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선아 기자] 임영희, 양지희, 박혜진, 이승아…. 우리은행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4명이나 있다. 통합 3연패를 일군 주역이다. 그런데 이 성과에 이은혜의 이름이 빠지면 섭섭하다. 누구 못지 않게 많은 땀을 흘려온 이은혜는 이제 ‘감초’에서 ‘핵심’으로 올라서려 하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익숙해지는 게 무서웠죠
5-6-6-6-6(위). 연속된 이 숫자는 이은혜에겐 아픈 기억이다. 이은혜가 2007 WKBL 신입선수 선발회를 통해 춘천 우리은행에 데뷔한 후, 팀 성적은 5시즌 동안 하위권에 그쳤다. 데뷔 시즌에 거둔 5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처음에는 져서 분하고,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런데 자꾸 지다 보니 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저도 싫고 팀도 싫었어요. 이 생각은 ‘경기에 져도 된다’라는 생각으로 변했죠.”
우리은행의 짙은 암흑기는 3시즌의 승수를 더해도 2012-2013시즌 우리은행이 달성한 승수를 채울 수 없을 정도였다. “저희가 승리해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그렇게 매일 지다가 한 번 이기면 ‘누가 져줬느냐’, ‘누가 아팠나 보다’라는 시선이었죠.”
하지만 최근 우리가 본 우리은행은 이은혜의 첫 5시즌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위성우 감독 부임 이후 2012-2013시즌부터 통합 3연패에 성공했다. 24승-25승-28승. 매 시즌 승을 늘려가고 있다. 과거 아픔을 지워내고 여자농구 강호로 우뚝 선 것이다.
이은혜도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즘 이야기를 꺼내자 이은혜는 “지금은 관심도 받고, 이기다 보니 환경도 더 좋아졌어요. 이기고 지는 것을 흔히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따르는 대가가 달라요. 저희는 더 잘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미소를 지었다.
변하는 게 보이니까요
이은혜에게 위성우 감독과 처음 만난 시즌을 떠올려 달라고 했다. 이은혜는 “감독님이 처음 오셨을 때 저희는 몸 상태가 안됐어요. 감독님이 시키신 훈련을 못 따라 갈 때가 많았죠. 그래도 감독님은 될 때까지 시키셨어요(하하)”라고 했다. 힘든 훈련을 떠올리며 쓴웃음이 아닌 미소를 지은 대는 이유가 있다. 그때 흘린 땀방울의 가치와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은혜는 “훈련하면 달라지는 것을 모두 알아요. 경기에 뛸 때 차이가 바로 나타나거든요. 비시즌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다가 전지훈련 때 조금 부족하면 차이가 나요. 경기에서 부딪치면서 약해진 걸 느끼죠. 선수들이 느끼니까 찾아서 더 노력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우승의 ‘무게감’이다. 꼴찌에서 1위로 우뚝 설 때 기울인 노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승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 따라야 한다. 여기에는 부담감과 책임감도 더해진다. 이은혜는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항상 시즌을 준비할 때 우승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잘 준비해야 하죠”라며 각오를 다졌다.

MIP가 되다
우리은행 앞 선은 이승아, 박혜진이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한국 여자농구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선수들이다. 이은혜는 우리은행의 키식스맨이다. 이은혜 입장에선 후배들로 인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은혜는 여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묵묵히 훈련할 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이은혜도 자신만의 역할을 찾았다. 지난 시즌은 출전 시간이 더 늘었다. 정규리그 31경기 평균 15분 58초간 나서 2.52득점 2.3어시스트 1.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이은혜는 이승아가 발목 부상으로 코트를 비우는 동안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자신도 허리 부상이 있었지만 힘차게 달렸다. 그리고 이는 4라운드 MIP 수상으로 연결됐다. 4라운드에 4.6득점 2.4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연차를 생각하면 빨리 받은 상은 아니에요. 늦은 상이었는데 새롭고 좋더라고요. 다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혼자 잘해서 상을 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다 같이 열심히 하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됐죠.”
호랑이 코칭스태프? 사실은 든든한 지원군!
우리은행의 선전 뒤에는 이른바 단내 나는 ‘지옥 훈련’이 뒤따랐다. 높은 강도의 훈련을 선수들이 잘 이기길 바라는 마음에 코칭스태프는 선수단을 더 호되게 다그치기도 했다. 기자 역시 연습경기를 취재하면서 순간순간 ‘이 체육관에서 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팀에서 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이은혜는 이를 이겨낸 선수 중 한 명이다.
