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민준구 기자] 1997년 KBL 출범 이래 수많은 스타들이 코트를 누볐고 그들 역시 익살스러우면서도 상징성 있는 애칭을 부여받았다. 농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인 애칭. 20년 넘는 KBL 역사 속에서 팬들의 뇌리를 강타한 특별했던 애칭은 무엇이 있었을까. 점프볼 20주년 창간을 맞이해 20가지 대표 애칭을 나열해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록은 2019년 12월 18일 기준)
KBL의 원조 BIG3 ‘이·조·추’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지금 들어도 가슴 설레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은 과거 KBL의 원조 BIG3라고 할 수 있다. 1997-1998시즌부터 1998-1999시즌, 백투백 우승을 차지한 ‘이·조·추’ 트리오는 조니 맥도웰과 함께 현대 왕조를 건설하며 KBL을 지배했다. 과거 기아 왕조의 ‘허·동·택’과 비견될 정도로 대단했던 그들의 퍼포먼스는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언급될 정도로 임팩트 있었다. 1999-2000시즌을 마친 후 흩어졌던 ‘이·조·추’는 2003-2004시즌 재회하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세 사람에게도 개개인의 애칭이 있었는데 이상민은 ‘컴퓨터 가드’, 조성원은 ‘캥거루 슈터’, 추승균은 ‘소리 없이 강한 남자’로 불리며 KBL 초기 인기몰이에 앞장섰다.

세 명의 마법사, 매직 히포·매직 핸드·매직 키드
KBL 역사상 세 명의 마법사가 존재했으니 바로 ‘매직 히포·매직 핸드·매직 키드’가 그 주인공이다. 원조 매직의 칭호를 받은 이는 현주엽이다. 195cm의 단신 빅맨이었지만 100kg가 넘는 거구로 코트를 지배했던 그는 ‘매직 히포’라는 애칭을 가졌다. 매직의 계보는 여기서 끊기지 않았다. 2001년 등장한 초신성 김승현이 ‘매직 핸드’라는 애칭으로 불린 것. 그의 신들린 패스는 약체 동양을 챔피언으로 이끌기도 했다. 통산 어시스트 1위 4회 수상은 당연한 결과. 마지막의 매직은 포인트가드 6년 주기설의 마지막 주인공인 김태술이 차지했다. ‘매직 키드’로 불린 김태술은 2007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후 남다른 패스 능력을 뽐내며 신인상까지 차지했다. 김승현과 닮은꼴로 작은 신장에도 화려한 패스를 뿌리며 팬들의 환호를 독차지했다.
이견이 없던 ‘국보센터’ 서장훈
서장훈은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싫어했다. 어린 시절부터 언론에서 자주 언급된 별명이지만, 그는 자신이 ‘공략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곤 했다. 점프볼 창간 무렵부터 그는 늘 최고의 선수였다. 250경기 연속 두 자리 득점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으며, 당부난은 누구도 넘지 못할 기록으로 남아있다. 13,231점도 마찬가지. 이렇게 묵묵히 최고의 센터로서 기록을 하나하나 세우고, 승수를 쌓다보니 생긴 별명이 있다. 바로 ‘국보센터’다. 한국농구 역사상, 서장훈만큼 ‘국보’라는 별칭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선수가 또 있을까.
공중의 지배자 ‘에어 카리스마’
대한민국 최고의 블로커는 단연 김주성이다. 205cm의 장신이면서도 높은 점프력과 뛰어난 블록 타이밍으로 상대의 골밑 침투를 저지했다. 그래서 받은 애칭이 ‘에어 카리스마’. 외국선수들 역시 김주성이 버틴 골밑은 쉽게 침투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김주성은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037개의 블록을 기록했다. 1,000블록은 KBL 출범 이래 김주성만이 오른 고지로 전체 2위인 찰스 로드(594개)와는 500개 이상의 차이가 난다. 공중의 지배자였던 김주성은 수비 5걸 5회, 최우수 수비상 2회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KBL을 강타한 남자 ‘Mr. 빅뱅’
그 남자의 세 손가락 세레모니는 은퇴한 지금까지도 팬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스타 기근이 한창이던 KBL에 혜성처럼 등장한 방성윤은 KBL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스타 플레이어였다. 화끈한 3점슛과 함께 독특했던 헤어스타일은 트레이드 마크. 그랬던 방성윤에게 팬들은 ‘Mr.빅뱅’이라는 별명을 수여했다. 2007-2008시즌 토종 득점기계답게 평균 22.1득점을 기록했고 이는 현재까지 넘어서는 이가 없을 정도. 그러나 에이스의 숙명처럼 ‘방난사’라는 악명 높은 별명도 함께 존재했다.
