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박지훈을 처음 본 건 지난해 열린 프로ㆍ아마 최강전 때였다. 중앙대와 고양 오리온과의 경기. 당시 3학년이던 그는 프로팀인 오리온을 상대로 1쿼터에만 15점을 쓸어 담았다.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와 정확한 외곽슛으로 오리온 수비를 허물며 득점을 올리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레 기자석과 관중석 사이에서 “저 친구 누구야?”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박지훈의 이런 활약에 힘입어 중앙대는 1쿼터를 27-26으로 앞선 채 마무리했다. 비록 후반 체력열세를 노출하며 역전패(71-99)했지만 이날 박지훈은 양 팀 선수 중 최다인 25점을 올리며 프로 관계자와 농구팬들 사이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 황금세대
“출발하기 전에 전화주세요.”
인터뷰 섭외를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박지훈은 중앙대 안성캠퍼스를 처음 가본다는 필자의 말에 “서울에서 여기까지 빨리 오는 법을 알고 있다”며 출발 전 연락할 것을 당부했다.
그의 친절한 길 안내 덕분에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코트 밖 박지훈은 선해 보이는 눈매와 순박한 웃음으로 딱 봐도 ‘바른 청년’ 느낌이 풀풀 났다.
이런 모범생 이미지의 그가 처음으로 꺼낸 얘기는 올 해 대학농구 일정이었다. 남은 대학리그 경기 스케줄부터 앞으로 다가올 프로 아마ㆍ최강전, 아시아 퍼시픽 대학농구 첼린지, 이상백배, 신인 드래프트까지 주요 일정을 모두 꿰고 있었다.
“아니 이 많은 스케줄을 어떻게 다 알고 있어요?”라는 물음에 박지훈은 갑자기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줬다.
“이제 4학년이잖아요. 올 해 일정들을 모두 적어서 핸드폰 사진으로 찍어 보관해 놓고 있었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올 해 말 있을 신인 드래프트로 이어졌다. 이번 2016년 신인 드래프트는 이종현, 최준용, 강상재 등 프로에 가면 즉시 팀에 보탬이 될 선수들이 대거 나와 이름 바 ‘황금세대’라고 불린다. 이미 몇 해 전부터 많은 농구팬들이 ‘과연 어떤 선수가 어느 팀에 갈 것인가?’를 두고 뜨거운 관심을 보일정도다. 위에 세 선수 외에도 최성모, 천기범, 김철욱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박지훈도 그 중 하나.
“이번 드래프트 선수들이 너무 쌔요. 사실상 1, 2, 3순위는 정해져 있고 (천)기범이나 다른 선수들도 요즘 잘하더라고요. 저요? 1라운드 중반정도에 뽑혔으면 좋겠어요. 가고 싶은 팀은 특별히 없어요. 뽑아주시면 ‘감사합니다’하고 가야죠.”
주위에서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박지훈은 “이왕이면 잘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싶다”며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농구팬 분들이 이번 드래프트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아 내가 황금세대구나’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대학리그를 뛰면서 ‘잘하는 애들이 정말 많구나’라고 확 느낄 뿐이죠.”
오리온전을 통해 ‘중앙대 박지훈’이 전국적으로 알려졌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는 농구를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촌형이 농구하는 것을 보고 농구공을 잡았어요. 농구하는 형의 모습이 멋있었거든요. 하지만 제 농구 실력은 별로였어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키가 160cm정도 밖에 안됐거든요. 전국에서 제일 작았죠. 키도 작고 농구도 못하니까 농구를 그만둘까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부모님과 잘 애기해 송도고로 진학하며 농구 인생을 이어갔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궂은일에 주력하는 선수였어요.”
▲ 힘들었던 성장통, 끝내 결실을 맺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박지훈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힘들었다”였다. 박지훈의 말대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는 특별한 성장 없이 벤치를 지키는 ‘그저 그런’선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키가 급격하게 자라난 것.
“고 3때 키가 178cm까지 자랐어요. 대학와선 더 커서 지금은 185cm에요. 정말 다행이죠.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거든요. 어렸을 적엔 부모님이 커서 저도 클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막상 키는 자라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달라진 신체만큼 플레이 스타일에도 변화가 왔다.
“보이는 게 달라졌어요. 같은 포지션의 선수와 키가 비슷해지니까 코트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랄까. 그전엔 팀 동료들이 상대 선수들 틈에 겨우 보였거든요. 레이업을 뜰 때도 그냥 하면 다 블록슛을 당해서 일부러 어렵게 던지고.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높아진 자신감과 함께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며 출전시간도 늘어났다. 실력과 개인 기록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들은 박지훈 보다 한 발짝 더 앞서 있었다.
“3학년 때 공격적으로 하면서 경기에서 항상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렸어요.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죠. 같은 기수인 (천)기범이, (최)성모, (맹)상훈이가 고교무대에서 워낙 잘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지훈의 입학과 동시에 중앙대는 그동안 팀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09학번 장재석, 임동섭, 유병훈이 졸업하며 전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박지훈은 주로 벤치에서 출격하며 대학교 1, 2학년 각각 3.15점과 5.0점이라는 평균 득점을 기록했다. 코트 안에서의 플레이와 기록 모두 돋보이는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 3학년에 올라가며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2학년 평균 17분 39초였던 출전시간이 35분 29초로 대폭 늘어남과 동시에 평균 득점도 18.9점으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단국대 전태영, 경희대 한희원에 이은 득점 3위였다.
