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선수에서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돌아온 남자 김병철

민준구 / 기사승인 : 2020-04-06 09: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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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동양, 오리온스, 그리고 오리온. 1997년 KBL 출범 이래 줄곧 함께해 온 그들의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름이 하나 있다. 창단 멤버로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프랜차이즈 스타 김병철(47)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4년간의 선수 생활, 이후 8년간의 코치 생활을 버텨온 그는 이제 추일승 감독의 뒤를 이어 당당히 감독대행의 자리에 올라섰다.

2020년 2월 19일은 오리온에 있어 슬픔과 희망을 함께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2011-2012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은 추일승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하며 눈물을 흘렸고,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잠시도 오리온 품을 떠난 적 없는 김병철 감독대행의 등장으로 희망을 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잠정 중단으로 불과 두 경기만 치렀을 뿐이지만 김병철 감독대행은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냈다.

※ 본 기사는 2020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Q.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단 정신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도 실감이 점점 나기는 한다. 하지만 아직 두 경기만 치렀을 뿐이라,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왔을 때 마음의 안정이 될 것 같다. 오리온이라는 팀을 바꿔가는 단계인 만큼 정신이 없다.

Q. 감독대행으로서 두 경기를 치렀다. 과정과 결과에 모두 만족하는지 궁금하다.

첫 경기였던 현대모비스 전에는 모든 선수들이 긴장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잘 이겨냈고 선수들 역시 마지막까지 위기 상황을 잘 이겨냈다. KGC인삼공사 전은 현대모비스 전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보리스 사보비치, 허일영 없이 치른 경기였음에도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쉽게 패하기는 했지만 점점 내가 추구하는 경기력이 몸에 맞는 느낌이 들었다.

Q. 오랜 시간 코치로 생활했지만 감독대행의 자리는 분명 달랐을 것 같다.

감독이란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진두지휘해야 하는 만큼 쉽지 않았다. 코치는 보좌 역할이 대부분이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경기 중에 놓치고 있는 부분을 감독에게 이야기해 보완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하지만 감독보다 뒤에 있는 만큼 상황 판단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나, 감독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게 되면 바로 패배까지 이어질 수 있다. 패턴부터 수비 변화 등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 만큼 책임감도 크다. 핵심은 타이밍이었다. 조금씩 배우고 있는 단계다.

Q. 지도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감독(현재는 대행) 자리에 올라섰다.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감독이 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어느 정도 생각을 해두고 있었다. 코치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 어떤 농구를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갖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상상할 수는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추일승 감독님께서 갑작스럽게 떠나신 후 많이 슬펐지만 그래도 경기는 치러야 했다. 일주일 정도의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 주위 분들부터 구단 모두 변화된 모습을 강조하셨다.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내 농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경기 동안 선수들이 잘 따라줘서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Q. 선수들도 ‘감독 김병철’에 대해 어색해하지 않았나?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하더라. 지도 방식이 달라지다 보니 혼란이 왔을 것이다. 많이 움직이는 농구에 적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어느 누가 됐든 공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며 그 움직임 속에서 자유를 받는 것에 대해 어색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KGC인삼공사 전에서 나타난 것처럼 빨리 적응한 것 같다.



김병철 감독대행의 선수 시절은 다사다난했다. 최약체 팀의 에이스로서 고군분투했던 1990년대 후반을 지나 김승현, 전희철,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 등 황금 멤버들과 이룬 2001-2002시즌 창단 첫 통합우승의 기쁨 등 오리온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쳤으며 인생을 걸었던 곳도 역시 오리온이었다.

Q. 오리온은 김병철이란 사람의 청춘을 다 바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 같은 곳이다. 내 인생에 있어 없으면 허전한 곳이라고 해야 할까. 집은 쉴 수도, 그리고 일을 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내가 이 구단에 몸담으면서 수차례 구단명이 바뀌었지만 창단 때부터 항상 집 같은 존재라고 느껴왔다. 원래 한 집에서 오래 산 사람이 다른 집 가면 불편하지 않나(웃음).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Q.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 누구인가.