주전급 가드만 4명, 삼성의 ‘가드 왕국’
전통의 농구 명가 삼성은 2007-2008시즌 무려 주전급 가드만 4명을 보유하게 된다. 기존 이정석과 강혁, 이시준(당시 이원수)은 물론 FA로 이적한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지목한 이상민까지 합세한 것이다. 당시 팬들은 삼성을 일컬어 ‘가드 왕국’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지어줬다. 개성 다른 4명의 가드는 코트를 휘저었고 2007-2008, 2008-2009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이끌었다. 아쉽게도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역대 유례없는 최강의 가드진을 형성했고, 그들이 쉴 틈 없이 만들어내는 2대2 플레이와 시원한 속공은 잠실실내체육관의 데시벨을 한껏 끌어올렸다. (사실 삼성은 당시 외국선수였던 테렌스 레더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인해 ‘삼성 레더스’라는 그리 반갑지 않은 별명도 있었다.)
KBL의 제이슨 키드 ‘주키드’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 주희정의 퍼포먼스는 2008-2009시즌가 정점이었다. 181cm의 단신 가드임에도 리바운드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외국선수 마퀸 챈들러와 함께 펼친 속공 농구는 KBL판 ‘런-앤 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팬들은 그에게 NBA의 전설적인 포인트가드 제이슨 키드에 빗대어 ‘주키드’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주희정은 당당히 정규리그 MVP에 선정됐다. 2008-2009시즌 주희정의 기록은 15.1득점 8.3어시스트 2.3스틸.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한 선수임에도 MVP에 선정된 건 처음 있는 일. 그만큼 주희정이 선보인 플레이는 압도적이었다.
신세대 듀오 ‘하킬·강페니’
황금세대가 등장했던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농구계는 두 선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국선수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NBA에 진출한 하승진과 중앙대 천하를 이끌었던 강병현은 침체된 대한민국 농구를 다시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 재목으로 주목됐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하킬’과 ‘강페니’. 과거 NBA 올랜도 매직의 원-투 펀치였던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를 대입한 것으로 그만큼 기대가 컸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윌리엄존스컵을 시작으로 손발을 맞춘 그들은 2008-2009시즌 KCC에서 운명처럼 재회했다. 2008-2009시즌과 2010-2011시즌, KCC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것 역시 ‘하킬’과 ‘강페니’의 활약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업적이다.
‘만수’ 유재학 감독
유재학 감독이 1승, 1승을 세울 때마다 KBL 기록이 바뀐다. 유재학 감독은 KBL 최초로 600승을 넘어선 최다승 감독이자, 최다 우승 감독이다. 2004년 울산 현대모비스(전 모비스) 지휘봉을 잡은 이래 현대모비스만의 팀 문화를 만들고, 꾸준히 우승전력으로 이끌며 지도력을 입증 받았다. 2006년 정규리그 1위, 2007년 통합우승이 그 전설의 시작이었다. 유재학 감독은 플레이오프 우승 6회를 달성했고, 그 중에는 최초의 3년 연속 우승도 포함되어 있었다. 늘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묘수를 꺼내놓으며 상대를 제압했던 유재학 감독은 ‘만수’라는 별명을 선물 받았다.
