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광저우(중국)/민준구 기자]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25년 만에 값진 승리를 챙겼다.
8월 29일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1승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안고 결전의 장소인 중국 우한으로 떠났다. 얼마나 준비했는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대한민국은 발걸음을 옮겼고 월드컵은 시작됐다.
▲ 조용한 도시 우한, 월드컵 준비 과정은 실망 그 자체
취재진이 우한에서 느낀 첫 감정은 ‘실망’이었다. 월드컵과 관련된 팜플렛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체육관 주변 환경도 썰렁했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우한이 이토록 조용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더불어 사람들 역시 월드컵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모습이었다.
월드컵 개막 D-2인 상황에 체육관 역시 농구 대축제를 열 준비는 되지 않았다. 철제 구조물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고 검색대 역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공안들이 체육관 곳곳에 서 있었지만 외부인이었던 취재진을 가로막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개막 전이라고 해도 체육관의 보안은 매우 취약했다.
취재에 필요한 AD 카드 발급 역시 우한에 있는 6일 동안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AD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센터의 위치는 애매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심지어 체육관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취재진은 물론 외신 기자들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2일 만에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지만 첫 경기가 열렸던 31일 여전히 체육관은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진행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기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쉼터가 섞여 있었고 공통 언어인 영어가 통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우한에서의 월드컵 B조 예선은 많은 문제와 함께 진행됐다.

▲ 기대에 부풀었던 대한민국, 아르헨티나의 벽은 높았다
우한에 도착한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안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선수단이 머무는 호텔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의 취식을 자제하기를 바란 것이다. FIBA에 따르면 중국의 소, 돼지 등 고기에 클렌부테롤이 첨가돼 있다고 전해진다.
클렌부테롤은 지방 감소제로 도핑 약물로 상기 금기 약물로 분류되어 있다. 쉽게 말하자면 100%는 아니지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대한민국은 결국 이미 예정되어 있던 외식도 금한 채 호텔 음식에만 의존하고 말았다. 국내에서 미리 준비한 비상식량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4개국 국제농구대회를 치른 뒤 선수들의 몸 상태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김종규는 햄스트링과 허리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고 최준용 역시 체코 전에서 다친 어깨가 회복되지 않았다. 박찬희와 양희종은 경기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를 맞이하게 됐다.
쉬운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광의 시대가 지난 아르헨티나인 만큼 어느 정도의 기대감은 있었다. 그 기대가 무너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패스 워크는 세계적이었고 주어진 기회를 완성시키는 정확도 역시 대단했다. 대한민국은 17개의 3점슛을 허용했고 결국 69-95로 참패했다.

▲ “우리도 할 수 있다!” 희망 본 러시아 전
아르헨티나 전의 대패는 월드컵을 기대했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크게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아시아 내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유지했던 대한민국이었지만 세계무대로의 첫발은 매우 잔인한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다음 상대였던 러시아는 대부분의 주축 선수들이 빠진 2군 전력이었다. 물론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선수들 역시 러시아 전에서 1승을 기대했고 자신감은 경기 내용에 곧바로 반영됐다.
러시아의 특출난 신체 조건 및 파워는 위협적이었다. 그렇다고 못 넘을 산은 아니었다. 이대성과 이승현, 라건아의 활약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데 있어 충분했다. 양희종의 헌신은 왜 베테랑이 큰 무대에 필요한지를 증명한 것과 같았다. 나이지리아 전에서 미친듯한 3점슛 능력을 자랑했던 미카일 쿨라긴은 이대성의 압박 수비에 허우적거렸다. 확실한 에이스가 없었던 러시아는 대한민국의 추격전을 이겨내지 못했고 역전 위기까지 허용했다.
하나, 대한민국은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의 순간이 찾아왔지만 전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번 놓친 흐름은 곧바로 위기로 변했고 대한민국은 마지막 순간을 이겨내지 못한 채 73-87, 14점차 패배를 안아야 했다.

▲ 무기력했던 대한민국, 나이지리아에 무너지다
러시아 전의 아쉬움은 기대 반, 실망 반의 분위기로 나뉘었다. 이제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고 승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실망감도 함께 했다. 조용히 나이지리아 전을 준비하던 대한민국은 故정재홍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과거 정재홍과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물론 SK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던 김선형, 최준용까지 모두 갑자기 찾아온 비극적인 소식에 좌절하고 말았다. 마지막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밤잠을 설쳤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슬픔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1쿼터까지 대등한 승부를 펼쳤지만 2쿼터부터 찾아온 나이지리아의 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66-108, 42점차 대패는 대한민국에 있어 낯선 결과였다. 그들을 무시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나이지리아는 한 번 문 상대를 놓지 않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3전 전패의 아쉬움보다 더 큰 문제는 주축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소식이었다. 이미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종규와 발목 부상을 당한 이대성이 순위결정전에 불참하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심지어 중국의 예상치 못한 순위결정전 추락으로 부담은 더욱 커졌다.

