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진채림 기자] 농구팬들에게 숫자 ‘23’은 곧 마이클 조던을 상징하는 숫자가 된다. 뉴욕에 거주하는 팬들이라면 ‘33’이 패트릭 유잉의 상징처럼 다가오겠지만, 뉴욕의 반대쪽에 있는 로스엔젤레스 농구 팬들에게는 카림 압둘-자바의 ‘33’이 될 것이다. 이처럼 운동선수에게 등번호는 또 하나의 이름과 같다. 여자농구에서는 어떤 번호가 상징처럼 여겨지는지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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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사용한 번호
유니폼 15번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여자농구에 한 획을 그었던 박찬숙과 정은순이다. 190cm의 박찬숙은 대표팀의 기둥, 그 자체였다. 신장이 큰데다 기술과 유연성까지 갖추어 국제대회에서도 든든히 외국선수들을 상대했다. 숭의여고 1학년이었던 1975년, 당시 최연소(15세 9개월)로 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현재는 분당경영고 박지수가 최연소 기록, 15세 7개월)
박찬숙의 진가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잘 드러났다. 조직력으로 똘똘 뭉친 우리 대표팀을 은메달로 이끌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구기 종목 은메달로, 농구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됐다. 특히 중국(당시 중공) 전 활약이 대단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은 이기면 최소 은메달 확보, 지면 3~4위 결정전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박찬숙은 성정아, 김화순 등과 함께 상대 선수 정하이샤(204cm) 등을 꽁꽁 묶었다. 결승전에서 미국에 패하긴 했지만 예상을 뒤엎는 활약으로 농구 역사에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박찬숙은 은퇴 후에 국가대표 여자 농구팀 감독, 대한농구협회 이사,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찬숙의 뒤를 이어 정은순이 등장했다. 정은순은 박찬숙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1개월 앞당길 정도로 고등학교 때부터 물 오른 기량을 자랑했다. 덕분에 우리 대표팀도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정은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었다. 당시 주장을 맡은 정은순은 한국의 4강행을 이끌었고, 개회식에서 남북공동입장을 할 때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기도 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흠 잡을 데 없는 활약을 펼쳤다. 정은순은 1990년 삼성생명(현 삼성)에 입단해, 그해 인성여고 동창인 유영주와 함께 농구대잔치 공동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7년 연속 농구대잔치 베스트5에 선정된 것은 물론, 1994년에는 농구대잔치 MVP에 올랐다. 프로 출범 이후에는 삼성생명에서 4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1998년 여름리그, 1999년 여름리그, 2000년 겨울리그에서 MVP로 선정됐다. 1999년에는 WKBL 사상 최초의 트리플-더블러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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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슈터들의 번호
15번이 빅맨을 위한 번호였다면, 11번은 슈터들의 번호였다. 2000년대에는 박정은, 변연하 등이 대표적이지만, 1980년대에는 김화순과 최경희가 그 역할을 했다. 두 선수 역시 1984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화순은 이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16.8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김화순은 동방생명(현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1986~1988년까지 팀의 3연패를 이끌었다. 1988년 1월에는 농구대잔치 역사상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은퇴를 선택했다.
이후 미국대학농구(NCAA) 험볼트 대학에서 농구 유학을 했던 딸 신재영(현 신한은행)을 뒷바라지하며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지난 2013년부터 동주여고에서 지도자로 새 출발을 알렸다. 등번호는 다르지만 최경희 역시 김화순과 함께 1980년대 최고 슈터로 이름을 날렸다. 166cm로 신장은 작았지만, 이를 보완하는 스피드와 슈팅 능력은 일품이었다. 삼성생명 소속이었던 최경희는 농구대잔치 우승만 6번(1986, 1987, 1988, 1990, 1991, 1992)을 차지했다. 또 209경기에 출전해 3,939득점을 기록했다. 두 기록 모두 농구대잔치 여자부 최고 기록이다.
WKBL에서 가장 눈에 띄는 11번은 임영희(우리은행)다. 임영희는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증명하고 있다. 1999년 신세계(현 하나외환)에 입단했지만, 2008-2009시즌까지 243경기에서 보인 기록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평균 16분 11초를 뛰며 남긴 기록은 3.2득점 1.9리바운드였다. 그랬던 임영희가 우리은행 합류 후 달라졌다. 2009-201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220경기에서 평균 12.8득점 3.9리바운드로 활약 중이다.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는 팀의 통합 3연패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012-2013시즌에는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휩쓸었고, 그 다음시즌에도 챔프전 MVP에 선정됐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선발돼 금메달의 영광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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