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정말 괜찮겠어요?”
하도현(198cm, 포워드)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장 좋아하는 NBA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르브론 제임스요. 아직 우리나라에 그런 선수 없지 않아요? 르브론 제임스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이번 인터뷰 기사 제목을 무엇이라 쓸지 고민하던 필자는 하도현에게 “방금 한 말 제목으로 해도 돼요? 단국대 하도현, ‘한국의 르브론 제임스가 되겠다’ 어때요?”라며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흠.. 한국의 르브론 제임스라... 괜찮은데요? 좋아요.”
비록 그저 단순히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표현이지만, 이제 대학 3학년인 선수와 NBA 최고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를 같이 언급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 필자와 달리 하도현은 너무나 쿨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진짜 제목으로 낙점해버렸다.
하도현은 2학년이던 지난 2014 대학농구리그에서 박철호(부산 케이티)와 김준일(서울 삼성)을 가볍게 제치고 리바운드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평균 13개, 2위 박철호 9.92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년의 부상 공백기를 딛고 돌아온 올 시즌엔 득점 1위(평균 23.2점)를 달리며 단순히 리바운드만 잘 잡는 선수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중고교 시절부터 항상 언더독(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승리 할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지칭)이었지만 자신감과 승부욕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하도현은 그간 약체로 평가받던 소속 팀 단국대를 이끌고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정상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코비와 커리를 제치고 만난 남자
인터뷰를 약속 한 날은 4월 14일, 오후 1시. 같은 시각 미국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현역 마지막 경기와 스테판 커리의 3점슛 대기록 경기가 동시에 펼쳐졌다. 하지만 하도현을 만나기 위해 필자는 코비의 은퇴 경기를 보다말고 부리나케 약속 장소인 잠실로 향했다.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잠깐의 휴가를 받은 그는 잠실에 있는 한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와 재활운동을 통해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처음엔 재활이라는 말을 듣고 걱정부터 했다. 하도현은 작년 한 해 허리디스크와 발목 수술로 1년 휴학을 하며 프로 진출을 1년 미뤘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부터 부상을 달고 다녔던 그지만 다행히 “현재 컨디션은 아주 좋아요. 아픈 데도 없습니다. 몸 상태는 최상이에요”라며 웃어보였다. 병원에서 하는 재활은 경기 후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운동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농구는 언제 시작하게 됐어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농구팀 코치님이 스카우트를 하러 왔다가 운동장에 혼자 농구하는 절 보고 운동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아버지한테 꼭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시작했죠. 그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처음부터 센터를 봤나요?
아니요, 중학교 때는 가드를 봤어요. 실력은 별로였어요. 살이 쪄서 느렸거든요. 중3이 되면서 바뀐 코치님이 훈련을 적극적으로 시키셨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꾸준히 운동하면서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더라고요. 하지만 기복이 심했어요. 잘하는 팀을 만나면 못했고, 못하는 팀을 만나면 잘했죠.
갑작스런 포지션 변경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죠. 적응하느라 애먹었어요. 장단점이 있지만 가드 할 때가 더 편했어요. 센터는 안 힘들 줄 알았는데 더 힘들더라고요. 골밑에서 몸싸움을 하다보면 뛰는 것 이상으로 지쳤어요. 특히 힘이 쌘 사람과 붙으면 정말 힘들었죠. 솔직히 계속 가드를 하고 싶었지만 팀 상황 상 어쩔 수가 없었어요.
▲ 부상의 아이콘
그동안 하도현이란 이름 앞에 부상이란 단어는 늘 따라다녔다. 고교시절부터 대학무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부상을 수차례 겪은 그는 “부상은 제 엄마죠. 늘 제 옆을 따라오니까. 너무 많이 다쳐서 부모님이 많이 걱정해요”라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담담히 말했다.
부상 얘기를 안 할 수 가 없어요.
