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김수연(농구용품 전문 칼럼니스트)] 데뷔 5년 만에 NBA의 위대한 50인에 뽑힌 선수. 스스로를 ‘MDE(Most Dominant player Ever, 역대 최고의 지배자)’라고 불러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선수. 2016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샤킬 오닐은 농구 선수로 이룬 업적도 눈부시지만,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도 유일무이한 선수로 남아있다.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열망과 업적을 알아본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1990년대 초반은 시그니쳐 농구화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밖에는 모든 브랜드가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반복했다. 뉴욕 닉스 레전드 패트릭 유잉은 자신의 이름을 딴 유잉(EWING) 브랜드의 시그니쳐 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뉴욕 지역에서는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 외 슈퍼스타들도 크고 작은 브랜드와 광고 계약을 맺으며 스포츠 마케팅 시장을 키워가고 있었다.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아비아(Avia), 아이재아 토마스는 아식스, 래리 존슨은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뒤를 이어 컨버스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이후 농구화 마케팅은 선수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벌어다 주는 산업으로 발전했고 스포츠 브랜드들은 NBA의 최소 스타들의 명성과 기량 그리고 인간성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샤킬 오닐이 데뷔한 1992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업계에는 오래된 불문율 같은 통념이 있다. ‘큰 선수는 신발을 잘 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닐은 대학 시절부터 자신을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대학 시절부터 키운 꿈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마케팅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큰 선수는 신발을 팔지 못한다던데. 자네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건가.’ 오닐은 지난 2013년, 서울서 열린 리복 행사에서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 무척 화가 났습니다. 강의실을 뛰쳐나갈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마케팅에 대해 더 많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기가 끝난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가장 먼저 사람들이 기억할만한 광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닐은 실제로 자신의 리복 농구화 광고에 많은 의견과 아이디어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샤크 로고 디자인에도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마이클 조던의 로고는 다리를 넓게 벌리는 덩크 동작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제 덩크 동작은 다리는 올라오고 무릎은 구부러지죠. 대학 시절 특허 관련 수업을 듣다가 떠오른 것이 있어 학교 근처의 관청에 가서 제 덩크 동작을 특허 신청했습니다. 60달러 밖에 들지 않았어요.” 이 로고는 오닐이 프로 농구선수가 된 후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신발과 의류에 부착되어 팔려나갔다. 또한 그의 덩크 동작을 본떠 만든 동상은 모교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의 농구 체육관 앞에 설치되어 있다.
선수의 로고는 스포츠 브랜드가 디자인하는 것이 보통이다. 메이저리그 레전드 켄 그리피 주니어의 로고는 배트를 휘두르는 것을 형상화했다. 찰스 바클리의 로고는 리바운드를 잡은 뒤 공을 지키는 팔 동작을 강조했다. 스포츠 브랜드가 만든 선수의 로고는 스포츠 브랜드에 권리가 귀속된다. 선수가 해당 브랜드와 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브랜드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그 선수는 로고를 새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 샤크 로고는 오닐 본인의 소유였다. 덕분에 리복과 자연스럽게 결별한 후에도 계속해서 샤크 로고를 쓸 수 있었다.
리복과 힘을 합치다
오닐은 로고 뿐 아니라 스포츠 마케팅에도 관여하고 싶었다. 자신의 기량에 어울리는 수준의 마케팅에 목말라했다. “저는 제가 농구를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앞으로 더 대단한 선수가 되리라 믿었습니다. 남은 것은 스포츠 브랜드를 설득하는 일이었죠. 저는 훌륭한 농구선수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 이름을 딴 제품을 만들고 팔고 싶도록 만드는 일 말입니다.” 오닐의 말이다. “당시 가장 어려운 일은 스포츠 브랜드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큰 선수가 판매에 도움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복은 오닐의 야망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와 6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 리복은 피트니스 제품을 선도하고 있었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리복은 강력한 이미지의 농구선수를 필요로 했고 오닐을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시그니쳐 제품 선수로 낙점했다. 앨런 아이버슨, 르브론 제임스를 거치며 슈퍼 루키가 데뷔 첫 경기부터 시그니쳐 농구화를 신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당시로는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화를 신고 첫 경기를 치르는 것이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마이클 조던 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오닐은 리복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 나이키와 가졌던 회의 내용도 털어놓았다. 나이키와의 만남은 단 한 번뿐이었다. “나이키는 저를 활용한 어떤 것도 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시그니쳐 농구화는 물론이고 말이죠.” 오닐의 말이다. “그래서 저는 회의 자리에 리복 제품으로 온 몸을 도배하고 나타났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회의가 끝나고 말았죠.” 그 회의 자리에는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 필 나이트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오닐은 곧바로 리복의 창업자이자 당시 CEO인 폴 파이어맨을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리복으로 도배하고 나이키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하니 참 좋아하더군요. 덕분에 계약금이 조금 더 늘어났습니다.” 오닐의 말이다.

리복 광고를 직접 기획하다
리복은 오닐과 계약하자마자 광고 제작에 착수했다. 오닐의 첫 광고는 그의 루키 시즌인 1992-1993시즌에 전파를 탔고 그가 원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광고가 되었다. 오닐이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샤킬 오닐의 첫 번째 광고에는 NBA 레전드 센터 윌트 챔벌레인, 차림 압둘-자바, 빌 러셀, 윌리스 리드, 빌 월튼과 존 우든 감독이 출연했다. 이 거장들은 모두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詩) ‘만약에’에서 영향을 받은 대사를 읊었다. 대사의 내용은 오닐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가 될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 때 리복이 정말 열 받아 했습니다. 제작비용으로 수백만 달러를 썼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그렇게 많은 돈을 광고에 쓰지 않았거든요. 대부분의 비용은 선배님들을 모셔오는데 썼습니다.” 오닐의 말이다. “광고의 분위기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가져왔습니다. 미래 느낌과 음산한 분위기 말입니다.”
오닐은 어떻게 보면 건방져 보일 수 있는 광고의 콘셉트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히 5년 뒤 ‘NBA의 50인’에 선정되었고 우승은 모두 네 차례에 시즌 MVP 한 차례, NBA 파이널 MVP 세 차례, 그리고 올스타에 열다섯 차례 선출되었다. “정말 좋은 광고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방식이었으니까요.” 오닐의 말이다. 다섯 명의 레전드 센터가 저를 소개하고 제가 앞으로 그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내용이었죠,”
1.2억 켤레 판매. 여전한 영향력
그 후로 25년이 지난 지금도 오닐은 여전히 자신의 브랜드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 그는 리복과 합의 하에 결별한 후 덩크넷(Dunk.net)이라는 벤쳐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를 통해 오닐은 자신의 이름과 로고가 들어간 농구화를 저렴한 가격에 할인 매장에 공급했다. 그리고 2000년대 말에는 중국 브랜드인 리닝과 상표권 계약을 맺으며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미국의 한 대형 할인 매장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금까지 모두 1억2천만 켤레를 판매했다고 한다. 오닐은 어린이 팬들과 그들의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40달러 이하의 농구화를 공급해왔다. “저는 늘 사회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렴한 신발을 공급하고자 했습니다.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제 이름을 딴 신발을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닐의 말이다. “리복과 함께 하는 기간 동안 우리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리복을 떠난 것은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오닐은 다시 리복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초창기 리복 시그니쳐 농구화도 다시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출시되어 농구 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사진_ 리복 제공, 인터뷰 인용_ 야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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