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20분 동안 20득점, “김영기가 누구냐?”

/ 기사승인 : 2022-06-07 21: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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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㉘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 참가한 남자농구대표팀. (사진출처:한국농구100년사)

 

1956년 11월 22일부터 12월 8일까지 호주의 멜버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1896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뒤 16회째 대회였다. 호주는 물론이고, 남반구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이다. 적도 아래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리려면 4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00년 시드니에서 27회 대회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31회 대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무대를 멜버른에서 맞고 있었다. 농구, 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 역도, 육상 종목에 선수 35명, 임원 22명이 참가했다. 김영기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김영기는 어렵게 호주에 갔다. 그는 『갈채와의 밀어』에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이었다.”고 적었다. “사는 보람을 느끼는 듯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고려대학교의 선배들이 그토록 당부한 ‘힘껏 싸울’ 기회는 별로 없었다. 김영기는 ‘열 번째 선수’였다. 선배들의 시중을 들고, 양말을 빨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공을 지고 다니는 처량한 신세였다. 합숙훈련을 할 때부터 공을 짊어지고 다니는 선수는 김영기와 백남정이었다. 이런 점에서 백남정은 김영기의 좋은 반려자였다. 이들의 우정은 노년에 이르도록 계속된다. (하지만 대회 기록을 보면 김영기나 백남정은 우리 대표 팀의 매우 중요한 선수로서 뛰어나게 활약했음이 분명하다. 김영기의 진술은 그가 품었던 포부에 비하면 주어진 기회가 너무 적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보다 큰 기회를 향한 열망은 성공하는 선수들의 공통점이다.)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 팀은 우루과이, 불가리아, 자유중국(대만)과 함께 예선리그 C조에 편성됐다. 첫 상대는 자유중국이었다. 11월 22일 멜버른 왕립 전시관(Royal Exhibition Building : 1880년과 1888년 멜버른에서 개최된 국제 전시회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에서 열린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76-83으로 아깝게 졌다. 전반(28-42)에 뒤진 점수를 후반 맹추격(48-41)으로도 따라잡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한국의 최다득점자는 ‘열 번째 선수’ 김영기였다. 그는 20득점을 올려 안영식(12득점), 김영수(15득점)를 능가하는 득점능력을 확인했다. 놀라운 점은 김영기가 후반 20분만 뛰고도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때의 일을 『갈채와의 밀어』에 이렇게 적었다.

“농구장에서 첫날 경기로 시작된 자유중국과의 대전. 이 경기에서도 나는 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스코어 차를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벤치의 후보 선수였다. 그런데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김정신 코치가 나에게 손짓을 했다. 뜻밖의 일이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후반전의 작전에 대한 주의를 들었다. 그리고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스코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조금도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벌어진 점수 차가 단축되어가며 관중의 알 수 없는 함성이 내 플레이의 호흡과 함께 터지고 있다는 것만 의식했다. 그리고 나는 만족할 수 있는 슈팅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날의 바스켓은 평상시의 바스켓보다 한 두어 배는 커 보였다. 나는 후반전이 다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코트 밖으로 아웃되지 않았다.”

김영기는 이 날 자신이 21득점을 기록했다고 적었다. 이 기록은 이 경기에서 최고 득점 기록이었으며 후반 20분만 뛰고도 기록한 수치여서 세계의 체육기자들이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김영기의 활약은 외신을 통해 널리 보도되었고, 국내에도 보도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영기의 기억은 사실과 약간 차이가 있다. 1956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같은 날자 조선일보 모두 김영기의 득점을 20점으로 보도하고 있다. 올림픽 관련 기록에도 이 날 김영기의 기록은 20득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1점 차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국의 젊은 천재가 난생 처음 밟은 올림픽 코트에서 마치 오랫동안 그곳에 적응한 선수처럼 능숙한 경기를 했으며 세계인이 주목할 만한 경기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첫날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김영기는 이후로도 40분을 모두 뛰어보지 못했다. 이 일이 무척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뛰어난 선수들은 대개 ‘풀타임’ 활약하기를 원했다. 주전급 선수들은 벤치에서 교체를 지시하면 예외 없이 불쾌한 내색을 했다. 농구 선수나 축구 선수나 마찬가지였다. 한참 뒤인 1977년 축구 대표 팀의 한 베테랑 선수는 전반이 끝난 다음 감독이 교체를 지시하자 축구화를 던져버리고 태극마크를 반납해 버리기도 했다. 여론이 그를 동정했다. 세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해서 요즘은 주전 선수를 매 경기 풀타임 기용하면 대번에 ‘선수를 혹사한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지만 김영기가 멜버른 왕립 전시관을 누빌 때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튼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에서 볼 멘 소리를 했다.

