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학 출신 감독들의 KBL 도전사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5-25 18: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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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4월 23일, LG는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조성원 감독은 KBL에 데뷔한 역대 9번째 대학 감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7년 이후 역사를 돌아보면 프로에서 명성을 이어간 대학 감독은 그리 많지 않았다. KBL. 과연 조성원 감독 이전, 대학 감독들의 KBL 도전사는 어땠을까.

※ 본 기사는 점프볼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대박」 최고의 성과를 낸 김태환 감독

24년 역사를 자랑하는 KBL에서 대학 감독 출신 지도자는 총 8명이 있었다(2019-2020시즌 기준). 그들 중에서 최고의 성과를 낸 주인공은 단연 김태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자농구 지도자로서 활약한 김태환 감독은 1998년부터 중앙대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송영진-김주성으로 이어지는 트윈 타워는 물론 박지현, 조우현, 황진원, 임재현 등 황금 라인업을 자랑하며 대학 무대를 ‘중앙대 천하’로 장식했다. 김태환 감독이 부임한 이후 중앙대는 44승 4패라는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했고 KBL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충희 감독 체제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본 LG는 확실한 대체자가 필요했다. 김태환 감독은 0순위에 가까웠고 결국 대학 감독 출신으로서 최초로 KBL 무대에 서게 됐다. 적응의 시간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김태환 감독은 수비 위주의 팀 칼라였던 LG를 극단적인 공격력을 갖춘 팀으로 변화시켰으며 조성원, 조우현, 에릭 이버츠 등 압도적인 화력을 과시해 나갔다. 그 결과, LG는 2000-2001시즌, 평균 100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30승 15패를 기록하며 2위에 올랐다. 챔피언결정전에 진출,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체질 개선 및 성적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김태환 감독의 이후 행보는 첫 시즌의 성과를 넘어서지 못했다. LG에서의 4시즌 동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챔피언결정전은 단 한 번에 만족해야 했다. 재계약에 실패한 김태환 감독은 야인의 삶을 보낸 뒤 2005년 SK와 계약하며 다시 돌아오게 된다. 특유의 공격 농구는 여전히 짙은 색깔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페이스를 잃었고 2006-2007시즌 도중 사임했다.

「중박」 플레이오프 진출 100%! 강을준·서동철 감독


김태환 감독 이후 대학 감독 출신 지도자들이 프로 무대에 다수 뛰어들었지만 성공 사례는 좀처럼 등장하지 못했다. 외국선수라는 최대 변수가 자리한 만큼 아마와 프로의 차이를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는 쪽이 조금이나마 감독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4월 11일, 명지대에서 LG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강을준 감독은 남다른 적응력으로 팀을 중위권의 다크호스로 끌어올렸다. 물론 다양한 어록을 탄생시키며 농구 외적인 부분에서 크게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만큼 강을준 감독과 LG는 성공적인 한 걸음, 한 걸음을 밟을 수 있었다. 사실 강을준 감독은 내실이 튼튼한 지도자로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명지대를 큰 문제 없이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2005년에는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언더 독의 이미지 속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왔다. LG에서의 3시즌도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4강 진출 사례는 없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은 꼭 이뤘다는 점에서 큰 굴곡 없이 프로 무대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학 감독 출신 지도자로서 강을준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 서동철 감독이다. 물론 상무, 남녀 프로농구, 국가대표 등에서 감독, 코치로 활약한 그는 냉정히 대학 감독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경력이 너무도 짧다. 서동철 감독은 2018년 고려대에 부임했지만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르지 못한 채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고려대에서 나온 후 곧바로 KT의 신임 사령탑이 됐고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그들을 단숨에 중위권에 올려놓았다. 5시즌 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 우승후보로 꼽힌 LG와 최후의 승부까지 겨룰 정도로 단시간에 팀 전력을 변화시켰다. 코로나19로 인해 2019-2020시즌이 조기 종료됐지만 최종 6위로 마치며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이 맡은 2시즌 모두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지만 ‘소박’ 정도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감독도 존재한다. 명지대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골드뱅크로 향한 진효준 감독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효준 감독은 KT의 전신인 골드뱅크와 2년, 1억 3천 5백만원에 계약하며 많은 기대를 받았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0-2001시즌은 17승 28패로 8위에 머물렀지만 코리아텐더로 구단명이 바뀐 2001-2002시즌에는 26승 28패를 기록했다.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던 만큼 구단 운영이 힘겨웠던 상황이었지만 마지막 6연패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던 시즌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거액 연봉을 받고 있었던 진효준 감독은 결국 재정난으로 인해 프로 무대와 이별했다.

「쪽박」 호된 신고식 치른 대학 명장들


앞서 언급한 4명의 감독들은 그나마 대학과 프로의 차이를 어느 정도 극복해낸 사례로 볼 수 있다. 다만 지금부터 이야기할 감독들의 경우 과거 명성에 비해 아쉬운 성적을 낸 만큼 비판적인 시선을 둘 수밖에 없다. 먼저 거론될 이름은 최희암 감독으로 연세대 재임 시절 대학 최강으로 이끈 명장 중의 한 명이었다. 연세대 최전성기를 이룩한 그의 프로 데뷔는 많은 이슈를 생산해냈다. 그러나 프로 무대에서의 최희암 감독은 다소 아쉬운 행보를 걸었다. 2002년 4월 1일, 당당히 모비스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2002-2003시즌 25승 29패를 기록하며 간신히 6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승 후보로 꼽힌 2003-2004시즌에는 6차례의 연장전에서 1승 5패를 기록, 8경기에서 모두 역전패를 당하며 중도사임했다. 이후 최희암 감독은 2006-2007시즌부터 2008-2009시즌까지 전자랜드를 이끌었지만 단 한 차례의 6강 진출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연세대의 부흥기를 이끌고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활약한 김남기 감독도 프로 무대에서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4월 22일, 큰 뜻을 품고 오리온스에 합류한 그는 2009-2010, 2010-2011시즌을 지휘했지만 모두 꼴찌에 머물렀다. 2시즌 모두 15승에 그치며 명성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비슷한 사례로는 중앙대의 52연승 신화를 이끈 김상준 감독을 떠올릴 수 있다. 대학 감독 시절, 적수가 없었던 그는 당당히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2011-2012시즌 13승 41패라는 초라한 성적과 함께 야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편 이충희 감독 역시 대학 감독 출신 지도자들의 KBL 도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물론 다른 감독들과 달리 대만 홍커우, LG에서 프로 생활을 경험했다는 점은 차이가 있지만 고려대, 동국대를 거쳐 다시 돌아왔다는 부분에 중점을 뒀다. 이충희 감독은 2007-2008시즌을 앞두고 오리온스에 합류했지만 금세 지휘봉을 내려놔야 했다. 김승현은 물론 외국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인해 정상 전력을 가동할 수 없었고 결국 11연패를 포함 4승 22패를 기록하며 자진 사퇴의 길을 걸었다.

※ 대학 출신 KBL 감독들 성적

김태환_중앙대→LG / 207경기_124승 83패 / 플레이오프 준우승
진효준_명지대→골드뱅크 / 99경기_43승 56패
최희암_연세대→모비스 / 76경기_29승 43패
이충희_동국대→오리온스, DB / 66경기_13승 53패
강을준_명지대→LG / 162경기_91승 71패
김남기_연세대→오리온스 / 108경기_30승 78패
김상준_중앙대→삼성 / 54경기_13승 41패
서동철_고려대→KT / 97경기_48승 49패*
조성원_명지대→LG
*_2019-2020시즌 종료일 기준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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