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부산 BNK는 창단 당시 WKBL 최초로 여성으로만 코칭스태프를 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구성원들의 이력도 쟁쟁했다. 유영주 감독은 농구대잔치 시절 코트를 호령한 슈퍼스타였고, 그를 보좌하는 두 코치 역시 프로에서는 오래 이름을 남길 만한 활약을 펼쳤다. 바로 최윤아 수석코치와 양지희 코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던 이들은 국가대표로도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왔다. 그런 그들에게 이 시대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구해봤다. 단순히 ‘라떼’로 치부할 ‘내 자랑’은 아니었다.
이제는 코트가 아닌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이 됐지만, 두 코치의 열정과 승부욕은 여전히 그 시절 그대로다. 아직 지도자로는 ‘초보’이지만, 창단 첫 시즌을 보내는 BNK 썸에 색깔을 입히기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었다.
※ 본 잡지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개재된 기사입니다.
Q. BNK의 코치로 첫 시즌을 보냈어요.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최윤아 아쉬움이 많아요. 아직 경기가 남았긴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너무 많죠. 짚어보면 ‘조금만 더’, ‘또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반면 또 부족한 점을 알게 돼서 다음 시즌에는 더 재밌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양지희 처음 코치가 돼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수들도 팀에서 주전이 되고, 자리를 잡아가듯이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배우고 있는 시즌이었죠.
Q. 두 분은 원래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요? 그리고 처음 생각했던 지도자상은 어떤가요?
최윤아 아니요. 저는 선수 막바지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분야는 다르지만 선수들을 지도하는 직업을 가지게 됐죠. 감사해요. 선수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가진 지도자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직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부족한 점이 많죠. 놓치는 것도 많아서 ‘왜 체크를 못했을까’라고 반성할 때도 있고요.
양지희 저는 은퇴할 때 ‘농구선수가 다른 길로 성공하는 걸 보여 주겠다’라고 떠났는데, 언행불일치가 됐죠(웃음). 사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으로 가서 영어공부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들은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데, 왜 반대로 가려고 하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고요. 22년 동안 한 가지를 했다면 분명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제 능력을 보여주거나 활용하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공감을 하면서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죠. 아이들이 배우려는 반짝반짝한 눈망울을 보고 매력에 빠져든 것 같아요. 코치 역할은 아직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자제가 안 됐는데, 감독, 코치님이 잘 잡아주셨어요. 다른 팀 언니들, 막내 코치님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살펴보면서 보고, 배우고 있어요.
Q. 두 분 선수시절 때는 어땠나요? 친분이 있었나요?
최윤아 대표팀(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출전)에서 한 번 만났었어요. 부상으로 서로 엇갈리기도 했죠. 베이징올림픽(2008년) 때도 모여서 초청경기를 하다가 양 코치가 부상으로 올림픽을 가지 못했거든요.
양지희 맞아요. 전 올림픽에는 운이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올림픽을 나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질 않았죠. 만약 발목 부상 없이 대회에 나갔다면 제가 좀 더 일찍 성장하지 않았을까 해요(웃음).
Q. 이번 대표팀이 2020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따왔잖아요. 최 코치님도 베이징올림픽 때 계셨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코치님 활약으로 8강에 진출했잖아요.
최윤아 올림픽은 정말 분위기가 달라요.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못했던 분위기였죠. 소위 일반인이 우주에 다녀온 느낌이에요. 하하. ‘이런 세계가 있어?!’하는 느낌이죠. 사실 ‘연봉 많이 줄게, (선수로)복귀 할래’란 이야기보다 올림픽 출전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면 더 혹할 것 같아요. 다시 뛰고 싶은 무대죠. 주위를 둘러보면 메시 있었죠, 호나우지뉴도 있죠, 당시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었고요. 눈 돌아가기 바빴죠. 이야기만 듣던 곳이라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경기에 대해서는 ‘언제 올림픽에 와 보겠냐. 후회 없이 재밌게, 신나게 해보자’라는 게 잘 됐었죠.
