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맹봉주 기자] 트리플더블(triple double). 한 선수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중 세 부문에서 두 자리 수 이상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한 부문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능력을 갖춰야 하기에 만능선수의 상징으로 통한다. KBL에선 제럴드 워커가 프로 첫 시즌인 1997년 2월 19일 대전 현대전에서 21득점 11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11개의 트리플더블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5시즌 동안 트리플더블은 6번 나오는데 그쳤다. (모든 기록은 2월 8일 기준)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자취 감춘 트리플더블
“가장 최근에 나온 트리플더블이 언제죠?”
“···.”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삼성의 2016년 마지막 홈경기에서 마이클 크레익은 22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경기 후 인터뷰 실에 들어온 삼성 이상민 감독은 “흔치 않은 기록이 나왔다”며 이날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을 향해 크레익 이전에 트리플더블이 언제 나왔는지 물었다.
많은 기자들이 이날 경기장을 찾았지만 이상민 감독의 질문에 제대로 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크레익의 트리플더블은 2015-2016시즌 애런 헤인즈 이후 약 14개월 만에 나온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엔 박찬희가 KBL 통산 111번째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삼성과의 원정경기에서 20득점 12어시스트 10리바운드를 올린 것. 국내선수론 2012년 3월 4일 오세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나온 반가운 소식이었다.
프로농구 초창기만 하더라도 트리플더블이 이처럼 가뭄에 콩 나듯 나는 희귀 기록은 아니었다. 프로원년인 1997시즌부터 2007-2008시즌까지만 해도 한 시즌에 평균 8회의 트리플더블이 나왔다. 2000-2001시즌엔 리온 데릭스(당시 SBS)가 한 시즌에만 6번 기록하는 등 총 21번의 트리플더블이 나왔다. 조니 맥도웰, 크리스 윌리엄스 등 외국선수는 물론이고 강동희, 현주엽, 주희정 등 포지션을 불문하고 다재다능함을 뽐낸 선수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트리플더블이 나오는 횟수가 급감했다. 급기야 2008-2009시즌엔 KBL 출범 후 처음으로 트리플더블이 단 1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2012-2013시즌과 2013-2014시즌엔 두 시즌 연속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트리플더블은 왜 멸종위기 기록이 된 것일까?

그때와 환경이 다르다
먼저 환경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지난 20년간 프로농구는 현대 흐름에 맞춰 조금씩 규칙에 변화가 생겼다. 일리걸 디펜스가 대표적인 규칙이다. 프로농구 초창기엔 지역방어가 금지 됐다. NBA를 따라 일리걸 디펜스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자유로운 돌파로 인한 공격을 권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고득점 경기가 쏟아졌다. 1997시즌 팀 평균 득점은 95.5점에 달했다(2016-2017시즌 팀 평균 득점 79.35점). 경기당 평균 100점을 넘긴 팀도 세 팀이나 됐다(원주 TG삼보: 104.9점, 안양 SBS: 101.7점,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101점).
하지만 2002-2003시즌을 앞두고 일리걸 디펜스는 폐지됐다. 자연스레 평균 득점과 어시스트도 감소했다. 안양 KGC인삼공사 김승기 감독은 “트리플더블이 쉬운 게 아니다. 프로농구 20년 동안 트리플더블 한 번 못해보고 은퇴한 선수가 얼마나 많나”라고 반문하며 “예전엔 일리걸 디펜스가 있어서 득점이 많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원주 동부 김영만 감독도 김승기 감독과 같은 의견을 내놨다. “예전보다 수비가 많이 강해졌다. 내가 선수로 뛸 때는 수비가 약했다. 일리걸 디펜스도 있었다. 일리걸 디펜스가 있을 땐 활용할 공간이 많다보니 득점이나 어시스트 등 공격 포인트를 올릴 기회가 많았다”며 말이다.
이와 더불어 분업화 농구도 트리플더블을 방해하는 요소로 뽑혔다. 예전엔 특출한 기량을 가진 한 선수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력평준화를 이룬 현재는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선수들이 등장했다. 이제는 한 선수가 모든 기록을 휩쓰는 시대는 지났다.
중앙대 시절 14득점 18리바운드 13어시스트 10블록슛으로 한국 농구 최초로 쿼드러플더블(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중 네 부문에서 두 자리 수 이상을 기록하는 것)을 기록한 오세근은 “지금 프로농구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키 큰 선수들은 리바운드, 작은 선수들은 어시스트, 슈터들은 슛 위주로 공격을 한다”며 “경기 중에 잘하는 것만 하려다보니 트리플더블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선수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틀이 잡히며 출전시간 조절에 대한 인식도 강해졌다. 예전처럼 주축선수가 40분을 모두 뛰는 일은 크게 줄었다. 1997시즌 출전시간 1위였던 전희철의 평균 출전시간은 39.67분이었다. 사실상 40분 풀타임을 뛴 셈이다.
정규리그가 지금처럼 54경기 체제로 된 2001-2002시즌도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 출전시간 1위 서장훈은 1경기 평균 39.28분을 소화했다. 반면 지난 시즌 평균 출전시간 1위 리카르도 라틀리프는 경기당 33.7분을 뛰었다. 김영만 감독은 “옛날엔 주전들이 40분 풀타임 가까이 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점수차가 벌어지면 경기후반엔 벤치선수로 다 교체한다. 선수들의 체력관리를 위해서라도 일부러 출전시간을 안배해주기도 한다”며 과거와 현재 선수들의 달라진 출전시간에 대해 비교했다. 결국 공격 지향적인 일리걸 디펜스의 폐지와 수비농구의 발전, 분업화 농구에 따른 출전 시간 조절 등이 겹치며 다방면에서 기록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이 열악해진 것이다.