아무래도 선수 시절 때부터 오래 해 온 김진 감독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0년 정도 같이 했는데 그때 농구가 가장 즐거웠다. 물론 멤버들도 굉장히 좋았지만. MVP에도 선정됐고, 우승도 해봤으니 그 시절만큼 행복했던 기억도 없다. 또 김진 감독님의 리더십도 좋았다. 주장을 맡겨주시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창단 때부터 같이 있었으니 서로에 대해 정말 잘 알았다. 배려도 많이 해주셨고 강하게 질책도 하셨다. 그래도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희로애락이 깊었던 선수 시절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리온에서의 선수 시절은 처음과 마지막으로 나눌 수 있다. 최악의 시절을 보냈던 처음에는 연패도 많았고 항상 하위권에만 있었다. 이후 김진 감독님이 부임하시면서 정말 많은 게 달라졌고 매번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서 이기는 게 더 익숙해졌던 것 같다.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통합우승도 해봤으니까. 아쉽게도 김진 감독님 이후 감독님들이 정말 많이 바뀌면서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처음과 마지막에 좋지 못한 기억으로 코트를 떠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Q. 솔직히 선수 시절 때 내가 감독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하하. 그렇지 않다. 사실 선수와 지도자는 길이 다르다. 그런 생각 자체를 하기가 힘들다. 감독은 지시를 하는 사람이고 선수는 따르는 사람이다. 입장이 다르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아마 같은 팀에 있기가 힘들 것이다. 선수들끼리는 ‘내가 저 선수보다 잘하는 데 왜 안 내보내주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 코치에게 그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2010-2011시즌이 종료된 후 김병철 감독대행은 현역 은퇴를 알렸다. 정든 오리온을 떠난다는 건 쉽게 내리지 못한 결정이었지만 다가온 때를 더 이상 밀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공백기는 길지 않았다. 오리온 유소년 팀의 코치를 맡은 지 불과 1년 뒤, 2013년 2월 18일 서동철 수석코치(현 KT 감독)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게 됐다.

Q. 14년간 몸담은 오리온에서 코치로 서게 된 그 순간을 기억해보자.

굉장히 어색했다. 일단 코치는 정장을 입어야 하니까 그 부분부터 헤맸다. 정장을 잘 입지 않았기 때문에 뭘 사야 할지도 몰랐다(웃음). 시상식 때나 한 번 입는 옷이었으니까 정장은 다 똑같은 옷인 줄 알았다. 코치가 되고 나서 정상을 구매하러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색깔로 네 벌을 선택했다. 근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장에도 개성이 있더라. 지금은 내게 맞는 정장을 찾으려고 굉장히 노력 중이다.

Q. 김진, 추일승 감독님은 ‘코트의 신사’라 할 정도로 정장 스타일이 남다른 분들이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분인 만큼 정장 스타일에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진짜 코치로서 적응하는 데 필요했던 2~3년의 시간 동안은 정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근데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단순히 보여지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정장은 잘 선택해서 입어야 한다”라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와이셔츠부터 넥타이를 내 스타일로 구매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평범함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웃음).

Q. 선수로서의 ‘김병철’과 코치로서의 ‘김병철’은 분명 다를 것 같다.

완전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코치와 선수는 모든 일에 대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게 다르다. 코치는 선수들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직업이지 않나. 선수 때는 주장이 됐을 때 윗선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 정도이기 때문에 온도차가 크다. 사실 특별한 코치 연수를 다녀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응에 있어 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3년 동안은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잘 정도로 많은 시간을 자신에게 투자했다. 눈에 안약을 넣어야 할 정도로 스스로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은 그동안 함께해 온 여러 코치들에게도 항상 말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열심히 해야 하는 위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니까.

