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없는 농구선수 이야기] 제가 진짜 장재석입니다

김선아 / 기사승인 : 2016-06-02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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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선아 기자‘제목은 시(時)처럼 뽑아주세요’


장재석에게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언젠가 장재석이 인터뷰한 뒤 당부하더라. 선수에게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봐서 당황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서도 주변에 물었다. ‘장재석은 어떤 사람이야?’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스스로 소개 좀 해주세요. 장재석은 어떤 사람이죠?
생각이 깊고 꿈에 대한 설계가 탁탁 되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책임감, 신념, 믿음도 있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있고요. 친구도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이 저를 다 사랑하지는 않죠.




사람들이 보는 본인의 이미지는 어떤 것 같아요?
얼굴을 보고 순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차갑다고 말하는 분도 많아요. 솔직히 겉으로는 강하지만 마음이 약한 사람이 있고, 밖으로 약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강한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실제로도 제가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차가운데 밝을 때도 있죠.




참~~ 모를 사람입니다. 오늘 인터뷰의 키워드로 삼았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농구’를 빼야죠. 돈, 명예 이런 것을 제외하고 소박하게 우리 주변에 잊혀 가는 것. 지나갈지 모르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요.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데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여지들을 키워드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팬들에게 감사하고, 감독님께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하고 그런 거요. 살아 있고 밥을 먹고…. 단순하게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보거든요.




아 그렇군요. 더 과거로 가야겠어요. 어릴 때 장재석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모님께서 항상 저를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키워주셨죠.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저를 꼴통이라고 불렀어요. 제가 꼴통 짓을 많이 해서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제일 시끄러운 아이가 저였어요. 지하철 손잡이를 철봉처럼 이용해서 왔다 갔다 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어요. 길 한복판에서 과자를 안 사준다며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했죠. 어머니는 제가 따라올 줄 알고 지나가셨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 슈퍼 앞에서 5시간을 누워있었죠.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에요.




혹시 지금도 꼴통인가요?
지금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친했던 친구가 있는데, 제가 자주 놀렸어요. 그 친구가 ‘한 번만 더 놀리면 너랑 절교한다’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놀렸죠. 워낙 친한 사이라서 저는 장난이라고 생각한 건데 그 뒤로 정말로 서로 안 봤어요. 그 뒤로 누구를 놀리거나 하지 않죠. 또 중학교 때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며 인생을 알았어요. 서로 존중해야죠.




공부를 잘했다고 들었어요. 학창 시절에 리더 역할도 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서 저까지 4명의 반장 후보가 나왔는데 34표 중 30표를 제가 받았어요. 아이들이 좋아했죠. 키도 큰 편이었고, 또 수학경시대회에서 100점을 맞은 사람이 2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저입니다. 다른 과목도 높은 점수를 받아서 ‘컨닝 한 것 아니야?’라는 의혹도 받았죠.




언제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장재석’이었나요?
중학교 때 까지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수업을 안 들었거든요. 그래도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책이란 책은 다 봤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도 자기계발서는 거의 다 봤어요. 그런데 마지막이 다 똑같아요. 고집하는 철학이 일치하거든요. 그래서 다음에는 소설을 읽었죠. 휴대폰이 없었으니까요. 지하철에서 학교에 가는 1시간 동안 책을 봤어요. 대학 때는 이대성 선수(상무)와도 책을 3~4시간씩 봤어요. 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하신 말씀도 있잖아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물을 때 나는 교도소에서 보낸 6개월을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보던 시간이 행복했다’라고요. 그 시절에 저도 책을 읽을 때 행복했어요. 경제학 서적은 물론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등 이해는 못 해도 책도 찾아서 읽었어요. 경제관념도 그때부터 생겨서 돈을 벌면 관리는 제가 하겠다고 했죠.




그나저나 비시즌인데,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친구들을 만나고 스킬트레이닝을 받고 지금은 인터뷰하네요. 팬 사인회와 행사 참석도 하고요. 치아 치료도 해야 해요. 내일도 병원을 가야 합니다. 개인 시간이 아직은 적은 것 같아요. 휴가를 받고 부모님과도 밥 한 끼 밖에 못한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 형, 형수와 저까지 5명이 모여서는 아직 밥 한 번을 못 먹었어요. 부모님과 여행도 가고 싶은데 못 가네요.



내 미래는 내가 그린다
장재석에 관해 묻고 물었을 때 ‘장재석은 4차원 같다’라는 말이 많았다.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을 답변이지만, 뭔가 의외의 것에 항상 빠져있을 것 같은 인상도 따랐다. 그런데 알고 보면 계산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또한 돈 관리도 정확하게 하는 남자라고.