본격적으로 ‘왕년’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코치는 각자의 소속팀에서 ‘왕조’를 만들어냈다. 신한은행은 2007년 겨울리그부터 2011-2012시즌까지 매 시즌 정상에 섰다. 우리은행은 그 바통을 넘겨받아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꾸준히 우승했다. 그 중심에 각각 최윤아와 양지희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다른 팀 선수들과 남달랐던 점은 무엇일까. 혹시나 자기 자랑처럼 비춰져 ‘꼰대’ 소리를 들을까 조심하는 듯 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의 추억이자 자부심과도 같았다.
Q. 최강팀을 이끈 입장에서 자신을 포함한 베스트 5를 뽑아볼까요?
최윤아 저를 포함한다면 정해져있지 않을까요. 저, (전)주원 코치님, (정)선민 언니, (진)미정 언니, (하)은주 언니요. 이렇게 들어간다면 빈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양지희 그럼 멤버가 약한데(웃음). 저는 (박)혜진이, (임)영희 언니, (이)은혜, (이)승아, 저요. 외국선수를 포함한다면 쉐키나 스트릭렌이 좋았어요. 외곽 플레이를 하니까 제가 활동반경이 좀 더 넓어졌거든요.
Q. 이 베스트 멤버가 서로 맞붙는다면 어떨까요?
양지희 신한은행이 이길 거 같아요. 센터가 강한 팀은 정말 이기기 힘들거든요.
최윤아 저도 저희가 이길 것 같아요. 막을 수 없는 라인업이죠. 막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거기다가 은주 언니를 제외한다면 다 빨랐거든요.
Q. 아무래도 두 분 다 ‘위성우 감독’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웃음). 신한은행 시절에는 위성우 감독이 코치였잖아요. ‘우리 때’는 이렇게까지 훈련을 해봤다하는 게 있을까요?
최윤아 새벽, 오전, 오후, 야간 휴식 없이 계속했죠. 예전에는 토요일도 (오후)1시 반까지 하고 나간적도 있었어요. 그럼 밥 먹고 3~4시쯤에 나가면 다음 날 들어와서 개인 연습하고. 그런 일상이 당연했죠. (일탈은 없었나요?) 일탈은 꿈도 못 꿨어요. 그런 부분에는 또 소심해가지고(웃음)…. 그리고 그땐 위 코치님이 누가 개인훈련을 하고 있나 지켜보실 때라 꼼짝도 못했죠.
양지희 제가 이렇게 하면 위 감독님이 ‘누구를 위해서 운동한거냐’라며 뭐라 하실 것 같은데. 하하. 저도 중간 중간 고비는 있었죠. 여수로 전지훈련을 갔을 땐데, 오전에 서킷 훈련을 하고, 점심 전에 트랙을 뛰는 훈련이었는데, 장난이 아니었죠. 제가 못 뛰었는데, 과호흡이 온거예요. 누워서 호흡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화가 난거죠. 한계를 넘길 원하셨는데, 포기 하는 모습에 실망하셨던 거죠. 저도 힘들게 훈련을 하다가 울컥하고, 서러워서 그날 점심도 안 먹었는데, 오후에 같은 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오후에 ‘해보겠다’며 이 악물고 뛰니까 기록 경신을 하고 말았던 거예요(웃음). 그러자 위 감독님이 ‘거봐, 할 수 있잖아’라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잘 한 건지, 당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쨌든, ‘나도 잘 뛸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Q. 지금 그때처럼 그렇게 훈련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으신가요?
최윤아 습관이 되면 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매일 12시까지 훈련을 하다가 어느 날 1시에 끝나면 짜증이 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12시에 끝나잖아요? 그럼 또 ‘일찍 끝났어’하는 느낌이거든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근데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힘들긴 하겠죠(웃음).
양지희 무릎이 아프지 않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땐 자기 전에 무릎을 움직여보면서 제 몸 상태를 확인했던 것 같아요. 뛰는 걸 못하다 보니 세상에서 뛰는 게 가장 무서웠어요. 그런데, 나중이 되니 뛰는 건 하나도 안 무섭더라고요. 아파서 못 뛰는 게 더 속상했죠.
최윤아 맞아요. 너무 아프다 보면 많이 뛰어도 좋으니까 한 번이라도 안 아픈 상태에서 뛰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쓰러질 정도로 뛰어보고 싶죠. 모르는 사람들은 ‘아파서 (안 뛰니)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이게 얼마나 아픈지 모르실거예요.