저 보고 불운의 아이콘이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심지어 제가 달았던 등번호 7번이 저주의 번호라는 말도 있었죠(웃음). 가장 큰 부상은 고3 때 당한 부상 아닐까요? 4월 달에 열린 연맹회장기 예선이었어요. 리바운드를 잡는 과정에서 공중에 충돌이 일면서 팔꿈치부터 떨어져버렸어요. 뚜두둑 소리와 함께 다 깨져버렸죠. 요골두라고 팔이 돌아가는 부분인데 여기가 가루가 돼버렸어요. 바로 수술을 하고 핀을 박았죠. 하지만 그 당시 학교가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빨리 돌아 올 수 없겠냐고 했죠. 결국 간단한 소독만 하고 한 달 빨리 집으로 돌아갔는데 염증이 생겼어요. 감염수치가 너무 높아서 한 달 동안 응급실과 수술 방을 넘나들었어요. 거의 두 달 동안은 매일 다친 부위를 찢고 소독하는 과정을 겪었죠.
농구선수들의 부상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네요. 수술도 수술이지만 무리한 복귀가 문제였군요.
네. 수술도 잘못됐고 수술 후 소독도 제대로 못 했어요. 나중에 팔 전체로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렸어요. 응급실에서 의식을 잃었죠. 병원에선 급하니까 그 상태에서 팔을 째서 소독을 하더라고요. 염증 수치 정상이 0.5~1인데 저는 10이 넘었어요. 팔에 감각이 없을 정도였죠. 중환자실에서 수시로 담당 의사분과 간호사분이 집에도 못가고 확인할 정도였어요.
지금 상태는 어때요?
다친 팔꿈치가 오른쪽인데, 지금도 좌우로 돌아가지가 않아요. 굳어졌어요. 완치는 안 돼요. 재수술할까 고민했지만 수술 성공률이 20%밖에 안 된대요. 성공한다고 해도 신경 쪽을 잘못 건드리면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죽음의 가까운 도박은 하지 말라고..그래서 매일 팔을 돌리고 재활하는 쪽을 선택했죠.
그런 큰 부상을 당하고 다시 코트 위로 돌아가 몸싸움을 하고 리바운드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운동자체가 무서웠죠. 부딪힐까봐 두려웠고요. 그래도 어떡해요, 잡아야죠.
팔꿈치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농구하는 데 심각한 지장을 줄 것 같은데.
지장이 있죠. 레이업 뜰 때 자세도 흐트러지고 슛 폼도 바뀌어있었어요. 바뀐 자세에 적응하는 데 많이 힘들었죠. 그래도 동기들과 선생님들이 항상 옆에서 할 수 있다는 말들을 해줘 큰 힘이 됐어요.

▲ 통증을 딛고 얻어낸 리바운드
하도현의 부상은 대학에 와서도 이어졌다. 이번엔 허리와 발목이 문제였다. 결국 발목 수술과 허리 치료를 위해 1년 휴학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리바운드 타이틀을 거머쥘 당시 허리에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뛰었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2학년 때 두 경기를 하고 허리디스크가 터졌어요. 그 전에 웨이트를 하다 허리를 삐끗했어요. 처음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가볍게 체육관에서 워밍업을 하다 허리에 뚝 소리가 나면서 앞으로 쓰러졌어요. 검사 결과 허리디스크라는 판정이 나왔어요. 허리에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를 뛰었죠. 리바운드 타이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선배들이 프로에 가기 위해선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 악물고 뛰었어요. 리바운드 상은 그렇게 해서 받게 된 거에요.
통증을 참아내고 리바운드를 잡아냈네요.
시합 때는 통증을 크게 못 느꼈어요.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을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 시합이 끝나고 저녁에 씻을 때면 통증이 몰려왔죠. 심할 때면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를 맞았어요.
아픈 와중에도 리바운드 1위에 대한 의식은 했었나요?
네. 시즌 초반 리바운드 단독 1위라는 걸 확인했어요. 좀 더 열심히 하면 리바운드 상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때는 신경 써서 잡으면 리바운드 16, 17개는 걷어냈어요. 연세대나 고려대를 상대로도 두 자리 수 리바운드는 잡아냈죠.