농구 선수 말고 다른 꿈을 꾼 적이 있었나요?
여행 콘텐츠에 관해 관심이 있었어요. 작게 말하면 여행사인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었죠. 여행 쪽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작년에 이탈리아를 갔다 왔다면서요. 여행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행을 좋아해요. 대학교 때 이대성 선수와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3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국내로 무전여행을 갔어요. 버스표만 구매할 돈을 가지고 만나서 공주로 내려갔어요. 지나가다가 식당에 ‘저희가 무전여행 중인데, 음식만 주신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식사했죠. 밥에 국 하나지만 잊지 못할 식사였어요. 교회에 가서 잠을 하루 청한 적도 있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요. 그런데 다시 가자고 하면 절대 안 갈 겁니다. 후회합니다. 12월 중순에 눈바람이 휘몰아칠 때 무전여행을 갔거든요.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서 공주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누가 무전여행을 간다고 하면 ‘겨울에는 절대 안 된다’라고 말할 거예요. 정말 입도 돌아갈 뻔 했어요. 대학교 3학년, 제 인생에서 가장 추운 시기였어요.




즐거웠던 여행도 있잖아요. 추천하는 여행지가 있나요?
이탈리아요. 피사의 사탑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맛있는 파스타집이 있어요. 한국 돈으로 8,000원 정도인데 굉장히 맛있었어요.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갔는데, 이탈리아 안에서도 순위에 꼽히는 식당이라고 하더라고요. 평생 기억에 남을 맛이에요.




돈 관리를 직접 하신다고 들었어요.
스스로 관리하면서 저축도 하고 펀드도 해요.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때 ‘연봉을 계속 많이 받아서 용돈도 드리고 효도하겠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연봉이 깎이는 바람에… 하하. 돈을 벌면 기부를 연봉의 100%를 하려고 생각했다가 10%로 조절했죠. 어떻게든 약속은 지키려고 했어요.




돈을 많이 모으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있죠?
돈 욕심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기부도 하는 거죠.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까 어느 정도의 돈은 마련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야 우리 부모님과 가족이 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생각하는 액수가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부모님께 현금 5만 원을 빌려서 나왔습니다. 다른 돈들은 관리에 들어가서… 하하.



드디어 찾은 장재석
어지럽게(?) 인터뷰를 마쳤지만, 장재석을 인터뷰하며 확실하게 든 생각이 있다. 주변에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에서처럼 의외의 이야기로 웃음을 터트리는 가하면, 기부와 봉사활동 등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을 데우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것은 분명하다.




네이버라디오 바스켓카운트(이하 바카)로 본인만의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사진 촬영 중에 자꾸 방송 생각이 나서 웃음이 하하.
제가 고등학교 때 박지혁 기자님은 막내 기자였어요. 그때 동네 형처럼 친하게 지내는 형이 됐죠. (박)지혁이 형이 바카에 나오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방송을 못 들어 봤었어요. 저는 경기도 지고 삭발도 한때라 인터뷰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형이 ‘재밌게 하라’해서, 재밌게 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나간 것 후회하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나가서 후회하는 게 아니죠. 인터뷰는 재미있게 하는 데 농구를 못한 실력이 후회스러운 거죠.




바스켓카운트 덕분에 팬도 많이 생기지 않았나요?
마니아 팬이 있는 것 같아요. 청담동에서는 정우성을 봐도 사인을 안 받잖아요. 그런데 바카를 잘 들었다면서 사인해달라는 팬이 있었어요. 물론 김종규 선수(LG)로 착각해서 사인해달라는 사람이 많지만요. (김종규를 닮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종규 선수가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저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이죠. 종규는 농구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예요. 저랑 비교하면 안 돼요.




봉사활동과 기부를 하고 있잖아요.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때 발목 수술을 했는데, 옆에 환자가 돈이 부족해서 치료가 어려웠어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3가지 메모를 했어요. 그중 하나가 프로에 가서 연봉의 100%를 기부하자는 거였죠. 100%는 못하고 있지만, 아까 말했듯이 매 시즌 연봉의 10%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서 수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3가지 메모에서 나머지 2가지는 무엇이죠?
‘인성이 좋고 예의 바른 여자를 만나자’, ‘시간이 날 때 여행을 많이 다니자’였어요. 첫 번째는 저한테 기회가 왔는데 놓쳤어요. (이 2가지는 메모를 한 상황과 안 맞는 것 같아요) 아 제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잖아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지갑에 3가지 메모를 적어놓고 다니면서 지켰다고 하더라고요. 슈워제네거는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과 LA주지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30~40년이 지나 이것을 다 이뤘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재석의 자신감. 이것이 궁금합니다. 농구를 할 때는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밖에서는 또 달라요.
자신감은 지난날의 영광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 나온다고 들었어요. 슈팅에 대해서는 자신감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농구 빼고는 정말 다 잘해요. 말도 잘하고. 주차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제가 정해서 밥 먹으러 가면 음식도 맛있고요. 요리도요. (한)호빈이한테 음식을 해주는 데 정말 맛있다고 해요. 라면 하나를 끓여도 제가 하면 맛있어요!


사진_신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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