훈련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코칭스태프가 야속해지는 것이 선수들의 마음이다. 그렇지만 이은혜는 그런 코칭스태프가 정말 고맙단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말 한 마디가 이은혜의 활약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승아가 부상으로 쉴 때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 저희가 연승 중이었거든요. 감독님께서 ‘너 때문에 경기에서 이기고 졌으면 너는 이미 최고의 선수였을 것이다. 부담 가지지 말고 믿고 플레이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전주원, 박성배 코치님도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죠.” 이은혜가 주전으로 나선 경기에서 5승 2패를 기록했다. 위성우 감독은 승패에 상관없이 인터뷰실에서 이은혜의 이름을 자주 언급해 칭찬했다.
이때 이은혜는 코트에 등장하며 항상 같은 마음가짐을 가졌다. 그녀는 “티가 안 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저 때문에 플레이가 안 맞으면 안 되잖아요. 제가 패스해서 팀의 공격이 물 흐르듯이 흘렀으면 해요. 특출난 선수가 되는 것보다는 팀에 없으면 안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저 버리면 안 될 걸요?
3연패에도 이은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은혜는 2014년 12월 26일 신한은행의 경기를 떠올렸다. 연승을 달리던 우리은행은 55-61로 신한은행에 지며 연승 기록이 ‘16’에서 멈췄다. 당시 이승아는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다. “그날 신한은행에게 졌어요. 연승이 깨져 정말 속상했죠. 슛도 전혀 던져보지도 못하고 진 게 충격적이었어요. 라이벌이고 결승에 오를 팀인데 져서 아쉽더라고요. 그때 정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엔 단순한 후회였는데 다음 생각은 ‘경기 끝나고 후회하지 말자’였어요.”
이런 생각은 비시즌의 ‘다짐’으로 이어졌다. 여름 내내 공격력을 가다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팀 전체적으로 수비 연습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저 개인에게는 공격력을 많이 요구하세요. ‘되든 안 되는 시도하라’고 이야기하시죠. 처음에는 안하던 것을 해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해야 한다는 걸 알고, 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위치가 경기 운영을 해야 하는 자리지만, 공격력이 필요하잖아요. 득점하니 재밌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시즌 다른 팀들은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이은혜를 막는 것을 소홀히 하기도 했다. 그녀도 이를 알고, 잊지 못한다. “‘이은혜를 버려두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제 손에서 시작되니까 볼을 못 잡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실력도, 마음도 업그레이드 된 이은혜의 2015-2016시즌이 기다려진다.
BONUS ONE SHOT
이은혜가 존경하는 선수가 팀에 있다?
팀에서 정말 존경하는 선수가 있어요. (박)혜진이에요. 혜진이는 우리은행 최고의 악바리예요. 뭐든 될 때까지 하는 선수죠. 운동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해요 하하. 성격도 배포가 있어요. 같이 훈련할 때 혜진이의 수비 스텝, 슛 자세도 한 번 더 보게 돼요. 친한 후배지만 보고 배우고 싶은 거죠.
키가 180cm까지 자란다면?
180cm까지 키가 커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 농구는 어떨까 생각해보죠. 센터, 포워드도 맡아보고 싶어요. 저보다 큰 선수들이 박스아웃으로 리바운드를 빼앗아 가는게 너무 속상해요. 우리은행의 도움수비가 좋지만, 스위치 상황에서 제가 포워드를 막는 건 힘들어요. 흔히들 농구를 ‘심장’으로 한다고 말하지만, 신장으로 하는 것 같아요.
반갑다 사샤. 그리고 스트릭렌!
운동할 때 저희는 조끼를 입어요. 그런데 이 사이에서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조끼가 있더라고요. 그때 ‘사샤 굿렛 것을 먼저 만든 게 아니냐’라는 말을 농담삼아 했어요. 그런데 사샤가 정말 저희 팀에 왔네요. 사샤는 팀 스타일도 알고 있고, 정말 좋아요. 쉐키나 스트릭렌은 챔프전에서 만났는데 정말 막기 힘든 선수였어요. 저 선수가 어떤 선수일까 더 알고 싶기도 했죠.
사진 신승규, 유용우 기자, 협찬 스컬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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