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선아 기자] 고양 오리온스 김병철 코치는 1994년에 있었던 MBC배 전국남녀대학농구대회 경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잊히지가 않는단다. 농구인생에 있어 절대 빠질 수 없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또 너야? 고려대와 연세대의 1994년
고려대와 연세대의 라이벌 구도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다만 주도권을 가진 학교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1989년부터는 연세대가 흐름을 주도했다. 1994년 3월 30일 열린 94년 MBC배 전국남녀대학농구대회 고려대와 연세대의 첫 맞대결에서도 신촌 독수리가 날았다. 고려대는 59-87로 대패했다. 김병철과 전희철, 현주엽, 양희승 등이 포진했지만, 서장훈과 이상민, 김택훈, 김훈의 연세대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김병철 코치가 이 대회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대패’ 때문이 아니다. 당시 3학년이던 김병철은 이 패배를 기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생경기’를 만들어냈다.
그 시작은 고려대와 연세대의 2번째 대결이었다. 집념의 고려대가 패자전에서 경희대를 누르고 연세대와 다시 만났다. 덕분에 결승전은 ‘복수전’이 됐다. 만약 이 경기에서 고려대가 진다면 대회는 그대로 연세대의 우승으로 마무리된다. 고려대가 이긴다면 다음 날 한 판을 더 치를 수 있었다. 결과는 70-60, 고려대의 승리. 고려대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병철 코치는 이날 21득점을 기록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고려대는 같은 해 4월 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에서 연세대와 다시 붙었다. 1승 1패로 팽팽한 승부에서 단 한 경기로 우승 트로피의 향방을 가리게 된 상황이었다. 고려대의 흐름은 2차전과 달랐다. 우왕좌왕하며 34-49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쳤다. 2차전 반격이 마지막이 될 위기였다. 김병철 코치가 전반에 올린 점수는 3점뿐이었다. 김병철 코치는 “우리의 전반 경기를 복싱으로 보면 1, 2, 3, 4라운드다. 서로의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눈치싸움을 하는 때다. 그런데 우리가 눈치싸움을 하는 중에 연세대가 강하게 밀었고, 여기에 밀렸다. 정말 해보지도 못하고 점수 차가 벌어졌다”라고 회고했다.
그때 김병철 코치의 마음은 어땠을까.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점수가 많이 벌어지면 경기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양 팀 모두 구성원이 좋지 않은가. 또 그때는 연세대에 엄청난 화력이 있을 때다.” 이날 김병철 코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담이 컸다고 고백했다. 슈터 뿐 아니라 포인트가드 역할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포인트가드를 맡은 적이 없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가 잘하는 공격보다는 팀을 위해 끌고 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양희승이나 전희철, 현주엽 등 공격력이 좋은 선수가 많았기에 이들을 살려야 했다. 전날부터 고민이 많았다.”
하필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이상민이라는 벽이 있었다. 그렇게 전반이 끝났다. 라커룸에 모인 고려대 선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때 고려대 박한 감독이 김병철 코치를 불렀다. 김병철 코치는 “박한 감독님께서 ‘네가 한 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네가 사령관이다. 해야 한다’라고 어깨와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말씀하셨다”라고 이야기했다.
박한 감독의 말에 자신감을 얻은 김병철은 후반 코트를 밟으면서부터 생각을 달리했다. 포인트가드라는 부담을 덜고 ‘공격’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김 코치는 “그 말에 포인트가드 개념을 머리에서 지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먹고 들어갔다”라고 했다. 그러자 후반 고려대가 확 달라졌다. 김병철이 공격에 앞장섰고, 고려대는 3쿼터 동안 17점을 쏟아 부으며 51-57로 연세대를 추격했다.
이제 마지막 10분에 모든 게 달렸다. 김병철 코치는 계속해서 연세대를 몰아붙였다. 경기 종료 1분 10초를 남긴 상황에서는 양희승이 슛을 성공시키면서 첫 동점(67-67)을 만들었다.
드디어 한 번의 공격에 우승의 향방이 갈리는 상황이 됐다. 연세대는 첫 슛을 실패했지만, 이상민이 이내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면서 재공격을 시도했다. 김병철 코치는 “당시 내가 (이상민을)막던 상황이라 아찔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그 슛이 림을 빗나갔다. 공을 챙긴 김병철 코치는 곧바로 현주엽에게 패스했다. 장거리 패스를 날렸다. 현주엽 손에 정확히 전해졌다. 김병철 코치는 “10m는 넘었을 것 같다. 운이 좋았다”라고 돌아봤다. 현주엽은 이 공을 잡고 레이업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슛은 불발됐다. 연장으로도 갈 수 있는 상황. 경기 종료까지 0.4초가 남았다. 그런데 동시에 심판의 호루라기가 불렸다. 뒤따라오던 연세대 김택훈이 파울을 범했던 것이다. 현주엽은 얻어낸 자유투에 모두 성공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0.4’를 남기고 승패가 갈렸다.
전반 3점에 그쳤던 김병철 코치는 이날 21득점 6리바운드로 팀에서 최고 활약을 펼쳤다. 고려대에 잊지 못 할 그날을 선물했다. 김병철 코치는 “이날 경기가 끝나고 박한 감독님이 ‘네가 해냈구나’라고 하셨다. 뿌듯함이 가장 컸던 경기다.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한 것에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 경기 덕분에 감독님과 친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섭게 하시더라. 고려대를 나온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박한 감독님은 산이다(웃음).”
# 사진 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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