛰어 보아도 다른 선수의 꽁무니만 쫓는 격이었다. 몸이 붕 뜬 기분.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유니폼 바지 안에 받쳐 입은 속옷이 허옇게 흘러내리지 않는가. 이게 무슨 창피람. 김영기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속옷을 유니폼 안으로 말아 넣는 데 정신을 빼앗겼다. 어쩌다 공을 잡으면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코트를 누비는 선수 가운데 자신을 뺀 아홉 명 모두 경동고등학교 선수 같았다. 빨리 패스를 하고 싶은데 공을 받아줄 배재고 선수는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일단 드리블을 했다. 지난밤 거울 앞에서 만난 김영기 선수는 간 데 없고, 공의 바운드도 일정하지 않았다. 높게 튀었다 낮게 튀었다…. 손이 공을 따라 다녀야 할 판이었다. 발놀림도 어제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닭싸움하는 외발처럼 제멋대로 땅을 짚고 다녔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김영기에게 패스가 날아왔다. 기회였다! 단독 드리블로 바스켓을 향해 치고 들어갔다. 급한 나머지 드리블은 엉망이었다. 공을 놓치려다가 살리고, 다시 놓치려다가 살리고 하면서 드리블 시늉은 했다. 엄격하게 판정하자면 워킹 바이얼레이션이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따라붙는 수비수는 없었다. 노 마크 찬스. 김영기는 내처 달렸다. 누군가 고함을 치는 듯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골을 향해 날아올랐다. 러닝슛! 그러나 공은 백보드를 넘어갔다. 와아~하는 함성과 폭소가 터졌다. 김영기는 득점 기회를 놓쳤다고 분해하며 수비에 들어갔다. 경기가 계속되었는데 관중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누군가 그에게 귀띔했다. 그러나 무슨 소리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응, 응’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영기는 또 열심히 뛰고 달렸다. 심판도 김영기에게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너는 휘슬 소리도 들리지 않느냐.”며. 그는 또 건성으로 대답했다. ‘네, 네.’이러는 중에 타임아웃이 되었다. 벤치로 나갔다. 김영기는 거기서 한꺼번에 화살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동료의 핀잔이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 그럴 리가 없다. 누구를 놀리는 거냐. 동료의 질책이 이어지자 김영기는 마침내 화를 버럭 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도 유분수지!

경기는 끝났다. 김영기도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귓가에 관중의 함성이 쟁쟁거렸다. 저녁상이 나왔다.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 맞는 저녁상이었다. 김영기는 한참을 정신없이 퍼 넣었다.
“영기야.”
“예?”
그는 숟가락을 든 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기가 보였다.
“너 잘했다면서?”
옆에서 어머니가 먼저 말했다.
“예?”
“음, 너 잘하더구나.”
“?…… 아버지! …… 오늘 나오셨어요? 저 하는 것 구경하셨어요?”
김영기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도 반대만 하시던 아버지가…. 그러나 기쁨은 다음 순간 거품처럼 꺼져버렸다.

“그런데, 이놈아 아무리 급해도 그게 뭐냐. 너희 편 골에다 갖다 넣어?”

김영기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면… 정말이었던가. 동료 선수들의 말이 정말이었나. 아찔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질책이, 아버지의 꾸중이 사실임은 이튿날 조회 때 확인되었다. 권위 있는 교장 선생의 훈시가 사실을 입증했다.

“……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선인(先人)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체육 중흥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고 농구대회에 출전한 우리학교 선수들 중에, 자기 편 골에 공을 갖다 넣으려고 하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정신 상태로 우리가 어떻게 체육 배재의 전통을 이어 나가겠습니까? 다행히 어제 우리학교와 대전한 경동 팀이 약했고, 그 공이 골이 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배가 닦아 놓은 체육 전통에 오점을 찍을 뻔 했습니다….”

(필자 주 :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에서 배재고등학교 2학년이던 1953년 봄철리그에서 처음으로 공식경기에 출전했다고 서술하였다. 날짜를 명기하지는 않았으나 상대팀을 경동고로 기억하였고 배재고가 승리했음을 알 수 있으므로 1953년 5월 3일 보인상고에서 열려 배재고가 23-20으로 승리한 경기를 특정할 수 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 1953년 5월 5일자 2면, ‘농구연전 제2일’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의 인기기사

JUMPBALL TV

오늘의 이슈

점프볼 연재

더보기

주요기사

더보기

JUMPBALL 매거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