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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주익 언덕에 우뚝한 마라톤 영웅 황영조 기념비. (사진=필자 제공) |
폭우가 쏟아지는 금요일 밤이다.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41번 교향곡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연구실 창을 열고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키보드를 만지고 있다. 지난 7월 11일자 원고를 보낸 뒤 오래 쉬었다. 사정이 있었다. 나는 두 주일에 걸쳐 바르셀로나에서 학술취재를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린 지 30년이 지났다. 내가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도 30년 전이었고, 올림픽의 해였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유산을 헤아려보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남긴 위대한 업적도 돌아보았다.
몬주익 언덕에 자리 잡은 올림픽주경기장(Estadi Olímpic Lluís Companys)의 성화대는 새것처럼 빛을 냈다. 그 맞은편에는 황영조 선수의 달리는 모습을 돋을새김한 석조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30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가 있을 법도 한데, 떠들썩한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주경기장과 주변의 기념박물관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로 붐볐다. 올림픽경기장 주변은 폐허처럼, 아니면 성지(聖地)처럼 조용하지 않다. 생명력이 넘쳤다. 저렇게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숨 쉰다면, 바르셀로나올림픽은 여전히 오늘의 이벤트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김영기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긴 공백을 핑계 삼아 이만 줄인다. 지루한 연재를 기다렸다가 읽어준 독자들께서 계심을 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화나요'를 누르기 위해 기다려준 그분께도. 글쓴이에게 독자는 항상 소중하다.)『갈채와의 밀어』를 다시 읽고 우리 농구 역사의 한 구간을 반추하려는 나의 작업은 연구실에서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는 책자의 모양으로, 아니면 아직은 정하지 않은 다른 모습으로 보태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김영기 선생이 지금처럼 건강히 우리 곁에 계셔 주기를 기도드린다. 그분의 연세가 올해 86세. 골프장에 나가 에이지 슈트를 빈번히 하시는 분이니 오랫동안 건재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연재를 계기로 김영기 선생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고, 확인했다. 글을 쓰기 위해 김인건, 신동파, 방열, 유희형과 같은 우리 남자농구의 레전드들과 빈번히 통화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눈 일도 잊지 않을 것이다. 유희형 선생께서 내 기억과 기록의 오류를 한 차례 바로잡아 주셔서 망발을 가까스로 면한 적이 있다. 감사드린다. 꼭 대화하고 싶었던 최종규 선생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아쉬웠다. 김 선생의 영식인 김상식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과 오랜만에 나눈 인사도 기억해 두겠다.
이제 나는 『갈채와의 밀어』 이전으로 돌아가 우리 농구를 팬으로서 지켜보겠다. 이따금 글을 쓸 것이다. 가능하면 이전보다 더 많은 분들과 대화하기 위해 힘쓰겠다. 나는 오랫동안 (그러니까 2006년에 데스크로 들어앉으면서 취재 현장을 떠난 이래 줄곧) 경기장 출입을 줄이고, 만남도 가급적 줄여왔다. 농구장이 더 이상 나의 일터가 아니라는 사실은 후련함과 아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제는 그러한 감정과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하다. 편한 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끌면서 경기장에 찾아가리라.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고, 내 자리에 앉아 경기를 즐기고 싶다.
긴 세월 기자로 일하면서 누리지 못했던 그런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 농구부가 없는 학교에 다니면서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고등학교 농구대회를 보러 갔던 10대의 설렘과 기대. 나는 신일고등학교 김진과 선일여고 권명희의 팬이었다. 고려대학교의 황유하를 좋아했다. 동방생명의 김화순이 뛰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땡땡이도 두렵지 않았다. 그 마음을, 농구 보는 일이 주는 행복을 평범하게 누리고 싶다. 그것을 나눌 수 있다면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동의할 수 없는 주장에도 때로는 공감할 수 있다. 승부가 그렇듯이.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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