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최창환 기자] 1경기 40득점. 평생 식스맨으로 뛰어왔던 표명일(원주 동부 코치)에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있다. ‘쏠쏠한 식스맨’이었던 그는 이 경기를 기점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가드’로 발돋움했다.
신선우 감독의 허를 찌른 ‘표비’
2006-2007시즌 초반 전주 KCC는 주전 포인트가드 이상민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힘겨운 항해를 이어갔다.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추락한 KCC는 2006년 11월 12일, 창원 LG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LG는 당시 개막 5연승과 함께 단독 선두에 올라있던 팀이었다. 객관적 전력상 KCC의 열세가 예상되던 경기. 하지만 KCC는 놀라운 화력을 발휘하며 89-82로 승리, 시즌 첫 연승을 달린다. 표명일의 화력 덕분이었다. 표명일은 이날 3점슛 10개 포함 무려 40득점을 몰아넣었다. 이전까지 16득점이 1경기 최다득점이었던 식스맨이 LG의 허를 찌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LG의 지휘봉을 잡았던 이는 KCC의 전성기를 이끈 신선우 감독이었다. 이상민은 확률에 승부를 거는 신선우 감독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이상민은 경기에 앞서 표명일에게 “너에 대한 수비를 안 하고 외국선수들에게 협력수비를 할 테니 자신 있게 던져”라는 조언을 전했다. “(이)상민이 형의 말대로 나에게 찬스가 많이 생겼다. 초반에 1~2개가 들어가면서 더욱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표명일의 말이다.
이날 전까지 3점슛 성공률이 31.4%에 불과했던 표명일은 LG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상대팀이 대놓고 슛 찬스를 내주는 것도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법한 상황. 하지만 표명일은 “신선우 감독님의 스타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그날 슛이 안 들어갔다면 상했겠지만, 결과가 좋아 개의치 않았다”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표명일은 이어 “관심을 못 받던 경기라 중계방송도 없었고, 공식 인터뷰도 짧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나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 후배들도 ‘밥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사를 많이 건넸다”라며 웃었다. 이 경기를 통해 얻은 별명도 있다. 네티즌들은 폭발력을 뽐낸 표명일에게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름을 따 ‘표비’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정작 당사자는 “나도 그 별명을 듣긴 했지만, 지금 나하면 떠오르는 건 ‘모래반지 빵야빵야’ 아닌가(웃음)”라며 ‘셀프 디스’ 했지만 말이다.
“그물도 못 잘라봤는데…”
표명일이 이날 경기 전까지 감독, 코치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찬스인데 왜 안 던져!?”였다. 그간 평균 득점이 낮았던 게 슛 감각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나로선 LG전 40득점이 내 슛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였다.” 표명일의 말이다. 실제 표명일은 40득점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후 여느 팀의 특급가드 못지않은 화력을 발휘했고, 평균 26분 2초 동안 9.3득점으로 이상민의 공백을 메웠다.
주축으로 활약하자, 표명일에겐 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2006-2007시즌 중반 표명일은 변청운, 백주익과 함께 원주 동부로 팀을 옮기게 됐다. 반대급부는 김영만, 정훈, 배길태였다.
표명일은 “소문은 일찌감치 들었지만, 실제로 통보받을 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또 다른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이적을 받아들였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동부로 이적한 후에도 표명일의 경기력은 녹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김주성, 자밀 왓킨스 등 뛰어난 센터들과 함께 뛰며 어시스트도 평균 6.6개나 기록한 것. 이전까지의 통산 기록(2.3개)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이에 대해 표명일은 “‘키 큰 선수와 농구하는 게 이렇게 편한 것이었구나’ 싶더라. (김)주성이는 너무 높게 줬다는 생각이 드는 패스도 잘 받아서 득점으로 연결시켰다”라고 전했다.
동부에서의 적응을 마친 후인 2007-2008시즌. 표명일은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2007년 11월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표명일이 매서운 공격력에 경기운영능력까지 더하자, 동부도 별다른 위기 없이 차곡차곡 승수를 쌓아갔다. 이어 챔프전에서 맹활약한 김주성을 앞세워 동부로 간판을 바꾼 후 첫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다. “KCC 시절에는 식스맨이었기 때문에 동부에서의 우승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겼다. KCC에서 우승했을 때는 그물도 못 잘라봤다(웃음).”
초라했던 말년, 그리고 재기의 첫 걸음
표명일은 이후에도 동부에서 화려한 나날들을 보냈다. 잔부상을 입은 2009-2010시즌을 제외하면 매 시즌 평균 30분 이상을 소화했고, 동부도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표명일은 3억 9,050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으며 부산 케이티로 이적한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내가 신장수술을 받아 훈련에 매진할 수 없었고, 아내의 병간호가 끝날 즈음에는 갈비뼈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표명일은 2011-2012시즌 종료 후 은퇴를 결심했다. “계약기간이 1년 남아있던 데다 전창진 감독님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라. 1년 더 뛴다고 하면 나는 기회를 줄 것이다’라고 말리셨다. 하지만 팀이 세대교체를 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심리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은퇴를 택했다.” 표명일의 말이다.
이후 케이티의 지원 속에 미국 포인트로마대학에서 객원코치로 경험을 쌓은 표명일은 2014년, 친정팀인 동부로 컴백했다. 김영만 신임 감독 체제에 나선 동부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은 것. 표명일은 코치로서도 드라마틱한 우승을 기대했지만, 이를 달성하기엔 울산 모비스와의 실력 차가 컸다. 동부는 2014-2015시즌 챔프전에서 모비스에 완패를 당했다. 표명일은 “팽팽하게 시리즈를 끌고 갔으면 졌더라도 아쉬움이 덜할 텐데, 일방적으로 밀려서 미련이 남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시즌이다. 동부에서 선수시절과 같이 감동적인 우승을 다시 맛보고 싶다”라며 또 하나의 반지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
BONUS ONE SHOT‘모래반지 빵야빵야’, 오해와 진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2007년 12월 2일 열린 KCC전은 표명일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경기다. 상대팀 선수와 거친 신경전이 계속되자 그는 홧김에 거친 욕설을 내뱉었고, 이는 고스란히 중계방송 됐다. 여전히 표명일의 연관검색어로 자리하고 있는 ‘모래반지 빵야빵야’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밖에 ‘머리 만지지 말란 말야’, ‘모바일 지겹단 말야’도 지금으로 따지면 베스트 댓글 감이었다. “당시 미니홈피를 통해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 그런데 내가 봐도 재밌긴 하더라(웃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지만, 표명일은 한 가지 오해받고 있는 부분만큼은 해명해달라고 목소리 높였다. “(임)재현이를 향해 욕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실은 나를 조롱하는 눈빛으로 본 KCC의 외국선수에게 한 말이었다. 물론 이유야 어찌됐든 경기 중 평정심을 잃은 건 내 잘못이다.”
사진_문복주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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