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임종호 기자] 고려대 2학년이던 2018년, 김준형은 프로 조기 진출을 선언, 그해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LG에 지명됐다.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프로의 벽을 크게 실감한 김준형은 올 시즌 자신의 노선을 ‘장신 슈터’로 확실히 정했다. 빠른 슛 템포로 외곽에서 한 방을 터트려주고 더불어 큰 신장(201cm)을 앞세워 자신의 가치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성장 계단을 밟아가고 있는 김준형은 서서히 팀의 주축으로 올라서기 위해 날갯짓을 이제 막 시작했다.
※ 본 기사는 점프볼 2020년 4월호에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Q. 리그 중단 이후 어떻게 지냈나?
리그가 한 달간 중단되고 나서 일주일 동안은 푹 쉬었다. 밖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잘 먹고 잘 쉬었다. 그런 다음 이번 주 월요일(3월 9일)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 이천에서 형들(주지훈, 정준원, 한상혁)과 같이 살고 있다. 형들이랑 집, 체육관을 오가면서 운동하고 있다.
Q.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는데, 어떤 키 크신 분이 지나가다가 내게 배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 알고 보니 그분은 배구부 코치님이셨다. 그때 농구에 관심 있다고 말했더니 농구부가 있는 학교를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삼일중 농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그전까지는 농구를 좋아하긴 했어도 선수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분 덕분에 농구선수라는 꿈을 키우게 된 셈이다.
Q. 프로 입단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준용과 이종현의 장점을 합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현재는 어느 정도 믹스(?) 된 것 같나? (농구 시작 당시 얼굴은 이종현, 체형은 최준용을 닮았다는 이유로 김준형은 프로 입단 직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둘의 장점을 합쳐 놓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아직 한참 멀었다(웃음). 두 형 모두 실력도 출중하고 국가대표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형들을 따라가려면 많이 멀었다.
Q. (형들에게) 힘들 때마다 조언도 구하는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연락을 따로 주고받지는 않는다. 플레이 스타일엔 차이가 있지만, 형들의 플레이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
Q. 프로팀에서 강혁 코치와 다시 만나게 됐다. 강혁 코치는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중학교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연계 학교인 삼일상고로 갈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진학할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강혁) 코치님이 되게 잘 챙겨주시고 내가 할 수 있는 농구를 알려주셨다. 그때 코치님의 가르침을 더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이 승부욕이 되게 강하시다. 경기는 우리가 뛰지만, (코치님도) 지는 게 싫으셔서 훈련을 강하게 시키셨다. 훈련할 땐 무섭지만, 그 외적으로는 장난도 잘 치시고, 잘 챙겨주신다. 처음 LG에 왔을 때도 코치님 덕분에 적응하기가 수월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2016년 왕중왕전 결승전에서 안양고를 꺾고 우승했다(당시 고3이던 김준형은 14점 6리바운드를 기록, 팀도 64-59로 승리). 경기가 끝나고 나니 고등학교 생활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더라. 그때 코치님이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Q. 고려대 진학 이유와 대학 생활을 되돌아본다면?
원래는 경희대 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원대에서 열렸던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가 언급한 경기는 2013 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으로 당시 고려대는 15점 내외의 열세를 뒤집고 74-71로 대역전극을 완성, 우승을 차지했다.) (김)종규 형이 경희대 졸업반, 종현이 형이 고려대 신입생이었을 때다. 초반에 경희대가 크게 앞서다가 고려대가 막판에 역전승으로 우승했다. 그때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다. (고려대가) 농구도 잘하고 유니폼도 멋있어 보여서 그날 이후로 좋아하게 됐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서 (고려대로)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생활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아쉬움’이다. 소극적으로 플레이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다. 많은 걸 보여주지 못한 채 프로에 온 것이 아쉽다.

Q. 중퇴 결정엔 후회는 없나?
프로에 오기 전까진 고민이 많았다. 운동선수는 은퇴도 빠르고 제2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쉽게 결정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농구가 우선이라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
Q. 그렇게 결심한 배경이 있을 것 같은데.
같은 학교(삼일상고) 출신인 (송)교창이 형이 본보기가 됐다. 또 (양)홍석이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찍 (프로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보다는 부족하지만 내 가능성을 알아봐 주신다면 프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형들과 부딪치면 기량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프로 조기 진출을 결심했었다.
Q. 드래프트 당시 호명된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솔직히 드래프트 현장에서도 호명되기 전까진 불안감이 컸다. 2라운드에라도 뽑히면 잘 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순번에 뽑혀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처음엔 프로선수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모든 행사를 다 마친 뒤 어머니랑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 프로선수라는 게) 실감이 나더라.
Q. 데뷔 시즌을 돌아보고 현재 프로 선수로서의 자신을 점수로 매긴다면.
데뷔 시즌에는 가비지 타임에만 뛸 정도로 기회를 거의 못 받았다. 팀에 적응하는 시기였고,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아가는 기간이었다. 지금도 잘하는 부분은 딱히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수를 매기자면 20~30점 정도밖에 안 된다. 감독님이 기회를 주시지만 크게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더 열심히 해서 앞으로 부족한 점을 조금씩 채워나가야 한다.