▲ 대륙도 벌벌 떤 대한민국의 투지
중국은 과거부터 아시아 농구의 패권을 두고 다툰 라이벌이다. 현재 대한민국과 중국의 농구 위상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많은 변수 속에서 한판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순위결정전 M조 경기가 열린 광저우 체육관은 매우 거대했고 세련된 시설들이 갖춰져 있었다. 팬들 역시 체육관을 꽉꽉 채웠다. 홈팀인 중국이 광저우로 온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만원 관중에 가까웠던 만큼 그들이 외친 ‘짜요’는 귀가 찢어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렁찼다. 특히 광저우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이지엔리엔이 코트를 밟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환영했다(반면 리난 감독은 부진한 성적 탓에 이례적으로 야유를 받기도 했다).
월드컵 준비에 100억 가까이 투자한 중국은 레드와 블루 중 정예 멤버만 추린 특공대였다. A조 예선에서 예상치 못하게 추락했지만 그들의 전력은 대한민국에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껏 상대해 온 팀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해보자는 마음으로 코트에 나섰다.
중국의 높이는 분명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경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저우치는 에어볼을 던질 정도로 컨디션이 바닥이었고 왕저린과 이지엔리엔은 몇 차례 선보인 화려한 플레이를 제외하면 실속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이정현과 이승현의 부상 투혼, 라건아의 일당백 활약으로 승부를 접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로 인한 실책이 패배로 이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진 대한민국은 중국의 파상공세에 밀렸고 끝내 73-77, 4점차로 분패하고 말았다. 하나, 중국은 승리했음에도 크게 기뻐하지 못했다. 만신창이였던 대한민국을 압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선수들은 크게 웃지 못했다.
▲ ‘유종의 미’ 25년 만에 거둔 1승
이정현의 발목 부상 소식은 결국 코트디부아르 전에서 9명만이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완벽한 1승 상대였던 코트디부아르의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조직적인 면에선 많은 약점을 갖고 있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이 살아나면 반드시 넘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투지 하나로 코트디부아르를 몰아세웠다. 그동안 많이 뛰지 못한 박찬희, 허훈, 강상재가 제 역할을 해냈고 라건아가 원맨쇼를 펼치며 코트디부아르를 잠재웠다.
위기도 있었다. 후반부터 코트디부아르의 트랩 수비가 적중했고 대한민국은 연이어 실책성 플레이를 저지르고 말았다. 역전 위기까지 놓였던 대한민국은 김선형의 연속 3점슛, 허훈의 속공까지 곁들이며 80-71 짜릿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승리는 1994 캐나다세계농구선수권대회 이후 25년 만에 이룬 쾌거다. 비록 순위결정전에서 거둔 승리였지만 월드컵 14연패를 끊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 확실한 교훈 얻은 12일 여정의 마무리
5년 전 2014 스페인농구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큰 좌절감에 휩싸인 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무려 5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여전히 발전, 변화라는 단어와는 어색한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5년 전과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환경과 지원은 퇴보하고 말았다.
물론 중국이나 이란처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지원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일본처럼 선수들의 세계무대 진출을 적극 지원하지 않는 상황도 파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해도 월드컵에서의 성공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다. 그저 아시아라는 대륙의 한계가 더 크다는 걸 이번 월드컵에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는 필요하다. 그저 필요할 때마다 선수들을 소집해 짧게 맞추고 떠나는 패착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플랜을 만들어 유럽 및 아프리카 팀들과 수차례 평가전을 가져야 한다. 세계농구의 수준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다. 또 월드컵에 맞춰 100%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15~16명의 상비군을 선발해 월드컵 직전까지 실험한 후 최정예 12명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리 12명을 선발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제대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보완이 아닌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차고 넘친다. 문제는 변화와 발전의 의지가 있는지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 같은 실패를 맛본 필리핀은 팬들이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트위터를 통해 필리핀농구협회(PBA)에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다양하며 PBA도 귀를 기울여 듣고 있다. 대한민국도 달라져야 한다. 농구인들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며 그들의 카르텔을 무너뜨려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 실패의 책임을 김상식 감독 및 12명의 선수들에게 모두 물어선 안 된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고 끝내 승리라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무려 지난 24년간 이루지 못한 성과를 말이다.
맹목적인 지원과 환경 조성이 무조건 성공을 낳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건 이미 실패를 예상하고 포기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따르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서 오로지 정신력과 투지만을 강조하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 사진_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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