Q. 3년의 시간은 김병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3년의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다음부터는 눈이 조금 떠졌다. 그때부터 추일승 감독님께 선수 시절 경험부터 밸런스를 잡는 방식 등 다양한 부분을 말씀드리기도 했다. 코치의 의견도 잘 들어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3년을 지난 후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코치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누군가가 바라봤을 때 3년의 시간이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있어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경쟁자가 없는 혼자만의 싸움이었고 그 누구의 조언보다 스스로 이겨내고 싶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처럼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경험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

Q. 3년 후 코치로서 눈이 떠졌다는 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선수 시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작았다면 코치 부임 후 3년이 지난 후에는 여러 가지 옵션, 즉 공격과 수비 상황에서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해지더라. 코트 위에 서면 그런 것들이 하나씩 보였다. 일반 농구 팬들은 경기를 볼 때 득점하는 선수에게 많이 집중하지 않나. 그 득점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코치가 되면 상대의 공격과 수비를 일찍 파악해 그것에 대한 맞춤 전술 및 전략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들이 보인 것이다.

Q. 2012-2013시즌 코치로 부임한 첫해부터 올해까지 추일승 감독과 함께했다.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또 많은 것을 얻었을 것 같다.

추일승 감독님께 지도자로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걸으려 하지는 않았다. 추일승 감독님 역시 자신의 방식과 같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내 농구를 시작하라는 말씀과 함께 떠나신 것도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준비를 많이 했고 내가 추구하는 농구의 퍼즐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코치로 있으면서 내 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내 인생에서 어느 시점에 감독이 될 수 있을지 몰랐던 만큼 하루, 하루를 철저히 준비하려고 했다.

Q. 지도자로서의 철학 역시 확고할 것 같다.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단 하나, 일관성이라고 생각한다.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막혔을 때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훈련 및 경기에 임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그날 기분은 물론 힘들어서, 피곤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수 시절, 난 내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특히 주장이 됐을 때는 더욱 솔선수범하려고 했고 쉽게 휴식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선수들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모두가 일관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쓰러뜨리려 하는 바람은 언제나 불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려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Q. 일관성을 내세우기 위해선 선수들 중에서도 같은 생각을 가진 리더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나와야 하지 않을까. 프로 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 고참 선수들 중에 일관성을 갖고 같은 길을 걸어줄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해야 한다.

Q. 농구대잔치 스타로서 같은 시기 활약한 이들의 감독 부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동기부여가 됐을 것 같다.

다른 형들은 물론 (현)주엽이까지 감독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한 말로 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도자로서 내가 추구하는 길을 그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코치로서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기대감도 있었다. 또 두려웠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감독대행 소식에도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막상 두 경기를 치르다 보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과정이 좋았고 결과 역시 크게 나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땀 좀 흘리겠다”라고 말했지만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웃음). 모든 일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나.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됐다.

Q. 9년간의 코치 생활을 하면서 그려본 이상적인 감독상이 있을까.

이 세상에 있는 어떤 명장이라도 그와 함께 뛰는 선수들은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감독을 100%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없다. 자기 욕심도 있고 또 프로 스포츠인만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도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자신이 좋지 않게 본 감독과 함께한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명장은 좋은 감독일 수 있지만 그만큼 선수들이 혹독하다고 느낄 만큼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난 선수들이 뒤늦게 알기 전에 미리 알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 그런 감독이 진정한 명장이라고 본다.



김병철 감독대행에게 있어 지난 8년간 동고동락했던 추일승 감독과의 이별은 아쉬움과 외로움으로 남았다. 그동안 은퇴 의사를 조금씩 밝혀왔던 추일승 감독이었지만 이처럼 빨리 이별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철저히 준비해온 만큼 지도력에 있어 공백은 없었다. 오히려 빠른 시간 내에 오리온을 전혀 다른 팀으로 바꾸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Q. 홀로 남겨진 기분에 외로웠을 것 같다.

외롭기도 했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현대모비스 전 당시 코트에 섰는데 앞이 하얗게 보이더라. 첫 경기부터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기 때문에 덜 할 수 있었지만 과거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 때 느꼈던 떨림이 다시 찾아왔었다. 작전타임을 부르면 중계 카메라가 오지 않나? 코치 때는 의식이 됐었는데 현대모비스 전 때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웃음).

