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강현지 기자]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인천 전자랜드 신인 강상재(23, 200cm)를 보면 딱 그 말이 와 닿는다. 막내답게 구김살이 없고, 형들과도 잘 어울린다. 강상재 어머니 김위숙 씨(49)는 강상재가 농구선수로서 갖춰야 할 큰 키, 건강관리에 집중하며 아들의 성장을 도왔다. 덕분에 그는 2016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지명되며 프로선수가 될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도림초-칠곡초, 침산중을 거쳐 홍대부고로
어릴 적 강상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활발한 아이였다. “학교 마치고 오면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놀러 나가기 바빴어요. 자전거를 타다가 들어와서는 야구 하러 나가고, 그러다가 또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나가서 놀고…. 그러다 동네 주민이 먹을 거라도 챙겨주면 ‘누나 이거 먹어’하고 또 놀러 나가고 그랬죠.”
그러던 어느 날. 강상재는 학교 클럽 활동으로 농구를 하겠다고 말한다. 잠깐 하다말 줄 알았던 아들이 대회에 나간다며 어머니를 초대했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그는 도림초 유선향 부장의 권유로 그때부터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그러던 중 강상재를 가르치던 도림초 강구황 코치가 칠곡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자, 그도 강 코치를 따라 전학을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졸업 후 강상재는 침산중 김광호 코치를 만났다. “김 코치님이 상재를 예뻐하셨어요. 체격도 좋다보니 키워주고 싶어 하셨죠. 혼도 많이 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침산중을 졸업한 강상재는 대구 계성고가 아닌 홍대부고로 진학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더 많이 뛰고, 성장할 수 있는 ‘큰 물’에 보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큰 키, 팔·다리 스트레칭이 비결
“홍대부고 이무진 코치님이 ‘상재 키가 197cm까지만 자라면 대형 포워드로 만들어보겠다’라고 하셨어요. 당시 상재가 188cm 정도 됐거든요. 신체 조건이 되다 보니 경기 출전 기회를 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 김위숙 씨의 말이다.
“홍대부고 진학이 상재의 농구 인생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키도 많이 자랐고, 실력도 많이 늘었죠.”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강상재 부친의 키는 170cm 남짓 정도. 그런데 강상재는 어떻게 2m까지 컸을까? 역시나 남모를 뒷바라지가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숙소 생활 대신 집에서 다녔어요. 그래서 9시만 되면 잠을 재웠죠. 그리고 잠들 때까지 팔다리를 주물러줬어요. 어린 아기들이 하는 쭉쭉 체조처럼요. 상재 아버지도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새벽 6시에 상재 깨워서 뒷산에 한 번 다녀왔다가 체육관 불 켜서 슛 연습을 시키고 그랬어요. 각도 별로 성공률도 매일 기록하고요.”
2.5일간 일탈
프로에 데뷔한 선수들을 보면 한 번씩은 다 ‘일탈’을 경험이 있다. 일명 ‘소풍’이다. KBL의 대표 성실맨 모비스 양동근조차도 용산고 1학년 때 ‘남들도 다 한 번씩 도망가는데 나도 한번 해보자’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딱 한 번 도망간 적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강상재도 홍대부고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다. 소풍을 간 이후로 친구들과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김위숙 씨는 부리나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야단을 치는 대신 강상재를 타일렀다. “그렇게 찾으러 다녔는데, 이틀하고 반나절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돌아오더라고요. 그때 상재에게 말했죠. 그런 상황에서 코치님들께 부모님들이 죄송하다고,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렇습니다’라고 사과를 드리잖아요.
‘코치님들이 아빠, 엄마보다 젊으신 분도 있는데 네가 이런 행동을 하면 코치님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네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면 아빠, 엄마는 대구에서 올라와야 해’라고 상재에게 말했어요.” 그 사건 이후로 강상재는 크게 부모님 속 썩이는 일 없이 대학을 거쳐 프로선수가 됐다.
그렇다면 숙소를 떠난 강상재는 그 시간 동안 뭘 했을까. “용돈 이외에는 수입이 없었을 때니까 박스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하루했다고 하는데 큰 일없이 돌아와서 다행이었죠.”

친구같은 누나
강상재에게는 연년생 누나 강민지 씨가 있다.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다. 그래서인지 강상재의 인터뷰를 보면 ‘누나’에 대한 언급이 많다. 김위숙 씨는 먼저 “상재가 운동을 하다 보니 제가 집을 비우는 날이 가끔 있었어요. 그럼 민지는 혼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라며 누나 민지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강상재도 마찬가지로 누나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상재가 요즘 인터뷰를 하면 누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 때문에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고 미안해하더라고요. 또 여자아이다 보니 챙겨두기만 하면 잘 챙겨 먹고 했죠. 상재가 운동을 하는데 민지가 이해를 많이 했어요.” 프로 데뷔 후 어엿한 사회인이 된 강상재는 이제 그런 누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남매가 나란히 치아 교정을 하고 있어 강상재는 외박 받는 날이면 민지 씨와 같이 치과에 가기도 한다. 동생이지만 때로는 친구 또는 오빠처럼 누나를 챙기는 강상재의 모습에 김위숙 씨는 흐뭇하기만 하다.

아들의 눈물
어릴 땐 눈물이 많은 아들이었다. 야단을 치면 소리 없이 울곤 했는데, 딱 그 정도였다. 남자가 그렇게 자주 우는 게 아니라며 아버지께 혼도 많이 났다. 그것도 어릴 때였지 다 큰 아들의 눈물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다 김위숙 씨는 기사를 통해 강상재가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난해 11월 6일 이승현(고양 오리온)과의 매치업에서 팀이 80-82로 분패한 이후였다. 강상재는 당시 매치상대였던 이승현에게 위닝샷을 헌납했다. 라커룸으로 들어간 강상재는 “자신 때문에 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아들이 조금만 더 잘해줬으면 좋았을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그것 때문에 라커룸에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 듣고 제가 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전화도 못했어요.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오히려 모르는 척하는 게 낫겠다 싶었죠.” 강상재는 그다음 맞대결에서 보란 듯이 17점 6리바운드를 기록, 지난 패배를 설욕(88-81)했다.

BONUS ONE SHOT │ 서로에게 전하는 메시지
어머니가 아들에게
지금까지도 잘해줬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부상 없이 네가 노력하는 만큼 더 잘됐으면 좋겠다. 대학 때는 아무래도 경기 출전 시간이 중요했잖아. 그런데 프로는 직업이다 보니 부상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부상당해서 재활, 치료 하다보면 다른 선수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도 해. 그럼 네게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지. 그래서 부상은 항상 조심했으면 좋겠다. 항상 잘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다 보니 컨디션에 따라 기복은 있을 수 있어. 그런데 상재야, 프로 선수는 직업이니 네 가치는 스스로 높였으면 좋겠단다. 팀에 녹아들고 젖어들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제가 운동 시작한 이후부터 어머니가 몸에 좋다고 하는 건 다 해주셨어요. 반찬 투정하지 않게끔 잘 챙겨주셨고, 끼니도 거른 적이 없죠. 특히 제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 힘들어할 때면 어머니께서 좋은 이야기나 힘이 날 수 있었던 말씀을 해주셨어요. 특히 ‘잘하든 못하든 강상재는 어디 가지 않는다. 자신감을 가지고 하자’고 격려해 주신 게 특히 기억에 남아요. 어머니의 적극적인 도움 때문에 지금 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죠. 꼭!
# 사진_점프볼 DB(유용우 기자), 강상재 부모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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