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배승열 인터넷기자]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꿈이고 자존심입니다.” 프로농구단 원주 동부 프로미는 KBL 10개 구단 중에서도 손꼽히는 팬 충성도를 자랑한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김주성을 비롯하여 두경민과 허웅, 윤호영 등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는 선수가 많다. 원주시의 관심, 올드 팬들의 성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동부에는 원주 출신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원주는 10개 구단 중 연고지 규모가 가장 작은 도시다. 그래서인지 원주가 배출한 선수도 적다. 한호빈(고양 오리온), 이현석(서울 SK), 이현승(인천 전자랜드) 정도가 전부. 지금 대학생까지 포함하면 변준형(동국대)과 유현준(한양대)도 있다. 그렇다면 원주 출신 선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도시 규모 탓인 것일까? 아니다. 가장 중요한 원주의 엘리트 농구 현실을 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보고 배울 환경이 없다
원주에는 엘리트 농구부가 세 개 있다. 단관, 단구초등학교와 평원중학교가 전부다. 먼저 여자부인 단관초등학교는 2005년 개교 이래 2007년부터 농구부를 모집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9년 처음으로 강원도대표를 경험했고, 2013년 전국 소년체전 대회 3위 2014년 초등협회장기 3위 등 눈에 띄는 성적을 냈다.
하지만 단관초 이창우 코치는 즐겁지 못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대회 성적이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 아쉬웠다고 한다.
“2014년 초등협회장기 3위를 했습니다. 학교와 주변의 축하를 받았지만 다음날 모든 것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대회에 출전했던 5명중 4명은 더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고, 계속 농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원주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어린 친구들 입장에서는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농구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농구를 가르치더라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중부가 원주에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100을 가르치고 싶어도 60~70 밖에 가르치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그저 농구에 대한 기본기와 흥미를 유지시켜주는 것뿐입니다.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또 가까이서 보고 배울 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 친구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요. 동기부여가 될 수 없죠.” 이창우 코치의 말이다.
이 코치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실제로 재능은 있지만, 원주를 떠나야 한다는 이유로 고민 중인 두 학생을 만나봤다.
김두현(6학년)_ 4학년 때 친구하고 같이 와서 농구를 했는데 재밌었어요. 그래서 농구를 시작했죠. 농구를 하면서 수비를 뚫고 레이업을 할 때 재밌고 좋았어요. 좋아하는 선수는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TV로만 본 변연하 선수를 좋아하는데 은퇴를 해서 많이 아쉬워요. 중학교에 가서도 농구를 하고 싶은데 원주에는 여자 농구부가 있는 학교가 없어 고민이에요. 초등학교에서 같이 농구하고 춘천으로 간 언니들이 잘 챙겨 줄 테니 오라고 몇 번 연락은 왔었어요.
김가연(6학년)_ 저도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지금은 체력훈련하며 뛰는 게 힘들어요. 뛰는 것만 빼면 농구가 정말 재밌어요. 저는 SK 김선형 선수를 잘 생겨서 좋아해요. 농구하는 모습도 멋있어요. 두현이랑 중학교 가서도 농구를 같이 하고 싶은데 원주에 학교가 없어 아쉬워요.
이 코치는 쉬는 시간이면 농구를 하려고 달려 나오던 아이들이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연습경기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다보니 지금은 선수들이 ‘레이업을 더 잘 하고 싶다’, ‘수비를 더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회가 아닌 이상 자신의 훈련 결과를 확인해볼 방법이 없기 때문. 이 코치는 “차라리 대회에서 져서 울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낫다”고도 말했다. “좋아하는 농구를 즐길 수 없는 환경에 울고 아쉬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며 말이다.
연계학교가 없다
다음으로는 단구초등학교 농구부를 찾았다. 단구초 농구부는 3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최근 전국과 도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 2014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금메달, 2014 KBL 총재배 어린이 농구 큰잔치 준우승, 2014 대한농구협회장배 전국 남녀초등학교 농구대회 준우승 등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이곳 이도겸 코치 또한 남모를 고민을 갖고 있었다.
“30년이 됐지만, 원주에 초등 농구부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유소년 대회를 다니며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습니다. 농구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그리고 2년 전까지 원주에 중학교 농구부가 없어 농구를 그만두는 아깝고 안타까운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초등학생 때는 빛을 보지 못하더라고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꽃을 피울 수 있는데, 꽃 피울 기회조차 없는 환경이었던 거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더 이상 어린 선수들이 농구를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변에서 힘을 모았다. 당시 초등부 정승범 코치와 학부모님들이 뜻을 함께 했고 지자체의 도움으로 2015년 원주 평원중학교에 농구부가 창설됐다. 이후 정 코치는 당시 초등부 선수들과 함께 평원중으로 진학했고 이도겸 코치와 함께 초등부와 중등부를 연계하며 원주 엘리트 농구의 기반을 닦고 있다. “이 친구들이 농구를 계속하게 만드록 싶어요. 나아가 초등학생 때 농구를 잘 배워서 언젠가 저를 찾아 올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성적도 우선이지만 상황에 맞게 이 친구들이 그만두는 일 이 없게 하는 것이 지금과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이 코치의 말이다.
‘농구 스타가 꿈’이라는 세 소년을 만나봤다.