하지만 전반기가 끝나고 결국 부상으로 1년 휴학을 하게 됐어요.
재작년 2학기부터 작년 1학기까지 1년을 휴학했어요. 작년 2학기에 복학해서 플레이오프 두 경기 포함 딱 다섯 경기만 뛰었죠.
여러 차례 큰 부상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농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고 약속한 것도 있어요. 그동안 받은 은혜도 갚고 싶었고요. 또, 다른 사람들의 무시를 받고 싶지도 않았어요. 제가 다쳤을 때 ‘다치면 누가 알아주냐’는 악플들이 신경 안 쓰려 해도 쓰이더라고요. 내가 어떤 선수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약속이라면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 에요?
제가 팔을 처음 다치고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에게 꼭 나아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부모님한테는 농구로 성공해서 보답하겠다는 말도 했고요.
정신력이 정말 강한 것 같아요.
(손을 내저으며)원래 유리 멘탈이었어요. 툭하면 부서졌죠. 하지만 올해부터 멘탈이 에메랄드로 변했어요. 이젠 부서지지 않아요. 이제는 과연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요.
아무리 에메랄드 멘탈이라도 스트레스는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을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크게 한 번 울어버려요. 울고 나면 싹 시원해지거든요. 어정쩡하게 화날 때는 먹는 걸로 풀고요. 저 진짜 많이 먹어요. 한 번에 햄버거 3, 4개를 먹죠. 그것만 먹으면 다행이죠, 거기다 감자튀김까지 먹거든요. 대식가입니다.
▲ 비주류의 반란을 꿈꾼다
하도현의 농구인생은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나온 전주고는 하도현이 3학년이던 무렵 다크호스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우승권 팀들과는 상당한 전력 차가 존재했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도 하도현을 빗겨갔다. 그 당시 고교에서는 경복고의 이종현과 최준용를 필두로 계성고의 맹상훈과 박인태, 부산중앙고의 천기범, 울산무룡고의 최성모 등이 아마농구를 휩쓸고 있었다.
대학에서도 리바운드 1위를 하기 전 까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중앙대, 경희대 등에 비해 지방에 있는 단국대는 팬들이나 언론의 관심도가 크게 떨어졌다. 팀 순위도 하위권을 맴돌았다. 2010년 대학리그가 출범한 이래 단국대는 직전 시즌까지 10위-9위-7위-9위-11위-8위를 오갔다.
하지만 하도현은 특유의 강한 승부욕으로 꾸준히 실력을 쌓아갔고 단국대도 좋은 신입생들이 들어오며 전력이 급상승했다. 올해 열린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에선 준우승이라는 쾌거도 맛봤다.
홍순규(198cm, 센터)선수가 들어오면서 센터에서 파워포워드로 포지션이 올라갔어요.
네. 덕분에 부담감이 덜해요. (홍)순규는 힘과 몸싸움이 좋고 점프도 좋아요. 훈련할 때도 서로 도움이 많이 돼요.
특히 홍순규 선수와 하는 하이-로우 게임은 상대가 알고도 못 막는 단국대 최고 공격 옵션으로 올라섰잖아요.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데 상대하는 팀들은 매번 같은 패턴으로 점수를 내주더라고요.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안됐어요. 2학년 때는 하이-로우 게임이 하나도 안돼서 지적을 많이 받았죠. 그러다 올해부터 몸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홍순규와)호흡이 맞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한 경기에 세 번 정도는 나오는 것 같아요. 다른 팀들도 우리가 하이-로우 게임을 한다는 건 알지만 패턴을 하나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순규가 하이에 있고 제가 로우 포스트에 있다는 건 똑같지만, 경기 중간에 여러 개의 사인을 통해 공을 주고받는 타이밍을 다르게 해요.
이번 시즌 3점 비중을 올렸어요. 경기 전 몸을 풀 때도 3점슛을 많이 시도하던데요?