Q. ‘나 때는 말이야, 이런 패기까지 발휘해봤다’ 하는 게 있다면요?
최윤아 그때니까 가능했던 거였지만, 발차기 하면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하하.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하죠. 당시보다 제재도 많고, 규칙도 디테일해져서 하면 안돼요. 미디어 대응도 잘 해야 하고요. 지금 상황에서 발차기를 했다면, 더 일찍 은퇴하지 않았을까요.
양지희 저는 어릴 때 순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농구를 하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우리 편이 맞고 오거나 당하는 걸 보면 그냥 보고만 못 있는 스타일이 됐어요. 우리은행 때도 다른 선수랑 신경전을 벌이다 흥분하게 되면 감독, 코치님이 교체해 주세요. 가라앉히라고. 구석에서 씩씩거리고 있으면 ‘주장이라는 놈이 흥분해서 경기를 망친다’고 혼나기도 했죠. 냉정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최윤아 저희가 같은 팀에 안 있어서 다행이었죠. 같은 팀에 있었다면 상대팀은 어휴(웃음).
Q. 숙소생활에서 우리 때와 지금의 차이점은요?
최윤아 이거야 말로 ‘나 때는 말이야’ 질문 같네요. 지금은 코치여서 할 수 있는 대답 같은데, 저희 때보다 지금 선수들에게 (코칭스태프가)덜 터치하지 않아요? 생활적인 부분에서?
양지희 그렇지만 선수들은 저희가 같은 층을 쓰다보니, 그 자체가 불편한 것 같아요. 본인들만의 공간이 필요할 텐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방 앞만 봐도 (김)선희랑 (안)혜지가 쓰거든요.
최윤아 선수들끼리 쓰면 방문도 쾅쾅 닫을 때도 있을 거고, 큰 소리를 낼 수 있을 텐데, 그게 안 되다 보니 불편할거 같아요. 그래도 평일에 쉬는 날, 나가려고 하는데 선수들이 있는 것 같으면 제가 밖에 나가요. 선수들과 안 마주쳐주려고요. 아니면 기다렸다가 선수들이 외출하고 나면 나가기도 하죠. 이건 선수들도 알아야 해요. 선수들이 싫어하는 걸 아니까 저희도 웬만하면 안 마주치려 해요. 쉬는 날 마주치면 괜히 운동하는 날 같잖아요.
Q. 박지수 선수가 WNBA에 도전하면서 해외무대 도전이 이슈가 됐는데, 내가 이것만 됐으면 나도 도전해봤을 것 같다. 이런 게 있을까요?
최윤아 제가 키만 좀 컸어도(웃음)…. 신체적인 조건도 필요하지만, 도전 의식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5~7cm만 컸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해요. 비시즌 때 외국선수를 보러 미국에 다녀왔는데, 나는 왜 현역시절 때 도전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양지희 국제대회에 나가면 5cm만 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붙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윙스팬이 짧은 편이거든요. 농구는 신체적인 걸 극복하기 힘든데, 또 키만한 게 없잖아요. 몸싸움을 즐겨하는 편인데, 팔이 짧다보니 상대가 앞, 뒤에서 공을 걷어갔던 것 같아요. 팔이 짧다는 걸 느꼈죠.
BNK는 시즌 초반 부상 악재에도 불구, 끈질기게 도전하며 우리은행, 삼성생명 같은 강팀들을 잡는데 성공했다. 불과 1~2시즌 전만 해도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아니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진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승수 이상의 수확도 있었다. 안혜지와 노현지, 진안 등이 한 뼘 더 성장한 것. 물론 그 와중에는 작전미스를 비롯해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유영주 감독을 비롯해 최윤아, 양지희 코치는 이번 시즌보다 더 나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며 선수들을 이끌고 있었다.
Q. BNK의 벤치를 보면 선수들이 참 흥이 많아요. 코트 밖에서도 그렇고요. 상대 선수로 볼 때와 우리선수가 됐을 땐 다른 점이 있나요?
최윤아 세리머니 같은 걸 하는 게 보기 좋은 거 같아요. 분위기가 밝잖아요. 대신 선수들이 코트에서도 좀 더 활기찼으면 좋겠어요. 코트에서 흥이 난다면 그 부분은 자연스레 벤치까지 전해질 거예요.