장진원_ 좋아하는 선수 스테판 커리입니다. 슛과 드리블이 멋있어요. 이번에 준우승을 해서 많이 아쉬웠죠. 저는 학교 농구교실에서 농구를 하다가 코치님이 권유하셔서 농구부에 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엄마가 반대하셨지만, 농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시작했어요. 나중에 SK 김선형 선수처럼 코트에서 재밌게 경기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서알랭_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라며 마이클 조던 영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엄마가 러시아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는데, 제가 4~5살 때 농구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리고 주니어 동부 프로미에서 농구하다가 코치님한테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농구를 시작했어요. 스카우트를 받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죠! 나중에 이승준 선수 같이 멋진 선수가 되고 싶어요.
유석훈_ 좋아하는 선수는 NBA의 카이리 어빙입니다. 화려한 개인기가 멋있어요. 취미로 농구를 시작했는데 운동장에서 농구하던 저를 보시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학교에서 농구하자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울산 모비스의 양동근 선수 같은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당장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농구를 계속 하려면 ‘무조건’ 원주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농구부가 원주가 아닌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갈 경우는 3개월에서 1년이라는 출전 징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인재들이 특정학교로 쏠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지만, 원주처럼 고등학교가 없는 곳에서 농구를 한 선수들은 징계를 감수하며 전학을 떠나면서 농구를 이어나가야 한다. 한 경기라도 더 뛰어야 실력이 좋아지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징계를 받거나 유급을 고민하며 농구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지난해까지 초등부 선수들의 진학에 힘겨웠던 정승범 코치는 또다시 같은 문제로 같은 아이들과 함께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지역을 떠나는 인재들
평원중 정승범 코치는 원주 농구의 또 다른 현실을 소개했다.
“2013년 원주에 있던 중, 고등학교 농구부가 해체되면서 2년 동안 유능한 인재들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거나 그만두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지금 평원중학교에 농구부가 만들어지고 1년간 쉬었던 친구들이 들어왔지만 그 공백이 큰 나머지 따라오지 못하고 그만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원주처럼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으로 가는 선수들의 경우 어차피 징계를 받고 숙소생활을 할 거라면, 춘천이 아닌 수도권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많은 연습상대를 구할 수 있고 꾸준히 경기 감각을 유지해 진학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농구를 계속 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으로 떠나는 지역 인재들이 많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한 지역에서 농구를 하고 배우며 뛰는 것이 선수들에게 좋다고 생각한다. 출전기회부터 시작해 슬럼프가 왔을 때, 자신을 어릴 때부터 지켜봐준 코치들의 관리를 받으면 좀 더 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부가 없는 원주에서는 이런 현실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지역 학교(대성중, 대성고)의 해체가 불러온 암울한 결과다.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포워드 윤범진과 스카우트되며 합류한 가드 이성민도 같은 고민을 안고 지내고 있었다. “연습상대가 없어서 경험이 부족했다”는 윤범진은 “고등학교에서도 농구를 하고 싶은데 농구부가 안 생기면 고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코치는 “범진이는 고등학교에서도 농구를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고 말했다.
윤범진(3학년)_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부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어요. 연습상대를 쉽게 구할 수 없어 늘 경기 경험이 부족했죠. 그래서 대회에 나가면 잘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서도 농구를 계속 하고 싶은데 팀이 안생기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성민(3학년)_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어요. 원주로 스카우트 되면서 1년 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었는데 그땐 많이 답답했죠. 원주에 고등학교 농구부가 창단되는 이야기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원주에 농구부가 생긴다면 1년 유급도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평원중은 왕중왕전에 출전했다. 중고 주말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한 것이다. 정승범 코치는 선수들이 이 경험을 더 살리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했다. “우리는 2학년 중심의 팀인데 모두가 정말 재능이 있고 실력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빠른 시일 내로 고등학교 창단 소식이 들려 어린 선수들이 농구에만 집중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꿈이고 자존심입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어린 선수들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력을 통해 고등학교가 창단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닌 농구부가 자리 잡을 때 까지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필자가 취재한 환경보다 분명 좋은 곳도 존재하고 이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아무 걱정 없이 농구를 하며 성장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노력이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BONUS ONE SHOT | 원주 출신 한호빈(신협 상무)의 생각은?
프로무대에서 활약하는 원주 출신 선수를 만나 원주 엘리트 농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듣고 싶었다. 얼마 후 동부와 상무간의 연습경기에서 지금은 상무에 입단한 한호빈과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한호빈은 “저도 전학을 다니며 적응의 어려움을 경험했었다”며 위 이야기들에 공감했다. 이어 그는“어릴 때는 함께 공을 맞춰본 친구들이랑 경기를 하는 것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눈빛만 봐도 알고 그렇기에 학교가 연계되고 한 지역에서 농구를 한다면 경기력 향상과 경험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못한 원주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는 초-중-고 연계가 끝이 아니라며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이 연습경기였다. 아무래도 지방에 있다 보니 수도권에 모여 있는 학교들과 달리 연습경기 상대를 찾기 힘들다”며 훈련도 훈련이지만 많은 게임을 통해 경기 감각을 유지하며 자기 경쟁력을 갖는 것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또, 한호빈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엘리트 농구의 어려움이 하루 빨리 개선되고 발전 됐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 사진_배승열 인터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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