제가 어중간한 포지션이에요. 프로에 가면 제 키로 4번은 못 보죠. 2번은 무리더라도 3번은 봐야 되는데 그러려면 슛이 꼭 필요해요. 슛은 확실히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 듣다가 이제는 직접 느끼기 시작했어요. 슛이 있으면 공격하기가 훨씬 쉽더라고요. 한 경기에 3점 1, 2개씩을 넣게 되면 제 가치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빅맨을 보다가 포지션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참고하는 선수가 있나요?
작년에 프로농구에서 개인기가 좋은 선수들의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오리온의 애런 헤인즈, KCC의 안드레 에밋 같은 선수들이요. 공격 루트와 공을 잡고 어떻게 스텝을 밟는지 유심히 관찰했죠. 그리고 저한테 맞게 써먹어 봤어요. 롤모델은 윤호영 선수에요. 내외곽 다 가능하고 수비도 잘하고 슛, 드리블, 센스도 좋잖아요. 그런데 지난 시즌 저랑 같은 허리 부상을 입어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코트 위에 하도현 선수를 보고 ‘저 선수 승부욕이 대단하구나’라고 느낀 게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네, 진짜 세요. 만약 한 대를 맞았다 하면 무조건 똑같이 되갚아 줘야 돼요. 그래서 성균관대의 (이)윤수가 절 싫어해요. 윤수가 가끔 화나면 스크린을 거칠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저는 “어? 이렇게 했다 이거지?”하고 다음번엔 오히려 더 강하게 몸싸움을 하거든요. 아, 참고로 윤수랑은 친한 사이에요 하하.
지난 고려대와의 경기는 어땠어요? 그 때 이종현-강상재가 버티는 고려대 골밑을 상대로 32득점 12리바운드 4스틸을 기록했어요. 덩크슛도 터트렸고요. 팀은 패했지만 이종현을 상대로도 자신 있게 일대일을 해서 득점을 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종현이랑은 친해요. 하지만 그 날 종현이가 기선제압용으로 덩크슛 두 개를 넣는 걸 보고 공을 뺏으면 무조건 덩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져도 덩크슛은 꼭 해서 우리가 강한 걸 보여주자고 마음먹었죠. 그게 대학리그 첫 덩크슛이었어요.
부상으로 1년 휴학을 안 했다면 올해 프로 신인드래프트에 나갔을 텐데, 아쉽지는 않아요?
하아, 내년에 가는 게 어쩌면 더 좋은 것 같아요. 동기인 (최)준용이도 그렇고 (강)상재, (이)종현이 등을 보면 사람들이 황금세대라고 부르잖아요. 내년엔 연세대 (허)훈이와 안영준, 우리 팀 세 명(하도현, 홍순규, 전태영), 중앙대 (김)국찬이 등이 있는데 제가 지금보다 더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해요. 하도현이라는 선수를 보여주기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해야죠.
프로에 가서도 통할 자신의 무기는 뭐라고 생각해요?
스피드와 높이로 승부를 보려고 해요. 제가 힘이 좋은 선수가 아니에요. 제 또래에 (최)준용이를 빼면 키가 크면서 빠른 선수는 없어요.
이번 시즌은 개인기록도 기록이지만 팀 성적도 올라와있어요(현재 3승 2패, 5위). 올 시즌 목표가 뭐에요?
개인 목표는 득점상과 야투상이에요. 부상 안당하고 이대로만 쭉 하면 될 것 같아요. 팀 목표는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고 다가오는 프로아마최강전에 진출해서 ‘우리 팀이 이런 팀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거 에요. 무엇보다 부상 안 당하고 시즌을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농구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나온 인터넷 기사에 ‘단국대 같은 비주류 대학을 왜 가냐’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상위권 학교와 실력차이는 날지 몰라도 똑같은 대학 운동선수니까 무시하지 말고 응원해줬으면 해요. 또 비주류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보셨으면 좋겠어요. 고려대와 연세대 외에 약팀 경기를 볼 때 너무 비판적으로 보기보단 “어? 단국대 경기도 보다보니 좀 볼만하네”하면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단국대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사진_신승규 기자
영상_김남승, 박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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