KBL에 등장한 코트의 지배자 ‘문코비’
2009-2010시즌은 KBL 역사에 있어 특별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귀화 혼혈 선수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판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전태풍과 이승준 역시 화려한 플레이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진짜 주인공은 전체 3순위로 지명된 문태영이었다. LG는 문태영이 메인 옵션을 차지하며 모두가 힘들 거라고 예상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승부처에서의 결정력과 화끈한 득점력은 해법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의 화려한 플레이에 팬들은 ‘문코비’라는 애칭을 전하기도. 매 경기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문태영은 2009-2010시즌 평균 21.8득점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선수들 중 유일하게 KBL 득점왕이 되기도 했다.
하다디 물리치며 성대하게 즉위한 ‘태종 대왕’
2011년 8월, 대만에서 열린 윌리엄존스컵은 대한민국 농구사에 새로운 대왕이 즉위한 대회였다. 하메드 하다디가 버틴 이란은 당시 아시아 최강. 그러나 2010년 KBL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서 유일하게 지명된 문태종은 5개의 3점슛을 포함 27득점을 퍼부으며 하다디를 무너뜨렸다. 이를 지켜본 팬들은 새로운 대왕이 탄생했다며 ‘태종 대왕’이라는 왕호를 붙였다. 조선 초기 최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대왕이 있었던 만큼 의미는 더 깊다. 이후 ‘태종 대왕’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도 앞장서며 대한민국 농구에 새 역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KBL에서도 두 차례 플레이오프 우승을 거머쥐었다.
수비로 KBL을 지배하다 ‘동부산성’
김주성, 로드 벤슨, 윤호영. 상대하는 입장에선 듣기만 해도 속이 불편해지는 이름. 2011-2012시즌 동부는 김주성과 벤슨, 윤호영이라는 세 방패로 KBL을 지배했다. 동부와 만나는 팀들은 승리보다 60점 이상 넣을 수 있을지 먼저 걱정해야 했을 정도로 그들의 수비는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KGC인삼공사는 불과 41점을 기록하며 한 경기 최저 득점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팬들은 압도적인 수비를 과시한 이들을 일컬어 ‘동부산성’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당시 동부는 역대 최다 16연승은 물론 2010-2011시즌 KT가 세운 한 시즌 최다승을 44승으로 경신하기도 했다. 단 한 번의 연패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건 안 비밀. 그러나 동부는 거짓말처럼 통합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동부산성’ 월담한 5명의 전사 ‘인삼신기’
2011-2012시즌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동부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동부산성’이라는 애칭을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펼쳤기 때문. 하지만 동부는 시즌 내내 도전해 온 KGC인삼공사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규리그 상대 전적에서 5승 1패로 압도적인 결과를 냈지만 정작 챔피언결정전에선 2승 4패로 패한 것. ‘동부산성’을 무너뜨린 주인공은 양희종을 필두로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오세근으로 이상범 감독의 ‘드래프트 리빌딩’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마침 멤버 모두 외모도 출중해 팬들을 이들을 두고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와 KGC인삼공사를 합성해 ‘인삼신기’라는 애칭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 농구를 뒤흔든 5명의 전사는 이 시즌을 끝으로 다시는 함께하지 못했다. (한편 ‘인삼신기’의 중심에 선 오세근은 데뷔 당시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갈색빛 사자머리를 휘날리며 코트를 달리는 모습이 마치 초원을 달리는 한 마리 사자같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하이에나 떼를 물리치고 포효한 사자처럼 오세근 역시 ‘라이언 킹’답게 신인 신분으로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된 두 번째 주인공이 됐다.)
스피드 머신 ‘플래시 썬’ 김선형
잠시라도 그를 놓치면 어느새 실점하게 된다. 2011-2012시즌 오세근, 최진수와 함께 KBL을 강타한 김선형은 역대급 스피드를 자랑하며 KBL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신인의 패기를 넘어 단숨에 SK의 에이스로 등극하며 팬들에게 드웨인 웨이드의 별명인 ‘더 플래시’와 같은 ‘플래시 썬(Flash Sun)’이라는 애칭을 받게 된다. 비교 불가능한 스피드, 화려한 덩크까지 선사한 김선형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애칭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애칭이 된 ‘문애런’
문경은 감독과 애런 헤인즈는 운명 공동체다. 2012-2013시즌부터 함께했던 그들은 SK의 전성기를 이룬 중심인물들이다. 그러나 팬들은 이 둘을 두고 ‘문애런’이라는 비난 섞인 별명을 창조해냈다. 그만큼 문경은 감독이 헤인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 특히 중계 화면에 잡힌 순간마다 문경은 감독이 헤인즈를 찾는 모습이 연출되며 나온 신조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애런’은 비아냥이 아닌 애칭으로 다가왔다. 문경은 감독 역시 헤인즈에게 ‘문애런’이라 부른다고. 처음에는 비난 섞인 별명으로 탄생했지만 지금은 문경은 감독과 헤인즈의 특별한 관계를 뜻하는 애칭으로 변화했다.