Q.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농구라는 것이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오리온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특히 가드 중심의 농구로 탈바꿈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우리 가드진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대행이 되고 나서는 무게 중심을 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포워드, 센터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에게도 많은 부분을 부탁했지만 결정적 권한을 준 건 가드였다. 선수들의 자신감이 지금보다 더 붙어야 한다. 실수는 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연연해선 더욱 안 된다. 다행히 한호빈부터 시작해서 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이 제 역할을 잘 해내줬다고 생각한다.

Q.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가드에선 한호빈이 더 잘해줄 거라고 믿는다. 자신감을 충분히 갖고 경기에 임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다. 포워드 라인에선 최진수, 장재석, 이승현 등 주축을 이뤄야 할 선수들의 스텝 업도 필요하다. 기술적인 면에서 내가 더 늘 수 있게 해줄 수는 없다. 그저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승리를 향한 의지를 더 끌어 올려줘야 할 것 같다.

Q. 흔히 감독이란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린다. 그만큼 큰 부담감을 안고 가야 할 자리라는 뜻인데 그에 대한 각오는 어느 정도 되어 있나.

지금은 내 뒤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이미 선수들에게도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무조건 앞만 보고 갈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팀이 되고 어떤 성적을 내는 것보다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감을 부여해 경기력을 올릴 생각이다. 이번 시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을 바라볼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농구, 선수들이 바라는 농구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 성장과 성공을 동시에 노리겠다.



PROFILE.
오리온의 레전드, 김병철 감독대행

농구대잔치 시절 고려대의 샤프슈터로서 맹활약한 ‘피터팬’ 김병철 감독대행은 동양제과 실업팀에 입단한 후 1997년 KBL 출범과 함께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최하위권으로 분류된 동양이었던 만큼 김병철 감독대행의 초기 선수 시절은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러나 상무 제대 후 신인 김승현의 등장과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의 합류로 2001-2002시즌 창단 첫 통합우승을 차지했으며 2002-2003시즌에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KBL을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로서 자리매김했으며 2010-2011시즌 은퇴까지 556경기 출전, 평균 13.0득점 2.2리바운드 3.1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했다. 장기인 3점슛은 1,043개를 성공시키며 통산 4위에 올라 있다. 이후 오리온의 유소년팀 코치를 맡았으며 2012-2013시즌에는 수석코치로 부침하며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추일승 감독을 보좌해 2015-2016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19일, 추일승 감독의 뒤를 이어 오리온의 새로운 수장으로 올라섰다.



BONUS ONE SHOT.
김병철 감독대행이 주목한 남자, 임종일

김병철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슈터였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과감하게 공격했고 성공률 역시 준수했다. 아쉽게도 그의 은퇴 후 오리온은 김병철이라는 이름값에 비교될 선수가 등장하지 못했다. 허일영이 슈터로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최근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리온의 슈터 계보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일까. 위기에 빠진 김병철 감독대행은 한 남자를 주목하며 오리온의 외곽포를 책임져줄 것이라고 신뢰했다. “임종일이 가진 재능을 믿는다. 기량이나 가지고 있는 운동능력이 나쁘지 않다. 대학 시절까지는 곧잘 해왔다고 들었지만 프로무대에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 조금 더 올라와 줬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기회를 주기도 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바라고도 있다.” 김병철 감독대행의 말이다.

임종일은 성균관대 시절 대학리그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공격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다. 하지만 프로 데뷔 이후 특별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지난 시즌까지 기회를 받지 못했다. 하나, 2019-2020시즌 34경기 출전, 평균 4.5득점 2.1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출전 시간도 경기당 14분 45초를 받으며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김병철 감독대행은 “아직 기량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디다. 자신감이 없으니 눈치를 보고 머뭇거리는 성향이 있다. 그런 부분을 없애기 위해 많이 뛰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분명 재능은 있다. 자신이 이겨내야 한다”라며 동기부여를 심어줬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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