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을 대표하는 그 숫자! WKBL 최고의 등번호는?⑤

진채림 / 기사승인 : 2015-12-24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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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진채림 기자] 유니폼에 이름보다 크게 자리 잡은 숫자. 그 유니폼을 입고 코트에 서 있는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름만큼이나 팬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이 숫자는 그 선수를 대표하는 번호가 되기도 한다. 여자농구에서는 어떤 선수가 이름만큼이나 이 특별한 숫자, ‘등번호’로 기억되는지 알아봤다.




‘NO.7’
이형숙, 황금세대의 황금 포인트가드
이형숙은 1980년대 한국여자농구의 황금기에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수피아여고를 졸업하고 1983년 한국화장품에 입단해 실업팀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시즌 활약을 발판 삼아 국가대표로도 선발돼 1983 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한국여자농구의 역사로 남은 1984 LA올림픽이었다. 이형숙은 당시 부상을 당한 박양계 대신 BEST5로 올라서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악착같은 수비와 빠른 발로 상대를 휘저으며 은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이후에도 이형숙은 1984, 1988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도 홈팀인 중국을 꺾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1991-1992 농구대잔치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형숙은 대만으로 가 타이웬에서 3년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타이웬의 감독을 맡아 2003년까지 팀에 2번의 우승, 3번의 준우승을 안겼다. 지도력을 인정받은 이형숙은 학업에 대한 열정을 펼쳐 보였다. 2004년 시치엔대에 입학했고, 선수로도 복귀하며 단숨에 2부 리그에 머물렀던 시치엔대를 1부 리그에 올려놓았다. 이후 대만 불광산대학 감독으로 재임하며 2013년에는 소속팀을 이끌고 국내에서 열린 김천국제초청여자농구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WKBL에서 등번호 7번을 달고 뛰는 선수를 떠올리면 구리 KDB생명의 한채진과 청주 KB스타즈의 강아정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두 선수 모두 슈터로서, 3점슛에 강점을 갖고 있다.


한채진은 2003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현대(현 인천 신한은행)에 입단해 팀이 신한은행에 인수된 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레알신한’이라는 탄탄한 전력 속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2008-2009시즌을 앞두고 FA를 통해 금호생명(현 구리 KDB생명)으로 이적한 한채진은 이때부터 맘껏 기량을 발휘하며 농구 인생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특히 팀이 투혼을 발휘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2011-2012시즌에는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3점슛왕의 영예도 안았다. 이적 후 지난 시즌까지 243경기에서 평균 11.3점 4.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에는 프로 데뷔 9년 만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강아정은 동주여고 시절부터 ‘제2의 변연하’로 이름을 날렸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김단비(신한은행), 배혜윤(삼성생명), 김유경(KB) 등을 제치고 1순위로 KB에 입단했다. 당시 슈터가 필요했던 KB는 1순위로 망설임 없이 강아정을 선발했다. 강아정은 팀의 기대에 부응하듯 데뷔 시즌 경기당 평균 5.3점 2.1리바운드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어느새 팀의 중고참이 된 강아정은 변연하와 쌍포를 이루며 팀의 공격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만큼 앞으로의 역할도 중요하다. 팀의 ‘V1’ 도전에는 물론, 세대교체를 선언한 국가대표로서도 김단비를 비롯해 박혜진(우리은행) 등과 함께 주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NO.12’
천은숙, 농구 외길인생을 걷다

선수부터 지도자, 해설자와 심판까지 농구 외길인생을 걸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1990년대 여자농구를 대표했던 선수 중 한 명인 천은숙이다. 천은숙은 176cm의 장신 가드로서 저돌적인 골밑 돌파와 카리스마를 지녔고 3점슛까지 겸비하며 포워드, 때로는 센터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1988년 코오롱에 입단한 천은숙은 하숙례, 장선형 등과 함께 팀의 전성기를 이끌며 활약했다. 일본과 대만을 거쳐 선수생활을 이어간 천은숙은 1998년 WKBL이 출범하면서 신세계(현 부천 KEB하나은행)의 창단 멤버로도 함께했다. 국내에서의 활약은 국제대회로도 이어졌다. 천은숙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까지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천은숙은 은퇴 후인 2003년, 대불대에 입학하면서 또 다시 농구공을 잡고 코트를 누볐다. 또한, 유니폼을 벗은 후 천은숙이 서게 된 곳 또한 농구 코트였다. 천은숙은 2006년 청솔중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며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힘썼고, 이후에는 해설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천은숙의 농구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3년 2월, 이번엔 심판 자격증을 따며 심판으로서 또 다시 코트를 뛰어다녔다.


등번호는 다르지만 천은숙과 더불어 코오롱의 전성기를 이끈 하숙례도 당대를 대표했던 선수였다. 하숙례는 삼천포여고 출신으로 1989년 코오롱에 입단해 1997년까지 슈터로 활약했다.


하숙례 또한 국가대표로서 제 몫을 해줬다. 1988년 은퇴한 김화순의 빈자리를 정은순 등과 함께 성공적으로 메워내며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우승에 일조했고,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숙례는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택하며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1998년 일본으로 넘어가 덴소에서 코치생활을 했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는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했다.


2008년에는 미국 워싱턴 주립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여자대학농구 최강으로 꼽히는 용인대 사령탑에 선임됐다. 하숙례는 2009년 8월 부임해 2010, 2011 종별선수권에서 2년 연속 용인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현재는 한세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_신승규 기자,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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