박지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회를 준 건 중앙대 양형석 감독이었다. 양 감독은 2015년 중앙대 감독에 오르자마자 박지훈을 팀의 중심으로 낙점했다. 그는 박지훈의 ‘성실함’에 주목했다.
“지훈이를 처음 본 게 2학년 때였어요. 아이가 참 긍정적이더군요. 훈련할 때 자기가 먼저 나서서 상황을 이끌어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적극성이 굉장히 좋았어요. 또 훈련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새벽시간 야간훈련을 통해 보충하더라고요.”
흔히 제한된 역할만 하는 벤치 선수들은 중요한 순간 머뭇거리며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평소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가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훈은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그냥 흘러 보내지 않았다. ‘에이스’라는 역할은 그에게 딱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없었어요. 코트에 서면 내가 하기 보단 형들에게 공을 줘야할 것 같았어요. 저 스스로도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많이 가졌어요. 3학년이 되고 형들이 졸업하면서 ‘찬스가 나면 나도 공격적으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리그 첫 경기가 한양대전이었는데 그 경기가 정말 잘 풀렸어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잘 풀린 것 같아요. 갑자기 달라진 역할에 적응하는 제 모습에 스스로도 놀랍더라고요.”
▲ ‘지금 이 순간’
대학리그를 통해 감을 잡은 박지훈은 프로ㆍ아마 최강전에서 제대로 사고를 쳤다. 오리온전 25득점을 올리며 ‘인생 경기’를 펼친 것. 늘 뛰어난 동기들에 가려 빛을 못 본 그가 농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경기이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았어요. 긴장은 전혀 안했어요. 이길 거라는 생각을 안했거든요. ‘그냥 편하게 하자, 프로 형들에게 배우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는데 잘된 것 같아요. 후반전에 체력이 너무 떨어진 게 아쉬웠죠. 전반 끝나고 하프타임 때는 종아리에 쥐가 올라오더라고요. 참고 뛰긴 했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오리온전 이후 박지훈에 대한 팬과 언론의 관심도는 증가했다. 뛰어난 실력과 잘생긴 외모로 단숨에 대학리그를 이끄는 스타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자신감과 성취감이 뒤따랐지만 동시에 부담감도 심했다. 대학 4학년이 되며 이런 압박감은 더해졌다. 팀 내 최고참이라는 위치와 프로 팀 스카우터들의 평가가 그를 신경 쓰게 했다.
“어후, 부담 많았죠. 작년에 해온 게 있는데 올 해 못하면 저에 대한 평가가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기록이 좋아야 평가도 올라갈 것 같고. 그런데 공격하기는 전보다 많이 힘들어진 거 에요. 작년에 제가 한 게 있으니 상대 팀이 준비를 많이 하고 경기에 임하더라고요.”
이러한 정신적인 압박 속에 꿀 같은 조언을 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송도고 선배이자 현재 서울 SK에서 뛰고 있는 최원혁이었다. 최원혁이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건넨 격려는 박지훈에게 큰 힘이 됐다.
“원혁이 형이랑 며칠 전에 통화를 했어요. 형이 프로 스카우터들을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넌 작년에 보여준 게 있다. 스카우터들 앞에서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궂은일과 수비 등 열심히 하는 것만 보여줘라. 네가 대학에서 이만큼 득점한다고 프로에 와서 똑같이 하는 건 아니다. 프로에 너 말고 득점 할 사람은 많다’라고요.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어요. 대학에서도 저 말고도 (김)국찬이, (정)인덕이 등 득점해줄 사람이 많잖아요. 원혁이 형 말대로 수비에 힘을 썼죠. 수비에 집중하다 보면 스틸이 나오고 자연스레 속공으로 이어지잖아요. 수비에 신경쓰다보니 오히려 득점이 많아지더라고요.”
박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원혁의 조언이 그에게 ‘보약’이 된 셈이다. 그래도 드래프트를 앞둔 초조함을 완전히 떨쳐버리긴 어려운 모양이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저 뽑힐 수 있겠죠? 이제 진짜 코앞인데 걱정되네요.”라며 한숨을 쉬어 보였다. 얼른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보자 마지막에 하려고 했던 질문을 엉겁결에 해버렸다.
“꿈이 뭐에요?”
“꿈이요? 고등학교 때만 해도 프로선수가 되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주위에서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해서 하하. 지금 제 꿈은 국가대표입니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당시만 해도 작은 키와 부족한 실력으로 농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박지훈은 어느새 프로선수를 넘어 태극마크를 꿈에 그릴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만약 그 때 농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박지훈은 농구를 선택한 결정을 두고 “후회 안 해요. 지금 선택에 만족하고 있어요. 만약 그때로 돌아가 공부를 선택했으면 후회했을 걸요?”라며 지금의 모습에 만족해했다.
농구를 “내 인생 자체”라고 표현한 박지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는 “어..”하는 한마디와 함께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너무 많죠. 드래프트 때 프로 팀에 지명되면 단상에 올라가 소감을 말할 기회가 오잖아요. 사실 그 때 무엇을 말할지 생각해 놓은 게 많아요. 뽑아주신 프로 팀 관계자들, 지금까지 절 키워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양형석 감독님과 부모님한테도 꼭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부모님이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대학교 친구들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이 얘기 다 하면 너무 길겠죠?(웃음) 사람들에게 꾸준히 최선을 다 한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저 선수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다’이런 생각이 드는 선수요.”
사진_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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