‘감동랜드’와 ‘개그랜드’ 그 사이
전자랜드는 유독 팬들과의 거리가 가까운 매력적인 팀이다. 2014-2015시즌 리카르도 포웰을 주축으로 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감동랜드’라는 애칭을 붙게 했다. 당시 객관적으로 떨어지는 전력 속에 우승후보 SK를 꺾고 강자였던 동부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하나, 잦은 실수와 승부처에서의 약한 모습은 ‘개그랜드’라는 불명예스러운 애칭(?)을 낳기도 했다. ‘감동랜드’와 ‘개그랜드’의 사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시계 형님’
KBL에 발을 디딘 수많은 외국선수들 중 아이라 클라크는 대표적인 장수 외국선수로 불리고 있다. 2005-2006시즌 데뷔한 클라크는 오리온스를 시작으로 삼성, LG, KT, 모비스, KCC 등 다양한 유니폼을 수집해왔다. 외국선수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팬들은 클라크를 찾을 정도였고 이름을 본 따 ‘시계 형님’이라는 애칭을 만들기도 했다(물론 시계를 뜻하는 clock과 클라크의 Clark는 철자가 다르다). 특유의 성실함과 기복 없는 플레이는 많은 이들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코치가 되어 지도력을 뽐내고 있다.
4대 골밑 수호신 ‘바레장재석·디안드레봉수, 주리핀, 송창무톰보’
한때 KBL에는 4대 골밑 수호신이 존재했다.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바레장재석(장재석, 오리온)’과 ‘송창무톰보(송창무, SK)’ 등이다. 또 은퇴했지만 여전히 코트에 존재하는 ‘디안드레봉수(김봉주, DB)’와 ‘주핀(주태수, KT)핀’ 그 주인공이다. 다소 풍자 섞인 이 애칭들은 장재석과 김봉수, 주태수, 송창무를 NBA 선수들에 빗대어 만든 신조어다. 비록 정상급 센터로 군림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뛰어났다.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 코트에 나서서 제 역할을 해냈으며 팬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고려대의 ‘두목 호랑이’가 KBL을 지배하다
2014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주인공 이승현은 “KBL의 ‘두목 호랑이’가 되겠다”라고 다짐했다. 고려대의 호랑이 군단을 이끌었던 그는 적응기 없이 프로 무대를 집어삼켰고 신인상은 물론 2015-2016시즌 챔피언결정전 MVP에 오르는 등 호언장담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이승현에게 팬들 역시 ‘두목 호랑이’라고 부른다. 아쉽게도 2016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이종현은 ‘두목 호랑이’를 잡겠다고 당차게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KBL을 지키는 판타스틱4 ‘모벤저스’
2018-2019시즌 현대모비스는 ‘판타스틱4’로 불리며 압도적인 1강으로 분류됐다. 양동근과 함지훈은 물론 이대성과 라건아까지 함께하며 적수가 없는 시즌을 보낸 것. ‘태종대왕’ 문태종부터 ‘타짜’ 섀넌 쇼터까지 합세한 현대모비스는 개막 11연승은 물론 역대 5번째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처음에는 판타스틱4라는 애칭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벤저스’라는 애칭이 새로 탄생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저스」와 현대모비스의 합성어로 KBL을 지키는 영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현대모비스 역시 마케팅 차원에서 ‘모벤저스’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 사진_ 유용우,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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