“나의 신장이 유럽 선수들과 대결하기에는 작다고 생각했는지, 코치는 나를 기용하지 않았다. 첫날의 첫 경기에서 나를 향하여 터졌던 박수소리는 다시 무위로 돌아가고, 나는 공을 짊어지고 잠자리의 침구를 개고, 양말을 빠는 선수로 돌아갔다.”

한국은 11월 24일 불가리아에 58-89로, 26일 우루과이에 60-83으로 져서 C조 최하위를 기록한 다음 9-15위 순위결정전으로 밀렸다. 순위결정전에서는 2그룹에 편성돼 캐나다와 일본을 상대했다. 11월 27일 캐나다에 연장접전 끝에 63-74로 졌고 28일 일본에는 67-83으로 졌다. 이제는 13-15위전. 11월 30일 태국을 61-47로 제압해 유일한 승리를 낚았지만 12월 1일 싱가포르에 79-92로 져서 14위에 만족해야 했다. 대표 팀은 ‘연전연패’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로 고전을 거듭했다. 이러는 동안 김영기는 양말만 빨지 않았다. 그는 자유중국과의 경기 이후로도 대한민국 농구 대표 팀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였다.

김영기는 대회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공항에서 진짜 박수를 받았다. 시민들은 가는 곳마다 그의 손들 붙들고 “김영기! 잘했다, 잘했어!”를 거듭했다. “어이, 김영기가 누구야? 그 후반전에만 스무 점 넣은 김영기가 누구야?”하고 찾는 시민도 있었다. 김영기는 농구영웅이 되어 개선한 것이다. 열광 속에 파묻힌 그를 주기선이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윽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김영기는 뒤늦게 주기선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선배에게 달려갔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1956 멜버른올림픽 전적 및 개인득점

▲C조 리그(우루과이, 불가리아, 자유중국, 대한민국)
대한민국 76(28-42, 48-41)83 자유중국
안병석 9, 김영수 15, 조병현 8, 김영기 20, 고세태 5, 백남정 5, 최태곤 2, 안영식 12
대한민국 58(33-47, 25-42) 89 불가리아
안병석 4, 김영수 2, 조병현 2, 김영기 11, 고세태 12, 백남정 12, 안영식 3, 김춘배 12
대한민국 60(25-35, 35-48)83 우루과이
안병석 6, 김영수 4, 김영기 13, 고세태 7, 백남정 17, 최태곤 4, 안영식 3, 김춘배 6

▲9-15위 순위결정전 2그룹
대한민국 63(31-32, 31-30, 연장 1-12)74 캐나다
안병석 10, 김영수 8, 김영기 10, 고세태 9, 백남정 7, 안영식 17, 김춘배 2
대한민국 67(23-36, 44-47)83 일본
안병석 5, 조병현 10, 김영기 15, 고세태 5, 백남정 9, 최태곤 8, 안영식 7, 김춘배 8

▲13-15위전
대한민국 61(33-28, 28-19)47 태국
안병석 13, 김영수 16, 김영기 4, 고세태 8, 백남정 4, 최태곤 2, 안영식 7, 김춘배 7

▲13-14위전
대한민국 79(39-45, 40-47)92 싱가포르
안병석 22, 김영수 8, 조병현 2, 김영기 16, 고세태 7, 백남정 1, 최태곤4, 안영식 10, 김춘배 9

※출전 : http://www.linguas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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