양지희 저도 세리머니 같은 부분은 좋은 것 같아요. 벤치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저 역시도 선수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이 그거에요. 코트에서 실수할까하는 부담감은 내려놓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운동할 때 가끔 접전 상황에서 세리머니를 한 적이 있는데, 비디오 미팅 때 다시 보면서 ‘오 괜찮네’라고 하곤 했었어요. 영희 언니가 옆에서 웃었지만요. 우리은행에 있을 때도 세리머니를 유일하게 하는 사람이 저였거든요.
최윤아 요즘은 덜 보이긴 하는데, 저희 때도 어깨치기를 많이 했어요. (김)단비가 신인 때부터요. 그때는 원하던 플레이가 나왔다 하면 무언의 약속된 세리모니가 있었어요. 3점슛 몇 개 넣었다 하면 하는 행동들이 있었죠. 그게 다 자신감이거든요. 그렇게 코트에서 신이 나면 벤치까지도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죠. 아 맞다, 코치님. 저희도 그런 거 있지 않았어요? 우리 때는 신문을 봤을 때니 기사 스크랩해두고. 파일 있지 않으세요?
양지희 맞아요. 팀에서 스포츠지는 다 받았었는데, 경비 아저씨가 절 예뻐해 주셔서 챙겨주셨던 기억이나요. 요즘 선수들은 인터넷으로 기사를 확인하니 그런 게 없지 않을까요. 신문 1면에도 나고 했었을 때니까요.
최윤아 그걸 본 지인들이 연락을 하기도 했고요. 물론 요즘에는 SNS를 통해 홍보가 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봤을 때 (농구가) 대중들에게 노출될 기회는 줄어든 것 같아요.
Q. BNK 창단 첫 시즌을 보내시면서 훗날 ‘BNK때는 말이야’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게 팀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으신가요?
최윤아 지금은 힘들겠지만, 지나고 나면 별 게 아닌 일들이 많잖아요. 선수들도 분명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선수들이 올 시즌도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양지희 이 말 한 마디만 하고 싶어요. 고생은 역시 개고생이 아닐까요(웃음). 저도 처음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한 곳인데, 코치라는 직업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고, 배운 시절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 BONUS ONE SHOT | 유영주 감독이 보는 최윤아, 양지희 코치
같이 뛰진 못했지만, 해설위원을 하면서 보던 선수들이었어요. 최윤아 코치의 경우는 플레이가 깔끔한 스타일이었죠. 외모를 보면 얌전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가 않아요. 승부욕이 대단하죠. 지금은 근육이 빠졌지만, 현역 시절 때는 몸이 정말 좋았어요. 어깨가 어후(웃음)…. 양지희 코치는 자유투 폼이 기억에 많이 나요. 특이했거든요. 또 최고의 선수였죠. 외국선수랑 매치업해도 밀리지 않았거든요. 최 코치랑은 현역시절 때는 친하지 않아 ‘인터뷰 좀 부탁드릴게요’ 하던 사이였는데, 양 코치랑은 밖에서 치맥을 하기도 했었죠. 복분자도 한 잔 했었고요. 최 코치는 보기에는 여성스러운데, 때로는 저도 무서울 때가 있어요. 냉정하면서 무서울 때가 있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에요.
최윤아 수석 코치 프로필_
1985년 10월 24일생인 최윤아 코치는 2004년 WKBL 신입선수 선발회 1라운드 3순위로 현대 하이페리온에 선발됐다. 2016-2017시즌까지 신한은행에서 원클럽맨으로 뛰었고, 2017년 4월 은퇴를 결정했다. 현역시절 최윤아는 차근차근 존재감을 키워갔다. 2005년 겨울리그 우수후보상을 시작으로 2007-2008시즌 베스트5,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 등을 거머쥐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11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린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게 패한 직후 흘린 눈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은퇴 후 최윤아는 신한은행 코치를 거쳐 지금은 BNK 수석코치로 유영주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양지희 코치 프로필_
1984년 10월 25일생인 양지희 코치는 2003년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신세계에 지명됐다. 2010년 4월,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로 되어 7시즌을 보냈고 2016-2017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양지희는 우리은행에서 5번 통합우승을 경험했다. 2014-2015시즌에는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3-2014시즌을 비롯해 세 차례 블록슛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유영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코치 1년차를 보내고 있다.
# 사진_ WKBL 제공, 유용우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