Q. 반면 올 시즌은 출전시간이 늘어났다. 경기에 뛸 수 있는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시 팀에 한 방을 터트려줄 선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코칭스태프도 (내가) 슛이 장점이란 걸 알고 계셔서 그 부분을 연습할 때부터 강조하셨다. ‘잡으면 무조건 던져라’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
Q. 꾸준히 활약하려면 살을 더 찌워야 할 것 같다는 지적이 많다.
비시즌에는 80kg까지 찌웠다가 지금은 살이 좀 빠져서 76kg대를 유지 중이다. 먹는 양을 늘리는 건 기본이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틈틈이 열심히 하고 있다. 왜소한 체격은 은퇴할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음 시즌에는 80kg으로 시즌을 치르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Q. 지난 1년간 슛 연습만 엄청 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강혁 코치님이 ‘프로에서 한 가지 장점을 갖고 있으면 경기를 조금이라도 뛸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슛에 자신이 있어서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코치님도 새벽에 나와서 슛 폼을 잡아주시는 등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남들보다 체육관에 먼저 나오고 제일 늦게 들어가면서 노력을 많이 했다. 힘들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게 슈팅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코치님과 같이 땀을 흘린 덕분에 올 시즌 조금이나마 결실로 나타나는 것 같다.

Q. 같은 포지션에 경쟁자가 많아졌다. 경쟁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수비 이해도가 많이 부족하다. 가장 큰 단점인 그 부분을 보완한다면 좀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거라 본다. 공격은 원래대로 자신 있게 슛을 쏘고, 그 외에 공격 옵션을 창출해낸다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다.
Q. 팀에서 가장 잘 챙겨주는 선배와 친해지고 싶은 선배는 누구인지.
주지훈 선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둘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를 잘 알고 있다. 팀 동료들 가운데 지훈이 형이 제일 잘 챙겨준다. 뒤늦게 팀에 들어온 (서)민수 형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이다. 성격도 되게 좋고, 농구로도 닮은 점이 많다. 팀원들과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좀 더 친해지고 싶다.
Q. 김준형에게 박정현이란?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다. 대학 때도 같은 방을 썼던 만큼 허물없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프로에 먼저 왔지만, (워낙 친해서) 불편함은 전혀 없다. 서로 잘 알고 있고, 익숙한 형인데 같은 팀에서 우연찮게 만나니 마음 한편으론 편한 부분도 있다. (박)정현이형은 운동하다가 힘들 때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Q. 자신의 농구 인생에서 최고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고1 전국체전 송도고와의 4강전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송도고는 박준영(KT), 장태빈(오리온) 등이 주축으로 고등부 최강 팀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송)교창이 형이 부상으로 빠져서 정상 전력이 아니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2차 연장까지 가서 이겼다. 농구선수라면 버저비터로 팀 승리를 이끄는 경기를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을거다. 그 경기가 딱 그랬다. 승부처에서 두 번이나 버저비터를 성공시켰었다. 4쿼터 막판 3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3점슛을 넣어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골을 넣었다. 그렇게 2차 연장까지 풀타임으로 뛰면서 이긴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서 그때가 생애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버저비터를 두 번이나 터트려서 이긴 적은 드물 것 같다. (2014년 11월 2일 송도고와 4강에서 만난 삼일상고는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93-88로 이겼다. 이날 경기서 김준형은 21점 15리바운드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Q.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을 되게 많이 자는 것 같다.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따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 편하게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최고인 것 같다. 한강이나 석촌 호수를 걷는 것도 좋아한다.
Q. 구단 SNS를 통해 선보인 아무 노래 챌린지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촬영 당일 구단 소셜미디어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고기를 사주셨다.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무 노래 챌린지)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하더라. 구단에서 먼저 제안을 해서 찍게 됐고, 고기도 얻어먹었으니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웃음). 최선을 다해서 찍었는데 다행히 팬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Q. 10년 뒤의 나를 상상해본다면?
실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가 아니더라도 연차가 쌓였다고 해서 지금과 다르게 게으른 모습을 보여드리긴 싫다. 10년 뒤에도 항상 열심히 하고 승부욕 있게 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Q. 선수로서 오랫동안 활약하려면 브랜드 메이킹이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가 그리는 프로선수 김준형은 어떤 이미지로 남았으면 하는가.
앞서 말했듯, 키에 비해 왜소한 체격이 항상 약점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힘에선 밀리겠지만, 말라도 플레이에 강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김준형하면 강단 있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싶다.
Q. 농구선수로서 자신의 삶을 농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어디쯤이라 생각하나. 또 프로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궁금하다.
프로 무대를 경험해보니 그전까지 배웠던 농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농구선수로 내 삶은 이제 막 1쿼터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루고 싶은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여태껏 대표팀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게 내 최종 꿈이다.
# 사진_점프볼 DB(유용우, 홍기웅, 윤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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