“타짜가 없다.”
“선수들의 기량문제가 크다.”
여자프로농구 용인 삼성생명의 임근배 감독은 KBL에서 사라져가는 트리플더블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임근배 감독은 “트리플더블을 하기 위해선 패스 능력이 필수다. 득점과 리바운드는 기본으로 가져간다고 했을 때 결국 어시스트 여부에서 트리플더블의 유무가 갈린다”며 “예전 트리플더블을 많이 했던 엘버트 화이트나 크리스 윌리엄스, 현주엽 같은 선수를 생각하면 된다. 모두 패스 능력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자라 불릴만한 선수를 찾기 힘들다”며 어시스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주엽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생각도 비슷했다. 현주엽 위원은 현역시절 ‘포인트 포워드’로 불리며 트리플더블을 5번이나 기록했다.
“좋게 말하면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보다 한 사람에게 몰리는 경향이 적다. 하지만 안 좋게 보면 기술이 떨어진다. 요즘 농구를 보면 오픈찬스에도 못 넣는 게 허다하다. 예전 문경은이나 김영만 같은 선수가 슛을 쏘면 곧바로 ‘백코트 해야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다 들어갔다. 수비가 좋아진 것도 있다. 하지만 오픈찬스에서 못 넣거나 결정적인 자유투가 안 들어가는 건 수비와 아무 상관이 없지 않나. 이런 건 공격 기술이고 본인의 능력이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경기력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일리걸 디펜스의 폐지로 트리플더블이 줄었다는 의견에도 반박했다.
“일리걸 디펜스가 없으면 오히려 플레이하기 쉬울 수 있다. 안쪽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 곳은 비어있다는 의미다. 패스연결만 잘 되면 슛 찬스가 엄청나게 난다. 예전엔 패스 줄 공간이 더 없었다. 이래저래 다 핑계다. 무엇보다 예전엔 일리걸이 있든 없든 패스를 붙이면 다 넣었다.”
그러면서 “사실 지금 타짜는 없다”는 말로 최근 KBL에 트리플더블이 줄어든 현상을 요약했다. 이는 외국선수도 마찬가지다. 단신 기술자보단 장신이면서 골밑을 장악할 수 있는 센터형 외국선수를 선호하는 요즘 흐름에선 외국선수도 트리플더블을 올리기 쉽지 않다. 현주엽 위원은 “요즘엔 각 구단에서 (리카르도)라틀리프나 (제임스)메이스 같이 리바운드를 해주는 센터를 더 선호한다. 이 친구들이 계속 뛰니까 득점과 어시스트에 특화된 단신 외국선수들의 뛰는 시간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나마 KBL에서 뛰는 단신 외국선수도 팀 상황상 빅맨으로 뛰는 경우가 많다. 크레익도 KBL에선 파워포워드로 뛰지만 원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다. 크레익은 “한국에 오기 전에는 트리플더블을 여러 번 했었다. 그때는 포인트가드로 뛰었다. 때문에 어시스트를 많이 할 수 있어 트리플더블을 하기 쉬웠다”고 했다.
8개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앨버트 화이트에 이은 KBL 통산 트리플더블 2위이자 국내선수 1위에 올라있는 주희정도 현주엽 위원의 말에 동의했다. “타짜가 없기 때문에 트리플더블이 안 나오는 것이다”라며 “외국선수나 국내선수나 예전에 비해 뛰어난 선수가 별로 없다. 한 마디로 기술을 갖고 요령껏 농구하는 기술자, 타짜가 줄어들었다. 일단 농구를 잘 알고 해야 득점이나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등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고 말했다.
“맹목적으로 감독이 지시한 패턴대로 움직이는데 막히면 어떻게 할까? 그 다음부터는 요령껏 해야 한다. 수비 움직임을 알고 수비를 속여야 한다. 패턴은 패턴이고 작전은 작전일 뿐이다. 선수는 그 다음 수, 다다음 수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농구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주희정은 “요즘 선수들이 트리플더블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기록은 결국 의지의 산물이라는 뜻이었다. “욕심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득점과 어시스트는 되는데 리바운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리바운드 참여를 많이 하는 거다. 꼭 트리플더블이 아니어도 가드가 리바운드를 잡으면 팀 속공과 사기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수비농구로 인해 기록이 감소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도 고개를 저었다. “수비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수비를 열심히 하면 리바운드나 스틸 등의 기록이 올라갈 수 있어 더 좋은 것 아닌가?”라며 되물었다.

NBA(미국프로농구)는 우리보다 앞선 2001-2002시즌 일리걸 디펜스를 폐지했다. 다양한 형태의 지역방어와 압박수비를 기반으로 하는 수비전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 NBA는 트리플더블 풍년이라 불린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러셀 웨스트브룩은 정규리그 72경기를 치른 현재 25개의 트리플더블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웨스트브룩의 평균기록 자체가 트리플더블이다(31득점 10.4리바운드 10.3어시스트).
결국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트리플더블을 위한 기록은 선수의 개인 기량에 의해 결정된다. 규칙이 변하고 수비가 강해져도 이를 이겨낼 기량이 받쳐준다면 기록은 뒤따라온다. 앞서 말했듯 트리플더블은 만능선수의 상징으로 통한다. KBL에 트리플더블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진_문복주, 신승규, 유용우 기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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